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2일 토요일

'어톤먼트' 또다른 진부한 러브스토리

2차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1935년 영국.

두 자매가 있다.

언니 쎄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는 성인이고 동생 브라이오니는 13세 소녀다.

그런데, 두 자매가 한 남자를 좋아한다. 가정부의 아들 로비(제임스 매커보이)다.

하지만, 로비는 서로 나이가 맞는 쎄실리아와 어울릴 뿐이다.

당연히 브라이오니는 열받을 수밖에!

쎄실리아와 로비의 사이에 질투를 느낀 철없는 13세 소녀 브라이오니는 엄청난 거짓말로 로비를 궁지에 빠뜨린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3~40년대 배경의 '어톤먼트(Atonement)'는 13세 소녀의 철없는 거짓말로 풍비박산이 난 로비와 쎄실리아의 러브스토리에 대한 영화다.

러브스토리? 참 좋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용이 전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린 소녀가 성인 남자와 짝사랑에 푹 빠진 나머지 어처구니 없는 짓도 불사한다는 내용은 드라마/스릴러 쟝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90년대초에 나온 알리시아 실버스톤 주연의 'The Crush'도 그중 하나다.

물론, '어톤먼트'는 'The Crush'처럼 질투심에 불타는 어린 소녀의 복수극에 촛점을 맞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이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만은 사실이다. 로비와 쎄실리아의 이뤄질 수 없는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지만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비극으로 몰고간 건 질투심 어린 어린아이의 철없는 거짓말이다. '속죄'라는 의미의 'Atonement'가 제목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유쾌한 러브스토리는 물론 아니다. 누가 뭐래도 슬프고 애절한 러브스토리가 맞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애절함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것.

쎄실리아는 런던에서 간호사가 됐고 로비는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 군에 입대해 프랑스에 배치됐다.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로비를 전쟁터로 보낸 장본인은 브라이오니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13세때 한 거짓말 덕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전쟁'과 '이별'이 나온다는 것.

그렇다. 철없는 어린아이의 '크러쉬(Crush)'사건에서 은근 슬쩍 '전쟁'과 '이별' 이야기로 이동한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이별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는 내용은 이런 류의 멜로 러브스토리 영화에서 무지하게 자주 보던 것이다. 여기에 '이게 다 13세 소녀의 철없는 짓 때문'이라는 것을 보태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크러쉬(Crush)'와 '전쟁과 이별'이란 흔해빠진 테마를 한데 묶어놓은 게 전부인 것으로 보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어톤먼트'엔 거진 교과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이별장면'까지 나온다.

쎄실리아는 버스를 타고 떠나고...



로비는 쎄실리아가 탄 버스를 뒤쫓고...



왜?

기네스 맥주 생각이 나서...?

C'mon man, this is TWENTY FIRST CENTURY!

저런 장면 보면서 훌쩍이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좋게 표현하면 '클래식 영화의 한장면처럼 연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40년대라고 40년대에 만든 영화처럼 보이도록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옛날 영화의 향수에 젖어 다른 것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였다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해야할지도...



또 한가지 신경쓰이는 것은 아무리봐도 어설픈 성인영화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언 매키완((Ian McEwan)의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덕분에 원작이 얼마나 성인용인지 모르겠지만 영화 줄거리만 보면 R(17세 이상)등급에 어울릴만한 성인영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로비가 쎄실리아에게 쓴 선정적인 내용의 편지를 비롯해 성인테마 분위기가 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손에 꼽히는 몇가지만 빼면 패밀리 영화 수준의 러브스토리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편지에 씌인 단어 한 두개를 바꾸고, 섹스씬 수위를 약간 낮추고, 병원에서 치료받는 부상 병사들의 상처부위 노출을 줄인다면 PG-13, 심지어 PG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누드씬과 섹스씬이 자주 나오는 영화라면 또다른 얘기겠지만 '어톤먼트'는 이쪽과도 거리가 상당히 멀다. '에로티시즘'이란 단어와는 무관한 영화다. 반드시 섹스씬이 나와야 성인영화인 건 물론 아니지만 '어톤먼트'는 조금만 수정하면 PG, PG-13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패밀리 러브스토리'지 다른 성인 러브스토리처럼 '끈끈한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패밀리 영화처럼 보이는 것을 어떻게서든 막고 억지로라도 R등급을 받고자 한 게 아니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 그랬을까?

이 모두가 키이라 나이틀리를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세팅인 것일까?



'어톤먼트'에서 보여준 나이틀리의 연기는 큰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이틀리가 사극 멜로영화 여주인공에 어울리는지는 생각해보게 된다.

어찌보면 '캐리비언의 해적들' 시리즈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리비언의 해적들'에서의 엘리자베스 캐릭터를 지우더라도 나이틀리가 시대극에 어울리는 배우로 보이지 않는다. 나이틀리는 '어톤먼트', '실크' 등에서 '지난시대의 여인'으로 자주 나왔지만 아무리 봐도 그쪽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멜로영화와 나이틀리를 결합시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나이틀리와 같은 'Happy Face'가 멜로영화 여주인공에 어울리는지 헷갈린다. 이 또한 '캐리비언의 해적들'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캐리비언의 해적들' 탓만 할 순 없겠지?

나이틀리가 이미지 변신을 시도중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고자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영화들을 통해 성인 연기자가 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Closer'에서 스트립 댄서역으로 성인 연기를 시도했다가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으로 아이들 품으로 직행한 나탈리 포트맨처럼 될 수 있다. 성인 연기에 도전하더라도 잘 어울리는 영화와 역할을 잘 골라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지 무조건 성인 연기에만 집착하면 죽쑬 수도 있는 것.



반면, 로비역의 제임스 매커보이는 잘 어울렸다. 요란스러운 액션영화보단 '어톤먼트'처럼 차분하고 잔잔한 드라마에 잘 어울리는 배우다. 그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도 코메디, 드라마 쟝르다.

