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헐리우드 호러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친숙한 캐릭터 중 하나다. 'Living Dead', 'Walking Dead' 등이 들어간 약간 촌쓰러운 제목의 호러 영화 또는 TV 시리즈에서 얄궂은 소리를 내면서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바로 이 친구들이다. 죽어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 돌아다녀야만 하는, 참 피곤하게 사는(?) 친구들이다.
이들이 2013년 여름 극장가로 돌아왔다. 미국 소설가 맥스 브룩스(Max Brooks)의 소설 '월드 워 Z(World War Z)'를 기초로 한 영화가 드디어 개봉한 것.
영화 '월드 워 Z'는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 의 마크 포스터(Marc Forster) 감독이 연출을 맡고 헐리우드 스타 브래드 핏(Brad Pitt)이 제작과 주연을 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몇 해 전부터 눈길을 끌었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스크립트 문제, 엔딩 파트 재촬영 등 좋지 않은 소식들이 계속 들려오면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프로젝트가 되어갔다.
그렇다면 스토리부터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영화 '월드 워 Z'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좀비 아웃브레이크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가족과 단란한 삶을 살던 제리 레인(브래드 핏)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 길거리에서 좀비들의 습격을 받으며 '좀비와의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좀비 공격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탈출한 레인은 곧 가족들을 뒤로 한 채 UN 조사관 자격으로 좀비 아웃브레이크 사태 해결법을 찾기 위해 위험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렇다. 영화 줄거리는 원작과 크게 다르다.
원작 소설은 좀비와의 전쟁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좀비와의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인 반면 영화는 사태 해결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메인 캐릭터(브래드 핏)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좀비 아웃브레이크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스케일이 엄청난 세계적인 대재앙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제외하곤 소설과의 눈에 띄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약 원작에 충실한 영화가 되었더라면 꽤 흥미진진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메인 캐릭터가 전세계를 돌며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좀비와의 전쟁의 기억을 기록하는 모큐멘타리(Mockumentary) 스타일의 영화가 됐더라면 아주 색다른 좀비 영화로 기억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전세계를 뒤덮은 좀비 아웃브레이크와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인 이슈들을 건드리는 영화가 됐더라면 분명히 색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만들면 화끈한 액션과 화려한 비쥬얼로 장사하는 영화가 대부분인 여름철 영화로써는 매력이 덜하지 않냐고?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2011년 영화 '컨테이전(Contagion)'을 본 사람들이라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맥스 브룩스의 원작 소설을 제대로 영화로 옮겼다면 '컨테이전'처럼 나올 수 있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영화 '컨테이전'은 '좀비 아웃브레이크'라는 점 하나를 제외하곤 이번에 개봉한 '월드 워 Z'보다 맥스 브룩스의 원작과 유사점이 더 많은 영화다. 소설 '월드 워 Z'에서 좀비를 보다 그럴 듯 하게 들리는 전염병으로 바꾸면 영화 '컨테이전'이 나온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데가 많다. 그러므로 '월드 워 Z'도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로 옮기면서 '컨테이전'처럼 보다 리얼하고 진지한 쪽으로 만들었어도 볼 만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좀비 아웃브레이크를 어디까지 리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컨테이전'에 등장한 전염병은 '실제로 저런 질병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리얼한 반면 '월드 워 Z'의 좀비 아웃브레이크는 한마디로 현실성 제로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리얼하고 진지한 톤으로 좀비 아웃브레이크 이야기를 풀어가면 오히려 유치해 보이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맥스 브룩스의 '월드 워 Z'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것 때문에 은근히 방해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좀비가 테러리스트나 불법이민자 (영화에서 좀비들이 높게 쌓은 담을 넘기 위해 차곡차곡 쌓이는 씬에서 미국 국경문제가 스쳐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이 할 수 없는 은유적인 역할도 맡을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실성 제로의 좀비 이야기인 것은 변함없었기 때문에 '만약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서 실감나게 즐기는 게 쉽지 않았다. 