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토르: 다크 월드', 수퍼히어로 + 신화 = 여전히 재밌는 '망치의 제왕'

요새 나오는 헐리우드 빅버젯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친숙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가 많이 있는 만큼 아주 크게 놀라운 현상은 아니지만 매년마다 빠짐 없이 개봉하는 수퍼히어로 영화에 식상한 관객들이 늘고 있다는 '수퍼히어로 피로현상'에 관한 이야기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수퍼히어로 피로현상'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메이저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친숙한 캐릭터와 화려한 비쥬얼'이라는 공식에 맞춘 비슷비슷한 빅버젯 수퍼히어로 영화를 꾸준히 내놓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피로현상'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모든 수퍼히어로 영화가 전부 똑같은 영화처럼 보이기 시작하면서 빅버젯 VFX 쇼에 흥미를 잃어가는 사람들이 느는 것은 사실일 지 몰라도, 박스오피스에서 박살날 정도는 아직 아닌 듯 하다. 하지만 2013년 여름 여러 편의 빅버젯 영화들이 흥행 참패한 것을 보면 경쟁하듯 쏟아져나오는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빅버젯 액션-SF-판타지-수퍼히어로 쟝르 영화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는 '피로현상'이 박스오피스에서 강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피로현상'이 $$$로 뚜렷히 나타날 날이 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앞으로 바이블을 기초로 한 에픽 스케일의 종교 영화들을 내놓을 예정이란 사실도 흥미롭다. 히스토리 채널의 TV 시리즈 '바이블(The Bible)'이 큰 인기를 끈 것을 시작으로 파라마운트의 '노아(Noah)', 20세기 폭스의 '엑소더스(Exodus)', 워너 브러더스의 또다른 모세(Moses) 영화 'Gods and Kings', MGM의 '벤허(Ben-Hur)' 리메이크 등 여러 편의 종교 영화들이 개봉 예정이다. 바이블과 바이블에 등장하는 캐릭터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하므로 '친숙한 캐릭터 + 화려한 비쥬얼' 공식도 적용 가능하다.

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2013년 연말 홀리데이 시즌 오프너로 신과 관련 있는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마블 코믹스의 '토르: 다크 월드(Thor: The Dark World)'다. '토르: 다크 월드'는 지난 2011년 개봉한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 주연의 수퍼히어로 영화 '토르(Thor)'의 속편이다.

망치를 휘두르는 수퍼히어로에 관한 영화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토르' 1탄을 의외로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2탄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2탄도 볼 만했다. 1탄보다 더 나아진 점도 있었고 더 나빠진 점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기대했던 만큼은 됐다. '토르' 영화에 기대하고 예상했던 액션, 유머, VFX 등은 모두 다 들어있었다.

'토르: 다크 월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차이점은 판타지 성격이 짙어졌다는 점이었다. 지난 1탄은 유쾌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에 가까웠으나 이번 2탄은 다크 엘프까지 나오는 줄거리부터 시작해서 판타지 영화 쪽으로 많이 옮겨갔다.

'토르' 시리즈를 코믹북으로 미리 읽어본 사람들이야 이상할 게 없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토르' 영화에 다크 엘프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진 못했다. 토르, 오딘 등 영화의 등장 캐릭터들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캐릭터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다크 엘프, 바위로 만들어진 몬스터 등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 시리즈에나 나옴 직한 캐릭터들의 등장은 의외였다.

이 바람에 지금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약간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반지의 제왕', '스타 워즈(Star Wars)', '스타 트렉(Star Trek)' 등의 SF-판타지 영화들을 섞어놓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면에선 전형적인 코믹북 수퍼히어로 포뮬라에서 벗어나 약간 색다른 시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다른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판타지 영화 쪽에 가까워진 게 약간 어색하긴 했어도 색다르고 신선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무섭게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왜 이렇게 '반지의 제왕'처럼 변했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으며, '신선하다'는 만족감보다 '모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먼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자꾸 이런 식으로 짬뽕을 하면 모든 빅버젯 액션-SF 영화들을 전부 비슷비슷해 보이도록 만드는 악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토르: 다크 월드'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반지의 제왕' 시늉을 낸 '망치의 제왕'?

