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2일 일요일

제법 달콤한 로맨틱 코메디, '듀플리시티'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에서 진지한 인터폴 에이전트를 연기했던 영국배우, 클라이브 오웬(Clive Owen)이 또다시 에이전트로 돌아왔다. '인터내셔널'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제임스 본드와 비슷해 보이더니 이번엔 플레이보이 기질이 다분한 MI6 에이전트 역을 맡았다.

플레이보이? MI6?

클라이브 오웬이 제임스 본드 패로디에 출연한 거냐고?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 후보 0순위로 꼽혔던 배우인 클라이브 오웬이 '인터내셔널'에선 진지한 에이전트를 연기하고 '듀플리시티(Duplicity)'에선 180도 틀린 플레이보이 에이전트를 연기한 게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듀플리시티'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는 거리가 먼 영화다. 단 한 발의 총성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듀플리시티'는 전직 MI6, 레이 코발(클라이브 오웬)과 전직 CIA, 클레어(줄리아 로버츠)가 라이벌 기업간의 '첩보전'에 끼어들어 기밀문서를 빼돌리는 작전을 벌인다는 내용이 전부일 뿐 액션과는 거리가 멀다. 스파이 테마의 오션스 트릴로지(Ocean's Trilogy)라고 생각하면 될 듯. 세 편의 제이슨 본 시리즈 스크린플레이를 썼던 토니 길로이(Tony Gilroy)가 연출과 스크린플레이를 맡았지만 이번에는 액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스파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스토리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금새 파악이 됐다. '결국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던대로 들어맞는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얼핏보면 배신에 배신, 반전에 반전의 연속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See? I told you so.'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 '듀플리시티'는 총격전이나 카체이스씬이 전혀 없고, 두 라이벌 기업간의 첩보전에 뛰어든 산업 스파이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게 전부인데 그 내용마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복잡하게 보이도록 꾸며놨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닌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파이 영화를 보고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클라이브 오웬이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보이 MI6 에이전트로 나오고, 플래시백을 통해 로마, 런던 등 유럽 도시들을 돌면서 스파이 영화 분위기를 내려고 한 것도 눈에 띄었지만 '속 보이는 수법'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렇다고 밝은 면이 없는 건 아니다. 'Closer'에서 함께 했었던 클라이브 오웬과 줄리아 로버츠가 알쏭달쏭한 관계의 스파이 커플로 나오는 덕분에 유쾌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로써는 제법 분위기가 났다. 서로 속고 속이기만 하는 뻔한 줄거리는 평균이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경치 좋은 로케이션, 럭져리한 호텔, 카지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틱 스토리는 나름 매력있었다.

여기서 잠깐!

멋진 경치와 럭져리한 호텔, 그리고 카지노? 게다가 샴페인에 마티니?? 여기에 풍부한 유머까지???

너무 삭막해졌다는 비판을 받고있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사라진 것들을 모아놓은 것 같지 않수????

아무리 봐도 '듀플리시티'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부족한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추린 듯 하다. 세 편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만들면서 '007 시리즈를 모방하면서 살짝 뒤집는 테크닉'이 많이 늘었을 게 분명한 토니 길로이의 영화이다 보니 더더욱 이러한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 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 부분이 '듀플리시티'의 최대 매력포인트라는 점이다. 핸썸한 플레이보이 에이전트와 미모의 미국 에이전트, 이들의 애매한 관계, 로맨스, 그리고 럭져리한 호텔 등 거의 모든 게 스타일리쉬하고 달콤했다. 액션은 완전히 0이고, 스토리도 새로울 게 없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화창하고 달콤한 영화를 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별 것도 아닌 문서 빼돌리기 작전을 쓸 데 없이 복잡스럽게 해 놓은 바람에 로맨틱 무드에 젖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스파이 이야기와 로맨틱 코메디를 한데 합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그러므로, '듀플리시티'를 재미있게 보려면 '전직 MI6와 CIA 에이전트의 에스피오나지 에피소드'라는 걸 잊는 게 좋다. 문서 빼돌리기 작전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고 로맨틱 코메디가 먼저고 에스피오나지는 둘 째인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천상 스파이 영화다운 스파이 영화는 못되는 만큼 에스피오나지 파트는 양념 정도로 생각하고 넘기라는 것이다.

'듀플리시티'는 유치하지 않은 성인용 로맨틱 코메디를 찾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볼만 한 영화다. 계절에 어울리는 밝고 화창하고 달콤한 로맨스 영화를 원한다면 '듀플리시티'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달콤한 걸 자주 찾냐고?

Bitter:Sweet이 엔드타이틀곡을 불렀거든. 마지막 노래까지 'SWEET'이더라. 궁뎅이 들다가 노래를 끝까지 듣고싶어서 다시 착륙했다니까.

'듀플리시티' 엔드타이틀곡 'Being Bad'은 아직 온라인에 뜨지 않은 것 같다. 그 대신 Bitter:Sweet의 2006년 히트곡, 'The Mating Game'을 들어보기로 하자. 'The Mating Game'도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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