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픽쳐스의 '스파이더맨(Spider-Man)' 시리즈가 새로 시작한다. 토비 매과이어(Tobey Maguire)에서 앤드류 가필드(Andrew Garfield)로 스파이더맨이 교체되면서 시리즈가 리부트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또 리부트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다음 챕터로 넘어가나 했더니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The Amazing Spider-Man)' 시리즈는 두 번째 영화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또다시 리부트될 예정이다.
마블에 따르면, 새로 리부트되는 '스파이더맨' 영화의 주인공도 변함없이 피터 파커이며, 파커가 15~16세의 고등학생 시절이던 때를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새로운 스파이더맨 캐릭터는 소니 픽쳐스와 마블의 새로운 계약에 따라 소니 픽쳐스의 영화 시리즈 뿐만 아니라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 시리즈에도 등장할 수 있게 됐다.
결론적으로, 새로 리부팅하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피터 파커를 주인공으로 한 똑같은 스토리를 반복하는 '스파이더맨'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흑인 제임스 본드' 루머가 극성을 떨었던 만큼 혹시 새로운 '스파이더맨' 영화의 주인공이 흑인-히스패닉 혼혈의 마일스 모랄레스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흑인 제임스 본드는 터무니 없어도 흑인 스파이더맨은 코믹북 캐릭터 마일스 모랄레스가 있는 만큼 충분히 가능한 씨나리오였다. 그러나 마블은 새로운 '스파이더맨' 영화 역시도 피터 파커의 스토리라고 확인했다.
'스파이더맨' 코믹북에 대해 아는 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온 '스파이더맨' 코믹북 시리즈가 3편을 훨씬 넘는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영화 시리즈가 기초로 삼을 만한 소스 매티리얼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시리즈는 리셋 버튼을 왜 이리도 자주 누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줄거리가 이어지도록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코믹북 시리즈에 등장했던 가장 유명한 악당, 캐릭터 그리고 에피소드를 영화 시리즈로 옮기면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 못지 않게 꾸준한 시리즈로 만들 수 있을 듯 한데, 계속되는 시리즈 리부팅으로 고등학생의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007 시리즈는 리부트와는 거리가 먼 시리즈였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주연배우가 교체되었지만 그 때마다 완전히 새로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을 살리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다. 리부트 없이 오랫동안 계속 잘 굴러가던 시리즈의 흐름을 깨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덕분에 주연 배우 교체와 함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더라도 큰 틀에서 봤을 때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톤과 분위기 등이 달라졌어도 1탄부터 이어져 온 007 시리즈 스타일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007 시리즈는 줄거리가 서로 계속 연결되어 이어지는 시리즈물은 아니었으나 낯익은 포뮬라가 계속 반복되면서 주연 배우가 교체되어도 여전히 007 시리즈라는 사실이 퇴색되지 않도록 한 시리즈물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일각에선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영화의 한 쟝르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시대에 와선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된 이후 007 시리즈는 톤과 분위기만 바뀐 것이 아니라 '제임스 본드 시리즈' 쟝르에서조차 벗어났다. 007 제작진이 리부트를 시도한 까닭이다. 계약 문제로 오피셜 007 시리즈로 제작하지 못했던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제작권이 수중에 들어온 007 제작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새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본드팬들은 리부트에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카지노 로얄'이 리부트라 불리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새로운 영화배우와 함께 이언 플레밍의 첫 번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을 "리부트했다"고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것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실제로 리부트라 불리기를 원했던 것 같았다. '카지노 로얄'의 후속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를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는 속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줄거리가 전편과 바로 이어지는 속편은 007 시리즈 역사상 '콴텀 오브 솔래스'가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1962년부터 2002년까지 40년에 걸쳐 공개됐던 20편의 007 시리즈와 결별하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로 007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007 시리즈가 이런 식으로 새출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40년간 리부트 없이 잘 굴러가던 007 시리즈의 흐름을 이제와서 깰 이유도 없었다.
