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3일 화요일

미국 서점 보더스에 웬 한국 노래가...?

곧 문을 닫는 미국의 대형 서점 보더스(Borders)에서 세일이 한창이다. 세일 첫 주엔 최고 40% 세일이었는데 요샌 60%에 판매하는 책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평상시에도 보더스 앞을 지나갈 때 마다 특별히 살 책이 없어도 들어가서 이것 저것 뒤적이곤 했었는데, 요샌 세일을 해서 인지 더더욱 그냥 못 지나치겠더라.

매번 보더스에 들어갈 때 마다 '세일을 하는 김에 책들을 좀 사둘까' 하는 생각을 늘 한다. 세일을 한다니까 싼 맛에 이것 저것 챙겨보고픈 생각이 불끈 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책도 없애야 할 판에 쓸데 없는 책들을 계속 사들여서 도움이 될 게 없을 것 같아 대개의 경우 아이쇼핑만 하고 나오곤 한다.

지난 주말에도 어김없이 보더스 서점에 들어갔다. 일부러 서점에 간 것은 아니었고, 보더스가 있는 근처에 간 김에 들린 것이다.

특별히 살 게 없었으므로 서점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혹시 눈에 띄는 게 있나 찾아봤다. 별 게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세일을 한다면서 홀라당 뒤집어놓으면서 이전에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게 없는지 둘러봤다.

그런데...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 건 책이 아니라 노래였다.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가 어딘가 이상했다. 비트가 '콩딱콩딱' 하는 게 분위기가 아무래도 미국 노래가 아닌 것 같다 싶어 가만히 들어보니 역시 가사도 영어가 아니었다.

아니, 보더스가 웬 한국 노래를 틀어놓은 것일까?

L.A 코리아타운 처럼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야 스토어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와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D.C의 미국 서점 보더스에서 한국 노래가 나오는 걸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D.C 근처에도 한인 인구 가 꽤 되는 건 사실이지만, 미국 서점에서, 그것도 점포정리 세일 중인 서점에서, 한국 노래를 듣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휴대폰의 비디오 카메라 기능으로 녹음을 해봤다.

동영상을 찍으면서 마땅히 겨냥할 데가 없어 천장에 있는 스피커를 겨냥했더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위에 뭐가 있나 올려다 보더라. 그냥 지나가지, 무안하게시리 왜 올려다 보냔 말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진열된 블루레이들과 눈싸움을...ㅡㅡ;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게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더라. 내가 한국 노래를 많이 들었던 게 90년대 말까지라서 그 이후에 나온 노래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내가 한국 노래를 더이상 즐겨 듣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째는 수입 CD 구입의 압박이고, 둘 째는 팝 뮤직 쟝르 자체에 식상했다는 점이다. 널려있는 미국 팝 뮤직도 듣지 않는 판에 J-POP, K-POP 등에 얼마나 흥미가 끌리겠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더스에서 틀어놓은 노래가 여성 그룹이 부른(목소리가 아무래도 남자는 아닌 것 같더라고...) 한국 노래라는 것(가사가 한국어였으므로...)밖에 모르겠더라. 도대체 누가 부른 노래인지, 제목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럼 할 수 없지. 가사를 받아 적는 수밖에...ㅡㅡ;

(역시 한국 노래는 내 분야가 아니야...ㅠㅠ)



이렇게 해서 정체를 알아냈다. 알고 봤더니 그룹 이름에 문제가 있는 그룹이 부른 노래였다.

저게 어떻게 해서 '소녀시대'냐? '소녀 야구단'이지...

아무튼 소녀시대가 부른 '지'를 한 번 들어보자.


그.러.나...

나는 '한류'에는 회의적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많은 미국 청소년들이 저런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 들을 것 같지 않아서다. 요즘 미국 청소년들의 취향이 크게 달라졌으면 모르지만, 내가 이해하는 미국 청소년들의 취향은 저런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미국 젊은이들이 저런 노래를 즐겨 듣는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는 단지 K-POP 뿐만 아니라 일본 J-POP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계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은 몇 해 전까지 미국에서 매년마다 J-POP 페스티발을 개최하곤 했다. 지금은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지만, 미국 대도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열렸던 것 같다. 일본산 애니메이션과 비디오게임이 이미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J-POP도 진출시키려 한 듯 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비디오게임 스토어에 가면 일본산 게임 천지이고, 비디오 스토어에 가면 일본산 애니메이션 DVD 코너가 별도로 마련돼 있으며, 서점에 가면 미국 코믹북 섹션 옆에 있는 일본 망가 섹션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 문화 관련 매거진 또한 많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일본 망가, 애니메 전문 매거진들이 흔히 눈에 띄었다.

아래 이미지는 일본 망가, 애니메, 비디오게임, J-POP 등을 미국에 소개하던 TOKYOPOP 매거진. 내가 갖고 있는 2000년 7월호 커버 스토리는 K-POP이다.




이렇 듯 미국에 뿌리 내린 일본 문화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그러므로 J-POP은 여러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볼 만 했다. 그러나 J-POP이 미국에서 인기가 높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바 없다. 일본산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엔 미국인들이 나름 적응했지만 음악은 또다른 얘기인 듯 하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문화는 일본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TV, 핸드폰, 자동차 등 만들어서 내다 팔기만 하는 하드웨어만 있을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단히 특별할 것도 없고, 미국 젊은이들의 취향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닌 노래들로 미국에서 한류 붐이 일기를 바라는 건 요원한 희망이 아닐까 싶다. 싫다/좋다를 떠나 저런 스타일의 음악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그런데 김치를 사러 갈 때나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전부라서 그런지 잘 안 보이더라고...ㅋ


댓글 4개 :

  1. 장문의 리플을 쓰다가 뭔가 글이 너무 확장되는 기분이라
    삭제합니다. -ㅅ-;; 에잇 아까워라.

    요새 유럽 거주 블로거분들의 케이팝에 대한 증언들을
    보고 있다보면,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구나 싶더라능,..
    미국은 어떤 정도인지 많이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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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외국노래로 미국서 인기를 끈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서, 취향, 언어 면에서 어긋나면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거든요.
    제 생각엔 미국에선 깜찍한 가수들이 부르는 경쾌한 틴-팝으론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에선 제가 즐겨 듣는 유러피언 클럽뮤직도 마이너리그에 속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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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0대였다면 무지 좋아 했겠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시들어버린 30대라 ㅎㅎㅎ
    저런 노래들이 미국에서 성공하길 바란다는 건 우리나라의 허황된 꿈이죠...
    도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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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가 생각하기에도 좀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무엇에나 매니아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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