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3일 수요일

알 파치노에 빼앗긴 '88 Minutes'

잭 그램(알 파치노)는 법정신의학 전문 대학교수다. 그는 시리얼 킬러 존 포스터(닐 맥더너프)가 사형선고를 받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잭 그램에게 정체불명의 전화가 걸려온다 - 그가 88분내에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곤 카운트다운을 한다.

도대체 누가 잭에게 이런 전화를 왜 거는 것일까?



정답: 전혀 관심 없다.

처음 몇 분 지나자마자 곧바로 김이 다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시리얼 킬러 존 포스터가 수감돼 있는데도 그가 이전에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반복 발생하면서 포스터의 사형선고를 유도한 잭 그램을 압박하고, 잭에게 '88분내에 죽는다'는 알 수 없는 협박전화가 걸려온다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까지가 전부다. 주인공, 잭 그램이 처한 상황 설정까지는 그럴싸 하지만 잭이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 즉 스토리가 어이없을 정도로 산만하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88분 안에 죽는다'는 전화가 걸려오면서 스토리가 시작하는 만큼 시간에 쫓기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 느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스릴, 서스펜스와는 88만광년쯤 떨어진 영화였다.

참신한 소재와 줄거리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시리얼 킬러', '협박전화', '시간에 쫓긴다' 모두 흔해빠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대로 다듬기만 했다면 그런대로 볼만한 스릴러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88 Minutes'는 짜임새 없는 스토리를 절룩거리며 이어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반전 같지도 않은 반전으로 뒷통수 치는 시늉하며 마무리 짓는 전형적인 3류 미스테리 스릴러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게 전부였다.

스토리 뿐만 아니라 캐릭터도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다.

알 파치노는 형사가 분명히 아닌데 영화에선 노련한 형사처럼 나온다. 경찰도 아니고 형사도 아닌 '훈련받지 않은 자'가 위험에 처한다는 설정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잭 그램은 위기에 처한 대학교수가 아니라 전문 해결사에 가깝게 보였다. 권총은 물론이고 소포에 폭발물이 들어있는지 스캔하는 장비까지 갖고있더라.



더욱 우스꽝스러운 건 이런 영화에 알 파치노가 나왔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영화가 싸구려틱 하게 보이길래 '아차!' 싶었지만 차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88 Minutes'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에서 와이드 개봉한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 파치노는 왜 이런 영화에 출연한 것일까? 그가 출연한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꼽힐만한 영화를 왜 찍은 것일까?

영화야 어떻든 유명한 배우를 캐스팅하고 볼 일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서 였을까?

아니면, '알 파치노'라는 이름만 보고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영화관객들로부터 88분을 빼앗기 위해서 였을까?

88분이 전부였으면 '땡큐'겠지만 이것도 아니다. 영화 제목은 '88 Minutes'인데 상영시간은 더 길더라. 완전 사기다!!

'88 Minutes'는 더이상 길게 얘기할만한 가치가 없는 영화다. 알 파치노가 나오는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라길래 아무리 못해도 중간은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영 아니올시다 였다.

제한된 시간에 쫓기는 스릴 넘치는 액션영화는 역시 포르노밖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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