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6일 금요일

'007 스펙터': 영국도 007 시리즈 'NO-GO-ZONE'에 포함시켜야 하나?

현재까지 알려진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지난 '스카이폴(Skyfall)'과 상당히 비슷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클래식 007 시리즈의 오마쥬로 가득한 점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촬영한 씬이 주요 파트에 등장하는 점 등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한 두개가 아니다.

그렇다. '스펙터'에도 영국서 촬영한 씬이 많이 등장한다.

지난 '스카이폴'처럼 런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누비고 다니는 건 아니다. 이번 '스펙터'는 런던에서만 촬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스카이폴'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파트에 영국 씬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스카이폴'과 닮은 구석이 많다. 더군다나 '스펙터'의 영국 씬에도 지난 '스카이폴'과 마찬가지로 '큰 건물'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스카이폴'의 영국 씬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일부 본드팬들은 지난 '스카이폴'에 영국을 배경으로 한 씬이 너무 많이 나왔다면서, 007 제작진이 MI5와 MI6를 구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스펙터'에선 그 점을 더이상 지적할 수 없게 됐다. 왜나면, '스펙터'엔 MI5와 MI6가 합병한다는 새로운 설정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카이폴'부터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영국 씬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작진이 일부러 마련한 설정은 설마 아니겠지만, 그런 의심이 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007 시리즈는 지금까지 영국을 메이저 로케이션으로 선택한 적이 없었다. 1981년작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와 1999년작 '더 월드 이스 낫 이너프(The World is not Enough)'의 프리-타이틀(Pre-Title) 씬에 런던이 등장한 바 있지만, 이밖의 영국 씬은 본드가 M의 오피스에서 미션 브리핑을 받는 씬 등 비중이 낮은 짧은 씬이 전부였다. 본드가 생활하는 곳과 본드가 속한 정보부의 오피스가 위치한 장소 등이 런던이었으므로 별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나오는 게 전부였다.

따라서 영국이 제임스 본드 영화의 메이저 로케이션 중 한 곳으로 등장한 것은 '스카이폴'이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스펙터' 역시 '스카이폴' 못지 않게 영국 씬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스펙터'에 등장하는 영국 씬은 단순한 오피스 씬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메이저 액션 씬 중 하나도 포함됐다. 따라서 이번 '스펙터'에서도 영국이 메이저 로케이션 중 한 곳인 것이다.

그렇다면 007 제작진은 왜 영국을 메이저 로케이션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일까?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본다.

혹시 007 제작진이 갈수록 흐려지고 있는 'BRITISHNESS'를 되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영국을 영화의 메이저 로케이션으로 삼는 것일까?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007 시리즈가 잃어가는 것 중 하나는 'BRITISHNESS'다. 크레이그의 첫 번째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을 기초로 했기 때문에 제임스 본드의 '정체성'이나 'BRITISHNESS' 등을 문제삼는 본드팬들이 많지 않았다. '카지노 로얄'에서 보여준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누가 뭐래도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였다. 그러나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유니버설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짝퉁처럼 보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크레이그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스카이폴'에선 더욱 심각해졌다.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마치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처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갈수록 옅어져가는 'BRITISHNESS'를 상쇄하는 데 영국 로케이션을 이용하는 것일까?


하지만 효과가 있었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스카이폴'은 영국 씬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Batman in London'처럼 보였을 뿐 영국적인 영화라는 느낌이 거의 또는 전혀 들지 않았다. 런던과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했다는 점은 바로 눈에 띄었지만 로케이션이 별다른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영화의 무대가 영국으로 옮겨가면서부터 줄거리가 설득력이 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수상해졌다는 좋지 않은 기억만 뚜렷하게 남아있을 뿐 '스카이폴'이 영국 로케이션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제임스 본드의 과거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키로 한 것은 얼핏 보기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플롯으로 억지스럽게 본드가 스코틀랜드로 향하도록 설정하면서 스토리를 더더욱 수상하게 만들었다는 점으로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처럼 '스카이폴'의 영국 씬은 영화에 보탬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안 좋은 기억들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렇다 보니 영화는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쫓아가면서도 제임스 본드가 영국 캐릭터임을 상기시키기 위해 영국을 메이저 로케이션으로 이용한 것 이상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스펙터'에서도 영국을 메이저 로케이션 중 한 곳으로 삼았다. 지난 '스카이폴'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영화의 마지막 파트에 메이저 영국 씬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이번에도 마무리는 영국에서 한다. '스펙터' 스크립트를 훑어본 대다수가 '스카이폴'과 너무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소니 픽쳐스 경영진과 프로듀서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도 마지막 3막이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본드를 비롯한 모두가 서류 한장 때문에 런던에 모인다는 설정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MGM과 소니 픽쳐스 경영진들의 불만은 주로 '이름값 못하는 메인 악당'에 쏠렸지만, 일부는 '런던 씬'을 연출하기 위해 억지로 준비한 듯한 설득력이 떨어지는 플롯의 문제도 지적했다.

지난 '스카이폴'에서도 영화가 영국으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상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번 '스펙터'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일까?

물론 그 사이에 007 제작진이 크고 작은 수정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본드를 비롯한 '스펙터' 메인 캐릭터들이 런던에 모이게 되는 이유도 초안의 것과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정된 버전도 썩 맘에 들진 않지만 '서류 한장'보다는 스케일이 커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차라리 '서류 한장'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므로 수정판도 썩 내키지 않는다고 해야할 듯 하다.

따라서 이번 '스펙터'에서도 영국 로케이션 씬이 맘에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했으므로 생각이 바뀔 수는 있지만 현재로썬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영국도 007 시리즈 'NO-GO-ZONE'에 포함시켜야 하는 걸까?

007 시리즈는 미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촬영하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는 징크스가 있다. 일본을 배경으로 했던 1967년 영화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미국 라스 베가스를 배경으로 했던 1971년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미국 뉴욕과 뉴 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했던 1973년 영화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태국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했던 1974년 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 미국 샌 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했던 1985년 영화 '뷰투어킬(A View to a Kill)', 베트남을 배경으로 했던 1997년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 북한을 배경으로 했던 2002년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 등 미국과 아시아에서 촬영하거나 배경으로 삼은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범작 미만에 그쳤다.

영국은 '스카이폴' 이전까진 별다른 문제가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스카이폴'에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준 데 이어 이번 '스펙터'에서도 영국 씬을 둘러싼 여러 말들이 이미 흘러나온 상태다. 만약 이번 '스펙터'에서도 영국 씬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면 그 때부턴 미국, 아시아에 이어 영국도 007 시리즈에 메이저 로케이션으로 등장하는 게 달갑지 않은 곳으로 분류해야 할 듯 하다.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