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지구가 뭐가 어떻게 됐다구?

어느 날 갑자기 정체불명의 비행물체가 워싱턴 D.C에 착륙한다.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 클라투(Klaatu)는 지구인과 싸우러 온 게 아니라면서 전세계 지도자들이 한 데 모인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요구한다. 전세계에 전달할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


▲우주선에서 내리는 클라투

하지만, 냉전이 한창이던 50년대에 전세계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결국, 클라투는 미국 정부가 마련한 보호시설에서 탈출해 '미스터 카펜터'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지구인 삶의 체험'을 시작한다.

클라투는 2차대전 때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 바비와 함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전사자들의 묘를 둘러보면서 자신은 전쟁이 없는 곳에서 왔다고 말한다.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은 클라투와 바비

그렇다면 클라투가 지구에 온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어떠한 메시지를 갖고 온 것일까?

클라투는 지구인들의 핵기술과 무기가 우주로 뻗어나가면 이웃의 다른 외계문명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경고를 하기위해 왔다고 한다. 지구인들끼리 총과 탱크로 전쟁을 하는 것 까지는 문제될 게 없어도 핵무기는 곤란하다는 것. 클라투는 지구인들이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지구를 없애버릴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1951년작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이하 DTESS)'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1951)'

폭스는 최근에 2 디스크 스페셜 에디션 DVD(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 Two-Disc Special Edition)를 출시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50년대 흑백영화 타령이냐고?

바로 이 영화가 리메이크 됐기 때문이다.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2008)'

영화 초반엔 그런대로 흥미진진 했다. 미확인 물체의 출현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설정이었지만 우주 생물학 교수 헬렌(제니퍼 코넬리)과 외계인 클라투(키아누 리브스)가 만나는 부분까지는 그런대로 볼만 했다.

하지만 리메이크 버전 'DTESS'는 여기까지 반짝하는 게 전부다. 그 이후부터 스토리가 수상해지기 때문이다.

클라투는 지구인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 지구에 왔지만 미국 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인류를 말살시키기로 한다. 그러자, 헬렌은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며 'CHANGE'를 외친다.

그러나 클라투는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오리지날 영화는 무엇에 대한 경고인지,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했지만 리메이크 버전은 이것 저것 늘어놓기만 했지 클라투가 지구에 온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다.


▲헬렌(제니퍼 코넬리)과 클라투(키아누 리브스)

그런데도 클라투는 '지구 파괴'를 실행에 옮긴다. 오리지날에선 "경고를 무시하면 지구를 파괴하겠다"면서 맛 보여주기를 한 게 전부였지만 리메이크 버전에선 '경고 먼저, 파괴 나중'이 아니라 곧바로 파괴로 넘어간다. 외계인들끼리 만나서 "지구인은 가망이 없다"며 지구 언어로 수다를 떨더니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 오리지날 영화는 클라투를 '부활해서 메시지를 남기고 승천하는' 예수에 비유한 '복음' 성격의 영화였지만 리메이크는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라는 대재앙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바이블 커넥션'까지는 그런대로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고 치자. 하지만, 실제 의미는 '스토리가 허술하니 특수효과로 눈요기라도 하라'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특수효과도 볼 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자이언츠 스테디움과 커다란 컨테이너 트럭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부분이 하이라이트라고 해야겠지만 이것을 제외하곤 볼 만 한 씬이 없었다. 흔해 빠진 '외계인 침공', '대재앙'을 그린 영화에서 이미 본 듯한 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신선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오리지날은 D.C가 배경이었는데 리메이크는 왜 뉴욕으로 장소를 바꿨을까?

외계인의 침공으로 뉴욕이 쑥대밭이 되는 영화가 한 두 편이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에도 또 뉴욕이더라. '클로버필드'에선 자유의 여신상, 'DTESS'에선 자이언츠 스테디움이 박살난 것을 보니 외계인들이 파괴하고 싶어하는 건축물들이 뉴욕에 유독 많이 모여있는 듯.


▲자이언츠 스테디움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그래도 무표정한 키아누 리브스는 클라투에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사교적이던 오리지날 버전의 클라투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키아누 리브스 버전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헬렌역의 제니퍼 코넬리는 바보스러운 플롯과 대사 덕분에 머리를 긁적이게 만들지만 워낙 개성이 없는 캐릭터다 보니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이 영화의 MVP는 꽉 막힌 듯한 여성 국방장관을 연기한 캐티 베이츠다. 출연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녀의 '보스', 그리고 '부하들'이 없었더라면 2008년 리메이크 버전 'DTESS'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제이콥(제이든 스미스)이라는 어린아이 캐릭터다. 오리지날에도 바비라는 소년이 나오는 만큼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은 이 영화를 말아먹은 주역 중 하나가 됐다. 나름 진지해야 할 영화의 분위기를 애들 영화 분위기로 완전히 망쳐놓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헬렌(제니퍼 코넬리), 제이콥(제이든 스미스)

그렇다. 'DTESS'는 아주 실패적인 리메이크 영화다. 반전, 반핵,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클래식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는 아이디어도 괜찮았고, 트레일러도 제법 그럴싸 해 보였지만 '이게 전부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대에 매우 못 미쳤다.

물론, 외계인의 지구침공 플롯이 아직도 통하는 아이디어인 것만은 사실이다. 스토리와 메시지 모두 초등학생 수준이더라도 특수효과로 포장하면 되므로 상당히 섹시한 소잿감일 수도 있다. 게다가, '매트릭스' 시리즈로 SF영화팬에게 친숙한 키아누 리브스까지 주인공으로 캐스팅한다면 박스오피스에서도 적어도 심하게 죽을 쑤진 않을 것이다.

2008년작 'DTESS'는 이 정도의 계산하에 만든 영화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DTESS'를 보고 싶다면 비록 흑백이지만 오리지날 버전을 추천한다. 세련되고 화려한 것은 2008년 리메이크작이 한 수 위겠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정 반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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