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9일 토요일

'프로메테우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엉거주춤한 SF-호러 영화

"외계인이 지구에 인류를 탄생시켰다"는 설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천년 전 외계인이 지구를 다녀갔다", "외계인들이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종교에 등장하는 신의 실체는 외계인",  "외계인이 인류의 조상", "현재 지구의 인류는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설과 주장이 있다.

과연 얼마나 근거가 있는 주장들일까?

믿든 안 믿든 이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현재로썬 확인이 안 된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 쪽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일리가 있거나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는 주장들도 많다. 이런 분야에 비상한 관심이 없는 데도 은근히 흥미가 끌리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SF 영화 '에일리언(Alien)'과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로 유명한 영국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과 ABC의 인기 TV 시리즈 '로스트(Lost)'의 작가 데이먼 린델로프(Damon Lindelof)가 함께 만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줄거리를 살짝 훑고 넘어가기로 하자.

지구의 여러 고대 유적지를 탐사하던 고고학자 커플 엘리자베스(누미 라파스)와 찰리(로갠 마샬-그린)는 오래 전 지구를 방문했던 외계인들이 사는 별을 알아냈다면서 '프로메테우스'라는 우주선을 타고 '엔지니어'라 명한 외계인들을 찾아나선다. 우주선 '프로메테우스'를 비롯한 모든 탐사 비용은 웨일랜드(가이 피어스)라는 미스테리한 노인이 지원하며, 우주선엔 보스 격인 미스테리한 여성 비커스(샬리스 테론), 안드로이드 데이빗(마이클 패스밴더), 우주선 캡틴 자넥(이드리스 엘바)을 비롯한 승무원과 과학자,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가드 등이 탑승한다.

이들을 태운 우주선 '프로메테우스'는 여러 해에 걸친 오랜 우주여행 끝에 목적지인 별에 무사히 도착한다. 우주선이 착륙하자마자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 엘리자베스 일행은 '엔지니어'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을 발견한다. 엘리자베스와 찰리가 예상했던 대로 '엔지니어'들이 그곳에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일행이 발견한 장소는 그들이 생각했던 곳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줄거리는 사실 크게 새로울 게 없다. 에릭 본 대니켄(Erich von Daniken)의 책 'Chariots of the Gods: Unsolved Mysteries of the Past',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타리 시리즈 'Ancient Aliens'정도를 대충이나마 본 사람들이라면 '프로메테우스'의 스토리가 무척 친숙해 보일 것이다. '외계인 DNA'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내용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스토리 뿐만 아니라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 역시 어디선가 본 듯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가 아니라 다른 데서 분명히 본 것 같았다.

그렇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타리 시리즈 'Ancient Aliens'를 제작한 회사가 바로 '프로메테우스 엔터테인먼트(Prometheus Entertainment)'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프로메테우스' 제작진이 무엇을 소스로 삼았는지 눈치챌 수 있다.


물론 'Ancient Aliens'는 논픽션 다큐멘타리인 반면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픽션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지구를 방문했던 외계인을 찾아 그들이 사는 별로 탐사를 떠난다는 데 까지의 스토리는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문제는 캐릭터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등장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너무 뻔할 뻔자 아니면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여러 명이 함께 탐사를 떠나는 영화에선 각각 일행의 개성이 뚜렷하고 흥미진진해야 하는데 '프로메테우스'의 캐릭터들은 어찌된 게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마이클 패스밴더(Michael Fassbender)가 연기한 안드로이드, 데이빗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제대로 눈에 띄지 않았다. 스웨덴 여배우 누미 라파스(Noomi Rapas)가 연기한 엘리자베스는 주인공으로써의 존재감이 부족했고, 샬리스 테론(Charlize Theron)이 연기한 차갑고 미스테리해 보이던 캐릭터 비커스도 실제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썰렁한 캐릭터가 전부였다.