007 시리즈의 문제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스카이폴(Skyfall)'에선 007 시리즈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은 '카지노 로얄' 때부터 있었다. 그런 비판이 왜 나왔는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동의는 하지 않았다.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뀐 데다 007 제작진이 불필요할 정도로 변화를 준 바람에 관객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수치스러울 정도로 워너 브러더스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시리즈를 모방한 '스카이폴'을 본 이후부턴 007 시리즈가 크게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지금 보고 있는 영화가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처럼 보였지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베끼고 모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낯짝이 두꺼운 뻔뻔한 인간들이야 "베끼면 좀 어떠냐"고 하겠지만,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남의 영화를 노골적으로 베꼈다는 건 한마디로 쪽팔린 얘기다. 수많은 007 시리즈 아류작을 생산할 정도로 '트렌드 메이커'였던 007 시리즈가 지금은 다른 영화사의 히트작들을 이것저것 베끼고 따라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됐으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007 시리즈가 표류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007 제작진이 시리즈에 신선한 변화를 주고자 노력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가를 오판했다. 이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는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헐리우드산 액션영화처럼 변했다. 미국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는 '스카이폴'이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고 007 시리즈를 타란티노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현재 007 시리즈의 문제점을 타란티노 감독이 바로 꿰뚫어봤다고 본다.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 제임스 본드 영화는 제아무리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도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제임스 본드 영화다우면서도 흥행에 성공했다면 높게 평가하겠지만,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보이지 않는데 흥행에만 성공했다면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흥행이 중요하더라도 돈을 위해선 뭐든지 다 팔아먹을 것처럼 굴면 곤란하다.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는 흥행순이 아니다. 로저 무어(Roger Moore) 주연의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도 당시 흥행에 크게 성공했었지만 본드팬들로부터 최악의 007 시리즈로 자주 지목되는 영화다. 따라서 흥행에 성공했다고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주장은 굉장히 단순한 논리다.
007 제작진도 이런 비판이 불거진 것을 의식했는지 '007 스펙터(SPECTRE)'를 이전보다 전통적인 007 시리즈 쪽으로 보다 가까이 옮겨놓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007 제작진이 그러한 노력을 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007 스펙터'는 클래식 007 시리즈와 벌어졌던 간격이 많이 좁혀진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족스러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크레이그의 이전 제임스 본드 시리즈보다 전통적인 007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가 될 듯 하다. '007 스펙터'에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오마쥬를 많이 집어넣은 이유 역시 클래식 007 시리즈와의 간격을 좁혀보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클래식 007 시리즈 오마쥬를 통해서나마 낯익은 007 시리즈의 분위기를 살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007 스펙터'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클래식 007 시리즈와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만큼 오마쥬를 비롯한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이용해 클래식 007 시리즈와의 벌어진 간격을 좁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스토리부터 바로 잡지 않고 스토리와 분위기는 그대로 놔둔 채 오마쥬 등 눈에 잘 띄는 것들만을 이용해 클래식 007 시리즈와 벌어진 간격을 좁히려 한다는 게 다소 웃기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 당시만 해도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자랑스레 열거하던 007 제작진이 지금은 벌어진 간격을 좁히는 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스카이폴' 이후 007 시리즈의 '정체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더이상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자 007 제작진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렇듯 007 시리즈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남아있는 동안엔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싫든 좋든 그려려니 하고 넘어갈 테니 말이다. 80년대 한국 영화 제목처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를 떠난 이후다.
아주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크레이그는 현재 47세라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기에 적은 나이가 절대 아니며, 그가 출연계약을 모두 채우더라도 '본드25'까지가 전부이므로 머지않아 크레이그의 뒤를 이을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물색해야 한다. '007 스펙터'가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수도 있으므로 크레이그 이후를 생각하는 게 먼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007 시리즈는 지금까지 여섯 차례나 주연배우를 교체해왔다. 그러므로 주연배우 교체는 007 시리즈의 큰 골칫거리가 더이상 아니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를 새로운 영화배우는 007 제작진이 지금까지 해온대로 알아서 잘 선택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이후부터는 주연배우의 교체가 이전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면 007 시리즈 흐름의 맥을 끊는 리부트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오피셜 007 시리즈의 일부라기 보다 독립된 4~5부작 미니시리즈처럼 보이고 있다. '007 스펙터'를 007 시리즈 24탄이라 부르고 있지만, 24탄이 맞는지 아니면 그냥 4탄이라고 해야 정확한지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몇몇 본드팬들이 "007 시리즈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로 끝났다"고 하는 이유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007 시리즈의 일부로 보이지 않는 게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바로 이것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다.
