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는 1탄부터 건배럴 씬(Gun Barrel Scene)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전통이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시대가 시작하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건배럴 씬이 영화의 오프닝이 아닌 다른 위치로 이동했지만, 미국인 타이틀 디자이너, 모리스 빈더(Maurice Binder)가 디자인한 건배럴 씬은 지금까지 50년 동안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에 빠짐없이 나왔다.
그런데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건배럴 씬의 위치가 바뀐 것 뿐만 아니라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지금까지 크레이그가 출연한 세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마다 각각 다른 건배럴 씬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엔 같은 건배럴 씬을 다른 영화에 반복 사용해왔으나,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대에 와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매번 건배럴 씬도 새로 만들고 있다.
최근에 개봉한 '스카이폴(Skyfall)'은 아직 홈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관계로 건배럴 씬 스크린 캡쳐 이미지가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스카이폴' 건배럴 씬이 지난 번의 것과 다른 새로운 버전이라는 점을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신기록이다.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배우가 건배럴 씬을 세 번 찍은 적이 이제껏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까지는 있었지만 세 번은 처음이다.
말이 나온 김에, 과거의 건배럴 씬을 훑어보기로 하자.
숀 코네리(Sean Connery) 시절엔 두 종류의 건배럴 씬이 영화에 사용되었다.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 2탄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 3탄 '골드핑거(Goldfinger)'까지 사용된 건배럴 씬에 등장하는 배우는 숀 코네리가 아니라 스턴트를 담당했던 밥 시몬스(Bob Simmons)였다.
숀 코네리가 직접 건배럴 씬에 등장한 건 1965년작 '썬더볼(Thunderball)'부터다. 이 때 새로 만든 코네리 버전 건배럴 씬은 '썬더볼',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등 코네리가 출연한 나머지 제임스 본드 영화에 모두 사용되었다.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한 편의 영화를 끝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떠났던 조지 레이전비(George Lazenby)는, 당연하겠지만, 단 한개의 건배럴 씬을 만들었다.
로저 무어(Roger Moore)도 건배럴 씬을 두 번 만들었다.
첫 번째 건배럴 씬은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와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에 사용되었다.
로저 무어의 두 번째 건배럴 씬이 등장한 건 1977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다. 이 때 새로 만든 두 번째 건배럴 씬은 '문레이커(Moonraker)',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 '옥토퍼시(Octopussy)', '뷰투어킬(A View to a Kill)' 등 무어가 출연한 나머지 제임스 본드 영화들에 모두 사용되었다.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의 건배럴 씬은 단 한개가 전부다. 이 건배럴 씬은 달튼이 찍은 두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와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에 모두 사용되었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도 한 개의 건배럴 씬이 전부다. 이 건배럴 씬은 브로스난이 출연한 네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든아이(GoldenEye)',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모두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새로운 건배럴 씬을 세 번 만든 배우는 지금까지 다니엘 크레이그가 유일하다.
아니, 크레이그가 건배럴 씬을 세 번을 만들든 서른 번을 만들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사실 새로운 건배럴 씬을 몇 개를 만들든 크게 중요할 것은 없다. 문제는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로 온 이후부터 갑자기 왜 건배럴 씬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하냐는 것이다.
007 제작진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접어든 이후부터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꿨다. '카지노 로얄'에선 건배럴 씬을 메인 타이틀 씬과 연결되도록 배치했으며, '콴텀 오브 솔래스'와 '스카이폴'에선 영화의 맨 마지막에 나오도록 했다.
물론 제작진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꾼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굳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꿔서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과거의 007 시리즈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쓸데 없는 장난을 친 것 이상으론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개봉한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 만큼 지난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했던 쓸데 없어 보이는 장난을 치지 않았을 것으로 기대했다. 적어도 건배럴 씬 정도는 제 위치에 가져다 놓았을 것으로 기대했다.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전통이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에서부터 시작한 만큼 이번엔 건배럴 씬을 제 위치에 다시 돌려놓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니었다. '스카이폴'도 건배럴 씬으로 시작하지 않고 프리 타이틀 씬부터 바로 시작했다. 지난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와 달라진 게 없었다.