비록 등장 캐릭터들이 모두 실망스러웠더라도 만약 영화의 스토리가 오래 전에 지구를 방문했던 외계인 '엔지니어'를 찾는 쪽으로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더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일행이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영화는 점점 '에일리언(Alien)' 짝퉁이 되어갔다. 느닷없이 나타난 뱀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로부터 공격을 받으며 난장판이 되는 뻔할 뻔자의 SF-호러 영화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프로메테우스'가 '에일리언'의 프리퀄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에일리언'과 줄거리가 바로 이어지는 프리퀄은 아니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공통점과 커넥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의 프리퀄이라기 보다 억지로 만든 '에일리언' 짝퉁에 더 가까워 보였다. 배경 스토리만 거창했을 뿐 결국엔 '에일리언 어게인'인 듯 하면서도 클래식 '에일리언'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에일리언'의 SF-호러 요소를 넣지 않고 '고대 외계인의 흔적을 찾아 떠난 외계 탐사'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로부터 감염되고 공격받는 쪽으로 흘러가면서 스토리가 시원찮아졌다. 고대 외계인 이야기와 '에일리언' 시리즈를 결합시키면서 그 사이에 미스테리를 끼워넣으려 한 것 같았으나 그다지 궁금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렇게 된 이유는 영화의 정체가 불명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프로메테우스'가 '에일리언'의 프리퀄이면 확실하게 그쪽으로 가고, '에일리언'과 무관한 영화라면 확실하게 다른 방향으로 갔더라면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 프리퀄인지 아니면 완전히 독자적인 새로운 SF-호러 영화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어느 한쪽으로 분명하게 결정을 하고 방향을 정한 것이 아니라 슬쩍 양다리를 걸쳐 놓고 후속편 예고나 할 생각으로 만든 티가 너무 크게 났다. '에일리언' 시리즈와 연결시킬 수도 있고 독자적인 '프로메테우스' 시리즈로 이어나갈 수도 있는 두 가지 옵션을 모두 열어놓고 융통성 있게 시리즈를 이어나갈 계산이었던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어찌된 것이 영화의 완성도보다 시리즈화 준비에 더 열중한 것으로 보였다. 영화를 보다 재미있게 만드는 것보다 시리즈화를 셋업하는 작업이 훨씬 더 중요하단 얘기로 보였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레이팅도 의심스러웠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20세기 폭스 측은 패밀리-프렌들리 레이팅인 PG-13을 원한 반면 리들리 스콧은 이전 '에일리언' 시리즈와 같은 연소자 관람불가인 R 등급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작진은 여기에서도 '융통성'을 발휘한 듯 하다. 일단 R 레이팅으로 밀고 가되 여차 하면 PG-13 레이팅을 받을 수 있도록 쉽게 편집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R 레이팅을 받았으면서도 R 레이팅 영화다운 폭력 씬이나 잔혹한 씬이 거의 나오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프로메테우스'는 PG-13 레이팅에 더 가까워 보이는 R 레이팅 영화였다. 시작부터 R 레이팅을 받을 각오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 PG-13 레이팅을 염두에 두고 만들다가 '에일리언' 열성팬들의 원성을 우려해 마지 못해 R 레이팅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라도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PG-13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팬들을 생각해서 R 레이팅을 고집했다"며 팬들을 감동(?)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난 이후 다들 '왠지 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지루하지 않았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도 그럭저럭 볼만 했다. 만족감보다 실망감이 더 컸고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눈에 띄었지만 못봐줄 정도로 짜증나는 영화는 아니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아주 오랜만에 클래식 '에일리언'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SF 영화를 내놨다는 반가움도 잠시 뿐이었고 요새 나온 리들리 스콧/토니 스콧 형제의 영화가 다들 예전만 못하단 생각만 다시 하게 됐지만, 그래도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평균은 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여러모로 엉거주춤한 영화가 되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후속편이 나올까?

시리즈화에 모든 걸 건 것처럼 보이는 영화인데 설마 안 나오겠나 싶다. 속편을 노골적으로 예고하며 끝났으니 속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편이 나오더라도 경우에 따라 스토리가 이쪽으로 갈 수도 있고 저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식이 되었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에서 남긴 미스테리가 그다지 궁금하지도 흥미가 끌리지도 않는다. '프로메테우스'가 끝나면서 남긴 미스테리의 해답을 구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데서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속편 줄거리를 이어 붙이는 작업이 생각보다 간단해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속편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댓글 4개 :

  1.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엉거주춤한 영화.. 정말 딱 맞는 영화평입니다.

    기본 플롯은
    AVP의 설정(오지에서 외계인과 에일리언을 상대로 한 인간의 서바이벌)을 그대로 따와서 그런지
    유사한 장면(웨일랜드 사장님의 브리핑과 죽음, 영화 마지막의 외계인에게서 에일리언 튀어나오는 장면 등등) 이 너무 많았습니다.

    연출은 그야말로 황당해서 관객들은
    인간탄생의 근원이니 엔지니어니 하는 것보다
    주인공들이 헬멧을 안쓰고 다닌다거나, 뜬금없는 흑인선장의 영웅심리, 샤를리즈테론이 몸매과시하다 황당한 사망.. 뭐 왜 스토리가 이렇게 전개되어야 하나?....
    라는 의문을 가지다가 관람을 마치게 됩니다.

    그래도 영화자체가 지루하진 않아요.. 오락성도 제법있고 긴장감도 있습니다. 그런데 걸작이 되기엔 많이.. 아주 많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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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실제론 13세 영화 수준인 것을 마치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꾸미려 했지만,
    유치한 대사와 썰렁한 캐릭터들 때문에 진지하게 보기 매우 힘든 영화를 만들어놨죠.
    스크린라이터 데이먼 린델로프가 영화를 말아먹은 책임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 덕분에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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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트레일러보고 기대했다가 리뷰들을 읽어 보고 안보길 잘했다 싶어하고 있습니다. 리들리 스캇이 한물 간게 분명해! 라는 리뷰가 마음을 비우게 하네요. 그나마 비주얼적인 것 빼고는 스토리에 대해 비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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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리들리 스콧 등과 같은 노장 영화감독들의 공통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젊은층을 너무 의식하는 거라고 봅니다.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영화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작년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J. 에드거가 그랬고 이번엔 리들리 스콧 차례였던 것 같습니다.
    노장 영화감독과 젊은 30대 작가가 만나니 어정쩡한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듯 합니다.
    이번 프로메테우스의 스토리는 딱 중학생용 수준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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