좀비 소설을 진지하고 리얼한 대재앙 스토리처럼 만들려 했지만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영화 제작진이 "어차피 말이 안 되는 현실성 제로의 좀비 이야기니까 여느 액션 스릴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스토리를 단순하고 리니어하게 풀어가자"는 쪽을 택한 게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월드 워 Z'의 스토리는 신통치 않았다. 제리 레인(브래드 핏)이 좀비 아웃브레이크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 와중에 세계 여러 곳을 힘겹게 누비고 다니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전부였을 뿐 특별하게 새롭지 않았다. '좀비 아웃브레이크로 전세계가 좀비판이 됐다'는 점 하나를 제외하곤 신선할 게 없는 또 하나의 흔한 액션-SF-재앙-호러 영화였을 뿐이었다. 원작처럼 UN 직원이 전세계를 돌면서 좀비와의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회고를 기록하는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평범한 남자가 얼떨결에 좀비와의 전쟁에 뛰어들어 인류를 구하는 히어로가 된다'는 보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로 뜯어 고친 만큼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결과다. 물론 영화로 옮기기 힘들어 보이는 원작 소설을 각색하면서 이 정도의 변화를 준 것 자체엔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깔끔하게 변화를 줬는가다. 아쉽게도 '월드 워 Z'는 그리 깔끔하지 않았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도착과 탈출을 반복하도록 억지로 끼워맞춘 게 전부로 보였다. 덕분에 영화 내내 긴장감이 넘쳤지만, 무작정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빈약한 스토리의 논스톱 액션영화 이상이 아니었다. 원작 '월드 워 Z'를 평범한 액션 스릴러 스타일로 각색한 것까진 좋았으나 퀄리티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또한 영화 예고편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보여주는 바람에 스토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미리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스토리는 역시나 예상했던 쪽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래도 아이디어 자체는 과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편을 통해 굳이 힌트를 줄 필요는 없었다.
엔딩도 약간 흐지부지했다. 그 이유는 제작진이 '월드 워 Z'를 시리즈화하려는 목적 때문인 듯 했다. 엔딩이 다소 미지근해 보여도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라면서 다음 편으로 계속 이어질 듯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를 지은 것을 보면 제작진이 시리즈물을 구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깔끔한 마무리 대신 시리즈화를 선택한 것이다. 아마도 그 쪽이 돈이 더 되기 때문이리라...
액션은 적당한 편이었다. 그러나 PG-13 영화라서 좀비영화 치고 폭력 수위는 낮았다. 좀비 영화라고 하면 물어 뜯고, 피가 튀고, 머리가 박살나는 정도의 폭력 씬은 기본이지만, '월드 워 Z'는 이런 처참한 씬을 걷어내고 스릴과 긴장감 넘치는 씬들로 대신했다. 따라서 다른 좀비영화처럼 박살나고 으스러지고 날아가는 씬을 기대하면 곤란하며, 여름철에 흔히 볼 수 있는 PG-13 레이팅의 평범한 액션-SF-스릴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월드 워 Z'를 보면서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유머가 풍부했다는 점이다. 모든 면에서 유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영화였지만 예상 밖으로 유머가 풍부한 편이었다. 물론 코믹 파트를 맡은 건 좀비들이었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머리로 자동차 유리를 깨는 여자 좀비가 등장하는 바람에 크게 웃으며 시작했는데, 영화 내내 좀비들의 코믹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좀비라는 캐릭터 자체가 좀 싱거워 보이는 녀석들이라서 인지 좀비들을 볼 때 마다 웃음이 솟구쳤다. 영화관에서도 "무에에~" 하는 얄궂은 소리를 내면서 이빨까지 딱딱거리며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이 등장할 때마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영화 '월드 워 Z'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는 브래드 핏의 존재감이다. 출연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르는 버릇도 없고 스타파워에 의존한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브래드 핏이 있었으니까 특징이 없는 메인 캐릭터를 그나마 봐줄 만하게 만들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출연진 중에 낯익은 얼굴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브래드 핏이 더욱 눈에 띄었던 듯 하다. '월드 워 Z'가 '브래드 핏 영화'라는 점 하나 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영화였다.
그래도 '월드 워 Z'는 기대했던 것 보단 볼 만한 영화였다.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더 컸던 영화였는데, 대단히 특별할 정도로 훌륭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처참할 정도로 한심하지도 않은 평균 수준의 좀보칼립스(Zombocalypse) 영화였다. 플롯과 캐릭터 등을 억지로 끼워맞춘 것처럼 보이는 어색하고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 영화였지만 2시간이 채 안 되는 상영시간 동안 지루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엉성한 스토리 파트가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영화 도중에 집중력을 떨어뜨릴 정도까진 아니었으며,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그 정도만 했으면 제 할 일 다 한 것이다.
