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7일 금요일

평범한 수준에 그친 '골든 콤파스'

징글징글한 '징글벨 시즌'이 돌아왔다.

징글시즌이 돌아왔으니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도 컴백해야겠지?

작년엔 말하는 드래곤이 나오는 '에라곤'이 있었다. 그렇다면 금년엔 뭐냐?

뭐라고?

말하는 북극곰?

말하는 애완동물?

잠깐! 애완동물이 아니라 디몬(Daemon)이다.

디몬은 겉으로 보기엔 애완동물처럼 보이지만 인간과 연결된 - 사실상 하나인 것이나 다름없는 - 존재다. 인간과 디몬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멀리 떨어지면 안될만큼 붙어다니다시피 해야 한다.

한마디로, 애완동물 사업이란 건 불가능한 세계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갑옷으로 무장한데다 말까지 할 줄 아는 북극곰, 하늘을 나는 마녀, 어린아이들을 납치하는 고블러(Gobblers)라 불리는 미스테리한 단체, 음침한 구석이 있는 거대 종교단체 매지스테리움(Magisterium), '북쪽의 빛(Northern Light)'이라고 불리는 북극 오로라를 통해 보이는 또다른 세계의 도시와 쏟아져 내리는 정체불명의 '더스트(Dust: 먼지)'.

그리고, 사실을 가르쳐 주는 황금 나침반.

방향이 아니라 '사실'을 가르쳐 주는 나침반이다. 마법사가 크리스탈 구슬을 문지르면서 주문을 외우면 알고 싶었던 게 구슬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간단하게 말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나침반이다.

하지만, 사용법을 모르면 아무 쓸모 없으니 사용할 줄 아는 캐릭터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게 누구나고?

바로 라이라(다코타 블루 리차드)다.



말괄량이 라이라는 미스터 본드...가 아니라 아스리엘(다니엘 크레이그)의 조카다.

아니지, 조카인줄 알고 있었다고 해야 정확하려나...?



그리고, 라이라를 쫓아다니는 컬터(니콜 키드맨)라는 아줌씨가 있다.

니콜 키드맨은 몇 달 전 개봉한 '인베이션(Invasion)'에 이어 금년 들어 두 번째로 다니엘 크레이그와 같은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라일라만이 아니라 다니엘 크레이그도 스토킹 하는 모양이다.



미스터 본드를 뒤쫓는 여배우는 니콜 키드맨이 전부가 아니었다.

'카지노 로얄'에서 본드걸 베스퍼로 나왔던 에바 그린까지 쫓아온 것!

에바 그린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활을 쏘는 마녀, 세라피나로 나온다.



항해에 익숙한 집시들도 빼놓을 수 없다. 얼핏보면 영락없이 '카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 튀어나온 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풍선이 달린 비행선을 모는 '텍사스 카우보이' 리 스코스비(샘 앨리엇)도 메인 캐릭터 중 하나.



그리고, 판타지 영화에 어김없이 나와 살벌한 표정 한번 지어주는 반가운 얼굴, 크리스토퍼 리!

옛날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리를 보면 '드라큘라'를 떠올리지만 요즘 사람들은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을 떠올린다. 물론, 제임스 본드 팬들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스카라망가가 제일 먼저 생각나겠지만...

갈수록 역할이 작아지는 것 같지만 크리스토퍼 리를 못보고 지나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리 이외로 '판타지 영화' 하면 생각나는 배우가 하나 더 있다.

이언 맥켈렌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로 나오고 '스타더스트'에선 나레이션을 맡는 등 영국산 판타지 단골배우가 된 이언 맥켈렌은 갑옷으로 무장한 북극곰 이오렉(Iorek)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것이 바로 영국작가 필립 풀맨(Philip Pullman)에 의해 탄생한 '골든 콤파스(The Golden Compass)'의 세계다.

그렇다. '골든 콤파스'는 판타지 소설을 영화로 옮긴 또다른 판타지 영화다. '해리 포터', '스타더스트', '에라곤',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에 이어 이번엔 필립 풀맨의 '골든 콤파스'가 영화화 된 것.

'고블러'로 알려진 미스테리한 단체가 어린이들을 납치하자 라이라와 그녀의 동료들이 납치된 어린이들을 구출하고 납치 배후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골든 콤파스'의 줄거리는 꽤 흥미진진한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소설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는 것.

아쉽게도 영화버전 '골든 콤파스'는 소설의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금년 여름 개봉한 '스타더스트'처럼 소설의 내용을 영화로 옮기는 것에만 목을 매는 바람에 '줄거리 잇기 놀이'를 하다가 끝나는 데 그쳤다. 대사 몇 줄 더 집어넣고 조금만 차분하게 진행했더라도 날림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 테지만 계속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줄거리만 진행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문제들은 소설을 각색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소설을 영화로 제대로 옮기는 데 실패하한 영화들 말이다. '골든 콤파스' 역시 이런 영화 중 하나에 속한다. Best Adapted Screenplay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클라이맥스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또다른 아쉬운 점이다. 소설의 플롯 순서를 바꿔가면서 스펙타클한 클라이맥스씬을 준비하고자 노력한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가 밋밋해 보이는 것까지 바꿔놓지 못했다.

물론, 북극곰들의 결투와 하늘을 가득 메운 마녀들의 전투씬 등은 볼만하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만하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특수효과는?

'골든 콤파스'도 3D 특수효과가 화려한 영화 축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특수효과씬은 '스타더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에어쉽 비행장면이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디몬(Daemon)들이 전부 3D 캐릭터인만큼 특수효과에 인색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와 3D 디몬이 서로 박자가 제대로 맞지 않을 때가 있어 디몬을 쓰다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어색한 목소리 연기문제까지 겹쳤다.

가장 어처구니 없었던 건 북극곰 이오렉의 목소리. 육중한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할아버지 목소리'일 줄이야!!!

이언 맥켈렌에게도 한자리 내주기로 한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에게 이오렉 목소리 연기를 맡기면 어쩌자는 거냐! 곰이 왜 간달프처럼 말을 하는 건데?

우직하면서도 코믹한 곰다운(?) 목소리를 가진 성우가 이오렉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더라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적어도 이오렉과 라이라가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처럼 보이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다니엘 크레이그와 니콜 키드맨은 괜찮지 않냐고?

강인함이 느껴지는 건장한 사나이, 아스리엘과 소프트하면서도 우아한 미모의 컬터 부인에 크레이그와 키드맨이 잘 어울린 건 사실이다. 니콜 키드맨은 우아하게 보이면서도 괴팍스러운 컬터 부인을 훌륭히 연기했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는 '포스터 모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연기한 아스리엘의 출연시간이 짧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수퍼스타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를 끌어들였다는 것 하나로 재미를 보려던 게 본 속셈이 아니었나 한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카지노 로얄'에 함께 출연했던 에바 그린까지 '골든 콤파스'에 나오는 게 우연일리 없겠지?

가뜩이나 크레이그의 출연분량이 적은데 하필이면 그가 나오는 부분이 잘려나가기까지 했다.

왜 잘려나갔을까?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종교논란.

