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7일 일요일

'혹성탈출' 프리퀄, 남는 건 원숭이밖에 없었다

'플래닛 오브 에입스(The Planet of the Apes)'라는 제목을 보면 지난 60년대 찰튼 헤스턴(Charlton Heston) 주연의 클래식 SF 영화 '혹성탈출'이 생각난다. 영문 원제는 똑같이 'The Planet of the Apes'이지만 한국에선 '혹성탈출'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성탈출'은 찰튼 헤스턴 주연의 첫 번째 영화 이후로 여러 편의 속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SF 쟝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 지금까지 본 '혹성탈출' 영화는 찰튼 헤스턴 주연의 첫 번째 영화 하나가 전부인 듯 하다. 몇 해 전에 리메이크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별로 흥미가 끌리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었다.

그런데 2011년 또다른 '혹성탈출' 영화가 개봉했다. 이번엔 리메이크가 아니라 인간 수준의 지능을 지닌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프리퀄이었다.

제목은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제목은 좀 길다. 하지만 줄거리는 무척 간단하다. 그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주인공 윌(제임스 프랭코)'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할 약물 개발 연구를 하는 과학자다. 그런데 그가 개발 중이던 약물이 알츠하이머 환자에 실제로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실험용으로 투여받은 침팬지까지 인간 수준의 높은 지능을 가진 '스마트몽키'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태어난 '스마트몽키' 씨저(앤디 서키스)까지 이 사실을 알아낸다. 연구소의 실험용 원숭이의 새끼로 태어난 씨저는 얼떨결에 윌에 의해 입양되는데, 약물 덕분에 자신이 다른 원숭이들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기까지면 어쩌다가 인간 지능 수준의 똑똑한 원숭이들의 세상이 되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스마트몽키'가 어떻게 탄생되어 퍼져나가게 되었는지 그럭저럭 설득력있게 설명된 듯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스토리에 있었다. 스토리라인이 엉성하고 억지스러운 데다 클리셰 천지였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가 프리퀄인 만큼 '스마트몽키'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게 주목적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라이스 오브 플래닛 오브 에입스'의 스토리라인은 너무 얼렁뚱땅이었다. 윌(제임스 프랭코)이 실험실에서 태어난 원숭이 새끼를 입양하고(이 때 갑자기 '그렘린' 생각이 나더라), 윌이 원숭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가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는 여자 수의사 캐롤라인(프리다 핀토)과 바로 눈이 맞고, 윌이 실험용인 위험한 약물을 몰래 집에 가져 올 뿐만 아니라 높은 지능을 가진 원숭이 씨저를 연구소 앞에까지 데려가 그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설명해주면서 사실상 사건을 키우는 등등 억지로 짜맞추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클리셰로 대충 메꾼 티가 여러 곳에서 심하게 났다.

물론 이런 쟝르의 영화에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무성의해 보였다. 제작진이 계획했던 프리퀄에 간신히 어울릴 정도의 스토리만 건성으로 준비하는 데 그쳤을 뿐 스토리에 전혀 정성을 들인 것 같지 않았다. "스토리는 필요없다. 유명한 제목과 CGI 원숭이만으로 흥행성공할 수 있으니까"라는 식이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신경써서 스토리를 다듬었더라면 그런대로 괜찮은 프리퀄이 되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정성을 들여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거칠게 튀어나와있는 부분들을 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다듬었더라면, 비록 뻔할 뻔자이긴 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영화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개봉한 새로운 '혹성탈출'은 프리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을 이용해 무성의하게 만든 티가 심하게 나는 영화였다. 별 것 없는 줄거리더라도 나름 조리있고 흥미진진하게 풀어갔다면 충분히 볼 만 할 수 있었지만, '혹성탈출' 프리퀄의 스토리텔링 파트는 영 실망스러웠다.