그렇다고 매커보이가 액션영화를 안찍는 건 절대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 모건 프리맨과 함께 출연한 액션영화 '원티드(Wanted)'가 올여름 개봉예정이다. 이 영화에서도 매커보이는 삘리리한 청년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엔 프로페셔널 킬러로 성장한다니 '어톤먼트'에서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듯.



하지만,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브라이오니를 연기한 3명의 여배우들이다.

철없는 거짓말로 사고를 쳤던 13세 소녀, 잘못을 깨달은 18세 소녀, 그리고 노인의 모습까지 시대순으로 '3명의 브라이오니'가 영화에 나온다.

그렇다. 할머니까지 나온다. 덕분에 영화 '타이타닉' 냄새도 난다. 할머니가 된 브라이오니가 마지막으로 쓴 쎄실리아와 로비에 대한 논픽션 소설의 내용이 영화에 나온 셈이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처럼 인터뷰식 회상은 아니고, 할머니의 회상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은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들이 직접 자기소개를 하지 않더라도 브라이오니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3명 모두 오른쪽 눈 밑의 점을 갖고있는 덕분이다.



이중에서 베스트를 꼽는다면?

길게 생각할 것 없다.

13세의 브라이오니를 연기한 Saoirse Ronan이다.

13세 브라이오니가 '다다다다' 뛰어다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토록 천진난만해 보이던 여자아이가 성인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끼어들어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는다.

Saoirse Ronan은 '어톤먼트'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에도 노미네이트 됐다.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 된 7개부문 중에서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드는 게 바로 Ronan의 여우조연상이다.



7개부문이라고?

'어톤먼트'는 심하게 실망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골든글로브 7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의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대로 매력이 있는 영화라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어도 상복 터질 정도로 잘만든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노스탈직 멜로 러브스토리에 빠져버리면 줄거리고 뭐고 따질 것 없이 무조건 멋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톤먼트'는 또하나의 진부한 러브스토리 이상이 아니다.

아무래도 '어톤먼트'를 딱 2개의 단어로 표현하라면 '지루'와 '허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사건에 휘말리면서 줄거리와 등장 캐릭터 모두가 요동치기 전까지는 스토리 진행 스피드가 더디고 지루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메인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면 금새 잊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인 스토리'도 다른 영화에서 재탕, 삼탕한 내용이다보니 최루성 성인 멜로영화처럼 그럴싸하게 폼잡아 놓은 게 전부처럼 보였다. 처음엔 거창하게 보였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결국 이런 얘기였냐'는 생각만 들 뿐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는 같은 장면을 2개의 다른 시점에서 보여주고 플래시백씬도 나오는 등 꽤 아기자기한 편이다. 철없던 13세 소녀에서 18세가 되어 잘못을 깨닫고, 노인이 되어 마지막 '참회의 소설'을 발표하기까지의 악녀(?) 브라이오니의 이야기도 그런대로 흥미롭다. 하지만, '결국은 흔해빠진 얘기였다'는 결론을 바꿀 정도는 못된다.

2008년 1월 9일 수요일

'본드22' 어느 방향으로 갈까

다니엘 크레이그의 두 번째 007 영화 '본드22(제목미정)'의 주요 캐스팅 정보가 공개됐다.

제임스 본드는 물론 다니엘 크레이그, 본드걸엔 우크라이나 출신 여배우 올가 쿠리렌코와 영국 신예 젬마 아터튼, 악역은 프랑스 배우 매튜 아말릭에게 돌아간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더욱 흥미로운 건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같은 액션영화를 감독해본 적이 없는 마크 포스터가 감독을 맡았고,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제이슨 본 시리즈의 스턴트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댄 브래들리가 액션/스턴트를 담당할 2nd 유닛 감독을 맡았다는 것.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것만으로 '본드22'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한번 짚어봤다.

일단, 본드걸 캐스팅으로 돌아가보자.

'카지노 로얄'의 에바 그린에 이어 이번에도 본드걸은 Gothic 분위기가 날 것처럼 보인다. 스타일로 따지면 우아한 드레스가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닌 'Street Style'에 가까워질 것처럼 보인다. 리딩 본드걸이 비디오게임을 영화로 옮긴 청소년층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영화 '힛맨'(The Hitman)'의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배우라는 점도 흥미롭다. 젊은층을 의식한 티가 나는 것.

또다른 본드걸, 젬마 아터튼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나온 영화를 아직 한편도 보지못한 상태라 뭐라 할 단계는 아니지만 젬마 아터튼도 '현대적인 외모'라는 평을 듣는 신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의도적으로 본드걸을 '영계(?) 스타일'로 정한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

일단 줄거리가 이어지는만큼 '본드22'도 '카지노 로얄'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갈 전망이다. 따라서, '본드22'도 쿨한 가젯이 많이 나오는 판타지 스타일이 아니라 이언 플레밍 원작쪽에 가까운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지구를 지키는 007'이 아닌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한 내용과 분위기의 영화일 것으로 기대된다.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도 '60년대 숀 코네리 시절을 되살리고 싶다', '60년대 마이클 케인 주연의 스파이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스크린라이터 폴 해기스는 '이언 플레밍과 존 르 카레의 첩보소설을 섞는다'고도 했다. 5~60년대 첩보소설 냄새가 짙게 풍기는 클래식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걸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악역을 보자.

악역 도미닉 그린역으로 캐스팅된 프랑스 배우 매튜 아말릭은 아무래도 '신세대 스타일'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뮌헨(Munich)'에서 연기했던 루이스와 비슷한 색깔을 유지한다면 그가 연기할 도미닉 그린은 클래식한 캐릭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말릭과 같은 분위기의 배우는 세계정복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는 엉뚱한 악당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드22'의 도미닉 그린은 '위기일발'의 레드 그랜트, '유어 아이스 온리'의 크리스타토스, '라이센스 투 킬'의 산체스, '카지노 로얄'의 르쉬프처럼 사실적인 제임스 본드의 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매튜 아말릭은 다니엘 크레이그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악역으로 왔다인 배우다. 아말릭도 크레이그와 마찬가지로 'Modern Looking'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만큼 클래식 스파이 영화 분위기를 내는데 적합한 배우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캐스팅은 둘 째 치더라도 악역만큼은 제대로 선택한 것 같다.