크리스챤들은 무신론자인 필립 풀맨이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소설이 영화화 됐다면서 '골든 콤파스'를 보이콧해야할 영화로 규정했다. 영화화 되기 이전부터 풀맨의 소설 시리즈가 크리스챤들의 타겟이었다는 걸 알고있던 영화 제작팀은 안티 크리스챤적인 부분을 많이 걸러냈다. 하지만, 크리스챤들은 '영화를 본 어린이들이 소설을 읽고싶어하면 어쩌냐'면서 '원천봉쇄'를 주장하고 있다. 아이들이 풀맨의 소설을 읽고 무신론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

바로 이런 논란 덕분에 소설까지 읽게 됐다. 대체 이런 논란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진 것. 이것도 노이즈 마케팅이 통한 것으로 볼 수 있을려나?

아무튼, 필립 풀맨의 '골든 콤파스' 소설은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골든 콤파스'는 필립 풀맨의 'His Dark Materials' 트릴로지 1권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용 판타지 소설인데다 홀리데이 시즌에 맞춰 영화까지 나왔다보니 서점에서도 '골든 콤파스' 영화관련 상품들을 제법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사진설명: 왼쪽은 카드게임, 오른쪽은 제작과정 이야기 등이 담긴 오피셜 영화 안내 책자)

자 그렇다면, '골든 콤파스'는 안티 크리스챤 소설일까?

영화에서는 안티 크리스챤적인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음흉한 종교단체의 명칭 '매지스테리움'이 캐톨릭 관련어라는 것부터 시작해 Holy Church, Bishop, Priest, Vatican, Baptism 등 캐톨릭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덕분에 매지스테리움이 캐톨릭에 빗대어 만든 가상의 종교단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캐릭터들의 이야기에서도 안티 크리스챤 분위기가 묻어난다. 아스리엘은 매지스테리움의 교리를 부정하는 캐릭터로 '수도원, 수도승, 수녀 등을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나오며, 컬터 부인은 포악하기로 소문난 북극곰왕 이오퍼(Iofur)에게 '크리스챤이 되도록 세례를 받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나온다.

캐톨릭과 캐톨릭의 신을 대놓고 공격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런 의미 아니냐'고 해석하기에 충분한 것만은 사실이다.

좋다. '골든 콤파스'가 안티-크리스챤 소설이라고 하자.

그런데, 이게 그렇게 엄청난 문제인가?

프로-크리스챤 소설이 있다면 안티-크리스챤 소설도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신을 숭배하는 소설이 있다면 신을 부정하는 소설도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모든 소설 또는 영화가 종교를 좋게 묘사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모든 소설 또는 영화가 프로-크리스챤이어야 한다는 법도 물론 없다.



예를 들어보자.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Chronicles of Narnia)'엔 '아담의 아들, 이브의 딸'이란 대사가 나오고 사자왕 아슬란이 부활할 때는 예수를 연상시켰다. 반면, '골든 콤파스'는 신을 부정하고 종교집단을 악당으로 묘사했다. 하나는 크리스챤과 그들의 신을 찬양하는 영화고 다른 하나는 신을 부정하는 영화다.

C.S 루이스의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와 필립 풀맨의 '골든 콤파스' 사이엔 유사한 점이 많다. 다른 세계, 말하는 동물들, 북극곰, 아이들이 주인공이란 점 등 서로 비슷한 데가 많은 것. 하지만,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는 친-기독교 영화고 '골든 콤파스'는 반-기독교 영화라는 것. 바로 이 차이점 때문일까? '골든 콤파스'는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를 리버스로 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크리스챤들이 쓴 '골든 콤파스' 비판글을 보면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로 위장한 무신론 선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C.S 루이스의 나니아 시리즈는?

그대로 뒤집어 보면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로 위장한 예수교 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한쪽은 괜찮고 다른 한쪽만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와 무관한 데서까지 악착같이 종교타령을 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크리스챤이고 무신론자고 닝기미고 다 좋다고 하자.

가장 중요한 건 '골든 콤파스'를 보고 나서 속편이 기다려졌냐는 것이다. '골든 콤파스'가 끝나자마자 2편이 기다려질 정도였냐는 것. 이번에 개봉한 '골든 콤파스'가 트릴로지 1편인만큼 '골든 콤파스를 본 뒤 2편이 얼마나 기대되냐'는 건 상당히 중요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YES or NO?



나는 기다려진다. '골든 콤파스'가 싱거운 수준에 머문 건 사실이지만 영화가 싱거운 것이지 원작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크리스챤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종교적인 부분은 제외한 'His Dark Materias' 트릴로지의 스토리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까지는 인정하자는 것이다.

다만, '골든 콤파스'의 엔딩이 바뀌었다는 게 약간 걸리긴 한다. 줄거리가 이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변함없지만 '골든 콤파스' 하나로 종결시켜도 무방해 보이도록 엔딩을 바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2편 제작이 확정된 상태가 아닌 듯.

과연, 귀여운 우리 라이라가 모험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한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속편은 보다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골든 콤파스'가 아주 재미없는 영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나은 것을 기대했다. 최근들어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들과는 어딘가 다를 줄 알았다. 제작비용이 2억불 이상이나 들었고 다니엘 크레이그, 니콜 키드맨 등 유명배우들까지 출연하는만큼 여러 면에서 높은 수준인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저 평범한 수준의 판타지 영화인 게 전부였다. MPAA로부터 PG-13을 받았지만 PG 영화처럼 보일 정도로 생각보다 심하게 아동틱한 평범한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였다.

어떻게 보면 판타지 영화제작에 노우하우가 부족한 사람들이 만든 영화 같다.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비한 분위기가 나는 사운드트랙으로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 꽤 유명한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성인관객들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아주 뻔해 보이는 몇 가지 룰에 맞춰 어설프게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골든 콤파스'가 '반지의 제왕'에 버금가는 판타지 대작이라고 하던데?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계속 나아진다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골든 콤파스' 1편만으로는 동의하기 힘들다.

비교할 것을 비교합시다!

나는 눈이 싫다...

나는 눈이 싫다.

눈이 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후 처리문제가 싫다.

4계절이 없는 1년 12달 여름이던 곳에서 10년 살다가 눈이 내리는 미국 동부로 이동했다는 것도 '눈 처리문제'를 싫어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리라.

사실, 싫어하고 좋아하고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눈 처리를 할 준비가 안 돼있는 게 가장 큰 문제기 때문이다. 눈을 치워 본 역사가 없는 덕분에 차를 뒤덮은 눈을 치우는 솜씨부터가 심각한 수준이다.

장비라도 괜찮으면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눈치우기용 장비들은 사지 않게 되더라. 매년 겨울마다 눈만 왔다 하면 눈 치우느라 고생을 하면서도 '장비 업그레이드'를 안하게 되더란 것이다.

몇 년째 사용중인 유일한 눈치우기 장비는 밥주걱 사이즈의 아이스 스크래퍼(Ice Scraper)가 전부다. 브러시 같은 것도 없다. 앞, 뒤, 좌, 우 유리에 붙어있는 눈과 얼음만 떼어내면 일단 급한 건 해결했다고 볼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할 수 있는 데 필요한 도구 하나만 달랑 있는 것.

때문에, 난 겨울이 오면 '눈 오지 말라'는 주문을 외우고 다닌다. 눈과 씨름할 것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눈이 오고야 말았다.

크아아아! 또 눈 치워야 하는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차를 끌고 나가고 싶다면 차를 덮고있는 눈을 치워야 하는 거다.

