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6일 일요일

'The Adjustment Bureau', 아줌마들을 위한 종교-로맨스 드라마였다

맷 데이먼(Matt Damon)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말과 행동을 마치 정치인인 마냥 하고 다니더니 결국엔 정치인이 되었다.

여기서 잠깐! "그녀석이 진짜로 정치를 한단 말이냐"며 충격받았을 사람들을 위해 밝혀두는데, 영화상에서의 얘기일 뿐이다.

맷 데이먼이 그의 최신 영화 'The Adjustment Bureau'에서 맡은 역은 뉴욕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젊은 정치인, 데이빗 노리스. 오바마와 이미지가 비슷한 캐릭터다. 하지만 정치 드라마는 아니다. The Adjustment Bureau'는 미국의 유명한 SF 소설가 필립 K. 딕(Phillip K. Dick)의 숏 스토리 'Adjustment Team'에서 영감을 얻은 SF 스릴러다.

하지만 원작에 충실한 영화는 아니다. 첫 째, 원작의 주인공은 영화와 달리 정치인이 아니다. 냉전종식 메시지가 깔려있었지만 주인공이 정치인은 아니었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의 직종, 이름 등도 모두 원작과 차이가 난다. 스토리도 매우 기초적인 컨셉만을 제외하곤 원작과 차이가 크다. 필립 K. 딕의 원작소설이 몇 페이지 안 되는 숏스토리다 보니 영화로 옮기면서 새롭게 보태진 파트가 거의 전체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영화에선 왜 주인공을 정치인으로 설정했을까? 맷 데이먼이 정치인 역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였을까?

그랬을 수도 있어 보인다. 만약 데이먼이 진짜로 정치에 입문하면 미국에서 탈출할 생각을 진지하게 해야 할 것 같지만, 왠지 이 친구가 영화배우를 집어치우고 정치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래서 였는지, 맷 데이먼의 정치인 연기가 아주 그럴싸해 보였다. 영화에서 예행연습을 한 게 아닌가, 아니면 '정치인 맷 데이먼'에 대한 영화관객들의 반응을 한 번 떠보려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설을 하면서 젊은층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고, 리버럴 성향의 케이블 뉴스 채널 MSNBC와 CNN, 존 스튜어트(Jon Stewart)의 데일리 쇼(The Daily Show) 등과의 인터뷰 씬은 영화에 나오는 반면 보수 성향 폭스 뉴스의 자매 회사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는 데이빗 노리스를 궁지에 몰아 넣는 폭로 기사를 터뜨라는 역할을 맡은 것 또한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맷 데이먼 영화'라는 게 대번에 느껴졌다.

그렇다면 영화의 줄거리는?

젊은 정치인 데이빗 노리스(맷 데이먼)은 우연한 기회에 'The Adjustment Bureau'라는 조직의 존재를 알게 된다. 'The Adjustment Bureau'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플랜을 미리 짜놓고 모두가 그들이 만든 플랜에 맞춰 살아가게끔 콘트롤을 하는 조직이다. 그들의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전 인류의 삶을 모니터링한다. 'The Adjustement Bureau'는 일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스럽게 사람들을 콘트롤하지만, 조직원 중 하나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데이빗 노리스에 의해 발각되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The Adjustment Bureau'는 자신들의 존재를 누설하면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겠다고 노리스에게 경고하면서, 우연히 마주친 여자 무용수 엘리스(에밀리 블런트)와의 관계도 그들이 만든 플랜과 어긋난다며 더이상 만나지 말 것을 강요한다. 노리스는 그들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리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엘리스를 또 만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만나지 않도록 플랜이 짜여있는 이들 둘이 또 만나게 되자 'The Adjustment Bureau'에 비상이 걸린 것. 이들은 노리스와 엘리스를 떼어놓기 위해 방해공작을 벌이지만, 엘리스에 푹 빠져버린 노리스는 이들의 방해를 피하며 엘리스와의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



여기서 잠깐! 아니 갑자기 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얘기? 왠지 줄거리가 점점 산으로 가는 것 같다고?

