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14일은 007 시리즈 제 16탄이자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였던 '라이센스 투 킬(License to Kill)'이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날이다.그렇다. 이 영화가 개봉한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살인면허'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지 않았냐고?
맞다. 그런데도 굳이 '라이센스 투 킬'이라고 하는 이유는 '닥터노(Dr. No)'의 한글 제목이 '살인번호'라서 두 영화제목이 헷갈리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인번호는 뭐고, 살인면허는 또 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원래부터 'License to Kill'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Licence Revoked'로 출발했다. 제임스 본드의 살인면허가 취소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문제는 제임스 본드만 살인면허가 취소된 게 아니라 007 시리즈 자체가 취소될 뻔 했다는 것.
일반 영화관객들은 살인면허를 반납하고 사적인 복수에 전념하는 제임스 본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007 제작진은 007 영화 시리즈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못했던 제임스 본드의 어두운 내면을 '라이센스 투 킬'을 통해 처음으로 제대로 보여주고자 했지만 로저 무어(Roger Moore)의 제임스 본드를 기억하던 많은 영화관객들에겐 생소할 뿐이었다.
그 결과 '라이센스 투 킬'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멜 깁슨(Mel Gibson) 주연의 형사영화 '리썰 웨폰 2(Lethal Weapon 2)' 등에 밀리며 북미지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 자체는 007 시리즈 에서 보기 드문 수작이었지만, 영화관객들은 복수에 불타는 제임스 본드의 사실적인 액션 스릴러보다는 미사일과 레이저를 발사하는 본드카가 나오는 판타지 어드벤쳐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소한 제임스 본드'라는 파트가 왠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다고?
그렇다. 2006년 다니엘 클레이그(Daniel Craig)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이 개봉했을 때에도 비슷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깔끔한 외모의 배우가 제임스 본드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팬들은 진지하고 거친 외모의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임스 본드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에 보다 가깝게 접근한 영화 '카지노 로얄'을 엉뚱한 액션영화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는 두 편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80년대말 티모시 달튼의 뒤를 잇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았는데, 80년대에는 안 통했던 것이 2000년대에는 통한 것이다.
만약 80년대 영화관객들이 지금의 관객들처럼 딱딱하고 어두워진 제임스 본드에 관대했더라면 티모시 달튼도 성공한 제임스 본드로 기억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티모시 달튼은 로저 무어의 기억을 지우는 데 사실상 실패했고, '라이센스 투 킬'을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났다.
'라이센스 투 킬'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어느 것이 될까?
아무래도 음악일 것이다. 글래디스 나잇(Gladys Knight)이 부른 주제곡은 로저 무어 시절의 'For Your Eyes Only', 'A View to a Kill' 만큼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마이클 카멘(Michael Kamen)의 음악도 전체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 중 최하위권에 속할 정도로 기대에 못 미쳤다.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진 대신 음악이라도 흥미로웠다면 흥행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을 듯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바로 다음 작품인 '골든아이(GoldenEye)'의 음악도 '라이센스 투 킬' 못지 않게 험악했던 것을 보면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 존 배리(John Barry)를 대신할 작곡가를 찾는 일이 수월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본드걸도 베스트가 아니었다. 캐리 로웰(Carey Lowell)과 탈리사 소토(Talisa Soto) 2명이 출연했지만 배우라기보다는 모델에 가까운 연기가 잘 되지 않는 배우들이었던 바람에 기대이하에 그쳤다.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졌으면 본드걸도 연기가 되는 여배우를 캐스팅했어야 서로 매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본드걸 캐스팅을 예전에 하던대로 그대로 했고, 그 결과 제임스 본드는 이언 플레밍인데 본드걸은 로저 무어 시절에 머문 듯한 엉거주춤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본드의 절친한 친구, 필릭스 라이터 부부를 해친 마약왕 프란즈 산체스를 연기한 로버트 다비(Robert Davi)는 007 시리즈 최고의 악당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정복 같은 것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마약판매에만 열중하는 범죄자, 산체스는 역대 제임스 본드의 적수 중에서 가장 사실적인 캐릭터다.
그래서 더욱 독특하다. 일반 범죄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지만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악당으로는 상당히 다르게 보이는 캐릭터였다. 코믹북에서 뛰쳐나온 듯한 판타지 악당들과 달리 산체스는 매우 리얼한 범죄집단의 보스였으며, 적에는 인정사정 없이 가혹하면서도 동지에게는 이를 데 없이 후한 멋쟁이 악당이었다.
일부는 산체스의 조직이 너무 리얼하고 난폭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라이센스 투 킬'이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지적하지만, 싫든 좋든 간에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였다.
바로 이것이 007 시리즈 중에서 보기 드물게 잘 만든 영화인데도 북미에서 흥행실패했고, 플레밍의 원작에 가장 근접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던 티모시 달튼을 실패한 제임스 본드로 만든 영화, '라이센스 투 킬'이다. 본드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한 비운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제임스 본드 영화인 것에는 변함이 없는 만큼 콜렉티블은 풍부한 편이다.
몇 가지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Once again, Happy birthday 'LICENCE TO KILL'!!
마지막은 '라이센스 투 킬' 엔드 타이틀이었던 패티 라벨(Patti LaBelle)이 부른 'If You Asked Me To'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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