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토마스 뉴맨이 007 시리즈 음악을 되살렸을까?
007 시리즈 음악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영국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가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 이후부터 007 제작진은 그를 대신할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존 배리 이후로 007 시리즈 음악 담당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뮤지션은 영국 작곡가 데이빗 아놀드가 유일하다.
그러나 본드팬 중에서 데이빗 아놀드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놀드가 처음으로 007 음악을 맡았던 '투모로 네버 다이스'에선 모던 스타일의 신선한 사운드가 귀에 쏙 들어왔으나 존 배리의 감미로우면서도 웅장한 영화음악으로 귀가 고급이 된 본드팬들을 오랫 동안 만족시키지 못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본드팬들은 데이빗 아놀드의 테크노 풍의 음악에 피로감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12년작 '스카이폴'에 와서야 드디어 작곡가가 교체되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아놀드가 음악을 맡는 듯 했으나 '스카이폴' 연출을 맡은 영국 영화감독 샘 멘데스(Sam Mendez)가 그와 함께 여러 차례 함께 작업을 했던 미국인 뮤지션 토마스 뉴맨을 선택하면서 007 작곡가가 오랜만에 교체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아카데미 음악상 부문에 여러 차례 노미네이트됐던 토마스 뉴맨도 '임자'가 아니었다. '스카이폴' 사운드트랙은 지극히도 평범한 평균 수준이었을 뿐 영화를 보면서 곡들이 귀에 쏙쏙 들어올 정로도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곡이 거의 없었다. 요새 흔히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 영화 사운드트랙과 다를 게 없었다. 데이빗 아놀드 시대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았다.
특히 실망스러웠던 것은 '스카이폴' 사운드트랙이 007 시리즈 영화음악이 아니라 코믹북 수퍼히어로 사운드트랙처럼 들렸다는 점이다.
그렇다. 또 그 빌어먹을 코믹북 수퍼히어로 얘기가 또 나오게 됐다. '스카이폴'은 악당과 스토리 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수퍼히어로 스타일이었다.
그 중에서 예로 한 곡을 들어보자.
이런 곡은 007 시리즈 배경음악으로 들리지 않는다. 데이빗 아놀드도 007 시리즈에 어울리는 곡을 작곡하는 소질이 없어 보였는데, 토마스 뉴맨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편으론 007 제작진이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모방하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참고로, 현재 디스크와 디지털 버전으로 판매중인 '스카이폴'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앨범엔 영국 여가수 아델(Adele)이 부른 메인 타이틀 곡은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델이 부른 '스카이폴'까지 듣기 위해선 CD 싱글을 구입하든 아니면 디지털 포맷으로 다운받든 OST 앨범과 별도로 구입하는 수밖에 없다. 아델의 '스카이폴' 싱글을 아이튠스 등을 통해 이미 디지털 포맷으로 구입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메인 타이틀 곡이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바람에 약간 번거로워졌다.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 앨범에 메인 타이틀 곡이 수록되지 않은 경우는 지난 2006년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 이어 두 번째다.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이 부른 주제곡 'You Know My Name'도 '카지노 로얄' 사운드트랙 앨범에 수록되지 않아 별도로 구입해야만 했다.
어찌됐든 분위기를 보아하니 토마스 뉴맨도 아웃인 듯 하다. 과거 007 시리즈는 영화가 좀 이상해도 음악 만큼은 들을 만했는데, '스카이폴'은 영화와 음악이 세트로 속을 썩였다. 토마스 뉴맨으로 교체되었으니 이번엔 좀 나아졌겠지 기대했었지만 실망스럽게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앞으로 누가 007 시리즈 음악을 맡아야 할까?
기가 막힌 후보가 하나 있다: 바로 마이클 지아키노(Michael Giacchino)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업(Up)'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바로 그 작곡가다.
왜 지아키노냐고?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가 아무리 시원찮아도 음악 하나 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요샌 영화 스코어가 과거 만큼 훌륭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지만, 지아키노의 영화는 달랐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디즈니의 SF 어드벤쳐 영화 '존 카터(John Carter)'가 좋은 예다. 영화 자체는 솔직히 볼 게 별로 없었지만 음악이 귀로 솔솔 들어왔다. 지아키노의 음악이었다.
그 중에서 한 곡을 들어보자.
디즈니가 준비하는 새로운 '스타 워즈(Star Wars)'의 영화음악도 지아키노가 왔다일 듯 하다.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를 대신할 '스타 워즈' 작곡가 후보 0순위도 지아키노다. '존 카터'를 보면서 지아키노가 '스타 워즈' 음악을 맡으면 기가 막히게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몇 년 연달아 이렇다 할 새로운 블록버스터를 선보이지 못하며 전전긍긍하던 디즈니가 '스타 워즈' 시리즈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스타 워즈' 영화가 나오게 되었으니 실제로 지아키노가 '스타 워즈' 음악을 맡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또한 지아키노는 파라마운트의 스파이 스릴러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의 음악도 맡고 있다. 작년 말 개봉했던 '미션 임파서블 4'의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지아키노가 007 시리즈 음악도 멋지게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60년대 클래식 스파이물의 향수와 스타일을 잘 살린 모던 스타일의 영화음악을 만드는 요령을 아는 듯 하다.
그렇다면 007 제작진은 누굴 택할까?
토마스 뉴맨이 그만둔다면 007 제작진은 데이빗 아놀드로 다시 되돌아갈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하지만 다시 아놀드로 돌아가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뿐 보잘 것 없어진 007 시리즈 음악을 발전시킬 기회를 또 놓친다. 아놀드가 앞으로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는 007 시리즈 음악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별 기대가 안 된다. 이미 다섯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음악을 담당했는데도 007 시리즈 영화음악을 어떻게 만들어야 영화와 잘 어울리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앞으로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데이빗 아놀드와 007 시리즈는 잘 어울리는 커플이 아닌 듯 하다.
물론 "누가 요새 영화음악에 그렇게 신경을 쓰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틀린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007 시리즈는 다르다. 전통적으로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해왔기 때문에 주제곡과 스코어에 쏠리는 관심이 다른 영화보다 높다. 그러므로 이번부터라도 007 제작진이 음악에 좀 더 신경을 쓸 것이라면 제대로 할 것 같은 뮤지션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데이빗 아놀드는 아닌 듯 하며 토마스 뉴맨도 '스카이폴' 사운드트랙을 들어보니 역시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번엔 지아키노에게 맡기는 게 어떨까? 왠지 그가 007 음악을 맡으면 과거 존 배리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날 만한 멋진 사운드트랙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가 든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왠지 그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스카이폴'처럼 우중충한 곳만 찾아다니면 스코어를 누구에게 맡기든 별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클래식 007 영화에서 아름다운 경치와 음악이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풍경이 좋은 곳이 영화에 나와야 거기에 맞춰 음악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러니 007 제작진은 007 영화를 칙칙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처럼 바꿔놓는 등의 엉뚱한 생각은 이제 그만 하고 다음 번 영화부턴 경치 좋은 데를 찾아갈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말로만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 타령을 하지 말고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아름다운 선율과 멋진 경치가 빠진 클래식 제임스 본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007 제작진은 더이상 모른 척 하지 않길 바란다.
혹시 코맨더 본드 포럼에서 활동하시는지요?
답글삭제거기에서도 오공본드님과 똑같이 얘기하시는 분이 있길레요
그런가요? 전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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