여기에 마크 포스터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마크 포스터 감독은 여지껏 007 시리즈와 같은 액션영화를 감독한 적이 없다. 덕분에 마크 포스터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레이커', '다이 어나더 데이'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마크 포스터 감독의 '본드22'는 밝고 가벼운 판타지 액션영화가 아닌 어둡고 무거운 '줄거리 진행형'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액션영화인 것엔 변함없을 것이다. 007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액션영화인만큼 '본드22'도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스파이더맨' 시리즈, 제이슨 본 시리즈의 스턴트 코디네이터, 댄 브래들리가 '사실적인 액션씬'을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 자동차 스턴트를 뺄 수 없었던 것처럼 '본드22'에서도 자동차 스턴트는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본드22'에서도 자동차끼리 서로 충돌하고 도로에서 튕겨나가는 스턴트를 보게 될 듯.

'본드22'가 클래식 스타일과 신세대 스타일을 'Shaken, not stirred' 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만큼 주제곡은 누가 어떤 풍의 곡을 부를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제목은?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진다는 의미는 이언 플레밍 원작의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줄거리가 이어진다는 사실보다 '카지노 로얄'로 돌아온 이언 플레밍 원작 분위기를 계속 살리겠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게 옳다. 따라서, '본드22' 제목을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에서 따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플레밍이 쓴 제임스 본드 소설 대부분이 영화제목으로 사용됐지만 아직 사용되지 않은 게 몇 개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Risico', 'The Property of a Lady'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하나가 될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제목이 될까?

생각하면 할수록 기대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드22'의 미래가 전부 'Positive'한 건 아니다.

'카지노 로얄'은 누가 뭐래도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이 있었고 그 덕을 톡톡히 봤다. 007 제작팀이 구태여 새로운 걸 만들어낼 필요없이 플레밍의 원작소설에 의존할 수 있었던 것.

007 영화 제작팀이 플레밍의 원작을 영화에 사용했던 건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가 마지막이다.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은 모두 이언 플레밍의 소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여기저기서 플레밍 소설의 흔적을 찾아볼 순 있지만 플레밍이 쓴 소설 중에 '라이센스 투 킬', '골든아이' 등은 없다. 제목부터 시작해서 내용까지 거의 전부를 007 영화 제작팀들이 만들어야 했던 것.

007 제작팀은 '리빙 데이라이트' 이후 거의 20여년만에 플레밍의 원작에 다시 한번 기댈 수 있었다. 이것이 '카지노 로얄'이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거의 6억불을 벌어들이며 흥행성공했다. 아주 오랜만에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007(Ian Fleming's James Bond 007)이라고 할 자격이 있는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나오자 바로 이런 007 영화를 기다렸던 전세계 영화팬들이 열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드22'다. '본드21'은 성공했다지만 '본드22'는 어찌될지 불투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엔 기댈 원작이 없다는 것.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지도록 한 이유는 이언 플레밍 원작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고자 한 것인데 '본드22'의 줄거리는 플레밍의 소설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플레밍의 원작과 무관하면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본드22'의 성패는 바로 여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줄거리까지 이어붙이면서 '카지노 로얄'을 '본드22'까지 억지로 끌고가며 플레밍 원작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실패를 면키 어렵다. 맨손격투나 사실적인 스턴트가 전부가 아니라 '얼마나 이언 플레밍다운 스토리가 준비됐느냐'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클래식 스파이 영화를 어설프게 흉내낸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현재로썬 분위기만 진지하고 심각해진다고 플레밍 스타일을 살린 게 아니라는 걸 제작팀이 잘 알고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카지노 로얄'이 흥행성공한 이유도 영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전부인 것이 아니라 친근한 이언 플레밍의 원작 내용이 영화에 나왔다는 덕이 컸다는 것도 알고있으리라.

2008년 1월 8일 화요일

'섀터드' - 브로스난과 버틀러의 인연

피어스 브로스난, 저라드 버틀러, 마리아 벨로 주연의 영화라면 어느 정도 시선을 끌 것이다.

미국에선 제목도 '버터플라이 온 어 휠(Butterfly on a Wheel)'에서 '섀터드(Shattered)'로 간단하게 바꿨다.

그러나,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곧바로 DVD로 나왔다.

덕분에 12월말 미국서 DVD로 출시되기까지 볼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보고나니 대충 감이 잡힌다: 이런 식의 얇팍한 스릴러로 좋은 반응을 얻기 힘들었을테니까.

'섀터드'는 톰 라이언(피어스 브로스난)이 닐(저라드 버틀러)의 딸을 납치한 뒤 돈을 요구하는 단순한 범죄영화처럼 시작한다.

잠깐! 그렇다면 피어스 브로스난이 악역으로 나오는 거냐고?

'나이든 매튜 매커너히'에 가깝게 보이는 피어스 브로스난이 악역에 도전했다는 게 어찌보면 재미있지만 요샌 이런 식의 이미지 변신이 유행이다보니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의 문제는 피어스 브로스난이 악역으로 나온 게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게 문제다.

'영국배우'가 미국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에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클라이브 오웬과 제니퍼 애니스턴이 시카고를 배경으로 찍은 스릴러가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브 오웬의 '시카고 스릴러 영화'도 그리 잘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은 '섀터드'를 보면서 그 영화가 자연스럽게 생각날 것이다. 왠지 모르게 셋업이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섀터드'와 같은 스릴러 영화에선 넘겨짚기가 쉬우면 곤란하다.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을만큼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쇼킹한 반전으로 뒷통수를 치는 맛이 제대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섀터드'는 이런 게 부족하다. '섀터드'도 스릴러 영화의 조건을 충족시킬만한 모든 것을 그런대로 모두 갖췄다고 할 수 있지만 금새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수준에 그쳤다. 이 덕분에 영화에선 무언가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다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어도 그다지 놀라울 게 없어 보인다. 넘겨짚었던대로 대체로 모두 맞아떨어지는데 놀랄 게 있겠수?