스토리 다음으로 실망스러웠던 건 프리다 핀토(Freida Pinto)다. 주인공 윌 역을 맡은 제임스 프랭코(James Franco)는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을 맡았을 때 보다는 훨씬 나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윌(제임스 프랭코)의 애인이자 여주인공 격인 수의사 캐롤라인 역을 맡은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스타 프리다 핀토는 영화 내내 어색해 보였다. 그녀가 맡은 캐릭터가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은 캐릭터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프리다 핀토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3D 시각효과는 볼 만 했다. 비현실적인 판타지 캐릭터가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었기 때문인지 CGI 원숭이의 표시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시각효과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 시리즈에서 골룸 모션캡쳐를 맡았던 영국배우 앤디 서키스(Andy Serkis)가 원숭이 씨저의 모셥캡쳐를 맡아 열연(?)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서키스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 모션캡쳐로 "모션캡쳐 배우에게도 연기상을 줘야하느냐"는 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양반이다.

그렇다. 역시 남는 건 원숭이밖에 없었다. 녀석 참 핸썸하게 생기지 않았수?



물론 이번에 개봉한 '혹성탈출' 프리퀄에 대단한 기대를 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고만고만한 수준의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혹성탈출'은 딱 그런 레벨의 영화였다. '혹성탈출'은 미디오커(Mediocre) 수준 이상이 결코 되지 않는 영화였다. 스토리라인을 조금 다듬었더라면 사정이 달랐을 수도 있지만, '혹성탈출' 프리퀄은 징그러울 정도의 평범함밖에 느껴지지 않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속편을 구상중인 듯 하다. 이번 프리퀄로 '혹성탈출'을 리부팅해서 앞으로 계속 시리즈화 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다음 번 영화의 줄거리가 재앙영화 쪽으로 기울 게 빤히 보이다 보니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 이번 프리퀄이 아주 맘에 들었다면 또 다른 얘기였을 수도 있지만, 다음 번 영화도 뻔할 뻔자 줄거리의 미디오커 SF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부팅되는 시리즈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으니 후속편이 별로 기대가 안 될 수밖에...

댓글 12개 :

  1. 재미가 별로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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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혹성탈출 재밌게 봤던터라 기대 많이 했었는데, 원작을 좋아했던 사람에게 실망을...
    그래픽이 화려하진 않아도 스토리가 탄탄했으면 좋았을텐데, 많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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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뭔가 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노력을 한 것 같긴 한데요,
    재미가 없더라구요...^^
    나름 준비는 한 것 같은데 노력을 별로 안 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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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임스 프랑코. 지적인 이미지와 반항적인 이미지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괜찮게 생각하는 배우인데 영화가 안좋았군요.
    나중에 티비에서 할때나 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올해 기다려지는 작품은 역시 M:I-4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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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도 제임스 프랭코가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혹성탈출은 좀 재미가 없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궁금한 영화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존 르 카레의 Tinker, Tailor, Soldier, Spy...
    냉전시대 배경의 몰헌팅 스파이 스릴러가 어떻게 완성됐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에선 11월달엔가 개봉한다는데, 기다려집니다.
    모사드 에이전트의 얘기를 다룬 The Debt도 기다려지구요.
    제임스 본드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샘 워딩턴의 스파이 연기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제가 봤을 땐 그 친구는 약간 아닌 것 같지만 제 리스트에 올라있는 배우 중 하나입니다.
    The Debt은 미국서 8월말 개봉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안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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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앗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개봉하는군요.
    조지 스마일리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겠네요.
    찾아보니 개리 올드맨이 조지 스마일리로 나오는군요.
    기대가 됩니다.^^

    The Debt는 헬렌 미렌도 나오는 군요. 샘 워딩턴은 저도 예전에 얘기를 들었는데, 좀 긴가민가 합니다. 역시 이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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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알렉 기네스 vs 개리 올드맨인가요?^^
    곧 개봉할 TTSS가 TV 시리즈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The Debt도 제법 괜찮을 것 같습니다.
    두 편 모두 스파이 영화라는 점과 유명배우들이 하나 가득이라는 공통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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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그런데 당췌 imdb.com에 user rates은 왜 높은거죠? imdb가 못믿을만한건지 평가내린 사람들이 이상한건지. 아니면 화려한 CG에 높은 점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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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럴만도 하네요.
    남는 건 CG...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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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hrlee:
    뭐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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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KEN:
    스토리가 워낙 빤하고 짜맞춘 티가 나서 재미가 없더라구요.
    뭐 이런 영화는 인지도와 CGI로 충분히 벌어먹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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