좋다 이거다. 치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눈이 많이 온 것 같지 않았는데 막상 치우려니까 꽤 되더라. 하지만, 불평한다고 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그냥 닥치고 눈이나...ㅠㅠ

열나게 눈을 치우고 있는데 동네 흑인 꼬마녀석들 셋이 지나갔다.

'나도 너희들 나이때엔 눈 오면 좋아했다고!'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 그래봤자 10살 전후지만 -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라. 전에 만난 적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눈 치우는 걸 도와주는 것이다. 이 녀석이 날 도와주기 시작하자 나머지 둘도 합세했다. 셋 모두 장갑까지 끼고 있었기 때문에 지붕, 유리 할 것 없이 차 위에 쌓인 눈을 손으로 쓸어버리더라.(참고: 난 장갑도 없는 팔자다)

혼자서 밥주걱만한 스크래퍼로 끄적거리면 꽤 오랫동안 눈과 씨름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 덕분에 시간이 부쩍 짧아졌다.

내가 고맙다고 했더니 슬쩍 한번 쳐다보며 싱긋 웃고는 계속 눈을 치우더라.

녀석이 지붕에 쌓인 눈을 밀어낸다는게 죄다 나한테 쏟아졌다. 그러자, 곧바로 날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하더라.

내가 지금 그런 것 가지고 사과를 받을 입장이 아닌 것 같은데...?

눈을 다 쓸어내자 아이들은 그냥 자리를 떴다. 고맙다고 다시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합류하더니 금새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들한텐 눈 치우는 게 일이 아니라 놀이 정도일지도 모른다. 어른들한텐 눈 치우는 게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들한텐 '눈놀이'를 하는 또다른 방법 중 하나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순수히 '돕겠다'는 것보다 '함께 놀자'던 것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냐! 도움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수? 도와주려던 것이든 눈놀이로 생각했든간에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도 눈치우는 걸 도와줬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냔 거다.

눈을 다 치운 뒤 운전석에 앉자 왠지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

'웬 아시안 녀석이 눈을 치운다면서 작은 스크래퍼를 들고 설치는 게 녀석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으면 도와줄 생각을 했을까'

아무래도 장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것 같지?

이래서 나는 눈이 싫다...ㅠㅠ

2007년 12월 3일 월요일

'어웨이크', 괜찮을 뻔 했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해진 헤이든 크리스텐슨(Hayden Christensen)과 제시카 알바(Jessica Alba)가 나오는 스릴러 영화라고?

왠지 모르게 피하고 싶었다.

여성관객들은 헤이든 크리슨텐슨이나 바라보고 남성관객들은 제시카 알바나 바라보라는 알맹이 없는 뻔할 뻔자 영화로 보였기 때문이다.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제시카 알바가 나온다니까 일단 출연배우를 빼면 남는 게 없는 간지러운 수준의 스릴러 영화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것. 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단, '어웨이크(Awake)'의 줄거리부터 살짝 둘러보기로 하자.

심장병을 앓고있는 부잣집 아들 클레이(헤이든 크리슨텐슨)가 심장 이식수술을 받기위해 전신마취를 했는데 '마취'가 아니라 '마비'가 된다. 의식은 그대로인데 몸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 그런데, 바로 이 덕분에 클레이를 죽이려 하는 의사들의 음모를 알아차리게 된다. 의식이 멀쩡하기 때문에 의사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은 것이다. 하지만, '마비'가 된 상태니 꼼짝할 수 없다.

전신마취를 했는데도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의사들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엿듣게 된다는 설정은 그런대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전부다. 여기까지가 양지의 끝이다. 곧바로 영화가 절룩거리기 시작하는 것.



샘(제시카 알바)과 약식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한 클레이와 그의 의사 친구 잭(테렌스 하워드), 클레이의 갑작스런 결혼과 1류의사가 아닌 잭에게 수술을 맡기겠다는 고집에 마음이 상한 클레이의 어머니 릴리스(리나 올린) 등 등장 캐릭터들은 그런대로 흥미롭게 보였다. 하지만, 스토리가 엉성해지는 덕분에 제몫을 다하지 못했다. 무언가 쇼킹하면서도 극적인 반전과 미스테리를 넣어보려고 노력한 것까지는 알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넘겨짚는대로 전부 들어맞을만큼 뻔한 수준이 전부이기 때문에 놀라울 것도 없었고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것도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배신'이라는 주제를 이용해 계속해서 관객의 허를 찌르려 노력한 것 같지만 흥미로운 수준이 아니다. 결국은 이렇게 되리라고 넘겨짚었던대로 전개되는 것도 문제지만 앞뒤 이야기가 대충 맞아떨어지면 그만이라는 수준에서 줄거리를 대충 짜맞춘 티가 심하게 나는 덕분이다. 요즘 관객 중에 이 정도 스토리에 감탄사를 연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따분할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까지 '깨어있는' 것이 힘들 정도는 아니다. 중간에 따분해질 정도로 맹탕인 영화는 아닌 것. 주인공 클레이가 상당히 희귀한 상황에 처한 덕분에 영화가 시시해지긴 해도 일단 벌여놓은 것을 정리하는 과정이 그리 지루해 보이진 않는다.

물론, 러닝타임이 1시간 반이 채 안되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제작팀의 깊은 뜻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어웨이크'는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제시카 알바가 나온다', '마취가 아닌 마비상태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영화다. 1시간 반도 채 안 되는 러닝타임에 이것저것 대충 엮어놓은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만들었다면 꽤 괜찮을 뻔 했지만 첫 부분에서 냄새만 그럴싸하게 풍겼을 뿐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Something Special'이라고 할만한 게 없다.

제대로 된 러브씬이나 노출씬이 없으니 이런 것들로 관객을 끌려는 완벽한 3류영화는 아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제시카 알바가 출연한 덕을 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에만 필사적으로 기댄 영화는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참신한 소재와 줄거리로 승부내고자 했다는 것까지는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는 크리스텐슨-알바를 제외하면 볼 게 없다는 소리를 면키 힘들어 보인다.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제시카 알바라는 두 청춘스타가 함께 출연한다는 것 하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웨이크'는 아무래도 여기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극장까지 가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젖은 티셔츠를 통해 비치는 제시카 알바를 보고 싶다면 또 다른 얘기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도 일부러 극장까지 찾아가서 눈알에 힘주고 볼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는 절대 아니다. '어웨이크'는 나중에 DVD로 나오면 빌려보면 될만한 영화다. 집에서 느긋하게 DVD로 본다면 몰라도 일부러 극장까지 가서 볼만한 가치는 없다.

2007년 12월 2일 일요일

하와이, 12승무패로 퍼펙트 시즌 마감!

내가 하와이에 있을 때만 해도 하와이 대학(University of Hawaii) 풋볼팀은 볼 게 없었다. 몇 번 알로하 스테디움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이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2007년 하와이 대학 풋볼팀은 내가 기억하던 팀이 아니다.

12승무패로 시즌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정규시즌동안 1패도 하지 않은 것. 미국 동부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을 때까지 하와이의 마지막 정규시즌 경기를 보느냐 정신 못차린 보람이 있었다.

하와이 대학이 속한 WAC(Western Athletic Conference)이 약체라는 건 안다. 스케쥴 역시 힘들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NCAA 기록을 갈아치우기에 바빴던 쿼터백 콜트 브레난(Colt Brennan)과 UH의 패싱공격을 과소평가하는 건 곤란하다. 불안했던 수비도 금년시즌엔 전국 탑35에 랭크됐다고 들었다.