그렇다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톰(피어스 브로스난)이 닐(저라드 버틀러)을 괴롭히는 부분은 그런대로 볼만하다. 돌아가는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바람에 김빠진 스릴러가 됐지만 그렇다고 못봐줄 정도로 심각한 영화는 아니다.

결국 이 영화는 내용과 줄거리를 즐기라고 만든 게 아니다. 내용과 줄거리는 사실 볼 게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건질 게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피어스 브로스난과 저라드 버틀러가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의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피어스 브로스난은 제임스 본드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멋지게 연기했다. 브로스난에게 악역이 어울린다는 건 아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보다 '섀터드'와 같은 드라마가 그에게 더욱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일부는 브로스난을 '액션배우'로 생각하지만 그는 많은 여성팬들을 몰고다니는 'Pretty Boy'에 가깝다. 미남인데다 액션영화에 아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브로스난에겐 부드러움만 있을 뿐 남자다운 강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도 어정쩡해 보였다. 외모만 따지면 제임스 본드에 아주 잘 어울린다고 해야겠지만 '배우 브로스난'은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

하지만, '섀터드'와 같은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엔 아주 잘 어울려 보인다. 분노보다 슬픔을 연기하는 게 더 편해 보이는 브로스난에겐 이런 쟝르가 딱인 것처럼 보인다. '섀터드'에서의 브로스난은 억지로 히어로 캐릭터를 연기하던 007 시리즈에서와 달리 훨씬 편안해 보인다.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 저라드 버틀러도 제임스 본드 후보로 거론됐던 배우다. 브로스난이 떠난 제임스 본드 자리가 공석이었을 당시엔 3~40대 영국 남자배우 거의 모두가 후보다시피 했고, 버틀러도 그 중 하나였다.

사실, 버틀러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이미 출연한 경력이 있다.

물론,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건 아니다.

피어스 브로스난의 2번째 007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Tomorrow Never Dies - 1997)'에서 침몰하는 영국군함 승무원으로 잠깐 나온 것.

한줄이나마 대사도 있었다.



이 때문일까?

피어스 브로스난과 저라드 버틀러가 같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웃음이 나왔다.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에선 브로스난과 함께 출연할 기회조차 없었던 버틀러가 10년 사이에 주연급 배우로 성장해 2007년작 '섀터드'에서 브로스난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뿐만 아니라, 브로스난의 007 영화에 대사 한줄짜리 단역으로 출연했던 경력을 가진 버틀러가 브로스난을 이을 제임스 본드 후보중 하나로 거론됐다는 것도 재미있는데 '섀터드'에선 브로스난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캐릭터로 나오다니! 마치 브로스난이 버틀러에게 '내 것을 넘보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처럼 보이더라.

그렇다. 내가 '섀터드'를 보게 된 이유는 피어스 브로스난과 저라드 버틀러의 '제임스 본드 인연(?)' 덕분이었다.

그리고, 기대했던대로 '섀터드'는 이것 하나 빼곤 기억할 게 없는 영화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스릴 만점의 영화를 원한다면 '섀터드'는 피하는 게 좋다. 아주 형편없을 정도의 영화는 아니지만 새로울 게 없는, 뻔히 들여다보이는 내용이 전부이기 때문에 궁금한 미스테리도 없고 쇼킹한 반전도 없다.

뻔한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그저 시간 죽이기용으로 보는 TV 드라마처럼 취급한다면 별 문제 없겠지만 피어스 브로스난, 저라드 버틀러 등 빅네임 배우들이 나온다고 큰 걸 기대하면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2008년 1월 7일 월요일

올가 쿠리렌코 '본드22' 리딩 본드걸

우크라이나 출신 여배우 올가 쿠리렌코(Olga Kurylenko)가 '본드22(제목미정)'의 리딩 본드걸을 맡는다고 소니 픽쳐스/MGM이 공식발표했다.

올가 쿠리렌코는 '본드22'에서 Camille이란 이름의 리딩 본드걸을 연기한다.

쿠리렌코는 얼마전 개봉한 '힛맨(Hitman)'에서 '얼굴문신녀', 니카로 나왔던 여배우.




젬마 아터튼(Gemma Arterton)도 이전에 알려졌던대로 '본드22'에 캐스팅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예상대로 리딩 본드걸이 아닌 MI6 에이전트 Fileds역을 맡았다.


(사진 가운데)

007 시리즈 22번째 악역은 프랑스 배우 매튜 아말릭(Mathieu Amalric)에게 돌아갔다.

매튜 아말릭은 '카지노 로얄'에서 소개된 범죄조직의 리더, 도미닉 그린(Dominic Greene)을 연기한다.

아말릭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Munich)'에서 루이스로 나왔던 배우. 제임스 본드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에 이은 또 하나의 '뮌헨' 배우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출연하게 됐다.




M은 변함없이 주디 덴치(Judy Dench)가 맡으며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는 펠릭스 라이터, 지안카를로 지아니니(Giancarlo Giannini)는 매티스역으로 각각 돌아온다.

이전에 발표된대로 감독은 '몬스터 볼(Monster's Ball)', '카이트 러너(The Kite Runner)'의 마크 포스터(Marc Foster), 2nd 유닛 감독은 스파이더 맨, 제이슨 본 시리즈 스턴트 코디네이터 댄 브래들리(Dan Bradley)가 맡는다.

'본드22'의 개봉일은 변함없이 2008년 11월7일(미국).

