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개봉한 두 편의 80년대 영화 중 어느 것을 볼까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중국판 카라테 키드'보다는 'A 특공대'가 나을 것 같았다. 아무리 하이브리드가 유행인 시대라지만 중국과 카라테가 웬 말이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카라테 키드'는 왠지 내키지 않았다.
잠깐!
그런데 개봉한 지 거의 한달이 되어가는 오래된(?) 영화 얘기를 왜 이제 와서야 하냐고?
이건 내 잘못이 절대 아니다. 누가 월드컵을 6월에 하라고 했수?
'A 특공대'는 같은 날 개봉한 '카라테 키드'와 함께 월드컵 때문에 흥행에 차질이 생길 지 모른다는 우려를 샀던 영화 중 하나였다. 축구 인기가 별로 없는 미국에서 웬 월드컵 걱정이냐는 생각도 들지만, 미국의 히스패닉 인구를 감안하면 또다른 얘기가 된다.
그래서 결론은 월드컵 때문에 이 영화를 이제서야 봤다는 거냐고?
절대 아니다. 개봉 당일은 아니었지만 개봉한 첫 째주에 가서 봤다. 영화를 보고 블로그에 끄적이는 짓을 미룬 것 뿐이지 영화는 그 때 가서 봤다.
증거를 대라고?
여기 있다. 이 영화가 북미지역에서 6월11일 금요일에 개봉했는데, 이틀 뒤인 13일에 봤다는 증거다.
그런데 영화를 본 지 거진 한달이 지났는데 제대로 기억이나 나냐고?
솔직히 잘 안 난다. 그러니까 더이상 따지지 마시구랴. 다만 영화를 본 직후에 살짝 메모해 둔 게 있으므로 이것을 대충 정리해 보련다.
일단 사진을 한 장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면서 시작하자.
'A-특공대'가 80년대 인기를 끌었던 NBC의 TV 시리즈를 기초로 했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있을 것이다. 80년대 TV 시리즈를 기억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그 때 그런 게 있었다'는 정도는 이쪽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있을테니 말이다.
나는 TV 시리즈 'A-특공대'가 한창 인기있었을 때엔 한국에 있었는데, 아주 늦은 시간대에 방송되었다는 것 정도는 기억이 난다. 뚜렷하게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지만, 그래도 주제곡과 캐릭터 정도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화 소식은 처음부터 그리 섹시하게 들리지 않았다. 아일랜드 배우 리앰 니슨(Liam Neeson)이 주인공, 하니발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앰 니슨이 멋진 배우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A-특공대'의 하니발 역으로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보나마나 유치한 영화일 게 뻔한데 리앰 니슨이 거기에서 무엇을 하는 거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리앰 리슨이 없었더라면 큰일날 뻔 했다. 항상 시거를 물고다니는 하니발 역에 아주 잘 어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마저 없었더라면 정말로 웃기는 영화가 될 뻔 했으니까. 리앰 리슨이 출연했는데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유치찬란한 영화가 되었는데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어땠겠는지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그래도 세계 여러 곳을 두루 방문하는 전형적인 스파이 스릴러 포뮬라를 따라가기로 한 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새로울 건 없었어도 'A-특공대'와 매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유치한 유머에서부터 시작했다. 유머가 풍부한 영화가 되리라는 것은 예상했던대로 였지만 수준 낮은 아동틱한 유머 때문에 영화가 너무 유치해 졌다.
그래도 딱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건 머독(샬토 코플리)이 헬리콥터 프로펠러를 잡고 빙빙 돌면서 "You spin me round and round..." 노래를 부를 때 였다.
머독 역을 맡은 코플리는 '디스트릭트 9(District 9)'에서 남아프리카판 보랏(Borat)처럼 보이는 메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다. '디스트릭트 9'을 보면서 코플리는 공상과학 영화보다 코메디 영화에 출연하면 아주 잘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A-특공대'에서 가장 골때리는 캐릭터 역할을 맡았다.
영화에서 머독이 프로펠러를 잡고 돌면서 불렀던 노래는 바로 이것이다.
유치한 유머에 이은 또다른 문제점은 말도 안 되는 터무니 없는 액션씬이었다. 사실적인 액션과 스턴트가 유행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메시지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등과 같은 터무니 없는 액션으로 가득한 영화에 단련된 상태인 데다 제작진이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스타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2010년에 개봉한 영화인 데도 80년대 구닥다리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즘엔 90년대에 제작된 영화만 봐도 옛날 영화 티가 나는 판인데 'A-특공대'는 2010년 영화이면서도 90년대도 아니고 8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였다. 영화가 엉성하고 우스꽝스러운 게 한참 전에 만들어진 클래식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80년대에 유행했던 인기 TV 시리즈를 기초로 한 영화인 만큼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80년대 액션영화의 향수를 되살리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80년대 영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80년대 영화를 보고싶으면 실제로 80년대에 제작된 영화를 찾아보고 말지 80년대 영화처럼 보이는 2010년 영화를 보고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A-특공대'가 이것 저것 따질 것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단순무식한 액션-코메디 오락영화라는 점을 놓친 건 아니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2010년 영화팬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했다. 터무니 없는 액션과 유치한 유머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바보같은 유머와 과장된 액션의 경쾌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2010년 영화답게 세련되게 만들지 못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그래도 기대했던 것 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트레일러만 봤을 때엔 왠지 아주 형편없는 영화인 것 같았는데 막상 보니 그렇게 지독하지는 않았다. 액션, 유머, 줄거리 모두 과거에 머물러 있는 촌쓰러운 영화였던 것은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A-특공대'를 영화로 옮기면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들었다면 멋진 프랜챠이스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첫 번째 영화를 워낙 바보처럼 만든 바람에 좋은 기회를 날린 듯 하다. 제대로만 만들면 'A-특공대'도 제법 근사한 액션영화 시리즈가 될 것 같은데 이번 영화로는 도대체 미래가 안 보인다.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