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9일 목요일

'뜨거운 녀석들', 조연들만 뜨겁다!



'미스터 본드'가 나온다고 해서 극장서 보려고 했는데 동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지 않아 DVD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게 된 영화다. 일부러 상영하는 극장을 찾아나설 수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무리해가면서(?)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깐! '미스터 본드'가 나온다고?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이 수퍼마켓 주인으로 나온다는 얘기다. 이 사실 덕분에 '뜨거운 녀석들'이란 영화가 나온다는 걸 알게됐다. 많은 사람들은 거꾸로일 수도 있지만 나처럼 골수 본드팬들은 '미스터 본드'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뜨거운 녀석들(Hot Fuzz)'이란 영화를 가만히 보면 주연보다 조연이 더 볼만하다. 까놓고 말해 영화 자체보다 조연들이 더 흥미진진하다. 티모시 달튼 이외로도 '낯익은 얼굴', '반가운 얼굴'이 꽤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 줄거리가 런던에서 조용한 시골마을로 옮겨간 경찰, 니콜라스 앤젤(사이먼 페그)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휩쓸린다는 것인데, 마을 주민들이 하나같이 괴짜다. 이 괴짜 마을 주민들로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나온다. '미스터 본드'도 이중 하나다.

'레이더스'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라이벌, 벨락으로 나왔던 영국배우 폴 프리맨(Paul Freeman)도 '뜨거운 조연들' 중 하나.



TV 시리즈 '이퀄라이저(Equalizer)' 등으로 친숙한 영국배우 에드워드 우드워드(Edward Woodward)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의 '제임스 본드처럼 보이던 모습'에만 익숙했기 때문에 '뜨거운 녀석들'에서의 우드워드를 한번에 알아보진 못했다.



'Before & Now' 코너로 만들고 싶진 않으니 여기서 그만합시다.

문제는 영화 자체가 뜨겁지 않다는 것이다. 조연들은 저 정도면 훌륭하지만 '뜨거운 녀석들'은 하나도 뜨겁지 않다. 나름대로 줄거리도 있고, 의외로 잔인한 장면들도 꽤 많이 나오며, 유머와 액션도 어느 정도 있다지만 어느 것 하나도 만족스러운 게 없다. '뜨거운 녀석들'은 잔인한 장면과 욕설만 없애버리면 영락없는 아이들 영화가 될 것이다.

잔인한 장면과 욕설 덕분에 성인을 겨냥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뜨거운 녀석들'은 애들영화다. 초등학생이 가짜 콧수염 붙였다고 30대인 것으로 속을 사람 많지 않듯 '뜨거운 녀석들'도 살짝 위장을 한 게 전부일 뿐 본질은 애들영화라는 게 금새 들여다보인다. 여기에서 오는 허무함을 어느 정도 극복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싱거운 녀석들'로 보일 것이다.

코메디 영화니까 유치한 건 어느 정도 감수해야겠지만 매번 바보스러운 짓으로 웃기려고 하니 영화가 한심하게 보인다. 이런 영화에서 줄거리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Point Break' 오마쥬도 유치한데다 액션이란 것도 두 주인공들이 한껏 폼만 잡으면서 뻥뻥 갈겨대는 게 전부다보니 볼거리가 없다. 차라리 다른 성인용 코메디 영화처럼 섹시한 여배우들이라도 데려와 눈이라도 즐겁게 해줬다면 불만이 덜했을지 모르지만 '뜨거운 녀석들'에 '뜨거운 미녀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영화에 제대로 빠져들지 못하고 낯익은 조연들 구경하는 재미밖에 남는 게 없게 됐다. 아직도 변함없는 티모시 달튼의 카리스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선뜻 떠오르지 않았던 폴 프리맨,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의 에드워드 우드워드 등을 쫓으며 '뜨거운 조연들'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을 뿐이다. 그것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사이몬 페그와 닉 프로스트는 오케이다. 이 친구들이 영화를 말아먹은 주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재능있는 친구들인 건 맞지만 아쉽게도 '뜨거운 녀석들'을 뜨겁게 만들진 못했다. 이들 혼자선 불가능했다. 티모시 달튼, 폴 프리맨, 에드워드 우드워드 등 쟁쟁한 배우들이 도움을 줬다지만 여전히 불가능했다. 코메디 영화에 샤프한 유머가 없고, 액션영화에 화끈한 액션이 없다면 배우가 누구든 상관없다. '뜨거운 녀석들'의 가장 뜨거운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런 영화에서 뭘 더 기대할 수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이것보단 나은 걸 원했다. 괜찮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정도밖에 안됐다는 데 실망이 크다. 좀 더 세련되고 깔끔한 액션/코메디를 만들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Better luck next time!

2007년 8월 6일 월요일

'언더독', 날아라! 수퍼 멍멍이ㅠㅠ



평범하던 개가 갑자기 말을 하고 날아다닌다?

그것도 모자라 범죄자를 무찌르는 '영웅'이 된다?

그다지 나쁜 내용이라곤 할 수 없다. '수퍼맨'과 같은 수퍼 액션 히어로 시리즈가 한 두개가 아니며, 이들 모두 인기가 대단하니 이번엔 개가 한번 해보겠다는 게 전부다. 뿐만 아니라, '언더독(Underdog)'은 60년대 미국 TV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라니 역사도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언더독'은 상당히 난감한 영화다.

워낙 아이들용 영화이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생긴 비글(Beagle)이 망토를 두르고 수퍼 액션 히어로 시늉을 한다는 것 자체는 웃기다. 아, 잠깐! 실제로 수퍼 액션 히어로가 맞긴 맞으니 '시늉'하는 건 아닌지도...

아무튼, 개가 사람과 말을 하고 망토를 두르고 날아다니는 건 꽤 웃기다. 애니메이션이었다면 덜 웃겼겠지만 '언더독'은 실사영화다보니 실제 개가 망토 두르고 날아다닌다는 게 상당히 코믹하다. 하지만, 이것 빼곤 웃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심하게 아이들을 겨냥한 영화인 줄은 몰랐다. 성인들도 적당히 즐길 수 있을만한 정도의 유머는 그래도 있을 줄 알았는데 거의 없었다. 그나마 웃음이 나올까 말까 했던 장면은 두 세개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그 이외론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미치광이 과학자가 만든 약을 먹고 '수퍼 멍멍이'가 탄생했다는 것까진 O.K인데 워낙 애들영화 수준에 맞추다보니 성인이 보기엔 상당히 후달리는 데가 많다.



그 대신 웃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영화 중간에 잠깐 나오는 '핫도그'씬이 바로 그것.

개가 주인공인 영화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개는 음식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핫도그'에 개를 갖다붙인 게 전부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인들이 개를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개를 먹는 나라가 분명히 있고, 그런 나라에도 이 영화를 수출할 생각이 있다면 '개를 먹는다'는 테마는 아예 비켜가는 게 옳지 않았냐는 게 내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여지껏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먹을 일이 없을 것이며, 개를 먹는 걸 그다지 좋게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나서서 먹어라 마라 하는 것도 좋게 보지 않는다. 영화 제작진은 별 생각 안하고 넣은 장면인 것 같은데 개를 먹어본 적도 없는 녀석이 과민반응 보인 것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자.