(사진: 하와이 QB 콜트 브레난)

UH 풋볼팀 헤드코치 준 존스(June Jones)도 빼놓을 수 없다. 준 존스는 아틀란타 팰컨스 헤드코치를 지낸 NFL 경력이 있다. 하와이 대학팀의 성격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준 존스는 공격전문 코치다. NFL 시절부터 Run and Shoot 오펜스로 유명했던 코치다.

그러나, BCS는 냉정했다. 하와이가 무패행진을 이어가도 '스케쥴이 쉽다'는 이유로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것. 하와이는 BCS 랭킹 15위 근처를 오르내릴 뿐 BCS 보울 경기 출전권이 주어지는 탑12에 들지 못했다. 무패행진을 이어간 팀이 전국에서 하와이 하나뿐이었지만 '스케쥴이 쉽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주 보이지 주립대(Boise State University)를 꺾으면서 가까스로 12에 랭크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조건이 붙었다: 전승을 하지 않는 이상 BCS 보울은 힘들다는 것.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서 패한다면 하와이는 BCS 랭킹 탑12에서 밀려나면서 BCS 보울 경기 출전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BCS 보울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느냐 마느냐가 마지막 경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 부담 탓이었을까?

하와이 풋볼팀은 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1쿼터에 삽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심하게 삽질을 해댔다. 21대0이 뭐냐!

다행히도 2쿼터에 하와이가 21점을 득점하면서 28대21로 따라붙으며 전반을 마쳤다.

3쿼터는 양팀 모두 한 게 별로 없다.

드디어, 운명의 4쿼터.

4쿼터 절반이 지났을 때 콜트 브레난의 장거리 터치다운 패스가 성공하며 28대28 동점이 됐다.

자, 이제 워싱턴 공격을 막고 한번 더!

경기종료 40여초를 남기고 하와이가 역전 터치다운을 하는 데 성공!

스코어는 35대28, 하와이.

자, 이젠 워싱턴 공격을 막고 끝내자!

그런데... 그런데...

하와이 수비가 40초를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워싱턴 공격이 하와이 골라인 코앞까지 온 것!

어딜 자꾸 오는 거냐! Freeze muthafukaz!ㅠㅠ

워싱턴이 터치다운을 하면 오버타임이었다. 시계는 12초 정도 남았는데 워싱턴 공격이 6야드까지 전진한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막판 동점 터치다운을 내주는 게 아니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좋다! 오버타임을 준비하자!

그러나...

하와이가 워싱턴의 마지막 패스를 인터셉트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3초 뒤 경기가 끝났다.

하와이 승리! 12승무패!! 퍼펙트!!!


(사진: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 메인 페이지 캡쳐)

미국 동부에서 하와이 시간으로 생활하기 참 힘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시계는 하와이 시간으로 맞춰놓는 버릇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버릇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금 하와이 주민들은 얼마나 흥분해 있을까. 동네마다 맥주파티 벌어졌을 것 같은데 거기에 한다리 못 끼는 게 한쓰러울 뿐이다.

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힘들게 본 그린베이 vs 달라스 경기

그린베이 패커스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경기를 아주 힘들게 봤다.

인터넷으로 NFL.COM의 문자중계와 NFL LIVE 동영상을 동시에 쳐다보며 아주 힘들게 봤다.



스크린이 너무 J만하지 않냐고?

원한다면 풀 스크린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풀 스크린 화질 퀄리티가 좋지 않아 J만한 화면으로 보는 게 차라리 나은 것 같더라.



그렇다고 풋볼경기 전체를 인터넷으로 중계한 것도 아니다.

툭하면 NFL LIVE 데스크로 옮겨가고, 나중엔 중계방송을 제쳐두고 경기와는 무관한 NFL 필름 다큐멘타리까지 틀어줬다. 그린베이 패커스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경기가 진행중인데 조 몬타나가 나오는 옛 경기 화면을 틀어주더란 말이다.



NFL이 왜 이따위 짓을 하고 있냐고?

NFL 네트웍이라는 자체 채널을 만들어 정규시즌 중계방송까지 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NFL 네트웍을 만든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케이블 회사가 NFL 네트웍을 기본채널 그룹에 넣지 않고 스포츠 프리미엄 패키지에 넣으면서 시작됐다. 결국은 NFL과 케이블 회사간의 돈문제다.

하지만, 이 덕분에 피해를 보는 건 케이블 유저 NFL 팬들이다. TV를 소유한 미국 전체 가구 중 2/3는 NFL 네트웍을 통해 중계방송되는 경기를 볼 수 없다고 한다. NFL 네트웍 경기를 볼 수 있는 1/3은 위성방송 DirecTV 유저 아니면 컴캐스트의 스포츠 프리미엄 패키지 유저들이다.

NFL 네트웍을 지지하는 달라스 카우보이스 구단주, 제리 존스는 며칠전 기자회견에서 '(NFL 네트웍을 볼 수 있는)위성TV로 바꾸라'고까지 했다.

NFL 네트웍 하나 때문에 스포츠 프리미엄 패키지를 사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 하나 때문에 케이블에서 위성으로 바꾸라는 것 역시 넌센스처럼 들린다. TV를 자주 보는 사람들은 케이블과 위성의 여러 가지 장단점들을 비교해서 선택할지 모르지만 NFL 네트웍 하나 때문에 교체를 고려하라는 건 좀 웃긴다.

하지만, NFL이 이것을 더이상 웃기지 않게 만들고 있다.

처음엔 시범경기가 전부였지만 작년부터인가 NFL 네트웍에서 정규시즌 경기까지 중계방송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NFL 네트웍이 안 나오는 사람들은 정규시즌 경기를 보고싶어도 못 보도록 만든 것이다.

오늘 있었던 달라스 카우보이스와 그린베이 패커스의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이 경기는 NFL 네트웍을 통해서만 중계방송 된 목요일 저녁 스페셜 풋볼경기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NFL 네트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달라스와 그린베이 지역에선 NFL 네트웍이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중계방송 됐다. NFL이 욕을 덜 먹기 위해 '배려'한 것이다. 달라스와 그린베이 시민들마저 NFL 네트웍때문에 경기를 못 보게 된다면 욕을 삼태기로 먹을 것 같으니까 해당지역 두 곳에만 예외를 둔 것.

하지만, 텍사스와 위스콘신주를 제외한 나머지 48개주 주민들은 NFL 네트웍 없인 경기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NFL이나머지 48개주 풋볼팬들에 대한 '배려'를 잊은 건 아니다.

NFL.COM의 NFL LIVE가 그것.

그런데, NFL LIVE를 통해 경기 전체를 중계방송하면 사람들이 NFL 네트웍 채널에 관심갖지 않을 것 같으니까 경기실황을 중계하다 NFL LIVE 스튜디오로 돌아오고, 나중엔 경기와는 상관없는 다큐멘타리까지 틀어놓는 걸 반복했다. 인터넷으로 경기를 중계해준 건 맞지만 100% 중계해주지 않고 감질나게 찔끔찔끔 보여준 것이다. '시원하게 중계방송을 보고싶으면 NFL 네트웍으로 보라'는 게 NFL이 하고싶은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NFL 네트웍 때문에 풋볼경기를 보지 못하는 48개주 풋볼팬들의 분노를 무시할 순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치사하게 이게 뭐냐는 생각이 든다.