그렇다면 또 리부트를 할 것인가?
누구로 결정되든 간에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을 제 7대 제임스 본드가 결정되면 007 시리즈는 또 리부트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줄거리가 직간접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사실상 한덩어리의 스토리이므로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를 떠나면서 스토리를 완결시키고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영화배우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줄거리를 그대로 넘겨받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미니시리즈'를 완결시키고 새로운 영화배우와 함께 다시 새출발을 하는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물론 M, Q, 머니페니 등 MI6 출연진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지만 - 이전에도 주연배우가 바뀔 때마다 MI6 출연진까지 같이 바뀐 경우는 드물다 - 다니엘 크레이그 시리즈의 세계와 줄거리를 그대로 이어받는 건 어려워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숀 코네리(Sean Connery)에서 로저 무어(Roger Moore)로, 로저 무어에서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으로, 티모시 달튼에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으로 순조롭게 바통을 넘겨줬던 것처럼 크레이그가 차기 제임스 본드에게 살인면허를 넘겨주는 게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007 시리즈는 주연배우가 교체되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와도 파격적인 변화는 피하면서 순조롭게 교체가 이뤄지곤 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 이후엔 이러한 순조로운 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007 제작진이 '리부트' 타령을 하면서 지나칠 정도로 변화에 집착했다는 점,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과거의 007 시리즈와 달리 줄거리가 서로 연결된다는 점 등이 나중에 가서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007 시리즈도 걸핏하면 리부트를 하는 시리즈가 되는 걸까?
007 제작진이 선택한 길이 그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007 제작진이 '리부트'를 고려했던 적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클 G. 윌슨(Michael G. Wilson)과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대에 와서 리부트를 실행에 옮겼다. 윌슨과 바바라 브로콜리는 알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와 해리 살츠맨(Harry Saltzman)이 하지 않았던 리부트를 007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실행에 옮겼으므로 이에 따른 부작용 등도 감수할 준비가 돼있으리라 본다. 007 시리즈를 40년간 별 탈 없이 굴러가도록 만든 룰 중 하나가 "변화는 주되 '리부트' 등 파격적인 변화는 피한다"는 것이었는데, 007 제작진이 이 룰을 깨고 새로 시작했으므로 모든 걸 감수할 준비가 돼있다고 믿는다.
007 제작진이 주연배우를 교체하면서 지나치게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캐릭터로 묘사하려 하는 게 화가 될 수 있다. 관객들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 정도면 충분하지 계속해서 "다르다", "다르다", "다르다"면서 '느낌표'를 찍어댈 필요는 없다. 로저 무어의 뒤를 이어 티모시 달튼이 제임스 본드를 맡았을 때 관객들은 티모시 달튼이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007 제작진은 그 차이점에만 계속 '느낌표'를 찍지 않았으며, 차이점 뿐만 아니라 공통점도 많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로저 무어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임스 본드"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현재의 007 제작진은 이렇게 균형을 맞추는 센스를 잃었다. 양쪽 끝과 끝을 오갈 줄만 알 뿐 중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재주가 없다.
007 제작진이 리메이크에 대해서만은 확고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똑같은 스토리를 되풀이하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차기 제임스 본드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가 또다시 '카지노 로얄'이 될 가능성은 없다. 그 대신 젊은 제임스 본드가 갓 00 에이전트가 되었을 당시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있다.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는 틀려도 성격은 비슷한 영화로 새출발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작가 제프리 디버(Jeffery Deaver)가 그의 제임스 본드 소설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에서 리부트를 시도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러나 젊고 패기 넘치는 제임스 본드로 리부트에 실패했던 제프리 디버와 마찬가지로 007 영화 시리즈도 리부트에 실패할 수 있다.
그렇다면 또다시 징징거리며 죽는 시늉을 하는 어두운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리부트를 하면 될 것이다.
만약 이것도 안 되면 또다시 아이폰을 즐겨 사용하는 젊고 패기 넘치는 제임스 본드로 다시 리부트를 하면 되는 것이고...