건배럴 씬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80년대 초 제임스 본드 영화를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오프닝 건배럴 씬이었다. 그 이후부턴 건배럴 씬이 나와야 007 영화를 보는 기분이 났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개봉 당일 극장에 달려가서 제일 먼저 기다리는 것도 건배럴 씬이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6년간의 공백을 깨고 1995년 '골든아이'로 돌아왔을 때 오프닝 건배럴 씬을 보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오프닝 시퀀스라는 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처럼 007 시리즈의 건배럴 씬은 특별한 데가 있다. 007 시리즈를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야 이런 기분을 잘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007 시리즈를 오래 전부터 계속 봐온 사람들은 건배럴 씬의 중요성을 잘 알 것이다.
'스타 워즈(Star Wars)'를 예로 들어보자. 모든 '스타 워즈' 시리즈는 처음에 자막이 올라가면서 시작한다. 그저 글자가 죽 올라가는 것일 뿐 사실 대단히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는 오프닝이다.
하지만 만약 앞으로 나올 '스타 워즈'에 바로 그 친숙한 오프닝 롤업이 나오지 않는다면? "스타 워즈는 지금부터 새로 시작한다", "리부팅을 한다"면서 오프닝 롤업을 빼버린다면?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스타 워즈' 팬이 본드팬보다 규모가 훨씬 클 뿐만 아니라 열성팬도 많은 만큼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얼핏 보기엔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스타 워즈' 팬들은 오프닝 롤업을 대단히 중요한 전통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스타 워즈' 영화 제작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이것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을 듯 하다. 쓸데 없이 전통을 훼손해 열성팬들을 열받게 하는 바보같은 실수를 할 생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변화" 앞에선 보이는 게 없었다. '스타 워즈' 시리즈보다 역사도 훨씬 깊은 007 시리즈였지만 "변화" 앞에선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40년 넘게 이어져온 007 시리즈의 전통인 오프닝 건배럴 씬을 2006년부터 없앴으니 말이다.
물론 많은 본드팬들이 불만을 드러냈다. 굳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옮길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카지노 로얄'에선 영화배우가 새로 교체되었으니 신선감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건배럴 씬의 위치를 살짝 바꾼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크레이그의 두 번째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 개봉일이 다가오자 "이번엔 건배럴 씬이 제 위치로 돌아갔나"가 본드팬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이번엔 건배럴 씬이 영화의 마지막으로 이동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본드팬들은 불만과 실망을 쏟아놓았다. '카지노 로얄'은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지만 두 번째 영화에선 왜 건배럴 씬을 제 위치로 돌려놓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본드팬의 불만을 007 제작진이 몰랐을까?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007 제작진은 크레이그의 세 번째 영화 '스카이폴'에서도 건배럴 씬을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
왜 그랬을까?
물론 007 제작진은 그럴싸한 다른 핑계를 댈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 007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가장 쉽게 눈에 띄도록 하는 방법으로 건배럴 씬 위치 바꾸기를 택한 것이 실제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1탄부터 20탄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모두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를 맡은 이후부터 달라졌으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인 것만은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자 - 굳이 이렇게까지 '변화'에 집착할 필요가 있었을까? 건배럴 씬 위치까지 바꿔가면서 클래식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냔 말이다. 건배럴 씬을 과거에 하던 대로 오프닝에 배치하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영화가 전혀 새롭지 않아 보이기라도 하는 건가? 그 정도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줄 자신이 없었단 말인가?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내리 세 번을 말이다.
특히 이번 '스카이폴'은 더욱 용서가 안 된다. 이번 영화는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었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에서까지 "건배럴 씬 어디로 갔나" 놀이를 반복할 것으론 진짜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스카이폴'이 건배럴 씬으로 시작했더라면 50주년에 맞춰 전통 스타일로 되돌아간 점을 높히 평가했을 것이다. 줄거리와 악당 캐릭터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변함이 없었겠지만 건배럴 씬이라도 원위치로 돌려놓았더라면 지금처럼 뚜껑이 완전히 열리진 않았을 듯 하다.
