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일 수요일

'007 스펙터': '본 수프리머시' 스타일 속편을 예고하는 걸까?

지난 2006년 007 제작진은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본드걸 베스퍼 린드를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시대의 트레이시 본드로 만들고자 했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 '카지노 로얄'에선 베스퍼가 마지막에 자살하면서 끝나지만, 007 제작진은 베스퍼의 죽음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 속편 '콴텀 오브 솔래스(Quanutm of Solace)'에서 베스퍼의 죽음을 이용해 본드의 복수심을 트리거링하려 했다. 이는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과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의 트레이시 본드의 죽음과 관련된 스토리와 바로 겹쳐진다. 007 제작진이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의 줄거리를 연결시킨 이유는 바로 그런 플롯을 노렸기 때문이다.

'카지노 로얄'로 시작한 베스퍼 린드 스토리는 '콴텀 오브 솔래스'로 마무리지어졌다.

그런데 '제 2의 베스퍼 린드' 격인 본드걸 캐릭터가 '007 스펙터(SPECTRE)'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리딩 본드걸 매들린 스완(리아 세두)이다. '007 스펙터'의 리딩 본드걸, 매들린 스완은 본드가 또다시 사랑을 느끼게 되는 본드걸 캐릭터로 알려졌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경영진과 프로듀서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중엔 "왜 이제와서 본드가 사랑을 느끼는 본드걸이 또 등장하는가"에 의문을 나타낸 것도 있었다. 제임스 본드가 걸핏하면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가 아니며, 본드의 '러브 스토리'가 나온 영화 '카지노 로얄'이 공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본드가 사랑을 느끼는 본드걸이 '007 스펙터'에 또 등장한다니까 과히 신선하게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007 제작진은 본드가 사랑을 느끼는 본드걸을 왜 또다시 등장시키려는 걸까?

몇 가지를 한 번 짚어보기로 하자.


'007 스펙터' 리딩 본드걸, 매들린 스완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베스퍼 린드보다 트레이시 본드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트레이시 본드는 이언 플레밍의 1963년 소설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에서 본드와 결혼한 '본드의 아내'다. 본드와 트레이시의 결혼식은 조지 레이전비(George Lazenby) 주연의 1969년 영화에도 나온 바 있다.


매들린 스완과 트레이시 본드의 가장 큰 공통점은 '범죄조직 멤버의 딸'이라는 점이다.

트레이시 본드는 범죄조직 유니온 코스(Unione Corse)의 리더, 마크-안지 드래코(Marc-Ange Draco)의 딸이다.

'007 스펙터'에서 본드가 사랑을 느끼는 본드걸, 매들린 스완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에서 새로 소개된 범죄조직, 콴텀의 멤버인 미스터 화이트의 딸로 알려졌다.

마크-안지 드래코와 미스터 화이트 모두 범죄조직 스펙터와 스펙터의 리더, 블로펠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다.

따라서 본드가 사랑을 느낀 본드걸, 트레이시 본드와 매들린 스완 모두 범죄조직 멤버의 딸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들의 아버지는 블로펠드와 사이가 안 좋은 관계라는 공통점도 있다.


'007 스펙터'에 등장하는 본드걸들은 모두 클래식 007 시리즈에 등장했던 본드걸과 크고 작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신선도가 낮은 캐릭터들로 알려진 상태다. 따라서, 레아 세두(Lea Seydoux)가 맡은 리딩 본드걸, 매들린 스완이 '여왕폐하의 007'에 등장했던 트레이시 본드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여왕폐하의 007'의 트레이시 본드는 스펙터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러나 '007 스펙터'의 매들린 스완은 스펙터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는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스크립트 초안에 의하면, 본드가 총을 집어던지고 매들린 스완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떠나면서 영화가 끝난다고 한다.

이 엔딩 씬의 의미가 애매하다는 프로듀서의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007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마무리짓는 '완결편' 성격을 띤 영화이며, 본드가 핸드건을 던져버리고 매들린과 함께 떠나는 엔딩 또한 본드가 정보부를 떠난다는 의미가 담긴 게 아니냐는 쪽으로 해석되고 있다.

'007 스펙터'의 줄거리는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Skyfall)'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의 배후에 범죄조직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있었으며, 이 사실을 밝혀낸 본드가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해치운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007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4부작 완결편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007 스펙터'의 엔딩에 대해 얼마 전 영화감독 샘 멘데스(Sam Mendes)는 이렇게 코멘트한 바 있다:

"It's about whether or not to pursue the life he's always pursued, whether he matters. And is he going to continue or not..." - Sam Mendes


그렇다면 이번 '007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되는 걸까?

샘 멘데스의 코멘트로 '007 스펙터'가 그런 성격을 띈 영화라는 게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알 수 없다. 왜냐면, 마음만 먹는다면 다섯 번째 영화로 줄거리를 충분히 이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본드25'가 매들린 스완(레아 세두)을 죽이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매들린 스완은 '007 스펙터' 엔딩에서 죽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만약 스완이 '007 스펙터'가 아닌 '본드25'에서 스펙터와 블로펠드에 의해 살해당한다면?