NFL 네트웍 홍보를 하고싶은 것까진 이해 못하는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을 통해 이런 식으로 감질나게 장난칠 정도로 쪼다들은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이 미식축구고, 바로 여기에 NFL이 버티고 있는데 매경기 모두 인터넷으로 중계방송 해줘도 시원찮을 판인 것 같은데 이게 뭐하는 짓이냔 거다.

NFL 정규시즌 경기를 미식축구에 별관심 없는 영국에 가서 하지 않나, 미국의 2/3가 못본다는 걸 알면서도 정규시즌 경기를 NFL 네트웍으로 가져가지 않나, 최근들어 NFL이 하는 걸 보면 정이 안간다.

하지만, 며칠전 세상을 떠난 워싱턴 레드스킨스 세이프티, 숀 테일러를 추모하는 건 올바르게 하고있는 것 같다.

테일러 사망후 열린 첫 NFL 경기인 달라스와 그린베이 경기에서 헬멧 뒤에 붙은 '21'이란 번호가 눈에 띄었다.(사진)

바로, 숀 테일러의 번호다.

달라스 카우보이스와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수십년간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지만 매년마다 두 번씩 마주하는 상대다보니 카우보이스 선수들에게도 숀 테일러 사건이 남의 얘기 같지 않을 것이다.

숀 테일러도 달라스 카우보이스 헬멧에 자신의 넘버가 붙게 될 줄은 몰랐을지도...

잠깐!

다 좋은데 경기결과에 대한 얘기는 왜 없냐고?

달라스 카우보이스 팬이라면 이 경기의 결과는 안봐도 다들 알 수 있었을 것이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린베이가 달라스 홈에서 이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점수차다.

달라스가 그린베이를 텍사스 스테디움에서 꺾을 때마다 항상 10점차 이상으로 이겼다는 것.

2007년 결과도 딱 여기에 맞아떨어졌다.

파이널 스코어 = 37:27

그렇다. 딱 10점차다.

경기 내내 3점차, 7점차가 나는 걸 보면서 '또 10점차로 이기는구나' 했다...ㅋㅋ

27대24로 그린베이가 3점차로 따라붙었을 때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터치다운을 하면 34대24로 다시 10점차가 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달라스가 터치다운을 했다. 그런데, 그린베이가 필드골을 차면서 34대27을 만들었다.

오 그래? 그렇다면 달라스가 필드골을 하나 더 차겠구만...ㅋㅋ

예상대로 달라스가 마지막 필드골을 차면서 파이널 스코어는 37대27.

라스베가스 라인에 달라스가 그린베이에게 7점을 줬던데, 만약 내가 돈을 걸었다면 달라스에 걸었을 것이다. 10점차로 이길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해서,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11승1패가 됐다. 뉴잉글랜드, 인디아나폴리스, 샌디에고가 11승1패라면 '그런가부다' 하겠지만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11승1패라니까 아직까지 좀 얼떨떨하다. 토니 로모가 툭하면 한 경기에 터치다운 패스를 4개씩 던질줄 누가 알았으랴!

빌 파셀스가 달라스 카우보이스 헤드코치일 때 탑 드래프트 픽 쿼터백들의 몰락을 얘기했던 게 기억나는데 이제 보니 드래프트 되지도 않았던 토니 로모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만 해도 '아무리 그렇다 해도 쿼터백은 탑 드래프트 픽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는데...

2007년 11월 28일 수요일

숀 테일러, 아쉬움만 남긴채 떠나다

워싱턴 레드스킨스(Washington Redskins) 세이프티, 숀 테일러(Sean Taylor: 1983~2007)가 필라델피아 이글스(Philadelphia Eagles)와의 NFL 정규시즌 10째주 경기에서 부당당했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숀 테일러는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와의 11째주 경기를 뛰지 못했다.

탬파베이 버캐니어스(Tampa Bay Buccaneers)와의 12째주 경기도 뛰지 못했다.

숀 테일러는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덕분에 마이애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여자친구, 어린 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부상도 경기의 일부인만큼 여기까지는 별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월요일 뉴스에선 완전히 다른 부상을 얘기하고 있었다.

총상이었다.

월요일 새벽 괴한(들)이 숀 테일러의 집에 침입해 테일러에게 총을 쏘고 도주했고, 허벅지 부근에 총상을 입은 테일러는 출혈과다로 중태라는 것.

숀 테일러는 화요일 새벽 결국 세상을 떠났다.

1월1일 새벽 신년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총에 맞아 사망한 덴버 브롱코스(Denver Broncos)의 주전 코너백 대런트 윌리암스(Darrent Williams)에 이어 금년들어 두 번째로 NFL 선수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터진 것.



난 워싱턴 레드스킨스 팬이 아니다. 하지만, 숀 테일러 이 친구는 참 맘에 들었다. 레드스킨스에서 가장 맘에 드는 선수를 하나 꼽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숀 테일러'라고 했을 것이다.

그의 사생활이 조금 정신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음주운전으로 걸리기도 했고 총을 들고 설치다가 오랫동안 교도소 생활을 할뻔도 했다.

하지만, 풋볼필드에서의 숀 테일러는 '괴물'이었다. 세이프티치고 몸집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키 6피트2인치, 몸무게 212파운드 - NFL.COM) 항상 눈에 띄는 선수였다. 마이애미 대학(University of Miami)에서 뛸 때부터 눈여겨 봤을 정도다. 숀 테일러는 라인배커(Linebacker) 사이즈의 큰 덩치로 보는 사람조차 뼈가 시릴 정도의 거친 태클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빅태클이라면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의 로이 윌리암스(Roy Williams)도 끼지 않냐고?

물론이다. 로이 윌리암스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로이 윌리암스는 태클전문일뿐 패스수비에 취약한 반면 숀 테일러는 빅태클뿐만 아니라 DB(Defensive Back)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패스수비에도 능했다. 2007년 시즌 숀 테일러는 10경기동안 5개의 인터셉션을 기록중이었다. 테일러의 시즌 최다기록이다.

그렇다. 숀 테일러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이대로였다면 'NFL 올스타'격인 프로보울(Pro Bowl) 플레이어로 선정되는 것도 무난해 보였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숀 테일러의 무시무시한 빅태클을 구경할 수 없게 됐다. 더이상 숀 테일러의 거칠고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를 구경할 수 없게 됐다.

2007년 11월 NFL팬들은 엄청난 플레이메이커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숀 테일러의 2007년 시즌 하이라이트를 한번 모아봤다. 07시즌 첫 째주부터 '마지막'까지의 하이라이트를 모아봤다.

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힛맨' - 문어머리가 전부가 아니다

비디오게임을 영화로 옮기면 하나 같이 쓰레기가 된다.

어지간한 게이머들에겐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닐 것이다.

'레지던트 이블', '사일렌트 힐', '블러드 레인', '모탈컴뱃', '스트릿 파이터', '데드 오어 얼라이브' '얼론 인 더 다크', '툼 레이더' 모두 게임을 영화로 옮겼다가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영화들이다.

영화를 비디오게임으로 옮겨도 하나 같이 쓰레기가 된다.