007 제작진이 이런 식으로 하니까 변화와 뜯어고치기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데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킬 것은 지키고 변화를 줄 것에만 변화를 준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현재 007 제작진은 닥치는대로 바꾸고 뜯어고치는 데 지나치게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 현재 007 제작진이 하는 것을 보면 지난 2007년 맷 데이먼(Matt Damon)이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다르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때 데이먼은 제이슨 본 시리즈가 007 시리즈와 어떻게 다른가를 나름대로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젠 데이먼이 아닌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와 클래식 007 시리즈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이슨 본 시리즈야 완전히 다른 프랜챠이스이므로 007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열거할 수 있다고 하지만 007 제작진은 같은 제임스 본드 영화끼리 뭘 그렇게 차별화시키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007 제작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제이슨 본 영화를 만든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다니엘 크레이그는 "건배럴 씬을 가장 많이 만든 제임스 본드"가 됐다. 매번 새로운 건배럴 씬을 선보이는 데 쓸데 없는 정성을 쏟지 말고 건배럴 씬이나 원위치로 돌려놓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지만 어쩌겠수?
그런데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건배럴 씬의 위치가 바뀐 것 뿐만 아니라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지금까지 크레이그가 출연한 세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마다 각각 다른 건배럴 씬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엔 같은 건배럴 씬을 다른 영화에 반복 사용해왔으나,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대에 와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매번 건배럴 씬도 새로 만들고 있다.
▲'카지노 로얄(2006)' 건배럴 씬 |
▲'콴텀 오브 솔래스(2008)' 건배럴 씬 |
▲'스카이폴(2012)' 건배럴 씬 |
말이 나온 김에, 과거의 건배럴 씬을 훑어보기로 하자.
숀 코네리(Sean Connery) 시절엔 두 종류의 건배럴 씬이 영화에 사용되었다.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 2탄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 3탄 '골드핑거(Goldfinger)'까지 사용된 건배럴 씬에 등장하는 배우는 숀 코네리가 아니라 스턴트를 담당했던 밥 시몬스(Bob Simmons)였다.
▲1962~1964 건배럴 씬 |
숀 코네리가 직접 건배럴 씬에 등장한 건 1965년작 '썬더볼(Thunderball)'부터다. 이 때 새로 만든 코네리 버전 건배럴 씬은 '썬더볼',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등 코네리가 출연한 나머지 제임스 본드 영화에 모두 사용되었다.
▲1965, 1967, 1971 건배럴 씬 |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한 편의 영화를 끝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떠났던 조지 레이전비(George Lazenby)는, 당연하겠지만, 단 한개의 건배럴 씬을 만들었다.
▲1969 건배럴 씬 |
첫 번째 건배럴 씬은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와 1974년작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에 사용되었다.
▲1973~1974 건배럴 씬 |
▲1977~1985 건배럴 씬 |
▲1987~1989 건배럴 씬 |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도 한 개의 건배럴 씬이 전부다. 이 건배럴 씬은 브로스난이 출연한 네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든아이(GoldenEye)',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모두 사용되었다.
▲1995~2002 건배럴 씬 |
이와 같이, 새로운 건배럴 씬을 세 번 만든 배우는 지금까지 다니엘 크레이그가 유일하다.
아니, 크레이그가 건배럴 씬을 세 번을 만들든 서른 번을 만들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사실 새로운 건배럴 씬을 몇 개를 만들든 크게 중요할 것은 없다. 문제는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로 온 이후부터 갑자기 왜 건배럴 씬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하냐는 것이다.
007 제작진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접어든 이후부터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꿨다. '카지노 로얄'에선 건배럴 씬을 메인 타이틀 씬과 연결되도록 배치했으며, '콴텀 오브 솔래스'와 '스카이폴'에선 영화의 맨 마지막에 나오도록 했다.
물론 제작진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꾼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굳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건배럴 씬의 위치를 바꿔서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과거의 007 시리즈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쓸데 없는 장난을 친 것 이상으론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개봉한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 만큼 지난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했던 쓸데 없어 보이는 장난을 치지 않았을 것으로 기대했다. 적어도 건배럴 씬 정도는 제 위치에 가져다 놓았을 것으로 기대했다.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전통이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에서부터 시작한 만큼 이번엔 건배럴 씬을 제 위치에 다시 돌려놓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니었다. '스카이폴'도 건배럴 씬으로 시작하지 않고 프리 타이틀 씬부터 바로 시작했다. 지난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와 달라진 게 없었다.