이게 안 되면 또 징징거리는 놈 데려와서 리부트하고...
007 시리즈의 미래는 이렇게 되는 걸까?
"KILL BOND NOW!"
마블에 따르면, 새로 리부트되는 '스파이더맨' 영화의 주인공도 변함없이 피터 파커이며, 파커가 15~16세의 고등학생 시절이던 때를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새로운 스파이더맨 캐릭터는 소니 픽쳐스와 마블의 새로운 계약에 따라 소니 픽쳐스의 영화 시리즈 뿐만 아니라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 시리즈에도 등장할 수 있게 됐다.
결론적으로, 새로 리부팅하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피터 파커를 주인공으로 한 똑같은 스토리를 반복하는 '스파이더맨'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흑인 제임스 본드' 루머가 극성을 떨었던 만큼 혹시 새로운 '스파이더맨' 영화의 주인공이 흑인-히스패닉 혼혈의 마일스 모랄레스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흑인 제임스 본드는 터무니 없어도 흑인 스파이더맨은 코믹북 캐릭터 마일스 모랄레스가 있는 만큼 충분히 가능한 씨나리오였다. 그러나 마블은 새로운 '스파이더맨' 영화 역시도 피터 파커의 스토리라고 확인했다.
'스파이더맨' 코믹북에 대해 아는 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온 '스파이더맨' 코믹북 시리즈가 3편을 훨씬 넘는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영화 시리즈가 기초로 삼을 만한 소스 매티리얼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시리즈는 리셋 버튼을 왜 이리도 자주 누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줄거리가 이어지도록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코믹북 시리즈에 등장했던 가장 유명한 악당, 캐릭터 그리고 에피소드를 영화 시리즈로 옮기면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 못지 않게 꾸준한 시리즈로 만들 수 있을 듯 한데, 계속되는 시리즈 리부팅으로 고등학생의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007 시리즈는 리부트와는 거리가 먼 시리즈였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주연배우가 교체되었지만 그 때마다 완전히 새로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을 살리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다. 리부트 없이 오랫동안 계속 잘 굴러가던 시리즈의 흐름을 깨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덕분에 주연 배우 교체와 함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더라도 큰 틀에서 봤을 때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톤과 분위기 등이 달라졌어도 1탄부터 이어져 온 007 시리즈 스타일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007 시리즈는 줄거리가 서로 계속 연결되어 이어지는 시리즈물은 아니었으나 낯익은 포뮬라가 계속 반복되면서 주연 배우가 교체되어도 여전히 007 시리즈라는 사실이 퇴색되지 않도록 한 시리즈물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일각에선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영화의 한 쟝르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시대에 와선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된 이후 007 시리즈는 톤과 분위기만 바뀐 것이 아니라 '제임스 본드 시리즈' 쟝르에서조차 벗어났다. 007 제작진이 리부트를 시도한 까닭이다. 계약 문제로 오피셜 007 시리즈로 제작하지 못했던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제작권이 수중에 들어온 007 제작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새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본드팬들은 리부트에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카지노 로얄'이 리부트라 불리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새로운 영화배우와 함께 이언 플레밍의 첫 번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을 "리부트했다"고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것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실제로 리부트라 불리기를 원했던 것 같았다. '카지노 로얄'의 후속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를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는 속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줄거리가 전편과 바로 이어지는 속편은 007 시리즈 역사상 '콴텀 오브 솔래스'가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1962년부터 2002년까지 40년에 걸쳐 공개됐던 20편의 007 시리즈와 결별하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로 007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007 시리즈가 이런 식으로 새출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40년간 리부트 없이 잘 굴러가던 007 시리즈의 흐름을 이제와서 깰 이유도 없었다.