'언더독'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짐 벨루시가 나온다는 것. 'K-9'으로 유명한 '개 영화 수퍼스타' 아닌가! 그러나, '언더독'에선 별다른 활약을 하지 않는다. 사람 중에서 주인공을 뽑으라면 짐 벨루시의 아들로 나오는 Alex Neuberger가 되지 벨루시가 아니다. '언더독'이 아이들 영화인만큼 주인공도 Alex Neuberger인 것. 차라리 주인공이 짐 벨루시였다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끈거리지만 어쩌랴!

'언더독'은 상당히 짧은 영화지만 너무 아동틱하고 유치하다보니 도중에 지치게 된다. 러닝타임이 90분이 안되는데도 도중에 힘들어지더라. '라타투이'처럼 3D 애니메이션이라면 그려려니 하지만 어린이용 실사영화에 제대로 걸리면 상당히 괴로워진다. 애니메이션보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게 어린이용 실사영화다.

'언더독'이 이 정도로 아이들 영화인줄 알았다면 건드리지 않았을텐데 이번엔 속았다. 아이들 영화더라도 개가 수퍼맨 흉내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성인들도 웃을 수 있을만한 것들이 꽤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형적인 애들영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개가 '개폼' 잡는 것 하나 빼곤 웃긴 게 없는 영화였다.



'언더독'은 애들영화로써는 그다지 나쁜 영화가 아닐 것이다. 다 좋은데 너무 지나치게 '뽀뽀뽀' 스타일이 된 게 문제일지는 몰라도. 어떻게 보면 차라리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개가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맛이 날아가므로 실사 아이디어 자체가 아주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어찌됐든, 성인들은 되도록이면 이 영화를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보게 된다면 몰라도 성인들이 일부러 찾아가서 볼만한 영화는 못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개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용 영화라면 혹시 모르지만 '언더독'은 수퍼파워를 갖게 된 개가 수퍼맨처럼 하늘을 날면서 범죄를 소탕한다는 얘기다. 이런 영화가 너무 아동틱해지면 기댈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수퍼 멍멍이'를 보며 웃는 것도 잠시일 것이다. 개가 수퍼 히어로가 된다는 게 코믹할 것 같지만 영화가 너무 아동스러운 덕분에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에 속지말란 얘기다.

'언더독' 주제곡 분위기를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아동스러운지 감이 잡힐 것이다. 딱 어린이 방송시간에 나올 법한 뮤직비디오를 한번 보시라:



Beware of Dog!!!

2007년 8월 3일 금요일

'본 얼티메이텀', 이것이 마지막?



로버트 러들럼의 '에이전트 JB'가 돌아왔다. 이니셜은 같지만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로버트 러들럼의 '에이전트 JB'는 제이슨 본(Jason Bourne).

로버트 러들럼이 쓴 제이슨 본 시리즈 소설은 '본 얼티메이텀(Bourne Ultimatum)'이 마지막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는 트릴로지였고 '본 얼티메이텀'이 마지막 3편이다. 이것으로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는 사실상 끝나는 것이다. 총에 맞고 기억상실에 빠지더니 CIA에게 쫓기기까지 하는 억센 팔자의 에이전트, 제이슨 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

1편은 꽤 재미있게 봤지만 2편은 기대에 못미쳤던 바람에 3편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3편은 2편보다는 낫지만 1편만큼 재미있진 않다. 볼만한 액션씬도 있고 제이슨 본이 자신의 과거를 하나씩 기억해내며 기억상실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도 그런대로 흥미롭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하진 않다. '섹스'와 '유머'가 없기 때문에 좀 딱딱하긴해도 차분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제이슨 본의 어드벤쳐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임스 본드를 스파이 영화의 스탠다드격 캐릭터라고 한다면 맷 데이먼은 아무래도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맷 데이먼과 스파이 영화가 어울린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맷 데이먼이 제이슨 본이란 에이전트로 나온 영화를 '얼티메이텀'까지 합쳐 모두 세 편을 봤지만 여전히 맷 데이먼과 스파이 캐릭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맷 데이먼과 제이슨 본은 딱이다. 제이슨 본은 '그런' 스파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이슨 본은 사실 스파이도 아니다. 그저 쫓기는 신세의 'ex-Agent'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게다가 기억력도 깜빡깜빡이다. 계속 누군가가 죽이려고 쫓아다닌다. 물론, 제이슨 본 역시 프로페셔널이지만 인간적으로 동정이 가는 프로페셔널이란 게 다른 스파이들과 다르다.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제이슨 본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을 때 전해오는 그 'Feeling'은 제임스 본드가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제이슨 본의 매력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맷 데이먼은 몹시 혼란스러운 제이슨 본을 연기했다. '얼티메이텀'이 러들럼의 제이슨 본 트릴로지 마지막 작품인만큼 이번 영화에선 제이슨 본도 많이 정리가 된 모습이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인 건 변함없다. '어떻게 손을 좀 써보라'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는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페셔널인 것엔 변함없다. 혼란스럽다고 아주 대책없는 건 아니란 것이다. 이처럼 '수퍼 스파이'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제이슨 본이다. 어떻게 보면 살짝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날카로움이 번뜩이든 맷 데이먼에게 왔다인 캐릭터다.

제이슨 본은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모로코, 미국 등 계속 왔다갔다 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처럼 자주 장소를 이동하진 않는다. 덕분에 살짝 정신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줄거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게다가, 자동차들이 정신없이 뒤엉키는 수준급 액션씬 뿐만 아니라 한판 제대로 붙는 주먹싸움까지 나오면서 이전 영화보다 더욱 거칠고 화끈해졌다.




하지만, 장점은 거기까지가 전부다.

가장 큰 문제는 제이슨 본 시리즈의 줄거리 자체가 더이상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제이슨 본을 없애려는 게 누구인지 알고있다. 정확하게 누구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와 같은 디테일한 부분은 3편을 보기 전엔 모른다지만 어지간한 건 이미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줄거리가 이어질 거라면 '트릴로지'보다 TV 미니 시리즈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해서 이전 시리즈를 본 사람들만 이해가 가는 영화는 아니다. 'Identity'와 'Supremacy'를 보지 않았더라도 별다른 문제없이 볼 수 있다. 이전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줄거리가 이어진다, 반복되는 것 같다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즐길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앞서 나온 두 편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조앤 알렌이 제이슨 본과 전화통화 하다가 화들짝 놀라는 장면을 보고 '저거 또 써먹는거냐'는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본 얼티메이텀'에는 묘하게도 007 시리즈에서 봤던 장면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007 시리즈를 어지간히 본 사람들은 '본 얼티메이텀'을 보면서 '저건 어떤 007 영화에서 나왔던 것'이라는 걸 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둘 다 같은 쟝르의 영화니까 비슷한 장면들이 나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엇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비슷한 장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액션씬, 스턴트뿐만 아니라 007 시리즈에 나왔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도 나온다.