예고편에서는 비밀스러운 조직에 쫓기는 SF 액션 스릴러 같았지만, 영화를 보니 실제로는 러브 스토리였다. 러브스토리는 필립 K. 딕의 원작엔 나오지도 않지만 영화는 노리스와 엘리스의 사랑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럼 예고편에서 비밀스러운 조직처럼 보였던 'The Adjustment Bureau'는 어찌 되었냐고?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The Adjustment Bureau'라는 조직이 악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테므로, 영화에서 어떻게 악당으로 그릴 지 궁금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사람들의 삶을 콘트롤하는 위험한 조직으로 바꿔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전부 틀렸다. 그들이 고작 하는 것이라곤 노리스와 엘리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이 영화에 SF 버전 제이슨 본 영화를 기대하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The Adjustment Bureau'는 제이슨 본 시리즈보다 브래드 핏(Brad Pitt), 케이트 블랜칫(Kate Blanchett) 주연의 판타지 로맨스 영화 '벤자민 버튼(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에 보다 가까운 영화다. 미국 소설가의 숏스토리를 기초로 했다는 점, 원작소설에 나오지 않는 러브스토리가 메인을 차지했다는 점, 여주인공이 무용수라는 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등등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였는지, 마치 맷 데이먼 버전의 '벤자민 버튼'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문을 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부분은 영국 소설가 필립 풀맨(Pillip Pulman)의 어린이용 소설 'His Dark Materials' 제 2권에서 'The Subtle Knife'라는 것을 이용해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을 만들었던 것과 겹쳐졌다. 어떻게 보면 '인셉션(Inception)'에 나온 꿈의 세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The Subtle Knife'와 더 비슷해 보였다.

그렇다. 이 영화에서 참신한 부분이라곤 비밀스러운 조직이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콘트롤한다는 것 하나를 제외하곤 없었다.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를 비롯한 출연진의 연기는 물론 훌륭했다. 그러나 스크립트는 평균 수준 이하였다. 시작은 좋았으나 생뚱맞은 노리스와 엘리스의 러브스트리가 시작하면서 웃겨지기 시작하더니 끝내 거기서 회복하지 못했다. 액션, 서스펜스, 미스테리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고리타분한 러브스토리가 전부였다. 러브스토리 자체부터 그리 신통치 않았다. 로맨스 파트가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었는데도 억지로 끼워넣은 듯 어색해 보였고, 노리스와 엘리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서도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슬픈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 같았는데 콧물도 나오지 않았다.

한가지 눈에 띄었던 것은 'FATE vs FREE WILL'이라는 영화의 테마다. 원작소설에선 'FATE'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는데, 영화는 'FATE'과 'FREE WILL'이 충돌을 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전 인류의 삶을 콘트롤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The Adjustment Bureau'를 천사로, 이들의 보스로 알려진 '체어맨'을 신이라고 하고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신의 뜻에 의해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모든 인간은 자유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영화감독 조지 놀피(George Nolfi)와 주연을 맡은 맷 데이먼 모두 캐톨릭 신자로 알려졌다.

물론 나름 흥미진진한 테마인 것은 사실이었다. 관객들에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려 한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테마와 메시지는 그럴싸했는지 몰라도 영화 자체는 싱거운 SF 영화에 3류 러브스토리를 결합시킨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종교나 소프 오페라(Soap Opera) 같은 것에 큰 관심을 보이는 중년 아줌마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지 몰라도 '본 콘트롤러'를 기대했던 일반 영화관객들에겐 별다른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일반 영화관객들에게 전달된 영화의 메시지는 'FATE vs FREE WILL' 같은 게 아니라 'WHAT THE FUCK'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도중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토리에 흥미를 잃긴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 정도는 됐다. 영화가 짧았던 덕분이다. 하지만 만약 런타임이 길었더라면, 만약 맷 데이먼과 에밀리 블런트가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까지 꾹 참고 집중해서 보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 이후에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하나같이 다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린 존(Green Zone)'은 흥행참패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와 함께 한 '히어애프터(Hereafter)'도 기대에 못 미치더니, 최신작 'The Adjustment Bureau'마저도 평균 수준을 살짝 넘어서는 수준의 영화에 불과했으니까. 왜 맷 데이먼이 제이슨 본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지 이해가 간다.

제이슨 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가지 재미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The Adjustment Bureau'에서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흔적이 엿보였다는 사실!

여러 가지 따지지 않고, 아래에 있는 이미지에서 보이는 것들만 꼽아보겠다.



