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7일 일요일

007 시리즈는 스파이 영화일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가 제임스 본드라는 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다: 007 영화 시리즈는 아무리 봐도 스파이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가 제임스 본드인데 007 시리즈는 스파이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다. 007 시리즈는 주인공만 스파이일 뿐 진정한 스파이 영화가 아니다. 현재까지 나온 21편의 007 영화 중에서 스파이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만한 영화를 꼽아보면 한 두개 될까말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숀 코네리의 1963년작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하나가 전부인 것 같지만 여기에 로저 무어의 1981년작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를 억지로 밀어넣을 수 있을지도.

그렇다면 나머지 19편의 007 영화는 뭐냐고?

'캐릭터 중심의 액션 히어로 무비'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티모시 달튼과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는 이언 플레밍 원작을 비교적 잘 살렸다는데 이들도 스파이 영화에 포함되지 못하냐고?

물론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 2006)'도 스파이 영화가 아니다. 티모시 달튼의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 - 1987)'는 스토리만 따지면 스파이 영화 축에 끼워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사일 나가는 자동차가 나오므로 제외. 달튼의 '라이센스 투 킬(License To Kill)'도 마찬가지다. 본드의 사적인 복수극이 전부일 뿐 'Counter-Intelligence'와는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지노 로얄'이나 '라이센스 투 킬', 조지 래젠비의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 1969)'은 '사실적'인 007 영화 아니냐고?

맞다. 사실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스파이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가젯을 사용하느냐', '액션씬과 스턴트가 얼마나 사실적이냐'가 아니다. 넓게 보면 첩보영화도 액션영화의 한 쟝르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첩보영화가 전부 액션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는 법도 없다.

그렇다면 뭐가 기준이냐고?

'실제 첩보세계와 얼마나 비슷해 보이냐'다.

007 시리즈엔 실제 첩보세계에 근접한 내용의 영화가 거의 없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부터 이쪽과 거리가 있다. 플레밍의 소설도 섹스와 폭력이 항상 따라다니는 젠틀맨 에이전트, 제임스 본드의 화려한 어드벤쳐가 전부일 뿐 실제 첩보작전을 연상시키는 '사실적'인 스파이 소설은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은 '어른들의 동화'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언 플레밍의 소설엔 미사일 나가는 자동차나 지구를 불태우는 인공위성 같은 건 없다.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이 '어른들의 동화'라고 불린다고 '반지의 제왕'이나 '수퍼맨', '배트맨'과 혼동해선 안된다. 실제 첩보세계와 거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판타지'라고 하는 게 전부다.

그러나, 6~70년대에 제작한 007 영화들을 보면 '다른 쪽'으로 생각하기에 딱 알맞다. 영화에서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는 직업만 스파이일 뿐 사실상 영국판 수퍼 액션 히어로가 됐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는 온갖 특수장치로 가득한 '본드카'와 수많은 가젯들을 사용하는 수퍼 액션 스파이 히어로가 됐고, 악당으론 '3차대전을 일으킨다', '뉴욕과 모스크바를 파괴한다', '전인류를 몰살시킨다'는 현실감 떨어지는 음모를 꾸미는 범죄조직들이 나왔다.

80년대 들어서는 지나치게 허구적인 것을 많이 줄여나갔지만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도로 70년대'가 됐다. 이렇다보니 사실적인 첩보세계는 고사하고 이언 플레밍의 원작을 제대로 살린 영화도 지금까지 나온 21편의 007 시리즈 중에서 몇 편 안될 정도다.

이런 영화 시리즈를 스파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곤란하다. 007 시리즈는 절대로 스파이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제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사실적인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플레밍의 원작과 분위기가 비슷해졌다는 의미지 실제 첩보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스파이 영화가 됐다는 건 아니다. 오는 11월 개봉할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도 마찬가지다.

결국, 007 시리즈는 진정한 스파이 영화 리스트에서 '아웃'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가 '진정한 스파이 영화' 리스트에 속하냐고?

COMING SOON!

댓글 4개 :

  1. 오오오 진짜 스파이영화가 뭔지 기대가 됩니다.ㅋ
    와~ 오공본드님의 글은 술술 읽혀지네요!ㅋ역시 오공본드님!
    정말 그러고보니 007은 스파이영화가 아니라 액션히어로영화가 맞는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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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이고, 실망하시면 어쩌나...ㅋㅋ

    스파이 영화에 대한 제 생각을 한번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근데 분량이 좀 많아서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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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도 역시 스파이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남자들을 위한 판타지 영화라고 보고 있고요.

    맞춤 수트, 멋진 자동차, 식탐에 색탐(??) '보ㅅ카 마아티니, 쉐큰 놋트 스토오드~' 로 상징되는 판타지 영화요.

    여자들이 '그깟 007 왜 봐?' 라고 물으면 저는 '너희들이 할리퀸 로맨스나 드라마에 집착하는 거랑 똑 같단다' 라고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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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맞습니다. 남자들을 위한 판타지죠.
    여자, 자동차 걱정 하지않고 산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죠.
    작업 걸지 않아도 여자가 붙고 자동차는 항상 탑클래스...
    여기에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과장된 무용담...ㅋㅋ
    그렇다고 자동차가 잠수함으로 변하고 미사일까지 나갈 필요는 없겠죠.
    이런 의미의 '판타지'에 열광하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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