'카지노 로얄'에서 제이슨 본을 봤다고 한 사람들은 '본 얼티메이텀'에서 007 시리즈를 못보고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카지노 로얄'에서 제이슨 본의 흔적을 찾는 것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007 시리즈의 흔적을 찾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거의 오마쥬 수준이니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 얼티메이텀'에서 가장 부족한 건 여자 캐릭터일 것이다. Franka Potente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떠난 뒤 여주인공이라고 부를만한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1편이 가장 맘에 드는 이유 중 하나로 뚜렷한 여주인공이 있었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Ultimatum'은 'Supremacy'에서와 마찬가지로 Franka Potente를 대신할 여자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 모든 제이슨 본 시리즈에 출연한 Julia Stiles가 이번에도 '니키'라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비중이 커진 건 아니다. 남자 주인공과 반드시 '얽혀야' 제대로 된 여자 주인공이란 얘기는 아니지만 '니키'로는 부족해보였다.

대개의 경우 무슨 영화가 나왔다, 누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여자 주인공은 누군지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본 얼티메이텀'에선 마땅한 여자 캐릭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약간 섭섭(?)하다. '본드걸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본 얼티메이텀'은 100%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정도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잘만든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줄거리에 좀 더 짜릿한 부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본 시리즈는 줄거리가 큰 몫을 차지하는 영화라고 해야 맞을텐데 엄청난 반전이나 새로운 내용 없이 디테일한 부분들에만 의존하는 것이 전부라는 게 아무래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판이 다 짜져 있는 상태에 몇몇 빈칸을 채우는 게 전부기 때문이다. 빈칸 채우기 식도 나름대로 흥미롭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테리'가 전혀 미스테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1편에선 줄거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2편부턴 미스테리는 빈칸 채우기가 전부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망자'가 주인공이라는 것 하나밖에 남는 게 없는 영화가 됐다. 3편에선 이 지루한 줄거리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지만 여전히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망자'가 전부인 건 이전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액션씬이 있다는 걸 빼놓을 수 없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는 액션이 아니라 복잡 미묘해보이는 줄거리라고 해야 옳다.

제이슨 본 시리즈라고 하면 대부분 '심각한 스파이 영화'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줄거리 때문이고, 그만큼 본 시리즈는 줄거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인데 1편 이후론 줄거리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얼핏보면 엄청난 비밀이 있고 내용도 무지하게 심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맹이를 까보면 별 것 아닌 얘기란 결론을 내리게 된다. 1편 하나로 끝났다면 '훌륭한 줄거리'라고 했겠지만 2, 3편을 보고나면 그 소리가 안 나온다. 복잡하고 심각한 내용의 영화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것에 넘어가 그 분위기에 깔리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록 만들어 놓은 게 맞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1편 이후의 줄거리는 솔직히 기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없다. 로버트 러들럼이 사망하기 전에 쓴 제이슨 본 시리즈는 'Identity', 'Supremacy', Ultimatum' 3개가 전부다. 이로써 기억상실증에 빠진 CIA 에이전트 이야기는 끝났다. 여지껏 기억상실증에 빠진 제이슨 본이 1/3씩 기억을 회복하는 얘기였는데 이제 다 알았으니 이 얘기는 끝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마지막?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다. 로버트 러들럼이 사망한 뒤 다른 작가가 제이슨 본 소설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당장,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부터 다른 작가들에 의해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새로운 소설가가 넘겨받으면 분위기가 상하기 일쑤다. '오리지날보다 못하다'는 얘기도 끊임없이 나오게 돼있다. 러들럼 이후에 나온 새로운 본 시리즈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새로운 제이슨 본 시리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제이슨 본이란 캐릭터는 기억상실증에 빠진 도망자였는데 그렇다고 계속해서 제이슨 본을 도망자로 만들면 사람들이 식상할테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처럼 변신시키면 제이슨 본까지 '제국주의자'가 될테니 말이다. 러들럼의 트릴로지 이후에 나온 본 시리즈는 미국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가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러들럼의 오리지날 제이슨 본 트릴로지보다 더욱 제임스 본드 또는 '미션 임파시블' 시리즈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만약, 러들럼 이후에 나온 소설들까지 영화화 된다면 말이다.

러들럼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정보부에 좋지않은 감정을 가진 캐릭터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로버트 러들럼의 또다른 소설, 'Scorpio Illusion'에 나왔던 Tyrrell Hawthorne도 정보부의 실수로 아내가 살해당했다면서 정보부를 불신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니, 제이슨 본도 기억상실과 CIA에게 당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정보부를 불신하는 이전 에이전트가 새로운 사건에 휘말린다는 식으로 시리즈가 이어진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건 없을 것 같다. 새로 나온 제이슨 본 소설의 내용을 훑어보니 Tyrrell Hawthorne의 뒤를 잇는 것처럼 보이던데, 비록 이전의 제이슨 본과는 다른 캐릭터가 되겠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이어가려면 그렇게 해도 별 상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Jason Bourne Will Return'이란 자막이 나왔는지 확인하지 않은 게 아쉽다.

엔딩 크레딧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모비(Moby)의 'Extreme Ways'가 엔딩 타이틀곡으로 사용됐다. '본 얼티메이텀'엔 새로운 리믹스 버전이 사용된 것 같지만 노래는 같은 거니까 이걸로 대신합시다.

2007년 8월 2일 목요일

마음에 드는 게임이 없다

PS3, XBOX360. 닌텐도 Wii 등 새로 나온 게임 시스템들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드는 게임이 없다. 다들 비슷하게 보일뿐 개성 있어보이는 게임이 없다.

PS3와 XBOX360 게임들을 둘러보면 더욱 그렇다. 거의 대부분이 1인칭 시점 액션게임으로 보일 정도로 FPS 투성이다. 앞으로 발매될 예정인 게임들을 봐도 '배틀필드', '메달 오브 오너', '킬존', '언리얼', '헤일로', '레인보우 식스', 'Turning Point: Fall of Liberty' 등 1인칭 시점 게임들이 몰려있다. 저런 류의 게임들이 워낙 많이 나오다보니 이젠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많다. 속편도 무지하게 많아서 2편이 나왔는지 3편이 나왔는지 따라가기도 힘들다. 아직까지도 2차대전 배경의 1인칭 시점 게임들이 팔린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WWII 게임들도 끊임없이 나온다.

온라인 게임들도 그렇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적으로 콘솔용 온라인 게임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덕분에 콘솔게임다운 게임들이 줄어들고 PC게임에 가까운 게임들이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즘 나오는 콘솔게임들의 분위기가 이전의 것과 거리가 있어보인다는 것이다. 게임콘솔로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게 PS2, XBOX 시절 얘기인데 지금은 게임콘솔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 시스템으로 불러야 할 만큼 온라인 게임쪽으로 심하게 쏠려있다.

XBOX360가 세계 최대 게임시장이라는 북미지역에서 매월 15만대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다. 물론, 최근엔 불량문제도 있었다지만 전적으로 그것때문이라고 할 순 없다. 왜 콘솔 게이머들이 XBOX360 구입을 망설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XBOX360를 맹렬히 추격하는 게 있다. 바로 PS3다. 일단, PS3는 비싼 가격때문에 북미지역에서 매월 8만대 정도밖에 팔지 못했다. 지금은 60GB PS3 가격이 100불 떨어졌으니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판매량이 2배 가량 느는 정도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봤자 매월 16만대 정도라는 얘기다. 100불 싸져봤자 여전히 500불이기 때문에 게임콘솔 가격치고는 비싸다는 데 변함없기 때문인 듯 하다.