영화의 인기에 의존해 재미를 보려는 얇팍한 수준의 게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300' 비디오게임부터 시작해서 빅네임 영화 프랜챠이스 계약에 열을 올렸다가 죽쒔던 EA의 영화 라이센스 비디오게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작년에 나온 '다빈치 코드' 비디오게임도 불후의 쓰레기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때문에, 비디오게임을 영화로 옮기거나 영화를 비디오게임으로 옮기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네임밸류 빼고나면 볼 것 하나도 없게 만들어 놓고 팔아먹을 생각만 하는 게 전부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런 영화가 나왔다. 이번엔 EIDOS의 액션/어드벤쳐 타이틀 '힛맨(Hitman)'의 차례.



EIDOS 비디오게임 캐릭터가 스크린 데뷔를 한 건 에이전트47이 처음이 아니다. '툼 레이더'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안젤리나 졸리가 라라 크로프트로 나왔던 그 영화 시리즈 말이다. 이것도 EIDOS 비디오게임이다.

'툼 레이더' 비디오게임 시리즈를 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는 '툼 레이더' 게임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라라 크로프트라는 캐릭터의 스타일리쉬한 부분 몇 가지만 갖다 붙여놓고 나머지는 안젤리나 졸리가 마약복용후 환각상태에 빠져있는 듯한 제정신 아닌 라라 크로프트를 아주 멋지게 오버연기 하면서 망쳐놓은 게 전부다.

결국, '툼 레이더' 영화 시리즈는 2편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2편이 흥행실패하자 영화사측이 그 이유를 '툼 레이더' 비디오게임 판매저조때문이라고 하는 바람에 한바탕 시끄러웠던 것도 기억난다.

사실, 크게 틀린 얘긴 아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툼 레이더 2'가 개봉 전후로 '툼 레이더: 엔젤 오브 다크네스'라는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2 버전 '툼 레이더' 타이틀이 출시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게임이 버그 투성이였던 것. PS2로 나온 첫 번째 '툼 레이더'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지만 느려짐 현상부터 시작해서 험악할 정도로 힘든 콘트롤 등 수많은 문제점들 덕분에 쫄딱 망하고 말았다. '툼 레이더' 시리즈를 단 한편도 거르지 않고 모조리 끝장을 봤던 '툼 레이더 매니아'인 나도 'TR: 앤젤 오브 다크네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게임이 나의 마지막 '툼 레이더' 게임이 됐다. 그 이후에도 새로운 'TR' 게임들이 나왔지만 플레이스테이션1 시절의 추억으로 끝내기로 결심했던 것.

자, 그렇다면 에이전트47은?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버전 라라 크로프트처럼 티모시 올리판트의 영화버전 에이전트47도 망가졌을까?



내가 볼 땐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티모시 올리판트를 에이전트47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것.

안젤리나 졸리? 라라 크로프트? 풋볼 사이즈의 빵빵한 가슴? 큰 눈? 두툼한 입술?

안젤리나 졸리는 라라 크로프트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에 안젤리나 졸리가 라라 크로프트역으로 캐스팅 됐다는 데 큰 불만이 없었다. 라라 크로프트가 영국 캐릭터인만큼 영화배우도 영국인이었다면 더욱 자연스럽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는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가 억지로 영국식 액센트로 연기를 했다는 것도 '툼 레이더' 팬들의 지적을 받았다.

그렇다면, 티모시 올리판트의 에이전트47은?

삭발했다는 것 하나 빼곤 게임에서의 에이전트47과 비슷한 데를 찾기 힘들다. 에이전트47이라고 하면 선이 굵은 얼굴의 터프가이가 떠오르지만 티모시 올리판트는 상당히 날카롭게 보이는 얼굴이란 데서부터 서로 매치가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게임에서의 에이전트47과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도 나름대로 개성있는 에이전트47을 연기했다면 문제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도 만족스럽지 않다.

다른 액션영화의 캐릭터를 흉내낸 것처럼 보일 뿐 어떠한 캐릭터를 만들고자 한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비디오게임 캐릭터를 영화로 옮겨왔고 제목도 '힛맨'이지만 '트랜스포터(The Transporter)' 리믹스 버전 정도로 보이기 때문이다.티모시 올리판트가 삭발까지 하고 나오다보니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제이슨 스태덤과 더욱 비슷해 보인다.

줄거리도 볼 게 없다. 대통령 암살, CIA, FSB, 인터폴 등 오만 잡것(?)들이 다 나오지만 거창하기만 할 뿐 에이젠트47과 어울리는 내용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에이전트47이 '암살자'인 건 맞지만 이런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스테리한 줄거리와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결합시켜 보려고 노력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비디오게임을 영화화 한 작품들이 하나같이 한심하다보니 '힛맨'은 뭔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 것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억지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다. 덕분에,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유치해 보일 뿐이다.

사실, 영화 자체만 놓고 따지면 이전에 나온 '비디오게임 영화'들에 비해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험악할 정도의 쓰레기 영화는 아니라는 것. 적어도 평균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톱 클래스 액션영화 축에 들 정도는 아니다. 액션과 스턴트도 볼 게 별로 없고 줄거리도 시시하기 때문이다. 다른 액션영화에서 이것 저것 빌려온 것을 조립해 놓은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2류급 액션영화 정도는 되겠지만 그 이상은 절대 아니다. 섹시한 여배우도 나오고 눈길을 끌만한 섹시한 자동차 Audi S5도 나오지만 이런 것들로 어떻게 해보려는 어정쩡한 액션영화들이 워낙 많은 덕분에 새로울 게 없다.

물론, 주인공이 문어머리에다 뒷통수에 바코드가 문신으로 새겨진 친구라는 게 다른 2류급 액션영화들과 차별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힛맨' 비디오게임 시리즈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영화에서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 '문어머리'만으로 재미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티모시 올리판트는 큰맘 먹고 삭발했을지도 모르지만 에이젠트47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했다. 에이전트47을 연기하려면 당연히 삭발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비디오게임 '힛맨'을 영화화했다는 걸 잊게 되는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머리를 기른 채로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문어머리가 전부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그렇다. '힛맨'도 결국 그렇고 그런 수준의 영화다. 이전 '비디오게임 영화'들처럼 도저히 못봐줄 정도인 건 아니지만 여전히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에 그쳤다. '혹시나' 하며 봤지만 '역시나' 였다. '힛맨'도 비디오게임을 영화로 제대로 옮기는 방법을 모른 채 만든 영화로 보일 뿐이다.

과연 언제쯤 비디오게임을 제대로 옮긴 영화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07년 11월 21일 수요일

'Enchanted', 007년 최고의 코메디

유쾌한 판타지 영화를 본 뒤 '캐릭터들이 전부 동화에서 곧바로 뛰쳐나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화에서 곧바로 나온 것처럼 보였다는 게 전부지 실제로 나온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캐릭터들이 진짜로 동화를 박차고 나온다면?

동화와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캐릭터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로 오게 된다면?

그것도 다른 데도 아니고 우질나게 바쁘고 불친절한 도시, 뉴욕에 오게 된다면?

디즈니의 코메디/뮤지컬 'Enchanted'는 이렇게 시작한다.



'Enchanted'의 줄거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지젤(에이미 애덤스)은 동물들을 불러놓고 멋진 왕자와의 결혼 얘기나 하는 '예비 공주님'이다.

어디로 보나 영락없는 '동화세계의 지지배'다.



에드워드 왕자(제임스 마스덴)는 지젤을 만나자마자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는 친구다.

