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가 '미싱'을 시즌2로 계속 이어가지 않고 10개 에피소드로 꾸린 시즌1을 끝으로 종영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반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헐리우드 스파이 스릴러 영화처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돌며 촬영했음에도 반응이 시원찮았던 것.
사실 성공할 가능성은 있었다. 애슐리 주드(Ashley Judd), 션 빈(Sean Bean), 클리프 커티스(Cliff Curtis) 등 출연진만 봐도 그렇다. 애슐리 주드는 틴에이저 아들 마이클(닉 에버스맨)을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납치 당한 전직 CIA 에이전트 리베카 윈스턴 역을 맡았으며, '제임스 본드가 돼야 했던 사나이' 션 빈은 10년 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리베카의 남편이자 역시 전직 CIA 에이전트인 폴 윈스턴 역을 맡았다. 여러 편의헐리우드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한 뉴질랜드 배우 클리프 커티스는 납치당한 아들을 찾아나선 리베카를 뒤쫓으면서 얼떨결에 그녀를 도와주기도 하는 CIA 에이전트 댁스 역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리베타를 따라다니며 마지막까지 그녀를 도와주는 인터폴 에이전트 로시 역을 맡은 이탈리아 배우 에이드리아노 지아니니(Adriano Giannini)도 인상적이었다. 지아니니의 캐릭터 로시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등장했던 매티스라는 캐릭터와 흡사해 보였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에이드리아노 지아니니의 아버지 지안카를로 지아니니(Giancarlo Giannini)가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과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 제임스 본드를 도와주던 매티스 역을 맡았던 배우니까.
왼쪽부터: 션 빈, 애슐리 주드, 클리프 커티스, 에이드리아노 지아니니, 테레사 보리스코바, 그리고 닉 에버스맨 |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토리가 워낙 진부하고 뻔하게 들여다 보였기 때문이다.
'미싱'은 한마디로 신선도 제로의 시리즈였다. '전직 CIA 에이전트의 가족이 납치당한다'는 설정은 진 해크먼(Gene Hackman), 맷 딜런(Matt Dillon) 주연의 80년대 스릴러 '타겟(Target)', 리앰 니슨(Liam Neeson) 주연의 2000년대 스릴러 '테이큰(Taken)', 그리고 곧 개봉할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 헨리 캐빌(Henry Cavill) 주연의 2012년 액션 스릴러 '콜드 라이트 오브 데이(The Cold Light of Day)' 등 여러 편의 영화들이 이미 실컷 울궈먹은 것이다. 이 바람에 "전직 CIA 에이전트의 가족이 납치되어 그(녀)가 혼자서 구출작전에 나선다"는 시놉시스를 보자 마자 "또 그런 스토리냐"며 식상감을 바로 드러낸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멋진 유러피언 로케이션 + 제이슨 본 시리즈의 '도망자' + 납치당한 자녀를 구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테이큰' 스타일 액션' 등 헐리우드 히트작들의 요소들을 그럴싸하게 짜깁기하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헐리우드 스파이 액션 스릴러의 분위기를 그럴싸하게 살리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들의 생각이 크게 틀렸다고 하긴 힘들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며 촬영한 '미싱'의 매 에피소드가 마치 헐리우드 스파이 스릴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출연진부터 스케일 등 다른 일반 TV 시리즈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스타일과 분위기에만 신경을 쏟았을 뿐 스토리를 너무 소홀히 다뤘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일 정도로 놀라울 만큼 단조롭고 뻔할 뻔자였다. 대단히 심도있는 스토리를 기대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한눈에 눈치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이러이러하게 될 것'이 명명백백하게 뻔히 드러나 보이는 아이들 장난 수준의 반전과 미스테리는 고개를 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리딩 캐릭터인 리베카 윈스턴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리베카는 사실상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스타일의 터프걸 수퍼 에이전트가 틴에이저 아들을 둔 중년 여성으로 나이를 먹은 이후의 모습이었다. 젊지는 않지만 여전히 졸리의 '솔트(Salt)' 분위기를 풍기면서 틴에이저 아들을 둔 평범한 중년 여성의 모습까지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데가 많았다. 여자 수퍼 에이전트와 평범한 중년엄마를 반반씩 섞으려 한 것은 알겠는데 그다지 멋진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았다. 영화 '테이큰'에서 리앰 니슨의 캐릭터와 그의 사라진 딸의 성별만 바꿔놓은 게 사실상 전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애슐리 주드가 연기한 리베카 윈스턴은 리앰 니슨이 '테이큰'에서 보여줬던 브라이언 밀스 만큼 리얼해 보이지 않았다. 리베카가 심각한 표정으로 "CIA가 어쩌구..." 하는 씬에선 유치함에 인상을 쓰게 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납치당한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총을 든 터프맘'이라는 자체가 유치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에서도 그러한 '터프맘'을 본 적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슐리 주드의 리베카 윈스턴은 사라 코너(Sarah Conner)가 아니었다. 리베카 윈스턴이 차라리 사라 코너처럼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터프맘'이었더라면 오히려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리얼리즘의 비율을 조금 더 줄이고 '터프맘' 쪽으로 기울었더라면 차라리 더 재미있을 뻔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싱'의 리베카 윈스턴은 터프한 에이전트의 모습과 함께 평범한 중년주부의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나름의 리얼함을 살리려 했다. 물론 제작진이 어떠한 주인공 캐릭터를 원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을 들고 뛰어다니다가도 때만 되면 대성통곡을 하며 무너져내리는 애슐리 주드의 리베카 윈스턴은 어딘가 어색하고 유치하게 보였다. 이러한 두 얼굴의 리베카를 한 두 번 정도 보여주는 데 그쳤으면 성공적으로 목적 달성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전체의 에피소드에서 매번 거르지 않고 이러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면서 보여주다 보니 유치해진 것이다. 전직 CIA 에이전트 겸 아들을 납치당한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려 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을 들고 설치다가 때만 되면 징징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법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목적 달성을 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리베카 윈스턴이 납치되고 폴(션 빈)과 그의 아들 마이클이 리베카를 찾아나서는 줄거리가 되었다면 더 나았을 지 모른다. 진 해크만의 '타겟'과 상당히 비슷한 줄거리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겠지만, 총을 들고 설치다가 징징 짜기를 반복하는 리베카 윈스턴이 보는 이를 지치고 짜증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시즌2는 그러한 쪽으로 계속될 예정이었던 듯 하다. 지난 목요일 방영된 시즌 피날레가 그러한 힌트를 남기며 끝났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출연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주인공을 애슐리 주드에서 션 빈으로 바꾼다면 상당히 흥미진진한 시즌2가 될 것처럼 보였다. 스토리야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션 빈이 납치당한 아내를 찾아 나선 전직 CIA 에이전트로 리딩 롤을 맡는다면 대단히 흥미진진할 것 같았다. 시즌1의 포뮬라를 그대로 가져간다고 해도 션 빈이 주인공을 맡는다면 시즌2는 또 다른 얘기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미싱'은 시즌1으로 끝났다. 시즌2는 없다는 것이다. ABC는 시즌 피날레가 방송을 타기도 전에 '미싱'을 종영시킨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무리 봐도 이런 식으로는 인기를 끌기 힘들 것 같았는데 결국 예상했던 대로 조기종영되고 말았다. 조금만 신경을 써서 다듬었더라면 제법 재미있는 시리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미싱'의 운명은 에피소드 10까지가 전부였다. 가능성이 보였으나 그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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