문제는, PS3로 발매될 예정의 소프트웨어 리스트를 보면 더더욱 구입의욕이 떨어진다는 것. 많은 게임들이 XBOX360와 겹치거나 비슷한 성향이기 때문에 '이럴 바엔 뭐하러 PS3를 구입하냐'는 말이 나온다. 소니 CEA는 E3에서 퍼스트/서드파티 게임들을 발표했지만 그 중에서 기억해둘만한 게임이 별로 없다. PS2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한 Rockstar의 갱스터 시뮬레이션(?) 'GTA' 시리즈도 이젠 더이상 소니 편이 아니다. 여전히 '그랜 터리스모', '메탈기어 솔리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있다지만 손에 꼽히는 프랜챠이스 타이틀 몇 개 쥐고있는 게 전부란 얘기밖에 안된다. 게다가, '메탈기어 솔리드 4'는 언제든지 XBOX360 버전으로 발매될 수 있으며 '파이널 판타지 XIII'은 '파이널 판타지 XII'보다 더욱 다르게 바뀌는 바람에 '궁금하긴 하지만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이들 모두 시스템 셀러로써의 가치가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픽만 좋으면, 그럴싸해 보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게이머들도 많이 약아졌다. 그래픽으로 '와우' 소리 나오게 만드는 걸 새로운 시스템 나올 때마다 매번 써먹기 힘들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갈수록 그 효과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PS2 동시발매 타이틀로 나왔던 EA의 '매든 NFL 2001'이 그래픽으로 북미 게이머들을 흥분시켰던 적이 있다. 북미지역에선 '매든 NFL 2001'이 시스템 셀러였던 것. 그러나, XBOX360 버전으로 나온 '매든 NFL'은 그래픽으로 게이머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EA는 용감하게 'Actual game graphic'이라면서 실제 게임 플레이 장면을 TV광고에 넣었지만 반응은 '웃긴다' 였다.

게임 소프트웨어의 트렌드화도 문제다. 이 덕분에 게임들이 죄다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메이커들은 트렌드를 이용해보려고 한다지만 게이머들의 눈엔 아이디어 고갈에 몸부림 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GTA' 시리즈가 인기끌자 얼마나 많은 갱스터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보라. 액티비젼의 'True Crime', EIDOS의 '24 to Life', EA의 '대부' 등 '갱스터 주인공 + 자유도'의 게임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심지어, 일본회사 세가까지 '야쿠자'라는 게임을 내놨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게임업계가 지금은 온라인 게임 쪽에 몰려들어 '온라인 this, 온라인 that' 하고 있다. 그냥 날로 먹을 거리 찾고있는 것이다.

이쯤 됐으면 아직도 PS2가 PS3, XBOX360보다 많이 팔리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게 된다. 왜 닌텐도 Wii가 잘 나가는지도 말이다. 이게 단지 가격 때문일까?

그나마 콘솔게임다운 게임들이 PS2에 많기 때문이다. 차세대 게임 시스템들이 나오긴 했지만 콘솔 게이머들의 취향에 맞는 게임들은 아직도 PS2에 많다는 것이다. 가격도 이젠 저렴한데 게임은 계속 나오고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도 방대하다. 여기에 닌텐도 Wii가 가세했다. 전통적인 콘솔게임 스타일과 독특한 게임 플레이 방식을 조합한 닌텐도 Wii가 인기를 끄는 것이다. 가격도 경쟁 시스템들에 비해 가장 저렴하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코어 게이머', '온라인 게임' 타령하면서 오버하는 사이에 닌텐도 Wii가 이들을 밀어버리고 북미지역에서 매월 평균 35만대 정도 꾸준히 판매하면서 하드웨어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책임은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엉뚱한 데서 삽질한 데 있다. 가격도 수상하고 게임들도 전통적인 콘솔 게이머들이 보기엔 이상한 게 많아진 덕분이란 것이다.

과연 언제쯤 콘솔 게이머들이 구입하지 않고 못배길 정도의 '섹시한' 게임들이 많이 눈에 띄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절대 섹시하지 않다. 아무리 봐도 서지 않는단 말이다...ㅠㅠ

2007년 7월 31일 화요일

마리온, '인디아나 존스 4'로 돌아온다

인디아나 존스만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레이더스'의 여주인공, 마리온도 '인디아나 존스 4'로 컴백한다.

캐런 알렌이 '인디아나 존스 4'에 캐스팅 됐다는 것이다.

코믹콘(Comic-Con)에서 새롭게 밝혀진 '인디아나 존스 4' 캐릭터는 '레이더스'에 나왔던 마리온 레이븐우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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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샤이아 라버프, 스티븐 스필버그, 레이 윈스톤, 캐런 알렌(앞줄), 해리슨 포드

'인디아나 존스 4'에서 캐런 알렌은 변함없이 마리온 레이븐우드(Marion Ravenwood)로 나오고, 레이 윈스톤(Ray Winstone)과 샤이아 라버프(Shia Labeouf)는 인디아나 존스의 '사이드킥(sidekick)'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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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알렌과 스티븐 스필버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1편,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에 나왔던 마리온이 '인디아나 존스 4'로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코믹콘 (Comic-Con) 비디오에서 해리슨 포드가 지나가는 말로 '패밀리'라고 했는데 혹시 진짜로 인디아나 존스와 마리온이 '패밀리'가 된 사이로 나오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혹시 샤이아 라버프는 인디와 마리온의...?

현재로썬 캐런 알렌이 마리온으로 돌아오고 샤이아 라버프는 영화에 나온다는 것밖에 알려진 게 없다. 짜맞춰 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지긴 하지만 '오피셜'인 게 아니므로 일단 기다려봐야 할 듯.

아무래도 저 네 명이 '인디나아 존스쪽' 사람들인 것 같다. 레이 윈스턴과 샤이아 라버프 모두 '사이드킥'이라고 했으니 둘 다 악당은 아니고, 캐런 알렌은 아닌 게 확실하니까 이번에 나오지 않은 케이트 블랜칫과 존 허트가 아무래도 '반대편'이 아닐까 한다.

상상은 자유니까 뭐...

아무튼, 2008년 5월22일이다...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제임스 본드의 나이는?

제임스 본드 미스테리 중 하나가 나이다. 이언 플레밍 원작에도 제임스 본드의 생년월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임스 본드의 나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인 건 아니다. 플레밍의 소설을 읽다보면 본드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힌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임스 본드의 나이를 헷갈리게 만든 건 이언 플레밍의 소설이 아닌 영화 시리즈다.


그래서 6명의 제임스 본드들의 나이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실버스크린 버전 제임스 본드는 숀 코네리(Sean Connery)다.


1930년 8월25일생인 숀 코네리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는 1962년작 '닥터노(Dr. No)'. 촬영 당시엔 만으로 31세였다고 할 수 있다. 카지노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할 때 숀 코네리는 만으로 31세였던 것이다.


그런데, '닥터노'가 1962년 영화인데다 숀 코네리가 지금 70대다보니 그가 제임스 본드가 됐을 때 겨우 30대 초반이었다는 걸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다. 숀 코네리도 30대 초반일 때가 있었단 말이다!


숀 코네리가 31세였다는 게 의외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라고 하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보여야 어울리는 것 같은데 31세는 너무 젊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언 플레밍 원작에서 제임스 본드가 30대로 돼있으니 31세의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를 맡기에 너무 젊었던 것은 아니다.