건배럴 씬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80년대 초 제임스 본드 영화를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오프닝 건배럴 씬이었다. 그 이후부턴 건배럴 씬이 나와야 007 영화를 보는 기분이 났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개봉 당일 극장에 달려가서 제일 먼저 기다리는 것도 건배럴 씬이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6년간의 공백을 깨고 1995년 '골든아이'로 돌아왔을 때 오프닝 건배럴 씬을 보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오프닝 시퀀스라는 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처럼 007 시리즈의 건배럴 씬은 특별한 데가 있다. 007 시리즈를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야 이런 기분을 잘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007 시리즈를 오래 전부터 계속 봐온 사람들은 건배럴 씬의 중요성을 잘 알 것이다.
'스타 워즈(Star Wars)'를 예로 들어보자. 모든 '스타 워즈' 시리즈는 처음에 자막이 올라가면서 시작한다. 그저 글자가 죽 올라가는 것일 뿐 사실 대단히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는 오프닝이다.
하지만 만약 앞으로 나올 '스타 워즈'에 바로 그 친숙한 오프닝 롤업이 나오지 않는다면? "스타 워즈는 지금부터 새로 시작한다", "리부팅을 한다"면서 오프닝 롤업을 빼버린다면?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스타 워즈' 팬이 본드팬보다 규모가 훨씬 클 뿐만 아니라 열성팬도 많은 만큼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얼핏 보기엔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스타 워즈' 팬들은 오프닝 롤업을 대단히 중요한 전통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스타 워즈' 영화 제작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이것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을 듯 하다. 쓸데 없이 전통을 훼손해 열성팬들을 열받게 하는 바보같은 실수를 할 생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변화" 앞에선 보이는 게 없었다. '스타 워즈' 시리즈보다 역사도 훨씬 깊은 007 시리즈였지만 "변화" 앞에선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40년 넘게 이어져온 007 시리즈의 전통인 오프닝 건배럴 씬을 2006년부터 없앴으니 말이다.
물론 많은 본드팬들이 불만을 드러냈다. 굳이 건배럴 씬의 위치를 옮길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카지노 로얄'에선 영화배우가 새로 교체되었으니 신선감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건배럴 씬의 위치를 살짝 바꾼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크레이그의 두 번째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 개봉일이 다가오자 "이번엔 건배럴 씬이 제 위치로 돌아갔나"가 본드팬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이번엔 건배럴 씬이 영화의 마지막으로 이동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본드팬들은 불만과 실망을 쏟아놓았다. '카지노 로얄'은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지만 두 번째 영화에선 왜 건배럴 씬을 제 위치로 돌려놓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본드팬의 불만을 007 제작진이 몰랐을까?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007 제작진은 크레이그의 세 번째 영화 '스카이폴'에서도 건배럴 씬을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
왜 그랬을까?
물론 007 제작진은 그럴싸한 다른 핑계를 댈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 007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가장 쉽게 눈에 띄도록 하는 방법으로 건배럴 씬 위치 바꾸기를 택한 것이 실제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1탄부터 20탄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모두 건배럴 씬으로 영화가 시작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를 맡은 이후부터 달라졌으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인 것만은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자 - 굳이 이렇게까지 '변화'에 집착할 필요가 있었을까? 건배럴 씬 위치까지 바꿔가면서 클래식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냔 말이다. 건배럴 씬을 과거에 하던 대로 오프닝에 배치하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영화가 전혀 새롭지 않아 보이기라도 하는 건가? 그 정도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줄 자신이 없었단 말인가?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내리 세 번을 말이다.