그러나, 공식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2008년 1월 1일 화요일

제임스 본드의 세계

제임스 본드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라는 건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953년 이언 플레밍의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통해 탄생한 제임스 본드는 1962년 '닥터노(Dr. No)'로 시작한 영화 시리즈의 성공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가 됐다. 제임스 본드 소설은 이언 플레밍이 사망한 이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소설이 계속 출간되고 있으며, 영화 시리즈 역시 숀 코네리의 '닥터노'부터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국에선 제임스 본드를 로빈 후드와 같은 전설적인 캐릭터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엔 배트맨, 영국엔 제임스 본드, 멕시코엔 조로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제임스 본드는 수퍼맨, 배트맨, 미키 마우스처럼 세계적인 팝 아이콘 중 하나가 된 것.

현재까지 나온 제임스 본드 콜렉티블만 봐도 제임스 본드의 인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스타워즈'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건 아니지만 제임스 본드 콜렉티블도 액션 피규어, 다이캐스트 자동차, 콜렉팅 카드, 매거진, 코믹북, 비디오게임 등 완구에서부터 상당한 가격대의 콜렉티블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은 규모다.



제임스 본드 팬이 많으면 얼마나 많길래 그러냐고?

미국 연예 주간지 '인터테인멘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가 뽑은 '베스트 팬사이트'에 9위에 오른 게 제임스 본드다. 베스트 팬사이트 1위는 '스타워즈'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인디아나 존스'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임스 본드가 이중에서 9위라는 것.



제임스 본드 팬사이트는 전세계적으로 한 두개가 아니다. 미국, 영국 등 영어권 팬사이트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러시아어로 된 유러피언 제임스 본드 팬사이트도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팬사이트가 전부인 건 아니다. 제임스 본드 팬들이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팬클럽이라도 있다는 얘기냐고?

직접 확인하시라. 제임스 본드 인터내셔널 팬클럽 멥버쉽 카드다. 사진에 있는 카드는 최근 것이 아니라 90년대 멤버쉽 카드지만 제임스 본드 인터내셔널 팬클럽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렇다면 제임스 본드 팬은 누구냐고?

제임스 본드 팬은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제임스 본드 팬 = 007 영화 팬'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007 영화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프랜챠이스의 일부분인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로 나온 영화배우들의 팬인 것도 물론 아니다. 돈을 받고 맡은 역할을 연기한 게 전부인 영화배우와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혼동하면 곤란하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제임스 본드 캐릭터다.

팝 아이콘을 둘러보면 대부분 '히어로(Hero)'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히어로'다. 뚜렷한 개성과 매력이 있는 어딘가 특별한 곳이 있는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지 평범하거나 안티-히어로(Anti-Hero) 캐릭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고 우상으로 삼을만한 캐릭터가 팝 아이콘이 될 확률이 높은 것.

제임스 본드는 여기에 정확하게 해당되는 캐릭터다. 바지 위에 빤스를 입고 하늘을 나는 전형적인 코믹북 판타지 히어로는 아니지만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 '젠틀맨 에이전트'라는 독특한 스파이 캐릭터를 탄생한 것. 영국의 유명한 첩보소설 작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철조망을 뜯고 동독으로 넘어가는 스파이'와 비교하면 제임스 본드는 사실감이 떨어지는 판타지 스파이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제임스 본드가 성공한 이유는 뚜렷한 개성이 있는 'Extraordinary Spy Hero'이기 때문이다.

이런 덕분에 제임스 본드는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인기있는 캐릭터로 성공할 수 있었다. 성인들은 섹스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어드벤쳐에 매료됐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패밀리 영화 수준으로 수위를 낮춘 007 영화를 보면서 제임스 본드를 어렸을 적 우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

어렸을 때부터 007 시리즈를 보면서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제임스 본드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엔 주간지 '인터테인멘트 위클리'에 'The Spy Who Raised Me'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한국어로 구태여 번역하자면 '나를 키운 스파이'가 된다.



그렇다고, 어렸을 적 추억이 전부인 건 아니다. 플레이보이 매거진 라이프스타일의 표본처럼 보이는 제임스 본드에 성인 남성들이 열광한다는 것을 건너뛰어선 안되는 것.

여자, 자동차, 가젯은 일반 성인 남성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멋진 여자와 자동차, 그리고 카메라, 캠코더, PDA, MP3 플레이어, 비디오게임, 빅 스크린 TV, DVD 플레이어, 홈 시어터 시스템, PC 등의 '어른들의 장난감'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다. 물론, 플레이보이 매거진은 이 세 가지를 빼놓지 않고 다룬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본드걸, 본드카, 가젯이 빠지지 않는 것처럼.

서로 겹치는 데가 많아서일까?

플레이보이 매거진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임스 본드 스페셜 이슈를 선보였다.



그러나, 스페셜 이슈에서만 제임스 본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러시안 모델들을 소개할 때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 'From Russia With Love'를 살짝 바꿔놓은 'From Moscow With Love'라는 제목을 달기도.

러시안 미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캐릭터가 제임스 본드니까.



일부는 플레이보이 매거진이라고 하면 누드사진만 생각한다. 플레이보이를 성인용 누드잡지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하는 것.

하지만, 플레이보이를 오래 본 사람들은 누드사진 이외의 콘텐츠도 관심있게 본다. 플레이보이 조크, 인터뷰 기사, 신제품 소개 등 누드사진 이외의 것들도 빼놓지 않는다.

물론, 제임스 본드 숏 스토리(Short Story)도 빼놓지 않고 찾아 읽는다.



그렇다. 영화만 있는 게 아니라 소설도 있다. 영화 이전에 이언 플레밍의 소설이 있었고, 플레밍의 소설도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가 제임스 본드 소설의 열렬한 팬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 것!

이언 플레밍과 존 F 케네디는 워싱턴 D.C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으며, 플레밍은 직접 싸인한 제임스 본드 책들을 케네디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다른 스파이 캐릭터들은 제임스 본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제임스 본드는 다른 스파이 영화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톰 클랜시 소설을 영화화한 '공포의 총합(2002)'에서 존 클라크로 나왔던 Liev Schreiber는 인터뷰에서 흰색 스노우 수트를 입고 뛰어다닐 때 제임스 본드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단 퀸, 도널드 서덜랜드 주연의 'The Assignment(1997)'에서도 '본드, 제임스 본드'라는 대사가 나온다.