눈이 맞자마자 바로 다음날로 결혼식이란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식을 방해하려는 자가 있다.

바로, 에드워드 왕자의 양어머니, 나리사(수잔 서랜든)다.

지젤과 에드워드의 결혼을 저지하기 위해 지젤을 뉴욕으로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 아줌마 덕분에 지젤은 뉴욕으로 오게 된다.

만화 세계에서 쫓겨나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로 왔으니 당연히 만화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 변신했을 수밖에...



자, 그렇다면 에드워드 왕자는 어떻게 할 건데?

결혼 좀 쉽게 해보나 했더니 결혼식 직전에 신부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찾으러 가야겠지?



아무튼, 월컴 투 뉴욕이다.

그런데...

동화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친구들이라서 한가지 고질적인 버릇이 있다.

틈만 났다 싶으면 노래를 부르는 것!



기회가 왔다 싶으면 저렇게 길바닥에서 노래를 불러 제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年'인줄 알 것이다.

평범한 뉴요커, 로버트(패트릭 뎀시)의 눈에도 저런 행동을 하는 지젤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지젤이 전부가 아니다.

틈이 나는대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친구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지젤과 에드워드의 '동화 이야기'는 지지리도 사실적인 뉴욕시로 이어진다.

지젤과 에드워드 모두 '이상한 곳'에 오게 됐다는 것까진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뭐가 어찌 돌아가는 건지 파악이 안되고 있는 친구들이다보니 뉴욕시에 와서도 동화세계에서 하던 대로 그대로 생활한다.

아, 물론 노래는 틈만 나면 부른다. 이들의 고질적인 노래 부르기 버릇 덕분에 영화까지 뮤지컬 비스무리해졌다. 'Enchanted'의 쟝르가 뮤지컬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들이 수시로 노래를 부르던 것을 현실세계로 옮겨놓자 영락없는 뮤지컬처럼 보인다.

자꾸 노래를 부르는 지젤을 로버트가 말리면서 '노래를 부를 필요까진 없지 않냐'고 할 때 한참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웃겨서라기 보다 내가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로버트가 말했기 때문이다:

말로 해도 되는 데 왜 노래까지 부르고 난리야?



노래만 부르면 다행이게?

만화의 세계에서 동물들을 불러모으던 기술이 뉴욕에서도 통할줄이야!

그러나...

뉴욕시에서 불러모을 수 있는 동물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겠지?

그렇다면, 뉴욕을 대표하는 동물이 무엇일까 하나 뽑아보기로 하자.

그렇다. 바로 쥐다.

뉴욕에서 동물들을 불러봤자 만화의 세계에서처럼 컬러풀한 동물은 기대할 수 없는 법. 지젤이 부르니까 뉴욕에 사는 동물들이 모이긴 했는데 쥐, 비둘기, 바퀴벌레, 파리떼가 온다.



'Enchanted'는 이런 식이다. 동화의 세계에서 온 지젤과 에드워드가 낯선 도시, 뉴욕에서 겪는 문화적 충격을 코믹하게 그린 판타지 영화인 것.

아무래도 아이들을 겨냥한 영화인만큼 성인들까지 웃기기엔 살짝 곤란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 전체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유치한 수준의 유머가 전부인 건 아니다. 동화속의 캐릭터들이 지독하게도 사실적인 뉴욕시에 나타났다는 설정부터 재미있는데다 이 와중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해프닝들 또한 흥미진진하다.

동화속 캐릭터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로 뛰쳐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화속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정신이상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런 걸 따지지 말고 생각해 보자. 동화속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냔 말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상당히 로맨틱하다.

왕자와 공주 얘기가 나올테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로맨스보다는 유머 위주일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로맨스 비중도 만만치 않았다.

지젤과 에드워드 왕자의 로맨스 스토리가 전부였다면 아무래도 동화수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이혼남, 로버트의 스토리가 얽히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여전히 동화같은 얘기인 것엔 변함없지만 '만난지 하루만에 결혼하는' 동화책 로맨스 수준이 전부가 아닌 것.



유머도 좋고 로맨스도 좋다지만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뭐니뭐니해도 에이미 애덤스의 공주연기다.

처음엔 공주역할을 맡기엔 어딘가 살짝 부족한 데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있으면 '에이미 애덤스=동화속 공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순진하고 맹한 데가 있으면서도 밝고 천진난만한 동화속 공주역할에 에이미 애덤스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기 때문에 '노처녀 공주'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뮤지컬 배우처럼 노래와 춤도 잘하는 게 '디즈니 공주님' 역할에 딱이었다.

애덤스 이외의 배우들도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어린 딸을 둔 로버트역으로 나온 패트릭 뎀시도 생각보다 패밀리 영화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 왕자로 나온 모델출신 배우 제임스 마스덴의 희극연기도 훌륭했다. 마녀 나리사로 나온 수잔 서랜든은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저 그녀의 모습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스타더스트'에서의 미셸 파이퍼는 상대가 안된다.

살짝 아쉬웠던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특수효과 퀄리티가 약간 의심스러웠다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Enchanted'는 특수효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다. 이런 영화를 보고싶다면 '트랜스포머스'나 '베오울프'를 보면 되는 거다. 때문에, 'Enchanted'의 특수효과 퀄리티가 약간 수상하단 것 정도는 거의 신경에 쓰이지도 않는다. 특수효과 같은 건 이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왕자님과 공주님이 뉴욕에 들이닥쳤는데 지금 특수효과가 문제겠수?

'Enchanted'는 금년에 본 코메디 영화 중에서 최고로 재미있게 본 영화다.

금년이래봤자 이젠 한달 하고 며칠 정도 남은 게 전부니까 그 사이에 대단한 코메디 영화가 또 나오진 않겠지?

한가지 확실한 건, 금년에 본 영화들에 나온 여자주인공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게 누구냐고 하면 주저없이 지젤을 꼽겠다는 것이다. 2007년 최고의 여배우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얘기 안해도 알 수 있으리라.

아, 물론 이런 영화에 좋은 주제곡이 없다면 허전하겠지?

'공주영화'에 딱 어울리는 가수, 캐리 언더우드의 'Ever Ever After'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끝내자.

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베오울프', 영화의 미래를 보여주다

'요샌 3D 캐릭터도 상당히 리얼해 보이는데 꼭 영화배우가 나와야 영화인가?'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확히 몇 년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 감독은 곧 3D 캐릭터가 영화배우를 밀어낼 것이라고 했다. 조만간 영화배우들이 전부 실업자가 될 것이란 의미는 아니지만 3D 캐릭터가 영화배우를 대신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란 얘기였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3D 캐릭터가 영화배우를 밀어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3D 모델 퀄리티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좋아졌다지만 실제 영화배우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의 눈을 만족시키기엔 아직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무조건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도 무조건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는 맹꽁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게임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등급이 있고 게임 중에도 성인용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게임이라고 하면 전부 어린이용인 것으로 생각한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무조건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카툰식 캐릭터가 아니라 사실적인 캐릭터가 나오더라도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비디오게임'과 '애니메이션' 2가지를 한데 합쳐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결국, 풀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려면 기술적인 한계에 도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이라는 고정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과도 부딪쳐야 하는 것.

로버트 저메키스의 풀 3D 애니메이션 영화 '베오울프(Beowulf)'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베오울프'를 보고 있으면 제작팀이 무엇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는지 한눈에 보인다:

'베오울프'는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어린이용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벗기기' 아닐까?

