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9일 수요일

'The Ruins' - 스티븐 킹에 낚이다!

'The Ruins' 소설을 읽고 영화까지 보게 된 건 이것 때문이었다:

"Best horror novel of the new century."
- Stephen King


▲스캇 스미스의 소설 'The Ruins'

스티븐 킹이 저렇게 극찬할 정도라면 소설이 재미있었겠다고?

스티븐 킹한테 영수증을 보내려다 말았수다.

뭐가 어떻길래 그러냐고?

우선 스토리부터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The Ruins'는 멕시코 휴양지에서 노닥거리던 미국인 남녀 대학생 제프, 에이미, 에릭, 스테이시와 독일인 마티아스, 그리스인 파블로 6명이 마야 유적지를 향해 출발하면서 시작한다. 마티아스의 남동생이 고고학자들과 함께 마야 유적지로 떠났는데 돌아오지 않자 직접 찾아나서기로 한 것.

일행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지만 마티아스 동생과 고고학자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순간, 정글에 사는 마야 원주민들이 총과 활로 무장한 채 나타나 일행을 포위하더니 산을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가까이 접근하기만 해도 죽이겠다는 태세다.

영문도 모른 채 정글속에 고립된 6명은 하는 수 없이 구조될 때까지 정글서 버틸 수밖에 없게 된다. 제한된 식량과 물로 버틸 수 있는 데 까지 버텨야 하는 것.

설상가상으로 이들이 캠핑중인 곳엔 덩굴로 사람을 덮쳐 살을 뜯어먹는 괴상한 식물까지 서식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고립됐다는 것을 눈치챈 6명은 문제의 식물이 유적 이외의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걸 막으려는 원주민들과 사람을 뜯어먹는 괴상한 식물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 식물에게 죽느냐, 원주민에게 죽느냐, 자살하느냐,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느냐가 달렸다.



스토리는 그런대로 그럴싸해 보인다고?

그럴지도...

처음엔 그런대로 흥미진진한 편이다. 하지만, 내용이 '공포'보다는 '서바이벌'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갈수록 TV 시리즈 '서바이버(Survivor)'처럼 변해 간다. 마야 유적이나 살을 뜯어먹는 괴상한 식물이 아니라 정글에 고립된 6명의 '서바이벌 스토리'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다.

덕분에 정글에 고립된 6명의 옥신각신하는 이야기가 전부가 돼버렸다. 사람을 뜯어먹는 괴상한 식물은 6명이 산속에 고립된 원인을 제공한 게 전부일 뿐 직접적인 공포의 대상도 아니며, 마야 유적의 미스테리는 뒤로 밀어놓고 서바이벌 스토리만 늘어놓다가 막바지에 가서 얼렁뚱땅 마무리 지어버리고 흐지부지 끝나버린다.

물론, 공포보다는 '조난자들의 심리'를 그리는 게 목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바이벌 이야기로 질질 끌다가 마지막에 가서 반짝하면서 허무하게 마무리 짓는 걸 보다보니 재미보다는 결과가 궁금해 매주마다 시청하게 되는 TV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Best horror novel of the new century'라고?

동의할 수 없다. 스티븐 킹에게 제대로 낚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책의 겉표지에 써있는 스티븐 킹의 한줄짜리 리뷰를 보지 않았더라면 책을 읽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새삼스럽게 한줄짜리 광고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더라.

여기까진 소설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영화버전은 어떨까?



캐릭터 역할이 뒤죽박죽 되고 엔딩이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스토리 자체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용이 소설보다 더 빈약해졌다. 소설엔 고립된 6명의 서바이벌 스토리라도 있지만 영화엔 이마저도 흐지부지 넘어간다. 빈약하고 짜임새 없는 스토리는 소설과 다를 게 없는데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서바이벌 스토리까지 건성으로 넘어가 버린 것. 이렇다보니 남은 것이라곤 6명의 아이들이 부상자 치료 목적으로 칼로 베고 자르고 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전부다.

소설을 쓴 스캇 스미스가 스크린플레이까지 맡았으니 스토리를 어정쩡하게 압축한 것도 스미스다. 서바이벌 스토리를 거의 모두 걷어내고, 캐릭터들의 역할을 바꿔치기 하고, 소설과 완전히 다른 엔딩을 만들어낸 것 역시 스캇 스미스의 작품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러닝타임 1시간반의 영화로 압축하기 위해 크고 작은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와 썰렁한 대사도 영화를 망치는 데 한몫 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작소설을 쓴 장본인이 직접 각색한 영화 치고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미(맨 왼쪽)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정글이나 무인도에 고립되어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한다는 내용의 소설과 영화는 한 둘이 아니다. 사람을 뜯어먹고 몸 속으로 침투하는 '무언가'가 나오는 공포영화도 쌔고 쌨다. 참신함이 떨어지더라도 스토리 짜임새와 완성도가 높다면 또다른 문제다. 하지만, 'The Ruins'는 이것도 아니다. 무엇으로 보나 평균미만이다. 소설의 줄거리가 서바이벌에서 미스테리로 옮겨갔더라면 영화 줄거리도 보다 흥미진진해질 수 있었겠지만 소설은 '서바이벌', 영화는 '칼부림'밖에 남는 게 없어 보인다.

마야 유적의 '비밀'과 '미스테리'를 기대한 사람들은 'The Ruins'를 비켜가는 게 좋을 것이다. 얼핏보면 그쪽으로 보이지만 '비밀'과 '미스테리'와는 무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스토리 하나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람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The Ruins'보다 훨씬 나은 영화들이 많으니까.

굳이 영화와 소설 중 나은 것 하나를 꼽으라면 소설이라고 해야겠지만 어지간하면 둘 다 건너뛰시구랴.

댓글 2개 :

  1. ㅋㅋㅋ
    건너뛸 영화 한 편 추가요~

    보신다고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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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분위기 낸다고 아주 오래된 변두리 극장에서 봤거든요.
    철커덩 소리 나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극장...ㅋㅋ
    그런데도 안되더군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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