알 파치노, 콜린 패럴 주연의 '리쿠르트(The Recruit - 2003)'에서도 '본드, 제임스 본드'라는 대사가 있다.



이밖에도 찾아보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제임스 본드 이름을 들먹였을까?

정답은 '스파이'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 제임스 본드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십년동안 사람들의 머릿 속에 스파이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각인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가 제임스 본드이다보니 제임스 본드와 무관한 스파이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의 이름이 나와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무언가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하면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는 표현을 쓰는 걸 자주 볼 수 있지만 '왜 하필이면 007작전이냐'고 따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제임스 본드'와 '007'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있는 것.

뿐만 아니라, '스파이'라고 하면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 미남'을 떠올리도록 만든 장본인도 바로 제임스 본드다.

요새도 미국 고등학생들은 프롬(Prom)에서 턱시도를 입고 폼 잡으며 '본드, 제임스 본드'라면서 장난친다. 꼭 고등학생들이 아니더라도 턱시도에 검정색 보우타이를 하면 다들 제임스 본드를 생각한다. 제임스 본드가 007 시리즈 1탄 '닥터노(1962)'에서 턱시도를 입고 데뷔한 이후 제임스 본드와 턱시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사실적이지 않은 스파이 캐릭터 아니냐고?

제 임스 본드처럼 '살인면허'를 소지한 에이전트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 aka MI6) 직원들일 것이다. 아무래도 제임스 본드가 MI6 소속으로 나오기 때문에 SIS 직원들은 '살인면허 있냐', '00 에이전트냐'는 어이없는 질문에 시달린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IS는 007 영화 촬영에 협조적이다. 1999년 영화 'The World is Not Enough' 제작시엔 SIS 건물 앞에서의 촬영을 허가했다. 물론, 폭탄이 터지고 벽에 커다란 구멍이 나는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했지만 SIS 건물 앞에서의 촬영은 허가한 것.

뿐만 아니라, HQ에서 007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진짜 MI6 에이전트들이 HQ에서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본 것이다.



제임스 본드는 런던 SIS HQ를 거쳐 이라크까지 갔다. 이라크 주둔 군부대에서 제임스 본드 영화를 상영한 것.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는 이라크전이 한창일 당시 영국군의 작전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제임스'! 타겟 코드네임은 '골드핑거', '블로펠드'!

AP는 'British Forces Use James Bond Code Names'라는 제목의 기사로, CNN은 인베디드 리포터를 통해 영국군의 '오퍼레이션 제임스'를 보도했다.

아래는 AP 기사 일부다:

For British soldiers fighting in Iraq, the code names involved in their mission are hard to forget - for anyone who has ever seen a James Bond movie.

Crackling over the British communication equipment come references to "Operation James" and its military targets, code-named "Goldfinger," "Blofeld" and "Connery."

By alluding to James Bond, its star Sean Connery and some of the heroes and villains in the 007 movies, British commanders have several goals in mind.

They include confusing the enemy, helping British soldiers remember the code words and boosting military morale with a little humor.

"`Operation James' is an objective named after something the soldiers will remember easily," said Paul Beaver, an independent military expert in London. "James Bond is a No. 1 Brit, and he's a hero."



제임스 본드 '흔적'은 광고에서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로 미국 수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Safeway)가 90년대에 CM송으로 사용했던 노래가 떠오른다: 'Nobody Does It Better'.

칼리 사이먼이 불렀던 '나를 사랑한 스파이' 주제곡으로, 아카데미상 주제곡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곡이다. 세이프웨이의 라디오 광고는 이 노래와 함께 'Nobody Does It Better Than SAFEWAY'라면서 끝났던 게 기억난다.

최근 광고 중에선 Hummer H3 TV광고가 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로터스 에스프릿이 잠수함으로 변신(?)했던 것을 패러디한 광고다.

꼭 제임스 본드 팬이 아니더라도 무엇을 패러디한 광고인지 한눈에 알아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인 미식축구에서도 제임스 본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학교 밴드가 경기장에서 연주를 하는 대학 풋볼경기에선 제임스 본드 테마가 연주되는 걸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제임스 본드 테마가 미국 대학 미식축구 경기 응원가(?)로 사용되는 것. 2007년 시즌에도 꽤 많은 경기에서 제임스 본드 테마가 응원가로 연주됐다.

NCAA 대학 풋볼뿐만 아니라 NFL도 예외가 아니다. NFL 챔피언을 가리는 수퍼보울 경기가 열리는 날은 '비공식 공휴일'로 불린다. 해프타임 공연도 일반 정규시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화려하다. 자넷 잭슨의 '젖꼭지 사건'도 수퍼보울 해프타임에 벌어졌던 해프닝이다. 젖꼭지가 다 튀어나올 정도라면 상당히 화려하다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폴 매카트니의 'Live and Let Die'는 어떤가! 로저 무어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였던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의 주제곡 말이다.



이 정도로 유명한 스파이라면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파이 박물관에서도 한자리 차지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D.C에 있는 스파이 박물관은 실제 스파이들이 사용하던 장비같은 것들을 전시한 곳이지 '스파이 픽션 박물관'이 아니다. 하지만, '본드카' 아스톤 마틴 DB5는 예외인 모양.



마지막으로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이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처럼 대중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팝 아이콘을 탄생시키는 게 절대로 쉬워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캐릭터들이 탄생했지만 이중에서 세월이 두렵지 않다고 할만큼 전설적인 인기를 누리는 캐릭터는 많지 않다. 대부분 평균 언저리의 그저 그런 수준이지 팝 아이콘이라고 불릴만한 캐릭터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단지 영화 캐릭터뿐만 아니라 카툰, 코믹북, 비디오게임 캐릭터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영화, 비디오게임, 또는 애니메이션 한 두편이 조금 인기를 끌었다고 한순간에 전설적인 캐릭터가 탄생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수준의 캐릭터들은 반짝하고 사라지게 돼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캐릭터들은 단명하지 않는다. 10년, 50년, 100년이 흘러도 변함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누가 새로운 팝 아이콘이 될까?