특히 이번 '스카이폴'은 더욱 용서가 안 된다. 이번 영화는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었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에서까지 "건배럴 씬 어디로 갔나" 놀이를 반복할 것으론 진짜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스카이폴'이 건배럴 씬으로 시작했더라면 50주년에 맞춰 전통 스타일로 되돌아간 점을 높히 평가했을 것이다. 줄거리와 악당 캐릭터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변함이 없었겠지만 건배럴 씬이라도 원위치로 돌려놓았더라면 지금처럼 뚜껑이 완전히 열리진 않았을 듯 하다.
007 제작진이 이런 식으로 하니까 변화와 뜯어고치기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데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킬 것은 지키고 변화를 줄 것에만 변화를 준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현재 007 제작진은 닥치는대로 바꾸고 뜯어고치는 데 지나치게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 현재 007 제작진이 하는 것을 보면 지난 2007년 맷 데이먼(Matt Damon)이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다르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때 데이먼은 제이슨 본 시리즈가 007 시리즈와 어떻게 다른가를 나름대로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젠 데이먼이 아닌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와 클래식 007 시리즈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이슨 본 시리즈야 완전히 다른 프랜챠이스이므로 007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열거할 수 있다고 하지만 007 제작진은 같은 제임스 본드 영화끼리 뭘 그렇게 차별화시키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007 제작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제이슨 본 영화를 만든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다니엘 크레이그는 "건배럴 씬을 가장 많이 만든 제임스 본드"가 됐다. 매번 새로운 건배럴 씬을 선보이는 데 쓸데 없는 정성을 쏟지 말고 건배럴 씬이나 원위치로 돌려놓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지만 어쩌겠수?
무조건 다르게만 하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윌슨같은 경우는 젊었을때부터 계속 제작에 참여해서, 007시리즈의 핵심이 뭔지 잘 알고 있을텐데도, 이런 짓을 하는 거 보면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조만간 게이 제임스 본드가 복면 쓰고 하늘을 날아다닐지도 모르겠어요.^^
건베럴씬이 뒤로간게, 프리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인데요, 카지노 로얄은 좀 달라보일려고 한것 같고, 퀀텀에서는 2부작의 프리퀄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다음편에서는 진짜 시작한다는것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에 넣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리부트편을 한번 더 만들게 되면서 같은이유로 또 뒤로 간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퀀텀 같은경우는 극장에서 3번 보았습니다만(한번은 그냥 당연히 보는것이고, 한번은 기분이 안좋은날 우발적으로 한번, 한번은 공짜 골드클래스 티켓 당점) 세번볼때 모두 기분이 언짢았던것이 건베럴씬을 뒤에 넣었다는것인데, 왜냐면 특히 한국서 평이 안좋은 영화였고 나가는 관객들 얼굴이 영화에대한 불만족으로 떫떠름하여 밖으로 나가는 중간에 화면에서는 어설프게 그제야 건베럴이 나오니, 이거 보라는건지 억어지로 넣은것인지 짜증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스토리나 기타 여러가지 상황을 미루어 볼때 '리부트'를 또 만들지 않는이상 건베럴씬은 앞으로 갈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스카이폴에서는 건베럴씬이 제발 앞으로 가길 바랬는데, 카지노로얄 이후로 본 어린팬들은 건베럴씬 자체를 모를테니 갑갑합니다. 제가 우려하는것은 다른것입니다. 그런 훌륭한 배우를 M으로 앉혔으니, M이 임무만 소개해주는 평면적으로 움직일것 같지는 않고, '역할'을 더 주어야 할텐데...... 머니페니도 그렇구요. 제가 미션임파서블 1을 싫어하는 이유가 TV 시리즈의 '상징'이었던 '짐'을 배신자로 만들어서인데 혹 007 시리즈도 내부 붕괴 어쩌구 하며 그따위 '내부복선'을 어설프게 깔까봐 걱정되네요.
답글삭제@CJ:
답글삭제그렇게 되면 제가 빗자루 타고 쫓아가서 격추시키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윌슨의 경우엔 007 시리즈 제작에 오래 참여했지만,
그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크 포스터, 샘 멘데스 등 액션보다 드라마쪽에 가까운 영화인들을 자꾸 끌어들이는 것도 그렇구요.
스필버그 감독도 이젠 더이상 액션영화에 끌리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었죠...