여기서 잠시 맷 데이먼(Matt Damon) 주연의 2004년 영화 '본 수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로 돌아가보자. '본 수프리머시'는 첫 번째 제이슨 본 영화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에서 본의 연인이 됐던 마리(프랑카 포텐테)를 죽이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물론 '본 수프리머시'의 마리가 살해당하는 씬은 '여왕폐하의 007'의 영향을 받은 씬이다. 007 시리즈를 충분하게 본 사람이라면 '본 수프리머시'에서 마리가 살해당하는 씬을 보면서 '여왕폐하의 007'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본 시리즈 제작진이 아니라 007 제작진이 '모방의 황제' 타이틀을 쥐고 있다. 유행을 따른다는 미명 하에 요새 유행하는 액션영화들을 닥치는대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007 제작진이 '본드25'에서 '본 수프리머시' 스타일을 모방한 속편을 내놓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이런 플롯을 한 번 상상해 보자.

'007 스펙터'를 끝으로 정보부를 떠난 본드는 매들린과 함께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스펙터가 본드와 매들린이 함께 사는 곳을 찾아와 매들린을 죽인다. 매들린이 살해당하자 열받은 본드는 매들린을 죽인 킬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된다면 '본드25'는 '본 수프리머시'를 따라함과 동시에 이언 플레밍의 소설 '여왕폐하의 007'와 '두 번 산다'의 플롯을 부분적으로 참고할 수 있게 된다. 007 제작진이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하려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으나 원하던 결과를 만족스럽게 얻지 못했으므로 '007 스펙터'와 '본드25'에서 재시도를 하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베스퍼 플롯으로 시도했다 실패했던 것을 '007 스펙터'와 '본드25'에서 매들린 플롯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007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 본드팬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안다. 007 시리즈는 원래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영화 시리즈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줄거리가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바뀐 것이 나중에 혼란스럽게 될 수도 있다. 007 시리즈가 원래부터 줄거리가 연결되는 시리즈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요근래 들어 부쩍 늘었으며, 서로 연결되지 않는 클래식 007 시리즈를 억지로 연결시키기 위해 말이 되지 않는 'THEORY'를 만드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따라서 불필요한 혼란을 없애려면 '007 시리즈는 원래 줄거리가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로 일관되게 나아가는 게 옳다고 본다.

007 시리즈는 세월이 흐르면 제임스 본드를 다른 젊은 배우로 교체하곤 하는데, 줄거리가 계속 한덩어리로 이어지는 모양새가 되면 배우를 교체할 때마다 리부트를 해야 할 필요가 생길 수도 있다. 과거엔 배우 교체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뤄지곤 했으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이후부턴 주연배우가 교체될 때마다 리부트를 통해 새로 시작해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007 제작진이 007 시리즈를 줄거리가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굳이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하지 않고도 신선한 느낌을 살릴 방법이 많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드25'의 줄거리를 '007 스펙터'와 또 이어지게 만든다는 아이디어 자체부터 맘에 들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WHO GIVES A SHIT?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이미 줄거리가 서로 계속 이어지는 미니시리즈처럼 되었으므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본드25'가 '007 스펙터'와 줄거리가 연결된다고 해서 크게 불평할 사람들은 없을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변화'에 냉담한 본드팬들은 이미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걸었던 기대를 모두 접은지 오래이므로 '본드25'가 어떻게 되든 별 신경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블로펠드(크리스토프 발츠)가 '007 스펙터'에서 죽지 않냐고?

놀랍게도 스크립트 초안에선 블로펠드가 '007 스펙터'에서 죽는 것으로 돼있다. 본드가 블로펠드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다.

그러나 수정판에선 본드가 블로펠드를 죽이지 않는 것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립트를 검토한 한 프로듀서가 본드가 블로펠드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는 지적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and the killing of blofeld with a final shot to the head? i dont' know. seems brutal even for bond."

이런 지적 때문이었는지 수정판에선 본드가 블로펠드를 죽이지 않고 체포되도록 놔두는 쪽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007 제작진이 44년만에 오피셜 007 시리즈로 돌아온 블로펠드를 '007 스펙터'에서 죽이면서 끝낼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007 제작진이 '007 스펙터'를 완결편으로 구상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든 블로펠드가 '007 스펙터'에서 살아남는 쪽으로 바뀌었다면 '본드25'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탈옥을 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본드25'로 다시 컴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본드25'에서 블로펠드가 매들린을 죽이면서 본드의 복수심을 트리거링할 수도 있다.

따라서 007 제작진이 '007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4부작 미니시리즈로 완결시키지 않고 '본드25'로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면 'ALTERNATE OPTION'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007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4부작으로 완결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게 전부인 싸구려스러운 발상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007 제작진은 '007 스펙터'가 완결편인 것처럼 보이도록 유도하면서 실제로는 '본드25'로 줄거리를 이어갈 궁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샘 멘데스가 비디오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부터 왠지 속이려는 게 아니냐는 사기성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007 스펙터'가 MGM과 소니 픽쳐스가 공동 제작하는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인 것으로 전해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두 회사가 재협상을 할 가능성이 열려있으며, '본드25'부터 소니와 MGM이 각자의 길을 간다고 해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끝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대한 피로감이 계속 누적되고 있는 만큼 '007 스펙터'를 끝으로 플러그를 뽑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007 시리즈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리셋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리셋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네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문레이커(Moonraker)'를 마지막으로 살인면허를 반납할 계획이었던 로저 무어(Roger Moore)가 분위기가 바뀐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에 계속 출연하면서 제 2의 제임스 본드 시대를 연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는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시리즈가 되었으므로 영화배우 교체 없이 시리즈 리셋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많은 본드팬들은 '스카이폴'에서 정상 궤도로 돌아갈 것을 기대했으나 이뤄지지 않았으며, '스펙터' 역시 제임스 본드 영화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계속 본드로 남아있는 한 정상적인 제임스 본드 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의견을 보이는 본드팬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본드25'로 또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ㅋ

"KILL BON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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