'닥터노'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사실적인 캐릭터였다. 맞으면 멍이 들고 피를 흘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딨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후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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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코네리의 베스트 007 영화는 누가 뭐래도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1963)'이다. 30대 초반이던 코네리는 '위기일발'에서도 상당히 거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 요새 영화와 비교하면 별 것 아니지만 본드와 레드 그랜트와의 격투는 '숀 코네리 버전 제임스 본드'를 대표하는 씬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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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유명해진 이유는 단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에 나온 007 시리즈에서 저 정도 강도의 격투씬을 보기 힘들어진 덕분이다.


좀 한심한 얘기지만 사실이다. 좋게 표현해서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특수장비에 의존하는 스타일로 바뀌면서 제임스 본드는 주먹싸움 보다는 '악세사리'에 의존하는 쪽이 됐다. 가면 갈수록 제임스 본드는 본드카, 가젯(Gadget) 같은 것에 의존하면서 터프한 맛을 잃어갔다.


거진 공상과학 영화 수준까지 갔던 '두번 산다(You Only Live Twice/1967)'를 끝으로 숀 코네리는 007 시리즈를 떠나고 그 뒤를 이어 죠지 레젠비(George Lazenby)가 '살인면허'를 넘겨받았다.


죠지 레젠비의 처음이자 마지막 본드영화는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레젠비가 1939년 9월5일생이니 '여왕폐하의 007'을 촬영할 당시엔 만으로 29세였다. 영화가 1969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했으니 레젠비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겨우 서른이었던 셈이다.


29세의 레젠비가 출연한 '여왕폐하의 007'은 다시 원작 스타일로 돌아간 영화다. 일본의 화산에서 우주선을 발사하는 등 심하게 나갔던 007 시리즈가 본래의 제임스 본드로 되돌아온 것이다.


조지 레젠비 버전 제임스 본드는 초창기 코네리 영화처럼 사실적인 제임스 본드다.'여왕폐하의 007'엔 가젯 같은 게 나오지 않는다. 본드가 끄는 자동차도 그저 평범한 자동차일 뿐이고 본드가 가진 거라곤 권총밖에 없다. 그런데, 인상이 코네리만큼 강렬하지 않기 때문인지 피지컬(Physical)한 본드로 기억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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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터프하냐 안 하냐가 문제가 아니다. '여왕폐하의 007'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임스 본드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레이보이로만 나왔던 제임스 본드가 '여왕폐하의 007'에선 청혼을 하고 결혼까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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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바로 원작에 충실한 영화의 매력이다. 원작에서 몇 가지만 빌려갔을 뿐 나머지는 마음대로 만든 영화들에선 맛 볼 수 없는 것이다.


죠지 레젠비는 '여왕폐하의 007' 하나를 끝으로 살인면허를 반납한다. 숀 코네리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1971)'에서 제임스 본드로 다시 돌아오지만 코네리도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영원히' 떠난다(오피셜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1983)은 제외).


세 번째로 제임스 본드가 된 배우는 로저 무어(Roger Moore). 제임스 본드 원작가 이언 플레밍이 제임스 본드로 원했던 배우이기도 하다. 그러니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가 된 게 놀랄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로저 무어가 1927년 10월14일생이란 것이 문제다. 숀 코네리보다도 나이가 위인 로저 무어가 만 45세에 년 영화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에서 제임스 본드가 됐기 때문이다.


45세의 제임스 본드라고?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 의하면 제임스 본드와 같은 'Double-0(00) 에이전트'는 45세까지다.


소설 '문레이커'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기겠다:


On these things he spent all his money and it was his ambition to have as little as possible in his banking account when he was killed, as, when he was depressed he knew he would be, before the statutory age of forty five.


Eight years to go before he was automatically taken off the 00 list and given a staff job at Headquarters. At least eight tough assignments. Probably sixteen. Perhaps twenty-four. Too many.


간단히 말하자면, 00 에이전트는 45세까지가 전부고, 45세가 넘으면 본부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8년 남았다고 했다. 그러니, 소설 '문레이커'에서의 제임스 본드 나이는 '45 빼기 8'이란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해, 37세란 것이다. 그런데, 로저 무어는 만 45세에 007이 됐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대로라면 로저 무어는 사무직으로 옮기기 일보직전인 나이에 00 에이전트가 된 것이다.


제임스 본드가 '중년의 사나이'가 된 건 로저 무어부터다. 제임스 본드는 나이가 들어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로저 무어의 본드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로저 무어는 물론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하지만, 007 시리즈가 10년이 흘렀는데 초대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를 캐스팅 한 건 이해하기 힘들다. 한 배우가 계속 출연하면서 시리즈와 함께 늙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새로운 배우로 교체하는데 나이가 많은 배우를 택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다. 물론, 로저 무어를 놓치기 아까웠다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지만 제임스 본드의 나이가 계속 불어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게 바로 로저 무어란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난 로저 무어를 아주 좋아한다.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도 좋아한다. 하지만, 로저 무어와 함께 007 시리즈가 약간 이상해진 것은 사실 아니냐는 게 전부다.


로저 무어는 '주먹 사용을 꺼리지 않는 젊은 에이전트'에서 '버튼 하나 누르면 해결되는 중년 에이전트'로 제임스 본드를 변화시켰다. '위기일발'에서 본드와 레드 그랜트의 격투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로저 무어 버전 제임스 본드가 주먹을 한 번도 휘두르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코네리 시절처럼 죽기살기로 격렬하게 치고받는 맛이 없다. 로저 무어의 본드영화 자체가 워낙 가벼워진 덕분이다.


무어의 본드영화가 변한 건 1981년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부터. 우주까지 나갔다 온 제임스 본드를 원상복귀 시킨 것이다. 1969년 영화 '여왕폐하의 007'로 제임스 본드가 원상복귀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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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무어의 본드영화는 '유어 아이스 온리' 이후부터 사실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상처를 입지 않는다. 작은 부상이 전부지 한번 제대로 당해 만신창이가 되는 적이 없다. 나이는 역대 본드들 중에서 가장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건강한' 제임스 본드를 꼽으라면 단연 로저 무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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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무어는 모두 7개의007 시리즈에 출연했다. 현재로썬 최다기록 보유자다. 아직까지 7편의 007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없다. 이 기록은 한동안 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밖에도 로저 무어는 또다른 기록을 갖고있다. 바로, 최고령 제임스 본드.


무어가 그의 마지막 본드영화 '뷰투어킬 (1985)'을 찍을 때 만 57세였는데, 아직까지 최고 기록이다. 이 기록 또한 깨지기 힘들 것 같다.


그 다음 타자는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


1944년 3월21일생인 티모시 달튼은 만 42세에 제임스 본드가 됐다. 로저 무어보단 빨리 됐지만 40대에 제임스 본드가 된 건 마찬가지다.


달튼의 첫 번째 본드영화는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


이미 42세였으니 코네리, 레젠비만큼 '젊은 본드'는 아니었지만 로저 무어가 57세까지 본드역을 한 덕분인지 티모시 달튼이 중학생처럼 보였다.