007 시리즈의 문제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스카이폴(Skyfall)'에선 007 시리즈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은 '카지노 로얄' 때부터 있었다. 그런 비판이 왜 나왔는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동의는 하지 않았다.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뀐 데다 007 제작진이 불필요할 정도로 변화를 준 바람에 관객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수치스러울 정도로 워너 브러더스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시리즈를 모방한 '스카이폴'을 본 이후부턴 007 시리즈가 크게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지금 보고 있는 영화가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처럼 보였지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베끼고 모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낯짝이 두꺼운 뻔뻔한 인간들이야 "베끼면 좀 어떠냐"고 하겠지만,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남의 영화를 노골적으로 베꼈다는 건 한마디로 쪽팔린 얘기다. 수많은 007 시리즈 아류작을 생산할 정도로 '트렌드 메이커'였던 007 시리즈가 지금은 다른 영화사의 히트작들을 이것저것 베끼고 따라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됐으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007 시리즈가 표류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007 제작진이 시리즈에 신선한 변화를 주고자 노력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가를 오판했다. 이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는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헐리우드산 액션영화처럼 변했다. 미국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는 '스카이폴'이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고 007 시리즈를 타란티노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현재 007 시리즈의 문제점을 타란티노 감독이 바로 꿰뚫어봤다고 본다.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 제임스 본드 영화는 제아무리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도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제임스 본드 영화다우면서도 흥행에 성공했다면 높게 평가하겠지만,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보이지 않는데 흥행에만 성공했다면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흥행이 중요하더라도 돈을 위해선 뭐든지 다 팔아먹을 것처럼 굴면 곤란하다.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는 흥행순이 아니다. 로저 무어(Roger Moore) 주연의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도 당시 흥행에 크게 성공했었지만 본드팬들로부터 최악의 007 시리즈로 자주 지목되는 영화다. 따라서 흥행에 성공했다고 훌륭한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주장은 굉장히 단순한 논리다.
007 제작진도 이런 비판이 불거진 것을 의식했는지 '007 스펙터(SPECTRE)'를 이전보다 전통적인 007 시리즈 쪽으로 보다 가까이 옮겨놓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007 제작진이 그러한 노력을 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007 스펙터'는 클래식 007 시리즈와 벌어졌던 간격이 많이 좁혀진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족스러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크레이그의 이전 제임스 본드 시리즈보다 전통적인 007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가 될 듯 하다. '007 스펙터'에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오마쥬를 많이 집어넣은 이유 역시 클래식 007 시리즈와의 간격을 좁혀보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클래식 007 시리즈 오마쥬를 통해서나마 낯익은 007 시리즈의 분위기를 살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007 스펙터'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클래식 007 시리즈와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만큼 오마쥬를 비롯한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이용해 클래식 007 시리즈와의 벌어진 간격을 좁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스토리부터 바로 잡지 않고 스토리와 분위기는 그대로 놔둔 채 오마쥬 등 눈에 잘 띄는 것들만을 이용해 클래식 007 시리즈와 벌어진 간격을 좁히려 한다는 게 다소 웃기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 당시만 해도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의 차이점을 자랑스레 열거하던 007 제작진이 지금은 벌어진 간격을 좁히는 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스카이폴' 이후 007 시리즈의 '정체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더이상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자 007 제작진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렇듯 007 시리즈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남아있는 동안엔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싫든 좋든 그려려니 하고 넘어갈 테니 말이다. 80년대 한국 영화 제목처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를 떠난 이후다.
아주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크레이그는 현재 47세라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기에 적은 나이가 절대 아니며, 그가 출연계약을 모두 채우더라도 '본드25'까지가 전부이므로 머지않아 크레이그의 뒤를 이을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물색해야 한다. '007 스펙터'가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수도 있으므로 크레이그 이후를 생각하는 게 먼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007 시리즈는 지금까지 여섯 차례나 주연배우를 교체해왔다. 그러므로 주연배우 교체는 007 시리즈의 큰 골칫거리가 더이상 아니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를 새로운 영화배우는 007 제작진이 지금까지 해온대로 알아서 잘 선택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이후부터는 주연배우의 교체가 이전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면 007 시리즈 흐름의 맥을 끊는 리부트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오피셜 007 시리즈의 일부라기 보다 독립된 4~5부작 미니시리즈처럼 보이고 있다. '007 스펙터'를 007 시리즈 24탄이라 부르고 있지만, 24탄이 맞는지 아니면 그냥 4탄이라고 해야 정확한지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몇몇 본드팬들이 "007 시리즈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로 끝났다"고 하는 이유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007 시리즈의 일부로 보이지 않는 게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바로 이것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다.