@DREAM1848:
답글삭제건배럴이 뒤로 간 이유가 프리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프리퀄 아이디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베스퍼 이야기를 지난 콴텀...에서 마무리했으면 됐지 억지로 트릴로지를 완성할 필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굳이 건배럴 씬을 옮길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콴텀 오보 솔래스 영화 끝나고 건배럴 씬이 나오자 극장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던게 기억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이상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MI6에 대해선 저도 여러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제작진이 현명한 방법을 찾는다면 M의 비중을 조금 더 늘릴 순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파인즈가 M을 맡는다고 해서 역할이 부쩍 커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머니페니의 경우에도 다음 번 영화부턴 오피스에 붙어있을 것 같구요...^^
제가보기에는스카이폴은007의상징인
답글삭제건베럴씬과{본드탄생50주년그가돌아온다}라는말과서로매치시킨것같습니다,오십주년인데뭐라도표시를해줘야하니까그런것같은데요
,요즘은건베럴씬에변화를많이주네요,그리고다른작품들도생각해보니까
카지노로얄에서는주제곡에유일하게여성이안나오죠,그건카지노로얄과
퀀텀오브솔러스가본드가살인면허를딴직후타이밍,그러니까아직
임무를수행하기전이여서본드걸이아직나오지않았으니까
그런것같네요,그리고같은이유로Q하고머니페니도나오지않은거
같네요[그럼어나더데이다음이스카이폴인건가?]
가장 중요한 건 전통적인 오프닝 씬이던 건배럴씬이 처음에 나오지 않아 007영화처럼 보이지 않게 된 점 같습니다.
답글삭제007 시리즈는 매번 반복된다고 비판하니까 쓸데없는 걸 바꿔놓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건배럴씬 위치를 바꾼 게 스카이폴이 처음이 아니라 카지노 로얄부터 이번이 벌써 세 번째죠.
사소한 변화일 수도 있지만, 007 시리즈하면 건배럴 씬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잊어선 안되겠죠.
주제곡이 흐르는 메인 타이틀 씬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제 리빙데이라이트를 봤는데 인터넷으로 보니까
답글삭제19금이더라고요??!! 어떻게 된거죠?? 리빙데이라이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007영화인데
리빙데이라이트는 미국선 PG였고 한국선 중학생 관람가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삭제그런데 인터넷에 19금으로 돼있다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다니엘,브로스넌,달튼의007을 봤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답글삭제티모시달튼의 007이 제일 멋지더군요...피어스브로즈넌은 그냥
인상만 찌푸리는것같고(워낙 신사시니까..)다니엘은 너무 늙었어요
티모시달튼이 저는 너무 멋지더군요,왜 두번만 하고 물러난 가지..크흑
저는 그중에서도 리빙데이라이트가 제일 좋습니다,특히 비행기에서
마약그물에 매달려서 싸우는 액션씬은 정말 너무 멋지더군요
그리고 BGM과도 잘 어울렷고요.
저도 티모시 달튼의 본드를 좋아합니다. 색다르고 흥미로운 본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삭제그러나 007 제작진과 MGM의 수년간에 걸친 법정분쟁으로 세 번째 영화 기회를 놓쳤죠.
브로스난은 역대 본드 중 가장 소프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크레이그는 나이가 많지 않지만 캐릭터가 너무 우중충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제007살인면허를 봤습니다...
답글삭제비현실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말이 되게 아름답더군요...
뭔가 80년대이전의 007을 마무리하는듯한...
그런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달튼 스타일에 맞춰 새롭게 변화를 준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B.O. 결과가 안 좋았습니다.
삭제007 영화가 아니라 미국산 범죄영화 같다는 안 좋은 평을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과거 7080년대의 만화같은 007 영화에 비하면 아주 잘 된 영화로 꼽힙니다.
만약 라이센스 투 킬이 지금 개봉한다면 그 때보단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다니엘 크레이그 영화의 블루프린트 격이기도 하구요. 영화의 톤을 비롯한 기타등등...
크레이그가 달튼의 뒤를 잇는 비슷한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로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역시 007 시리즈는 다시 존글렌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게 바람직할듯 싶습니다
답글삭제그 분은 너무 고령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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