티모시 달튼 버전 제임스 본드는 전통적인 007 영화 스타일을 이어가면서도 제임스 본드 캐릭터는 이언 플레밍의 원작 스타일로 되돌려놓았다. '리빙 데이라이트'에는 미사일 나가는 본드카 등 007 영화적인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티모시 달튼의 제임스 본드는 원작에서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리빙 데이라이트'는 너무 만화처럼 가볍지도 않고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않은 균형 잘 잡힌 007 영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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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튼의 베스트 007 영화는 1989년 영화 '라이센스 투 킬'이다. 이 영화는 다른 007 시리즈와는 달리 본드가 살인면허까지 취소당한다. 귀환명령에 불복하고 친구의 복수에 매달리는 바람에 MI6로부터 'Rogue agent'란 소리까지 들어가며 쫓기는 신세가 된다. MI6 미션이 아닌 제임스 본드의 개인용무가 줄거리인 007 영화는 '라이센스 투 킬'이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의 '다크 사이드'가 영화에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MI6에 소속된 정보원이란 뚜렷한 신분이 아닌 오로지 복수에만 전념하는 킬러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섹시한 본드걸을 옆에 태우고 미사일 나가는 본드카를 운전해야 제대로 된 제임스 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티모시 달튼이 '라이센스 투 킬'에서 보여준 제임스 본드가 원작에서의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에 가깝다. '라이센스 투 킬'이라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튀어나온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티모시 달튼의 제임스 본드는 원작의 것에 가까웠다.


'라이센스 투 킬'이 원작에 가까운 사실적인 스타일의 영화인만큼 제임스 본드도 마찬가지다. '라이센스 투 킬'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먼지만 툭툭 털어내던 그런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제임스 본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치지도 않는 완벽한 캐릭터로 변했다. 그러나, '라이센스 투 킬'에선 제임스 본드가 피를 흘린다. 제임스 본드도 다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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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떻게 보면 좀 웃기기도 하다. 007 시리즈도 액션영화인데 주인공이 부상당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란 캐릭터가 이렇게도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변질돼던 것. '라이센스 투 킬'은 제임스 본드도 피를 흘린다는 걸 보여주면서 사실적인 캐릭터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본드가 피를 흘리니까 다른 액션영화들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고 혹평했다. 사실적인 제임스 본드는 007 답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줄거리까지 본드의 사적인 복수극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라이센스 투 킬'에 실망했던 것 같다.


티모시 달튼은 '라이센스 투 킬'을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달튼은 이언 플레밍의 소설대로 45세가 되자 00 에이전트에서 물러났다. 1944년생인 달튼이 1989년 영화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났으니 딱 들어맞는다.


6년의 공백기를 지나 본드영화가 돌아왔다.


이번엔 1953년 5월13일생의 피어스 브로스난이 제임스 본드다.


그의 첫 번째 본드영화가 1995년작 '골든아이'니까 만 41세에 제임스 본드가 된 셈.


로저 무어 이후 피어스 브로스난까지 '40대 제임스 본드'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새로운 배우로 'Refresh' 된 건 맞지만 40대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숀 코네리는 30대 초반, 죠지 레젠비는 29세에 제임스 본드가 됐는데 로저 무어 이후부턴 무조건 40대부터다.


피어스 브로스난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브로스난 버전 제임스 본드를 '로저 무어와 숀 코네리의 중간'이라고 한다. 두 스타일의 장단점을 모두 갖고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위기일발'에서 본드와 레드 그랜트와의 격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골든아이'에 나온다. 레이더 타워에서 본드와 알렉 트레빌리안이 한판 붙는 바로 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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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스난 버전 본드도 대체적으로 '건강한 본드'에 속한다. '골든아이'와 '투모로 네버 다이'에서 얼굴을 다치긴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다. 브로스난의 영화는 로저 무어의 것처럼 'easy-going' 스타일이기 때문에 아찔한 위기에 처하거나 만신창이가 되는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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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is Not Enough'에선 어깨를 다치고 '다이 어나더 데이'에선 북한군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로빈슨 크루소처럼 머리와 수염을 기른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브로스난의 본드영화가 '사실적'이란 단어와 거리가 있다보니 별다른 느낌이 없다.


브로스난은 2002년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를 끝으로 50세 문턱에서 살인면허를 반납했다. 로저 무어 이후 계속해서 40대 배우가 제임스 본드를 맡았지만 50대 제임스 본드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살인면허는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넘어갔다.


1968년 3월2일생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만으로 37세에 제임스 본드가 됐다.


조지 레젠비 이후 처음으로 30대 제임스 본드가 탄생한 것이다. 제임스 본드가 30대로 내려온 게 이렇게 오랜만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번째 본드영화는 '카지노 로얄'이다. 이언 플레밍의 첫 번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을 영화화 하려면 제임스 본드가 젊어야만 했다. 50을 앞두고 있던 브로스난에겐 이래저래 불가능한 역이었다.


제임스 본드가 젊어진 만큼 영화도 거칠어졌다. 게다가, '카지노 로얄'은 '위기일발', '여왕폐하의 007'과 마찬가지로 원작에 가까운 영화기 때문에 '악세사리'들이 나오지 않는다. '카지노 로얄'의 본드는 총 아니면 맨손으로 해결하는 스타일이지 화려한 '악세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만에 이언 플레밍 원작의 'Genuine James Bond'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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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위에서 훑어봤듯이 부상이란 걸 거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거진 상처를 입지않는 정도다. 하지만,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는 자주 만신창이가 되곤 한다. 고문도 당하고 두들겨 맞기도 밥먹듯 한다. '카지노 로얄'의 제임스 본드는 원작에서의 것과 매우 가깝다. 얻어터지고 피 흘리고 고문도 당한다. 현재까지 나온 007 시리즈 중에서 제임스 본드가 피를 가장 많이 흘린 영화가 '카지노 로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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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는 30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티모시 달튼처럼 2개만 찍고 그만둔다면 상관없지만 로저 무어는 50대 후반까지 했고 피어스 브로스난은 다섯 번째 영화를 찍었다면 50대까지 이어질 뻔 했다. 40대부터 시작하면 너무 늦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007 시리즈가 매년 나오는 것도 아니고 2~3년마다 하나씩 나오는데 40대에 제임스 본드가 되면 나이때문에 끽해야 3~4개가 맥스다. 브로스난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007 제작진은 50대 제임스 본드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아직까지 논란거리가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카지노 로얄' 하나만 놓고 봤을 땐 훌륭한 선택인 것 같지만 완벽한 선택이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퍼펙트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딱 알맞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언제까지 제임스 본드를 할지 알 수 없지만 다음 번 제임스 본드도 30대였으면 좋겠다. 힘들게나마 제임스 본드가 제 나이를 찾아 30대로 내려온만큼 앞으로는 계속 30대 배우들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으면 좋겠다.

2007년 7월 23일 월요일

맷 데이먼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는 다르다"

맷 데이먼 주연의 제이슨 본 시리즈 세 번째 영화 'Bourne Ultimatum'이 곧 개봉한다. 이에 맞춰 미국잡지 GQ에 맷 데이먼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표지모델도 맷 데이먼이고 아래쪽에 'SECRET AGENT MAN'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제이슨 본 시리즈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소설에서부터 시작됐다. 제임스 본드는 이언 플레밍 원작이라면 제이슨 본은 로버트 러들럼이란 미국 소설가에 의해 탄생했다.

Jason Bourne과 James Bond는 이름만 얼핏 보면 서로 비슷해 보인다. 읽을 때도 얼핏 들으면 비슷하게 들린다. 앞글자만 딴 이니셜도 둘 다 JB다.