'수퍼히어로 + 북유럽 신화'가 재앙적인 레시피는 아니었다. '망치의 제왕'처럼 되긴 했지만 재미는 여전히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토르'의 세계와 캐릭터 등이 북유럽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도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신화의 영향을 이렇게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계속 신경에 거슬리며 심하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 다소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잠시 머리를 긁적이고 넘어갈 수 있었다.

스토리는 실망스러웠다. 앞서 개봉한 '토르' 1탄과 '어벤저스(The Avengers)'에서 적대 관계였던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와 로키(톰 히들스턴)가 이번 영화에선 서로 한 팀이 되어 힘을 합하게 된다는 설정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볼 게 없었다. 다크 엘프들과의 전투 등 볼거리는 풍부한 편이었지만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르: 다크 월드'가 볼 만했던 이유는 '토르' 시리즈만의 매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르' 시리즈만의 매력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유머다.

풍부한 유머가 '토르' 시리즈만의 매력 중 하나가 된 이유는 요새 나오는 액션-SF-수퍼히어로 영화 대부분이 어둡고 진지하고 심오한 척 하는 것만 좋아할 뿐 유머가 매말랐기 때문이다. 무겁고 진지한 척 하는 게 더 묵직하고 근사해 보이는 건 사실이겠지만, 마치 어린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불가능해진다. 똑바로 하지 않으면 되레 더 웃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으면서 묵직한 척 하는 것도 바보처럼 촐랑이는 것 못지 않게 젖비린내를 진동케 한다. 그런데 요샌 별 것 아닌 것을 굉장히 진지한 톤으로 엄청 중요한 것처럼 장엄하게 늘어놓아 되레 더 유치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많다. 그러나 '토르' 시리즈는 달랐다. 유머가 풍부한 느슨하고 가벼운 톤이 훨씬 유쾌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토르: 다크 월드'도 유머 파트에선 실망스럽지 않았다. 지난 1탄 못지 않게 유머가 풍부했다. 너무 적지도 과하지도 않았으며, 풍부한 위트와 유머가 '토르' 시리즈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로 자리잡은 듯 했다.

'토르' 시리즈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는 훌륭한 캐스팅과 개성있는 캐릭터다.

'토르' 시리즈의 악당 로키가 요근래 등장한 최고의 악당 캐릭터 중 하나란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으며, 로키 역을 맡은 영국 영화배우 톰 히들스턴(Tom Hiddleston)이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훌륭한 배우라는 점 역시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 정도 되면 아들 둔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게 만드는 씩씩하고 듬직한 호주 영화배우 크리스 헴스워스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프리티 보이 스타일의 곱상한 얼굴에 떡 벌어진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크리스 헴스워스는 섹시하고 소프트한 면과 건장하고 마초적인 면을 두루 갖췄을 뿐만 아니라 코믹 연기도 능청스럽게 잘 하는 매력 있는 타고난 마초-핸썸 배우다. 뿐만 아니라 오딘 역을 맡은 베테랑 영국 배우 앤토니 홉킨스(Anthony Hopkins), 에릭 셀비그 박사 역의 베테랑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Stellan Skarsgard)의 존재감,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매력적인 나탈리 포트맨(Natalie Portman), 눈알이 쏟아질 듯한 귀엽고 유머러스한 이미지의 캣 데닝스(Kat Dennings), 그리고 '토르: 다크 월드' 프리미어 이벤트에 멋진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던 제이미 알렉산더(Jaimie Alexander) 등 여배우들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토르: 다크 월드'는 쿨한 캐릭터, 유머가 풍부한 가볍고 유쾌한 톤, 볼 만한 액션과 VFX 등 '토르' 영화에 기대했던 모든 것을 갖춘 영화였다. 스토리가 약간 시원찮았고 판타지 색이 짙어진 것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는 아니었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에 '일단 두고 보자'였는데, '토르: 다크 월드'는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딱 기대했던 만큼 됐다. '토르' 1탄을 봤을 때 정도의 만족감이 든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탄도 딱 그 정도 해줬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주 대단하진 않았어도 '토르' 영화로써는 충분했으며, 2시간 남짓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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