내가 한번 만들어 봐?

팝 아이콘 말고 팝콘...

2007년 12월 30일 일요일

네스호 괴물도 이름이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네스호에 괴물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목이 상당히 긴 친구 말이다.

네스호 괴물이라고 하면 얼마 전까지 TV에서 볼 수 있었던 토요타 자동차의 트럭광고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네스호에 산다는 이 괴물의 이름은 '네시(Nessie)'다. 이름이라기보다는 '네스호에 사는 녀석'이라는 의미 정도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그런데, 알고보니 이름다운 이름이 있었다: 크루소.

크루소? 네스호 물속에 산다는 녀석의 이름이 크루소였어?

그런데 누가 그런 이름을 지었냐고?

2차대전 당시 꼬마였던 앤거스(알렉스 에텔)다.

어쩌다가 앤거스가 네스호 괴물의 이름을 짓게 됐냐고?

바닷가에서 우연히 알을 발견한 앤거스가 괴물에게 이름까지 지어주며 집에서 키웠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네스호 괴물이 된 크루소는 원래 앤거스의 애완동물이었다.

그렇다. '워터 호스'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정체불명의 알을 집으로 가져와 애완동물처럼 키우다가 더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호수에 풀어놓은 무책임한(?)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딕 킹-스미스의 소설을 읽지 않았거나 영화를 보지않은 사람들은 들어본 적 없는 게 당연하다. 바로 이게 '워터 호스'의 줄거리니까.



'워터 호스(The Water Horse: Legend of the Deep)'는 '베이브(Babe)'를 포함한 여러 편의 패밀리 소설로 유명한 영국 작가 딕 킹-스미스(Dick King-Smith) 원작의 판타지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그렇다. '워터 호스'도 또다른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다.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을 영화로 옮긴 또 하나의 영화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 이후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십중팔구는 미달이다보니 '워터 호스(Water Horse: Legend of the Deep)'에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연말 홀리데이 시즌을 겨냥한 그렇고 그런 패밀리 판타지 영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워터 호스'는 달랐다.

'워터 호스'는 '스타더스트', '골든 콤파스'와 같은 블록버스터 수준은 아니지만 수준미달의 엉성한 판타지 영화는 아니었다.

'워터 호스'도 거대한 몬스터가 나오는 판타지 영화인 것까진 맞지만 영화의 테마는 어린 소년 앤거스와 그의 거대한 '애완동물' 크루소와의 우정이다. 화려한 특수효과보다 평범한 가족이 2차대전을 겪으면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는 과정이 더욱 눈에 띄는 영화다. 지지고 볶고 번쩍거리는 것 빼면 남는 게 없는 수준 낮은 판타지 영화가 아닌 것.



어린 소년이 바닷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을 줏었다가 가족들 몰래 엉뚱한 애완동물을 키우게 된다는 줄거리는 참신하다고 하기 힘들다.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금새 짐작이 가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2006년 개봉했던 판타지 영화 '에라곤(Eragon)'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도 또다른 문제다. '워터 호스'(1990) 소설이 '에라곤' 소설(2003)보다 먼저 나왔지만 원작소설의 순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에라곤을 모방한 영화'로 생각하기에 딱 알맞게 됐다.

하지만, '워터 호스'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영화다. 몬스터가 나오는 것까진 맞지만 판타지보다 패밀리쪽에 더욱 가까운 영화다. 전쟁으로 상처입은 앤거스 가정에 엉뚱한 애완동물 크루소와 잡역부 루이스(벤 채플린)가 나타나면서 이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메인 테마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 안되는 판타지 이야기가 전부인 게 아니라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영화인 것.



이렇게 보면 '에라곤'처럼 보이고 저렇게 보면 몬스터 버전 '프리 윌리(Free Willy)'처럼 보이며, 어떻게 보면 'E.T'와도 비슷해 보이는 영화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주인공 앤거스역의 알렉스 에텔, 루이스역의 벤 채플린을 포함한 출연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흠잡을 데 없으며 3D 특수효과도 수준급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앤거스와 크루소의 끈끈한 우정과 전쟁의 상처에서 서서히 회복하는 앤거스 가족의 이야기는 성인들도 지루한 줄 모르고 볼 수 있을만큼 흥미진진하다.

그래봤자 '워터 호스'도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인 게 전부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면에서 완벽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것보단 훨씬 잘 만든 영화였다.

어떻게 보면 금년에 나온 판타지 영화 중에서 가장 나은 영화인지도 모른다. 규모면에선 아무래도 밀리겠지만 007년에 본 판타지 영화중에선 '워터 호스'가 단연 최고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시너드 오코너가 부른 주제곡 'Back Where You Belong'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끝내자.

2007년 12월 25일 화요일

'내셔널 트레져 2', 성인배우판 '구니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용 어드벤쳐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가 시리즈화 될 줄은 몰랐다. 첫 번째 영화 하나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시리즈로 이어질만한 프랜챠이스로 보이지 않았다.

왜? Why?

'내셔널 트레져'만의 독특한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 벤 게이츠(Ben Gates)부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나온 로버트 랭든을 살짝 바꿔놓은 게 전부다. 벤 게이츠는 로버트 랭든과 마찬가지로 '액션 히어로'도 아니다. 그렇다고 암호해독만 하는 건 아니다. 어드벤쳐도 있다. 하지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처럼 완전히 판타지쪽으로 기울진 않는다. 아주 사실적인 것도 아니고 완전한 판타지도 아닌, 얼핏 보면 그럴싸 하게 보이는 수준의 보물찾기 어드벤쳐다. 간단히 말해 '성인배우들이 나오는 구니스(Goonies)'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빅히트를 친 덕분에 나온 영화라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이런 영화로 2편까지?



