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6일 화요일

'나잇 앤 데이', 역시 톰 크루즈 였다

금년들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벌이는 뒤죽박죽 액션 코메디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저라드 버틀러(Gerard Butler)와 제니퍼 애니스턴(Jennifer Anniston)의 '바운티 헌터(The Bounty Hunter)', 애쉬튼 커쳐(Ashton Kutcher), 캐더린 하이글(Katherine Heigl)의 '킬러스(Killers)'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톰 크루즈(Tom Cruise)와 카메론 디아즈(Cameron Diaz)까지 '나잇 앤 데이(Knight & Day)'로 이 그룹에 뛰어들었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의 신작, '나잇 앤 데이'는 수퍼 스파이 로이 밀러(톰 크루즈)가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준(카메론 디아즈)과 함께 CIA와 범죄집단에 쫓긴다는 줄거리의 액션 코메디 영화다. 줄거리는 더이상 길게 설명할 게 없을 정도로 상당히 '없다'. 하지만 이런 류의 가벼운 영화들이 다 비슷비슷하므로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그런데 잠깐!

이 영화도 개봉한 지 조금 되지 않았냐고?

북미지역에서 6월25일 개봉했으니 1주 조금 넘었다. 월드컵을 보느라 포스팅이 늦은 것 뿐이지 '나잇 앤 데이'도 개봉 첫 째주에 가서 봤다.



그건 그렇고...

자 그럼 오랜만에 스파이 캐릭터로 돌아온 톰 크루즈는 어땠을까? '미션 임파시블 3(Mission Impossible 3)' 이후 스파이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여전히 이 양반은 'Cool & Handsome'이었다. 로맨틱 코메디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달콤한 톰 크루즈의 매력이 영화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카메론 디아즈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나잇 앤 데이'에선 크루즈가 디아즈보다 더 섹시했다.

크루즈가 젊었을 적 - 아니 지금도 젊으니 '어렸을 적'으로 바꿔서 - 그가 어렸을 적에도 핸섬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약간 불량해 보이기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불량끼는 사라지고 갈수록 더욱 멋있어지는 것 같다. 참 부러운 양반이다.



그러나 톰 크루즈를 빼곤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는 아니었다.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두 남녀의 좌충우돌 로맨틱-액션-코메디영화라는 것부터 그리 신선하지 않았으며, 유머는 풍부한 편이었으나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몇몇 장면들이 눈에 거슬렸다.

액션 역시 특별하다 할만 한 게 없었다. 톰 크루즈가 모처럼 밝고 달콤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에 출연해 변함없는 미모(?)를 과시하는 데만 촛점을 맞췄을 뿐 액션은 나중이었다. 그래도 액션은 비교적 풍부하고 나름 화끈한 편이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으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나잇 앤 데이'를 보면서 어떤 영화들이 떠올랐을까?

제일 먼저 생각난 영화는 '터뷸런스(Turbulence)' 였다. '비행기'와 살짝 맛이 간 듯한 '싸이코' 캐릭터가 나온다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바로 이것이다. 결코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레이 리오타(Ray Liotta)의 싸이코 시리얼 킬러 연기는 참 인상적이었다.



'나잇 앤 데이'의 톰 크루즈도 이에 못지 않았다. 물론 레이 리오타처럼 싸이코 시리얼 킬러 역할은 아니었지만, 수퍼 스파이 로이 밀러(톰 크루즈)가 기장들을 포함해 여객기 탑승객 전원을 죽인 뒤 태연한 표정으로 칵테일을 마시며 준(카메론 디아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모습은 '터뷸런스'의 레이 리오타 못지 않았다.



'나잇 앤 데이'가 스파이 테마의 액션 코메디 영화였기 때문일까?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도 비슷한 데가 여러 군데 눈에 띄었다.

우선 1974년작 제임스 본드 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부터 시작해 보자.

첫 째로 꼽을 수 있는 건 '새로운 에너지'다. '나잇 앤 데이'에서는 로이 밀러(톰 크루즈)와 무기밀매상들이 상당한 성능의 배터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데,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선 태양 에너지와 관련된 솔렉스 에지테이터(Solex Agitator)라는 장치를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솔렉스 에지테이터

둘 째는 '섬'이다. '나잇 앤 데이'엔 로이 밀러(톰 크루즈)가 은신처로 사용하는 섬이 나오는데,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도 스카라망가(크리스토퍼 리)의 섬이 나왔다.


▲'나잇 앤 데이'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섬에 '수영복 차림의 미녀'가 등장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나잇 앤 데이'에선 카메론 디아즈가 비키니 차림으로 나왔고,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선 본드걸, 안드레아(마우드 애덤스)가 수영복 몸매를 뽐냈다.