베오울프가 전라상태로 그렌델과 싸우는 것부터 의도된 연출로 보인다. 베오울프가 전라로 격투를 한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이래도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거냐'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알몸으로 격투를 해야만 한 베오울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을 뿐.

이 날씨에 불X이 많이 시렸을 텐데...ㅠㅠ



그런데, 베오울프 혼자서 벗고 설치는 것만으론 부족했다고 느꼈나 보다.

왜냐면 안젤리나 졸리도 3D 누드파티(?)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오호라! 그러니까 다 내밀고 얘기하자 이거지?

안젤리나 졸리가 섹시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 없다.

애니메이션에 섹시한 여자 캐릭터가 나오는 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순수한 의도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를 빼닯은 3D 캐릭터의 누드를 보면서 흥분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성인 관객들을 유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것으로 보일 뿐이다.



여기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앤써니 홉킨스는 뭐냔 말이다!

늙은 왕으로 나온 3D 앤써니 홉킨스까지 스트립쇼(?)를 한단 말이다!

그렇다! '베오울프'에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부 벗는다.

그렇다고 성기 등 재미있는 동네까지 죄다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금색 페인트를 칠한 '보디페인팅 상태'로 재미있는 데를 죄다 가리고 나오며, 베오울프의 전라 격투씬도 성기노출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교묘하게 편집했다.

이런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고?

맞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베오울프' 제작팀은 이런 것에서 뭔가를 기대했던 것 같은 눈치다. 성기노출씬이 그대로 나오는 언컷(Uncut)버전이 나온다던 이야기가 괜히 나온 건 아니리라. 'Unrated' 스페셜 에디션 DVD 같은 걸 통해 결국은 나올지도 모른다.

성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헨타이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문제는 세 캐릭터가 나와서 낯 간지러운 수준의 스트립쇼를 하는 것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중엔 음식을 만들고 있는 이름모를 여자 캐릭터의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도 클로즈업 하더라.

이쯤되니까 어이가 없어지더라. 이걸 유머라고 넣은 건 아닐 게 아니냔 말이다. '야하다', '애들 보라고 만든 애니메이션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걸로 보일 뿐이다.

비디오게임에서라면 어떻게서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해 볼 수 있겠지만 '베오울프'는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더라도 극장서 개봉한 영화인데 이렇게 유치하게 만들어도 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더라.

잠깐! 비디오게임이라고?

그렇다. 바로 비디오게임이다.

'베오울프'는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 비디오게임처럼 만든 것 같다.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 게 목표였던 것까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봐도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게임 중간에 들어가는 컷씬(Cut Scene)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거의 모든 걸 M등급(17세 이상 이용가) 비디오게임 수준에 맞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폭력수위도 그렇고 '섹시'한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테크모의 'DoA: 익스트림 비치 발리볼'에서 '섹시'를 빌려와 캡콤의 '귀무자(Onimusha)'의 '액션'과 결합시킨 다음 배경만 기원후 5세기 덴마크로 바꿔놓으면 '베오울프'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나 뿐일까?

그렇다면, '베오울프'는 게이머들을 위한 영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베오울프' 제작팀은 성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한 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다보니 M등급(17세 이상 이용가) 비디오게임 유저들의 눈에 들면 성인 눈높이에 맞춘 셈이라는 식의 기준을 정하고 여기에 맞춰 '베오울프'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3D 애니메이션'이라니까 '비디오게임'이 떠올랐고, '성인용'이라니까 'M등급 게임'이 떠오르자 이 두가지를 결합시켜버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베오울프'가 기저귀를 떼기 위해 몸부림 친 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위해서 말한 것처럼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무조건 아이들용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훨씬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더라도 꼭 저렇게 눈에 띌 정도로 간지럽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냐는 생각은 해보게 된다.

3D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하면 '슈렉', '마다가스카', '해피 피트',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비 무비(Bee Movie)'와 같은 아동틱한 것이 많다보니 이들과 차별화 시키려다 이렇게 된 것 같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차별화 방법이 영 맘에 안든다.

바로 이것이 '베어울프'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다. 덕분에, 초반엔 영화에 제대로 빠져들기 힘들었다. 영화가 관객들을 제대로 이끌어 줬다면 적응시간이 짧아졌겠지만 '베오울프'는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냐'는 생각이 들 뿐 진지하게 볼 수 없었다.

성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와 같은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했다면 시작부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면 해결될 문제다. 관객들이 3D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잊고 빠져들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단지 그래픽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래픽은 아직까진 실사수준에 못미치더라도 판타지 영화를 그대로 3D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3D 세계라는 것만 제외하면 일반 영화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오울프'는 방법을 잘못 택했다. 3D 애니메이션이다보니 일반 영화처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잘못하다간 '베오울프'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몰리면서 성인들이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청 컸던 것처럼 보인다. 이렇다보니 오버를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아이들은 성인들보다 3D세계에 쉽게 빠져들지만 성인들이 진지하게 애니메이션을 보도록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장 캐릭터들이 스트립쇼를 한다고 성인 관객들이 진지해지는 건 아니다. 성인 관객 눈높이에 맞춰야 성인들이 진지하게 볼 수 있다는 것까진 맞지만 캐릭터들이 툭하면 벗고 돌아다니고 출렁거리는 여자 캐릭터 가슴이나 클로즈업 하는 게 '성인 눈높이'인 건 아니다. '베오울프' 제작팀이 원한 게 무엇인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방법이 틀렸단 것이다.

하지만, 일단 고비를 넘기고 나면 많이 나진다. 영화에 빠져들기까지 걸린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게 문제라는 거지 그게 아주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간지러운 부분들이 지나간 이후부터는 3D 애니메이션이란 걸 잊고 제대로 '베오울프'를 즐길 수 있었다.

'베오울프'의 줄거리는 '바바리안'을 연상시키는 전사, 베오울프가 몬스터들을 때려잡는다는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줄거리지만 여느 판타지 영화와 비교하더라도 손색없을만 하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 게 아니라 영화를 3D로 만드는 게 목표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3D 애니메이션으로 성인 관객들까지 사로잡으려다보니 초반엔 우왕좌왕도 했지만 방향까지 완전히 잘못 잡은 건 아니었다.



'베오울프'는 미래의 영화가 어떠할지 살짝 보여준 영화다. 몇 년전 조지 루카스가 말했던 '3D 캐릭터들이 영화배우를 대신하는 날'이 오면 이런 식이 될 것이라는 걸 로저 저메키스가 '베오울프'를 통해 직접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영화였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본다.

아직은 완벽한 수준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실사수준에 근접해가는 3D 캐릭터들을 '영화배우'로 받아들이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아직까지는 영화배우가 안나오는 '영화'엔 관심없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언젠가는 '꼭 실제 영화배우가 나와야만 하는 법은 없는 것 같다'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본다.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앞으론 액션/어드벤쳐, 공상과학, 호러, 코메디 등 다양한 쟝르의 3D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파이널 판타지'에 이어 '베오울프'까지 3D 애니메이션 영화는 판타지 쟝르가 전부였는데 앞으론 쟝르가 다양해졌으면 한다.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다음부턴 '어린이용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오버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베오울프'에서처럼 까놓고 보여줘야 '어린이용 아니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매번 이런 사람들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