'내셔널 트레져 2(National Treasure: Book of Secret)'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엉뚱한 데서 엉뚱한 것을 찾는다는 엉뚱한 이야기다. 탐험을 소재로 한 어드벤쳐 영화 대부분이 이집트 등 다른 나라를 무대로 해온 것과 달리 '내셔널 트레져'는 미국을 무대로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가장 독특한 부분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만 나오는 건 아니다. 프랑스와 영국도 나온다.

프랑스와 영국?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가 '다빈치 코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다 보니 로케이션도 의심스럽다. '다빈치 코드'의 로케이션이던 프랑스와 영국이 '내셔널 트레져 2'에도 나오는 게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것.

그런데, '다빈치 코드', '구니스'와 비슷한 게 전부가 아니다.

숀 코네리 주연의 1964년 영화 '골드핑거(Goldfinger)'를 본 사람들은 제임스 본드가 잠수복에서 턱시도로 순식간에 갈아입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골드핑거'라고?

'내셔널 트레져 2'도 금과 관련있는 것 같던데?

그래서일까? '게이츠, 벤 게이츠'도 누구처럼 옷을 갈아입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True Lies'에서 비슷한 식으로 옷을 갈아입은 적이 있었으니 니콜라스 케이지에게만 뭐라 하진 않겠다. 누구나 한번쯤 흉내내보고 싶어하는 캐릭터가 제임스 본드라는 걸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니까.

다만,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True Lies'에서 스파이 캐릭터로 나왔으니 제임스 본드를 한번쯤 흉내내볼만 했다지만 니콜라스 케이지의 벤 게이츠는 이해가 쉽게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라일리가 메인 컴퓨터에 침투해 이것저것 도와주는 건 영락없이 '미션 임파시블'를 흉내낸 것으로 보인다. '다빈치 코드', '구니스', 제임스 본드 '골드핑거'에 이어 '미션 임파시블' 냄새까지 나는 것.

이런 것 전부 우연일 수도 있지 않냐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내셔널 트레져'가 워낙 창의력이 빈곤한 영화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의심이 간다. 벤 게이츠는 '다빈치 코드'의 로버트 랭든을 연상시키고 보물찾기 이야기는 80년대 패밀리 영화 '구니스'를 떠올리게 하다보니 '뭐가 더 없나'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되는 것.

그렇다면, 이렇게 짬뽕으로 섞어놓은 티가 나는 영화가 볼만할까?

일반 영화로 따지면 상당히 한심하다고 해야겠지만 '내셔널 트레져 2'는 어디로 보나 배우들만 어른으로 바뀐 게 전부일 뿐 80년대 패밀리 영화 '구니스'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아이들용 영화이므로 이것 저것 다 따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린이용으로 만든 패밀리 어드벤쳐 영화가 이 정도라면 꽤 볼만한 축에 든다고 해야할 것이다.

다만, 영화 줄거리가 너무 터무니없는 건 살짝 거슬린다. 패밀리 어드벤쳐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까진 알겠는데 미국 대통령이 어쩌구, 버킹햄 궁전이 저쩌구 하는 지나치게 황당한 이야기는 필요없었다. 이래저래 말이 안되는 내용의 영화니까 그저 그려려니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황당한 쪽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터무니 없는 줄거리의 영화인데 거기서 더 오버할 필요는 없었다.



링컨 암살사건까지 들먹이면서 그럴싸한 줄거리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이다. 얼마나 소잿거리가 없었으면 대통령의 비밀책까지 동원하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그러나, '내셔널 트레져 2'의 줄거리는 1편보다도 못하다. 1편도 좀 어처구니 없는 건 마찬가지였어도 그런대로 그럴 듯해 보였지만 '내셔널 트레져 2' 줄거리는 너무 터무니없을 뿐만 아니라 흥미가 끌리지 않는다. 고대신화다 전설이 어쩌구 하면서 억지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해도 흥미가 끌릴까 말까한 판인데 미국 대통령이 갖고있는 비밀의 책? 아이들용 영화니까 그 수준에 맞춰 이해해야겠지만 이것보다는 나은 이야깃 거리를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3편이 나올 모양이다. 까짓 거 요즘엔 개나 소나 '트릴로지' 타령인데 '내셔널 트레져'라고 안될 게 있겠수?

한가지 걱정되는 건 제리 브룩하이머의 트릴로지가 그다지 미덥지 않다는 것. '캐리비언의 해적' 트릴로지가 갈수록 수상해진 것처럼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 역시 비슷하게 될지도 모른다. '캐리비언의 해적'엔 캡틴 잭 스패로우라는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를 보는 재미라도 있었다지만 '내셔널 트레져'엔 이마저도 없으니 3편을 기다리도록 만들만한 게 많지 않다는 것도 걸린다. 3편이 나오면 또다른 아동틱한 어드벤쳐 영화로써 박스오피스에선 그럭저럭 재미를 보겠지만 별로 기다려지진 않는다.

그러나, 3편을 기다르는 사람이 적어도 한명 있을지도 모른다: 헬렌 미렌.

'내셔널 트레져 2'에서 벤 게이츠의 어머니역으로 나온 헬렌 미렌이 어드벤쳐 영화를 좋아하는 '액션퀸'일 줄이야! 헬렌 미렌이 제리 브룩하이머에게 '이런 영화 또 있으면 불러달라'고 했단다! 그러니, '내셔널 트레져 3'가 나온다면 가장 반가워할 사람은 헬렌 미렌일 듯.

그나저나, 헬렌 미렌을 왜 '퀸(Queen)'이라고 했는지는 알고있겠지?



혹시 누가 아냐, 헬렌 미렌이 라라 크로프트처럼 변신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셔널 트레져 3'를 꼭 보게 될지도...

하지만, 현재로썬 '47페이지'에 적힌 내용이 아주 재미있기만을 기대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