2014년 5월 20일 화요일

'고질라', 여름철 블록버스터로 흠잡을 데 없었다

헐리우드가 '고질라(Godzilla)' 영화를 또 만든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무의식 중 자동으로 튀어나왔던 한마디가 있다:

"C'mon man..."

'킹콩', '고질라' 등 괴수영화를 재밌게 보던 시절은 지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몬스터 영화 쟝르 팬이나 SF-판타지 영화 팬들은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어도, "거대한 몬스터가 대도시를 파괴하는 영화"라고 하면 더이상 흥미가 끌리지 않는다. 툭하면 "비쥬얼", "비쥬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비쥬얼에만 올인한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요새 워낙 많이 나오고 있어서 그것만으론 더이상 눈길을 끌기 어렵다.

그런데 '고질라' 영화를 또 만든다니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다. '고질라' 뿐만 아니라 몬스터 영화 쟝르 자체에 식상한 지 오래인데 말이다.

한편으론 2013년 개봉했던 '퍼시픽 림(Pacific Rim)'을 의외로 재밌게 봤던 것처럼 이번 '고질라'도 기대와 달리 재밌게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대한 로봇이 거대한 몬스터와 싸운다"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유치하고 식상한 내용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 밖으로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으니 이번 '고질라'도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다. "몬스터 영화"라고 하면 이젠 쓴웃음이 먼저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혹시 누가 아나?" 하는 생각에 2014년 여름철 영화 '고질라'를 보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2014년 영화 '고질라' 역시 유치하고 식상한 또 하나의 한물 간 몬스터 영화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놀랍게도 "NO"다. 이번 '고질라' 영화는 또 하나의 유치하고 식상한 몬스터 영화가 아니었다.

사실 영화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욕을 한바탕 하려는 생각에 '고질라'를 본 것인데, 뜻밖에도 영화가 제법 맘에 들었다. 예고편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제로를 지나 마이너스까지 떨어져 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다. 2014년 '고질라'는 기대 이상으로 제법 볼 만했다.

물론 2014년 '고질라' 역시 "거대한 몬스터가 대도시들을 파괴하는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런데 2014년 '고질라'는 거대한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이전 파트가 더 재밌었다. 몬스터들이 등장해 대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했을 땐 'HERE-WE-GO-AGAIN'이었을 뿐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던 반면,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지진 등 자연 재해, 원자력 발전소 등을 연결시키며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파트가 흥미진진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무섭게 몬스터들이 나타나 대도시들을 때려부수는 또 하나의 비슷비슷한 몬스터 영화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그런 영화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으며, 영화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서론'이 길어진 덕분에 고질라를 비롯한 거대한 몬스터들의 등장 타임이 뒤로 미뤄진 것은 사실이며, 이 바람에 고질라의 등장 시간이 짧아진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아쉽진 않았다. 오히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거대한 몬스터들과 씨름을 벌이는 뻔할 뻔자의 싱거운 몬스터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는 데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14년 '고질라'는 '인간 vs 몬스터'의 대도시 때려부수기 영화가 아니라 몬스터 영화와 대재앙 영화를 하나로 합친 듯한 영화였다. 영화에 나온 지진, 쓰나미, 방사능 오염 지역 씬을 보면서 최근에 실제로 발생했던 대재앙 사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대재앙 사건들이 영화의 줄거리처럼 고질라와 그의 몬스터 친구들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겠지만, 대지진 → 쓰나미 →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유출로 이어졌던 2011년 일본 대지진과 겹쳐지면서 영화의 비핵화 메시지를 지나치기 어려웠다. 물론 고질라가 처음 일본에서 탄생되었을 때부터 핵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만큼 고질라 영화를 만들면서 핵 관련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므로 대단히 참신한 아이디어였다고 하긴 아무래도 어렵다. 하지만 대규모 재연재해와 이로 인한 방사능 유출 사고 등 최근에 실제로 발생했던 대재앙 사고를 고질라 영화 줄거리의 배경으로 삼은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으며, 거대한 몬스터가 방사능과 방사능 오염물질을 먹는다는 설정 또한 흥미로웠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인간 캐릭터였다. 브라이언 크랜스턴(Bryan Cranston), 켄 와타나베(Ken Watanabe), 데이빗 스트라테이언(David Strathairn), 애런 테일러-존슨(Aaron Taylor--Johnson), 엘리자베스 올슨(Elizabeth Olsen) 등 출연진은 나쁘지 않았으나 캐릭터가 신통치 않았다. 켄 와타나베가 연기한 과학자는 실망스럽게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고,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게 원인이라고 의심하는 원자력 발전소 기술자 조 브로디(브라이언 크랜스턴)는 '고질라 2014' 캐릭터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었으나 리딩 롤을 그의 아들인 포드 브로디(애런 테일러-존슨)에 넘겨주면서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흥미를 끌던 캐릭터가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몬스터와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영화의 주인공인 포드 브로디(애런 테일러-존슨)는 '편리하게도' 미국 해군으로 설정되었다. 이렇다 보니 2014년 '고질라'의 등장 캐릭터에 문제가 있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름철 블록버스터 영화에 많은 걸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지만, 등장 캐릭터에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렇다고 애런 테일러-존슨이 리딩맨으로 부족해 보였던 것은 아니다. 테일러-존슨은 그럭저럭 오케이였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좋았다고 해도 미군 역할엔 어울리지 않았다. 최근 들어 미군 헬멧을 쓴 모습이 굉장히 어색해보이던 배우들이 몇몇 있었는데, 애런 테일러-존슨도 그 중 하나로 넣어야 할 것 같다. 테일러-존슨을 리딩맨으로 세운 것까진 좋았는데 군인 말고 다른 캐릭터는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봤을 때 2014년 '고질라'는 여름철 블록버스터 영화로써 흠잡을 데가 많지 않은 영화였다. 고질라를 비롯한 몬스터들이 영화 시작부터 난동을 부리지 않았지만 액션은 그만하면 충분했으며, 쓰나미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하와이에 쓰나미가 들이닥치는 씬, 몬스터들에 의해 파괴된 대도시 풍경, 그리고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몬스터 vs 몬스터 배틀 씬 등 볼거리도 풍부한 편이었다. 아주 깔끔하게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으며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여름철 영화로써는 표값 하는 영화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렇다고 몬스터 영화에 대한 편견을 사라지게 하거나 다시 생각해보도록 만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2014년 '고질라'는 'NOT-BAD'이었다.

하지만 만약 2탄이 나온다면?

이제 이것은 더이상 '만약'이 아닌 듯 하다. 워너 브러더스와 레전더리 픽쳐스가 '고질라' 속편제작을 이미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탄이 별로 기대되진 않는다. 고질라를 비롯한 거대한 몬스터의 존재가 이미 다 드러났으므로 제 2, 제 3의 무토(MUTO: Massive Unidentified Terrestrial Objects)를 또 발견한다고 해도 첫 번째 영화 만큼 흥미로울 수 있겠는지 의심스러워서다. 2014년 '고질라'의 최대 매력 포인트가 몬스터 배틀이 아닌 도입 파트라고 보고 있는데, 속편이 나온다면 왠지 뻔할 뻔자의 몬스터 vs 몬스터 영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제작진이 또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고질라' 속편 제작을 앞으로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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