▲'나잇 앤 데이'

마우드 애덤스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선 서포팅 본드걸 역으로 출연하더니 1983년작 '옥토퍼시(Octopussy)'에선 리딩 본드걸, 1985년작 '뷰투어킬(A View to a Kill)'에선 샌프란시스코 엑스트라로 출연한 '제임스 본드 스토커'로 유명한 배우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그 다음 제임스 본드 영화는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주연의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다. 로이 밀러(톰 크루즈)와 준(카메론 디아즈)이 함께 모터싸이클을 타고 도주하는 씬은 '투모로 네버 다이스'에서 빌려온 게 분명했다.

이건 워낙 명명백백하기 때문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하다. 친절하게도 톰 크루즈는 '투모로 네버 다이스'에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이 입었던 것과 비슷한 파란색 셔츠까지 입고 나왔다.


▲'나잇 앤 데이'의 모터싸이클 씬


▲'투모로 네버 다이스'의 모터싸이클 씬

지붕 달리기도 빠지지 않았다. '나잇 앤 데이'에서도 지붕 위에서 벌어지는 추격씬이 빠지지 않고 나왔다.

유행이라니까...

'나잇 앤 데이'의 루프탑 체이스 씬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2008년작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의 루프탑 체이스씬과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본드가 볼리비아의 바에서 CIA 부대에 쫓기는 씬을 합쳐놓은 듯 했다. 옥상을 달린다는 점, 로이 밀러(톰 크루즈)의 차림새 등은 '콴텀 오브 솔래스'의 루프탑 체이스씬과 비슷했지만 CIA 부대에게 쫓긴다는 설정은 볼리비아 바 추격씬을 닮았다.

먼저 '나잇 앤 데이'부터 보자.




▲'나잇 앤 데이'의 루프탑 체이스 씬

다음은 '콴텀 오브 솔래스'.


▲'콴텀 오브 솔래스'의 루프탑 체이스 씬




▲'콴텀 오브 솔래스'의 볼리비아 바 추격씬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자.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제이슨 본/맷 데이먼 패로디 같지 않수?



그렇다면 결론은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는 것이냐고?

그렇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살짝 싸이코 기질이 보이는 코믹한 캐릭터도 맘에 들었고, '나잇 앤 데이'가 스파이 테마의 액션 코메디 영화인 만큼 제임스 본드 오마쥬도 문제될 게 없었다. 원래 다 그런 거니까. '미션 임파시블 시리즈로 유명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에 제임스 본드 오마쥬가 나와서 인지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만약 톰 크루즈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톰 크루즈가 빠진 '나잇 앤 데이'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좋게 봐야 평균 수준인 영화를 볼만 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였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가 없었다면 극장에 가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영화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하나의 흔해빠진 스케일이 작은 로맨틱 코메디 영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특히 '나잇 앤 데이' 바로 이전에 개봉했던 비슷한 성격의 영화 '킬러스(Killers)'로 이미 크게 실망을 한 이후였으므로 더욱 조심스러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잇 앤 데이'는 전적으로 톰 크루즈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다고 할 수 있다. 크루즈가 나오는 만큼 그를 믿고 극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잇 앤 데이'는 지금까지 금년에 본 영화중에서 속편이 기대되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그렇다. '속편'이라고 했다. 눈에 띄는 몇 가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멋진 휴양지들을 조금 더 자주 보여준다면 '나잇 앤 데이' 속편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오락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매우 파워풀한 시리즈가 되긴 아무래도 힘들겠지만 왠지 한 편의 영화로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속편이 기대될 정도라면 이번 영화도 제법 맘에 들었단 얘기냐고?

그렇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의 반복이 전부인 새로울 게 거의 없는 영화였는데도 '식상하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고, 스토리도 있는 둥 마는 둥이었는 데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던 걸 보면 매력있는 영화가 분명한 듯 하다. 이 정도면 2시간동안 편안하게 웃고 즐기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임스 본드 시리즈나 FOX의 TV 시리즈 '휴먼 타겟' 등을 좋아하는 영화팬들은 '나잇 앤 데이'를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입맛에 비교적 잘 맞는 영화일 테니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썬 금년 여름철 시즌 영화 중 '나잇 앤 데이'가 제일 나았던 것 같다. 엄청난 걸 기대할 건 없었어도 이 정도면 볼만 했으니까.

'나잇 앤 데이'는 마지막까지 달콤했다. 영화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다시 궁뎅이를 착륙시키게 만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미국의 히팝(?)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가 부른 엔드 타이틀 송 'Someday'가 바로 그것이었다. 최근에 나온 스파이 테마의 로맨틱 코메디 영화 주제곡으론 Bitter Sweet이 부른 '듀플리시티(Duplicity)' 엔드 타이틀 송 'Being Bad'가 최고였는데 아무래도 이번에 순위가 바뀔 것 같다. 내가 원래 하우스 뮤직에 죽고살지 않수?

'나잇 앤 데이' 오리지날 사운드트랙도, 싱글도 아직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썬 이렇게밖에 달리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사운드트랙 앨범은 다음주 발매예정으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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