그렇다면 또 리부트를 할 것인가?
누구로 결정되든 간에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을 제 7대 제임스 본드가 결정되면 007 시리즈는 또 리부트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줄거리가 직간접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사실상 한덩어리의 스토리이므로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를 떠나면서 스토리를 완결시키고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영화배우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줄거리를 그대로 넘겨받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미니시리즈'를 완결시키고 새로운 영화배우와 함께 다시 새출발을 하는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물론 M, Q, 머니페니 등 MI6 출연진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지만 - 이전에도 주연배우가 바뀔 때마다 MI6 출연진까지 같이 바뀐 경우는 드물다 - 다니엘 크레이그 시리즈의 세계와 줄거리를 그대로 이어받는 건 어려워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숀 코네리(Sean Connery)에서 로저 무어(Roger Moore)로, 로저 무어에서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으로, 티모시 달튼에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으로 순조롭게 바통을 넘겨줬던 것처럼 크레이그가 차기 제임스 본드에게 살인면허를 넘겨주는 게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007 시리즈는 주연배우가 교체되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와도 파격적인 변화는 피하면서 순조롭게 교체가 이뤄지곤 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 이후엔 이러한 순조로운 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007 제작진이 '리부트' 타령을 하면서 지나칠 정도로 변화에 집착했다는 점,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과거의 007 시리즈와 달리 줄거리가 서로 연결된다는 점 등이 나중에 가서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007 시리즈도 걸핏하면 리부트를 하는 시리즈가 되는 걸까?
007 제작진이 선택한 길이 그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007 제작진이 '리부트'를 고려했던 적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클 G. 윌슨(Michael G. Wilson)과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대에 와서 리부트를 실행에 옮겼다. 윌슨과 바바라 브로콜리는 알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와 해리 살츠맨(Harry Saltzman)이 하지 않았던 리부트를 007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실행에 옮겼으므로 이에 따른 부작용 등도 감수할 준비가 돼있으리라 본다. 007 시리즈를 40년간 별 탈 없이 굴러가도록 만든 룰 중 하나가 "변화는 주되 '리부트' 등 파격적인 변화는 피한다"는 것이었는데, 007 제작진이 이 룰을 깨고 새로 시작했으므로 모든 걸 감수할 준비가 돼있다고 믿는다.
007 제작진이 주연배우를 교체하면서 지나치게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캐릭터로 묘사하려 하는 게 화가 될 수 있다. 관객들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 정도면 충분하지 계속해서 "다르다", "다르다", "다르다"면서 '느낌표'를 찍어댈 필요는 없다. 로저 무어의 뒤를 이어 티모시 달튼이 제임스 본드를 맡았을 때 관객들은 티모시 달튼이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007 제작진은 그 차이점에만 계속 '느낌표'를 찍지 않았으며, 차이점 뿐만 아니라 공통점도 많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로저 무어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임스 본드"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현재의 007 제작진은 이렇게 균형을 맞추는 센스를 잃었다. 양쪽 끝과 끝을 오갈 줄만 알 뿐 중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재주가 없다.
007 제작진이 리메이크에 대해서만은 확고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똑같은 스토리를 되풀이하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차기 제임스 본드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가 또다시 '카지노 로얄'이 될 가능성은 없다. 그 대신 젊은 제임스 본드가 갓 00 에이전트가 되었을 당시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있다.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는 틀려도 성격은 비슷한 영화로 새출발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작가 제프리 디버(Jeffery Deaver)가 그의 제임스 본드 소설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에서 리부트를 시도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러나 젊고 패기 넘치는 제임스 본드로 리부트에 실패했던 제프리 디버와 마찬가지로 007 영화 시리즈도 리부트에 실패할 수 있다.
그렇다면 또다시 징징거리며 죽는 시늉을 하는 어두운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리부트를 하면 될 것이다.
만약 이것도 안 되면 또다시 아이폰을 즐겨 사용하는 젊고 패기 넘치는 제임스 본드로 다시 리부트를 하면 되는 것이고...
이게 안 되면 또 징징거리는 놈 데려와서 리부트하고...
007 시리즈의 미래는 이렇게 되는 걸까?
"KILL BOND NOW!"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