그렇다고해서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가 비슷한 캐릭터라는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둘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차이가 있다. 제이슨 본은 기억상실에 빠진 캐릭터고 제임스 본드는 소속이 뚜렷한 스파이기 때문이다. 탄생시기도 다르다. 제임스 본드는 50년대고 제이슨 본은 80년대다.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는 직접 비교를 할래야 할 수 없는 캐릭터다. 둘 다 'Secret Agent Man'이라지만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맷 데이먼이 상당히 묘한 말을 했다.

아래는 GQ 기사의 일부다:

"The characters are so different." he says. "Bond is part of the system. He's an imperialist and a misogynist, and he laughs at killing people, and he sits there slugging martinis. It'll never be the same thing as this, because Bourne is a guy who is against the establishment, who is paranoid and on the run. I just think fundamentally they're just very different things.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가 아주 다르다는 것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가 '제국주의자'이고 '여성 혐오자'라고? 맷 데이먼도 과대망상 증세가 있는 친구였나?

그 다음 파트를 읽어보자. 그러면 대충 감이 잡힌다:

In fact, I bumped into Pierce Brosnan, and he made a comment like that. He said, 'Yeah, they're trying to update them, but it's fundamentally kind of an impossible thing to do, if you look at the values behind James Bond.' It kind of can't ever be what Bourne is, you know?"

아하, 그런 거였어?

지금 맷 데이먼은 제이슨 본 시리즈와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을 비교하는 것이다. 피어스 브로스난이 제임스 본드를 할 때는 제이슨 본 시리즈와 뚜렷한 차이가 났는데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은 사정이 달라보인다는 것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경쟁하는 영화가 아니다. 맷 데이먼이 말한 그대로 두 캐릭터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임스 본드가 젊어졌다, 액션이 거칠어졌다는 것만 가지고 곧바로 제이슨 본 시리즈와 겹치는 건 아니다. 이런 것만 가지고 제임스 본드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따라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숀 코네리가 30대 초반에 출연했던 60년대 007 영화가 제이슨 본 시리즈의 원조라고 해야 한다. 30대 초반의 혈기왕성하던 숀 코네리가 주먹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터프한 제임스 본드를 보여줬는데, 이렇게 따지면 제이슨 본의 원조가 된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을 읽어봤다면 제임스 본드가 살인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들 중엔 제임스 본드가 적을 죽이지 않고 잡으려 하다가 되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he laughs at killing people'이란다. 물론, '여기서 말한 건 영화에서의 제임스 본드'라고 둘러댈 수 있다. 그리고, 원작에서의 제임스 본드를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기 전에 원작과 영화를 모두 확인하고 얘기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물론, 미국쪽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제임스 본드라는 수퍼 스파이가 영국산이기 때문에 'Made in USA' 수퍼 스파이를 갖고싶어하는 것 말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영화화 되기 전에는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이 미국판 제임스 본드가 되고자 했다. 알렉 발드윈(붉은 10월), 해리슨 포드(패트리어츠 게임, Clear and Present Danger), 벤 애플렉(공포의 총합)이 톰 클랜시 원작의 영화에서 잭 라이언으로 나오며 '잭 라이언 시리즈'란 말까지 나왔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이 밖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시블' 시리즈 정도밖에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은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일반적인 스파이 소설/영화의 주인공과는 다르기 때문에 제임스 본드와 경쟁하는 캐릭터로 볼 수 없다. 이런 걸 다 빼버리고 젊은 에이전트와 화끈한 액션만 놓고 따지면 '카지노 로얄'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제이슨 본은 제임스 본드와 비교하기 곤란한 캐릭터다. 차라리, 로버트 러들럼의 또다른 소설 '스코피오 일루션'의 Tyrrell Hawthorne이라면 제임스 본드와 대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설의 내용은 일단 그렇다쳐도 Tyrrell Hawthorne이란 캐릭터가 미국 해군 정보부 요원출신인 등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와 겹치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슨 본은 아니다. 맷 데이먼의 말처럼 제임스 본드는 절대로 제이슨 본처럼 될 수 없고, 제이슨 본 역시 제임스 본드처럼 될 수 없다.

맷 데이먼은 이런 식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밟아가며 제이슨 본 시리즈 광고를 해야만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유치한 것 같지 않은지 묻고 싶다.

2007년 7월 21일 토요일

<척 & 래리>, 가짜 게이커플의 수난!



평범한 소방관 2명이 갑자기 결혼을?

하나는 부인과 사별했고 다른 하나는 플레이보이인데 둘이서 결혼을 한다고?

<척 & 래리>는 게이가 아닌 두 소방관이 위장 동성결혼을 한다는 내용의 코메디 영화다.



부인과 사별한 래리(케빈 제임스)가 자녀들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위해선 재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자 가장 절친한 동료 소방관, 척(아담 샌들러)에게 위장 동성결혼을 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얘기가 꼬이게 된다.

그런데, 척은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플레이보이다. 래리는 비록 사별했지만 결혼한 뒤 자녀를 둔 가장이지만 척은 세상의 모든 여자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다. 병원에서 만난 여의사부터 후터스 걸(Hooters Girl)까지 닥치는대로다.

그런데...

후터스 걸 중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 보았을까?



그렇다! 비디오게임 이벤트 E3서 만났던 테크모 부스걸이었다. 위 사진은 2002년 E3 테크모 부스에서 찍은 것이다. 내 기억으론 XBOX용으로 개발한 <데드 오어 얼라이브: 익스트림 비치 발리볼(DoA: Xtreme Beach Volleyball)>이 저 때 공개됐던 것 같다. 위 사진도 레이를 들고있는 걸 보니 비치 발리볼 게임 이벤트 때 찍은 것 같다.

그녀의 이름은 Candace Kita.

내가 E3를 빠지지 않고 매년마다 갔기 때문에 분명히 기억한다. 내가 매년마다 E3에 갈 때 L.A에 사는 한 남자가 'E3가 뭐가 볼 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부스걸'이라고 농담을 했더니 '돈 조금 쓰면 여자 부를 수 있는데...'라고 해서 어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할 일 없어서 부스걸 보러 E3에 갔을 것 같은가. E3에서 뭘 한다고 자세하게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부스걸'이라고 했더니 콜걸을 부르는 게 낫지 않냐는 엉뚱한 소리까지 들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지간하면 E3 부스걸 얘기는 하고싶지 않았는데 <척 & 해리>에 E3 부스걸이 나올 줄이야! 게다가, 얼굴까지 기억한다고 해놨으니 부스걸 보러 간 게 맞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아무튼, 테크모가 E3에선 부스걸들도 꽤 유명했었다. Candace Kita는 2003년부터 안 보였던 것 같지만 그 전까지는 테크모 부스에서 <데드 오어 얼라이브> 캐릭터 커스튬을 입고 무대에 오르곤 했다.

Kita 말고 또다른 후터스 걸은 한국인이었다. 이름은 Jamie Chung. Jamie는 Candace와 함께 후터스걸로 대사도 없이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게 전부다. 하지만 어찌 그냥 흘려보낼 수 있으랴!



게이과 관련된 영화인데 여자 얘기만 하자니 좀 이상해진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남자 얘기만 하면 너무 삭막하지 않수?