이들이 2013년 여름 극장가로 돌아왔다. 미국 소설가 맥스 브룩스(Max Brooks)의 소설 '월드 워 Z(World War Z)'를 기초로 한 영화가 드디어 개봉한 것.
영화 '월드 워 Z'는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 의 마크 포스터(Marc Forster) 감독이 연출을 맡고 헐리우드 스타 브래드 핏(Brad Pitt)이 제작과 주연을 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몇 해 전부터 눈길을 끌었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스크립트 문제, 엔딩 파트 재촬영 등 좋지 않은 소식들이 계속 들려오면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프로젝트가 되어갔다.
그렇다면 스토리부터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영화 '월드 워 Z'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좀비 아웃브레이크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가족과 단란한 삶을 살던 제리 레인(브래드 핏)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 길거리에서 좀비들의 습격을 받으며 '좀비와의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좀비 공격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탈출한 레인은 곧 가족들을 뒤로 한 채 UN 조사관 자격으로 좀비 아웃브레이크 사태 해결법을 찾기 위해 위험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렇다. 영화 줄거리는 원작과 크게 다르다.
원작 소설은 좀비와의 전쟁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좀비와의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인 반면 영화는 사태 해결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메인 캐릭터(브래드 핏)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좀비 아웃브레이크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스케일이 엄청난 세계적인 대재앙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제외하곤 소설과의 눈에 띄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약 원작에 충실한 영화가 되었더라면 꽤 흥미진진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메인 캐릭터가 전세계를 돌며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좀비와의 전쟁의 기억을 기록하는 모큐멘타리(Mockumentary) 스타일의 영화가 됐더라면 아주 색다른 좀비 영화로 기억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전세계를 뒤덮은 좀비 아웃브레이크와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인 이슈들을 건드리는 영화가 됐더라면 분명히 색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만들면 화끈한 액션과 화려한 비쥬얼로 장사하는 영화가 대부분인 여름철 영화로써는 매력이 덜하지 않냐고?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2011년 영화 '컨테이전(Contagion)'을 본 사람들이라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맥스 브룩스의 원작 소설을 제대로 영화로 옮겼다면 '컨테이전'처럼 나올 수 있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영화 '컨테이전'은 '좀비 아웃브레이크'라는 점 하나를 제외하곤 이번에 개봉한 '월드 워 Z'보다 맥스 브룩스의 원작과 유사점이 더 많은 영화다. 소설 '월드 워 Z'에서 좀비를 보다 그럴 듯 하게 들리는 전염병으로 바꾸면 영화 '컨테이전'이 나온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데가 많다. 그러므로 '월드 워 Z'도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로 옮기면서 '컨테이전'처럼 보다 리얼하고 진지한 쪽으로 만들었어도 볼 만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좀비 아웃브레이크를 어디까지 리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컨테이전'에 등장한 전염병은 '실제로 저런 질병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리얼한 반면 '월드 워 Z'의 좀비 아웃브레이크는 한마디로 현실성 제로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리얼하고 진지한 톤으로 좀비 아웃브레이크 이야기를 풀어가면 오히려 유치해 보이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맥스 브룩스의 '월드 워 Z'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것 때문에 은근히 방해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좀비가 테러리스트나 불법이민자 (영화에서 좀비들이 높게 쌓은 담을 넘기 위해 차곡차곡 쌓이는 씬에서 미국 국경문제가 스쳐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이 할 수 없는 은유적인 역할도 맡을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실성 제로의 좀비 이야기인 것은 변함없었기 때문에 '만약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서 실감나게 즐기는 게 쉽지 않았다. 좀비 소설을 진지하고 리얼한 대재앙 스토리처럼 만들려 했지만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영화 제작진이 "어차피 말이 안 되는 현실성 제로의 좀비 이야기니까 여느 액션 스릴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스토리를 단순하고 리니어하게 풀어가자"는 쪽을 택한 게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월드 워 Z'의 스토리는 신통치 않았다. 