맷 데이먼의 복장은 2008년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입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매우 흔하고 평범한 차림새이므로 누가 누구를 따라했다고 하기 힘들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맷 데이먼 옆에 드레스 차림의 에밀리 번트까지 서 있는 게 왠지 '콴텀 오브 솔래스' 포스터와 비슷해 보인다. 맷 데이먼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비슷한 쟝르의 액션 스릴러, 제이슨 본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맷 데이먼이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가 본드걸/올가 쿠릴렌코 역을 맡았다고 치자. 하지만 '콴텀 오브 솔래스' 포스터에 있는 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반면 'The Adjustment Bureau'의 에밀리 블런트의 것은 붉은색이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올가 쿠릴렌코는 '힛맨(Hitman)'과 '맥스 페인(Max Payne)'에서 연속으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건물에 비쳐진 모자를 쓴 사나이의 그림자 또한 제임스 본드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 바로 '골드핑거(Goldfinger)'다. 모자가 트레이드마크인 킬러, 오드잡(Oddjob)이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를 때려눕힌 뒤 벽에 그림자가 비춰지는 씬이 나오는데, 'The Adjustment Bureau'의 포스터와 왠지 비슷해 보였다.




아니 그런데 왜 갑자기 제임스 본드 영화와 비교를 하는 거냐고?

맷 데이먼은 이렇게 해줘야 좋아하거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기분 좋으냐, 맷 데이먼???

댓글 8개 :

  1. 맷 데이먼의 영화선택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네요.
    맷 데이먼 예전에 이미지 괜찮았었는데...
    괜히 제임스 본드에 대해서 열폭하는 것 같아 요즘은 별로 입니다.^^
    굳이 본 시리즈 찍을때 본드 영화 깍아내리지만 안았어도 이미지 괜찮았을텐데, 개인적으로 요즘은 별로네요~^^

    답글삭제
  2. 전 용서(?)는 했지만 잊지는 않았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반사회적인 제국주의자니 하는 웃기는 소리만 안 했으면 넘어갈 수 있었죠.
    비판하는 건 좋은데 단어를 선택하는 싸가지(?) 같은 게 좀 거슬리더라구요...ㅋ
    별 것 아닌 픽션 캐릭터 논하면서 거창하게 늘어놓는 게 보기에 안 좋았습니다.
    제가 이런 타잎의 인간들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딱 생긴대로 논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ㅋㅋ
    전 데이먼의 이런 면만 제외하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데이먼의 망언(?)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 흥행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죠.

    답글삭제
  3. 날카롭게 꼬집음에 적지 않이 맷 데이먼도 당황할 것 같은데요? ㅋㅋㅋ
    맷 데이먼 좋아하는데, 계속 저런 영화만 하면 안되는데요. 아~ 심각하네요. ㅎㅎㅎ

    답글삭제
  4. 맷 데이먼 욕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젠 이 녀석 얼굴 보면 좀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요...ㅋㅋ
    그래서 맷 데이먼 나오는 영화는 어지간하면 꼬박꼬박 극장에서 봐주고 있습니다.
    근데 CJ님 말씀처럼 데이먼의 영화선택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잘 고르면 주연상 후보에도 오를만 한 친구인 것 같은데...

    답글삭제
  5. 예고편 보면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였군요..;;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펼쳐지면 좋았을텐데.. 너무 로맨스쪽으로..;

    답글삭제
  6. 코믹할 정도로 싱거운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남녀의 관계에 대해 지지고 볶는 게 전부다 보니 뻔한 얘기가 돼가더라구요.

    답글삭제
  7. imdb 평점이 좀 높길래 봐줬더니 오랜만에 로맨스 영화 봐준 꼴이 되었네요.ㅎ 생각보다 종교적인 내용이 암시된 건 나중에 눈치챘지만 착한 엔젤역할을 맡은 극중 해리가 혼자서 흑인인 건 의미가 있는건지 좀 모르겠고 해서 위키에 보니 judeo-christian 과 관련되었다는데 이건 더욱 모르겠네요.-_-; 여튼 멧 데이먼처럼 뛰어다녀야 하는 캐릭터는 앞으로 60살 먹을 때까지 뛰어다녀야 하겠죠? ㅎ

    답글삭제
  8. 다른 의미는 잘 모르겠구요,
    원작소설에선 졸다가 타이밍을 놓친 게 검정색 꼬리를 가진 개였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 개가 해리라는 흑인 천사로 바뀌었고 비중도 훨씬 커졌더라구요.

    맷 데이먼이 쫓기는 걸 아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짜릿짜릿한가봐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