아무튼,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척과 래리는 하는 수 없이 캐나다까지 가서 동성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전부가 아니었다. 뉴욕시가 척과 래리의 결혼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게이가 아니면서 가짜 결혼을 통해 뭔가를 노리는 게 아닌지, 척과 래리가 진짜로 게이커플인지 조사하려는 것!

그저, 서류상으로 슬쩍 해놓으면 될줄 알았던 척과 래리는 여차하다간 교도소행이란 걸 알고 변호사까지 찾아간다. 결혼을 물릴 수는 없으니 변호사라도 고용해 생각보다 심각해지는 상황에 대처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섹시한 제시카 비엘이 변호사역으로 나오면서 '껄떡쇠' 척을 흥분시킨다.



스토리가 이쯤 되자 1990년 영화 <그린 카드(Green Card)>가 떠올랐다. 영화 <그린 카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국 영주권을 따기 위해 위장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린 카드>는 동성결혼과는 상관없는 영화지만 위장결혼을 한다는 게 <척 & 래리>와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그린 카드>에 나오는 위장결혼은 실제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척 &amp;amp; 래리>에 나오는 동성간의 위장결혼은 아직까지 실제로 본 적 없다는 게 될 것이다.

미 국서 영주권 없는 남자와 시민권을 가진 남자가 농담을 주고받는 걸 가끔 들어보면 '마땅한 여자가 없으면 동성 위장결혼이라도 하라'는 얘기가 나오긴 하더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농담이지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못 들어봤다. 남녀간의 위장결혼도 여차하면 들통날 수 있는데 한술 더 떠 동성간의 결혼이니 이민국에서 더욱 수상하게 여길 게 분명해 보인다.

척 과 래리는 모두 미국인이니 영주권 때문에 위장결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마땅한 여자가 없으면...'이라는 게 키포인트다. 목적달성을 위해선 결혼을 해야만 하는데 마땅한 여자가 없으면 남자라도 할 수 없지 않냐는 얘기인데, 바로 이게 정확하게 <척 & 래리>의 줄거리와 맞아떨어진다. 남자들끼리 농담으로 주고받던 얘기가 <척 & 래리>에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척 & 래리>는 실제 게이커플의 이야기가 아니라 게이 행세를 할 수 밖에 없는 두 남자가 위장결혼한 사실을 탄로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줄거리다. <그린 카드>와 마찬가지로 위장결혼한 것을 숨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건을 맡은 여변호사가 자꾸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게이인 척 해야만 하는 척을 괴롭히는 건 다름아닌 미녀 변호사였다!

이게 성고문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척 & 해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흥미진진한 조연들이다.

뉴욕 경찰로 잠깐 출연하는 댄 패트릭이 그 중 하나.



미국의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을 본 사람이라면 댄 패트릭을 모를 리 없다. ESPN에서 오랫동안 스포츠센터를 진행해온 유명한 스포츠 앵커다. <척 & 래리>에선 콧수염을 달고 나와 여차하면 못 알아볼 뻔 했는데 아무리 봐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 자세히 봤더니 목소리도 그렇고 댄 패트릭이 분명했다. 댄 패트릭이 ESPN에서 떠난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봤다. 댄 패트릭은 ESPN을 떠나 무엇을 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는데 혹시 영화배우로 전업하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척과 래리가 소속된 소방서의 캡틴으로 나오는 댄 애크로이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댄 애크로이드가 뉴욕의 소방서로 돌아오니까 <고스트버스터즈>가 생각나더라.



이밖에도 리처드 챔벌레인, 빙 라임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의미있는 조연은 아무래도 이 친구가 아닐까?

그룹 'NSYNC' 멤버였던 Lance Bass가 <척 & 래리>에서 결혼 축가를 부르는 밴드의 리더로 나온다. 이 친구가 왜 '의미있는 조연'인가 하면 얼마전에 자신이 게이라며 커밍아웃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척 & 래리>는 게이가 아닌 남자들이 게이 시늉을 하는 게 전부인 코메디 영화인가?

얼핏 보기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척 & 래리>는 게이를 좋지 않게 보던 남자들이 얼떨결에 게이 시늉을 하게 되면서 게이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메인테마다. 영화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게이를 희화했다'며 진짜 게이들로부터 비난을 사기에 꼭 알맞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척 & 래리>에는 '게이에게 손가락질 하지 마라', '게이라는 걸 숨기지 말고 떳떳하게 밝히라'는 메세지가 담겨있다.



게이들의 클럽 입구에서 종교단체들이 게이들을 혐오한다는 피켓시위를 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다. 여기서 아담 샌들러가 시위자 하나를 때려눕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다 후련하더라.

잠깐! 난 절대 게이가 아니다. 하지만, 난 게이들에게 대한 거부감이 없다. 비비고 달려든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거리를 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아는 게이들도 한 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게이 편을 든다는 건 아니다. 무조건 자기네들이 옳다며 설쳐대는, 입바른 소리 하기 좋아하는 집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내가 좀 어릴 때 게이에게 왜 동성애자를 택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여자와 결혼 해 딸까지 있는 남자였지만 이혼 한 뒤 남자와 함께 살았다. 그의 딸이 고등학생이었으니 당시의 내 나이와 비슷했다. 이혼한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그 다음 파트너가 남자라는 건 이해 안된다고 하자 그는 대뜸 '여자가 뭐가 그리 좋으냐'고 했다. 그가 여자들한테 무슨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여자들은 골치만 아프게 하는 빌어먹을 존재'라고 했다. 그렇게 여자가 싫어져서 남자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살아보니까 남자가 여자보다 낫더라고 했다. 이해가 아주 안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하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여자 대신 남자와 살기로 했고, 이젠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다는데 내가 옳다 그르다 할 권한이 있나?

<척 & 래리>를 보면서 이 사람 생각이 났다. 영화에선 부인과 이혼한 게 아니라 사별한 걸로 나오고, 그것으로 인해 래리가 여자를 싫어하게 된 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여자는 단 하나뿐'이라며 사별한 부인을 잊지 못하는 바람에 여자 대신 남자를 선택하게 된다는 줄거리가 그 때 그 남자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척 & 래리>는 아주 오랜만에 본 재미있는 코메디였다. 살짝 유치한 데도 꽤 있고 줄거리 자체도 뻔할 뻔자라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게이 스토리'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게이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소방관들이 갑자기 게이커플이 되어 어정쩡한 상황에 자꾸 놓인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웃기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게이가 아닌 남자 둘이 게이처럼 보이기 위해 손 붙잡고 다니고, 키스까지 해야하는 위기에 처하는 게 그래도 웃기던데? 게이들이 보기엔 하나도 힘들지 않은 거겠지만 게이가 아닌 남자들에겐 엄청난 결단력을 요구하는 행위들이다. <척 &amp;amp;amp;amp; 래리>는 계속해서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에 보나마나 뻔한 얘기인데도 웃기다.

<척 & 해리>는 게이들이 보더라도 전혀 기분나쁘지 않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영화다. 그렇다고, 게이들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섹시한 제시카 비엘과 후터스 걸들도 눈요깃 거리로 빼놓을 수 없다. 까놓고 말해, 난 게이가 아니라서 제시카 비엘과 후터스 걸들이 아직도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누가 뭐래도 난 여자가 더 좋으니까 뭐라 하지 마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