제리 레인(브래드 핏)이 좀비 아웃브레이크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 와중에 세계 여러 곳을 힘겹게 누비고 다니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전부였을 뿐 특별하게 새롭지 않았다. '좀비 아웃브레이크로 전세계가 좀비판이 됐다'는 점 하나를 제외하곤 신선할 게 없는 또 하나의 흔한 액션-SF-재앙-호러 영화였을 뿐이었다. 원작처럼 UN 직원이 전세계를 돌면서 좀비와의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회고를 기록하는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평범한 남자가 얼떨결에 좀비와의 전쟁에 뛰어들어 인류를 구하는 히어로가 된다'는 보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로 뜯어 고친 만큼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결과다. 물론 영화로 옮기기 힘들어 보이는 원작 소설을 각색하면서 이 정도의 변화를 준 것 자체엔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깔끔하게 변화를 줬는가다. 아쉽게도 '월드 워 Z'는 그리 깔끔하지 않았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도착과 탈출을 반복하도록 억지로 끼워맞춘 게 전부로 보였다. 덕분에 영화 내내 긴장감이 넘쳤지만, 무작정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빈약한 스토리의 논스톱 액션영화 이상이 아니었다. 원작 '월드 워 Z'를 평범한 액션 스릴러 스타일로 각색한 것까진 좋았으나 퀄리티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또한 영화 예고편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보여주는 바람에 스토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미리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스토리는 역시나 예상했던 쪽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래도 아이디어 자체는 과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편을 통해 굳이 힌트를 줄 필요는 없었다.
엔딩도 약간 흐지부지했다. 그 이유는 제작진이 '월드 워 Z'를 시리즈화하려는 목적 때문인 듯 했다. 엔딩이 다소 미지근해 보여도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라면서 다음 편으로 계속 이어질 듯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를 지은 것을 보면 제작진이 시리즈물을 구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깔끔한 마무리 대신 시리즈화를 선택한 것이다. 아마도 그 쪽이 돈이 더 되기 때문이리라...
액션은 적당한 편이었다. 그러나 PG-13 영화라서 좀비영화 치고 폭력 수위는 낮았다. 좀비 영화라고 하면 물어 뜯고, 피가 튀고, 머리가 박살나는 정도의 폭력 씬은 기본이지만, '월드 워 Z'는 이런 처참한 씬을 걷어내고 스릴과 긴장감 넘치는 씬들로 대신했다. 따라서 다른 좀비영화처럼 박살나고 으스러지고 날아가는 씬을 기대하면 곤란하며, 여름철에 흔히 볼 수 있는 PG-13 레이팅의 평범한 액션-SF-스릴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월드 워 Z'를 보면서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유머가 풍부했다는 점이다. 모든 면에서 유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영화였지만 예상 밖으로 유머가 풍부한 편이었다. 물론 코믹 파트를 맡은 건 좀비들이었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머리로 자동차 유리를 깨는 여자 좀비가 등장하는 바람에 크게 웃으며 시작했는데, 영화 내내 좀비들의 코믹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좀비라는 캐릭터 자체가 좀 싱거워 보이는 녀석들이라서 인지 좀비들을 볼 때 마다 웃음이 솟구쳤다. 영화관에서도 "무에에~" 하는 얄궂은 소리를 내면서 이빨까지 딱딱거리며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이 등장할 때마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영화 '월드 워 Z'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는 브래드 핏의 존재감이다. 출연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르는 버릇도 없고 스타파워에 의존한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브래드 핏이 있었으니까 특징이 없는 메인 캐릭터를 그나마 봐줄 만하게 만들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출연진 중에 낯익은 얼굴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브래드 핏이 더욱 눈에 띄었던 듯 하다. '월드 워 Z'가 '브래드 핏 영화'라는 점 하나 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영화였다.
그래도 '월드 워 Z'는 기대했던 것 보단 볼 만한 영화였다.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더 컸던 영화였는데, 대단히 특별할 정도로 훌륭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처참할 정도로 한심하지도 않은 평균 수준의 좀보칼립스(Zombocalypse) 영화였다. 플롯과 캐릭터 등을 억지로 끼워맞춘 것처럼 보이는 어색하고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 영화였지만 2시간이 채 안 되는 상영시간 동안 지루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엉성한 스토리 파트가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영화 도중에 집중력을 떨어뜨릴 정도까진 아니었으며,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그 정도만 했으면 제 할 일 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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