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4일 목요일

'점퍼' - 쓰레기통으로 텔레포트!

마음속으로 원하는 곳으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다면?

가고싶은 곳으로 문자 그대로 '뿅!' 하고 갈 수 있다면?

비자, 여권, 세관, 입국수속같은 걸 걱정할 필요 없다. 자동차나 비행기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걸을 필요조차 없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마음 속으로 정한 다음 그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니까.

이러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점퍼(Jumper)'라고 불리는 친구들이다.

영화 '점퍼'는 '텔레포트 능력'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데이빗(헤이든 크리스텐슨)의 이야기다.



타고나야 한다면 할 수 없지만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텔레포트 능력'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떻게서든 배우고 싶다. 비행시간보다 공항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 최근의 여행환경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점퍼'들을 추적하는 조직이 있는 것.

'팔라딘(Paladin)'이라 불리는 이 조직은 텔레포트 능력을 가진 '점퍼'들과 수백년동안 사투를 벌여온 원수지간. 이들의 리더, 롤랜드(사무엘 L. 잭슨)는 '점퍼'들이 신만 가져야 할 능력을 가졌다면서 이들을 발견하는대로 모두 죽이려 한다.

데이빗은 '점퍼'와 '팔라딘'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이미 롤랜드의 표적이 된 상태.



하지만, '점퍼'와 '팔라딘'의 사이를 잘 알고있는 친구가 있다.

그의 이름은 그리핀(제이미 벨).

그리핀도 데이빗처럼 텔레포트 능력을 갖고있는 '점퍼' 중 하나다.

그리핀은 '팔라딘'이란 조직과 롤랜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데이빗에게 '팔라딘'과 '점퍼'가 중세부터 앙숙이었다고 설명해준다. 초능력을 가진 '점퍼'와 이들을 위험하게 여기는 일종의 광신집단인 '팔라딘'의 사투는 중세때부터 이어지고 있다고.



'점퍼'의 줄거리는 사실상 여기까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빗-그리핀과 롤랜드-팔라딘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전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건 롤랜드와 팔라딘이란 조직이 '점퍼'를 싫어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롤랜드와 팔라딘이란 조직이 종교색을 띈 것까진 알겠는데 이것만으론 부족해 보이는 것. '점퍼'도 원작소설이 있는만큼 책엔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선 제대로 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그런가부다' 하고 넘어간다고 하자. 이런 쟝르의 영화는 스토리가 부실하더라도 다른 볼거리가 풍부하면 용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볼거리가 없다는 것.

'점퍼'는 완전한 SF-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실적인 액션/어드벤쳐 영화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배트맨', '스파이더맨'처럼 캐릭터 위주의 수퍼 히어로 영화도 아니다. 스토리라도 흥미진진하면 또다른 문제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액션도 볼 게 없고 스릴, 서스펜스, 유머도 없다. 뭔가 화려하고 쿨하고 화끈한 맛이 있다면 모르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밋밋할 뿐이다. 비디오게임을 그대로 베낀 것처럼 보이는 그렇고 그런 수준의 흔해빠진 배틀씬이 전부일 뿐 새롭거나 특별하다고 할만한 게 없다.

결국, 남는 건 '텔레포트' 하나 뿐이다. 밤낮 텔레포트만 하는 게 전부인 것. 냉장고에 갈 때도 텔레포트, 싸울 때도 텔레포트를 한다. 텔레포트를 할 줄 아는 '점퍼'가 주인공이니 텔레포트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이것만으론 볼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계속 텔레포트 하며 싸우는 씬도 있지만 그저 멍하니 지켜보게만 될 뿐 스타일리쉬하게 보이지도 않고 스릴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헤이든 크리스텐슨, 'The O.C' 시리즈의 레이첼 빌슨 등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두 남녀배우가 나오는 데 그 이외의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있냐고?



뿐만 아니라, '스타워즈'에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함께 출연했던 사무엘 L. 잭슨까지 나오니 이 정도면 SF팬들을 낚을 미끼로는 충분하지 않냐고?

게다가, '점퍼'는 그럴싸한 씬이 나오면 'Cool!', 'Awesome!'을 연발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니까 그 수준에 맞춰 그럴싸하게 포장만 잘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엉거주춤한 수퍼 히어로에 멋진 자동차와 여자, 비디오게임, 그리고 음악 등으로 분위기만 그럴싸하게 띄워주면 되는 영화 아니냐고?

스핑크스 머리 위에서 '쿨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돈과 여자 걱정없이 생활하면서 멋진 자동차를 몰고 록음악에 맞춰 밤거리를 질주하는 전형적인 '하이틴 무비' 분위기를 내기만 하면 넘어가는 친구들이 있지 않냐고?



아무래도 타겟 연령층이 청소년인 영화인만큼 이런 걸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완전한 어린이용 영화보다 어중간한 청소년 영화가 더욱 유치하다는 것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액션과 스릴이 부족한 맹탕 SF영화인줄 몰랐다.

그렇다고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어둡고 차가우면서도 말쑥한 캐릭터, 데이빗에 잘 어울렸다. 아직까진 '스타워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 이미지를 지울만큼 배우로써 성숙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런 분위기의 영화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연기는 아직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스타일은 있어 보인다.

사무엘 L. 잭슨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줄거리부터 시작해서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영화인데도 사무엘 L. 잭슨이 나오면 전부 말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무엘 L. 잭슨 앞에선 '넌센스'란 단어가 맥을 못추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극장을 나서면서 문을 열지않고 그대로 돌진해 봤다.

유리문 물어줄 뻔 했수다.

역시 텔레포트는 '넌센스'였다. 문에 부딪치기 전에 밖으로 '텔레포트'를 했어야 하는데 맘처럼 안되더라.

이런 짓 할 나이 지나지 않았냐고?

이렇게라도 해야 '점퍼'를 본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우. 폭탄주밖에 만들 줄 모르는 사이비 바텐더가 '청소년 영화'와 '수퍼 히어로 판타지 액션영화'를 제멋대로 섞어놓은 맛없는 칵테일을 마신 기분이 드는 영화였으니까.

원하는 곳 어디든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텔레포트 아이디어'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아이디어만 그럴싸한 게 전부였다. 이 아이디어로 영화를 제대로 만들었다면 꽤 익사이팅한 액션/SF영화가 됐겠지만 '점퍼'는 아주 실망스러운 수준에 그쳤다. 수퍼파워를 지닌 캐릭터가 나오는 액션/SF영화를 제대로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억지로 흉내낸 것처럼 보일 뿐이다.

SF영화와 수퍼파워를 지닌 히어로가 나오는 코믹북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점퍼'에 많은 기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곧바로 스레기통으로 텔레포트해야 마땅한 영화다. SF영화팬들도 '점퍼'는 건너뛰고 다음 영화로 텔레포트 하는 게 좋을 걸?

하지만, 영화 삽입곡 중 하나인 'Tic Tic Boom'은 맘에 든다. The Hives가 부른 이 노래는 FOX의 TV 시리즈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크로니클(Terminator: The Sarah Connor Chronicles)' 광고에서도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곡이다.

말 나온 김에 뮤직 비디오나 보자.



아래는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크로니클' TV광고다. 위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광고는 맨 마지막에 나온다.

댓글 2개 :

  1. 평론가 하셔도 되겠어요.ㅋㅋ
    쓰레기통으로 텔레포트! 제대로 센스있는 평이십니다.ㅎㅎ
    사무엘젝슨이 있으니 더 기대를 했는데, 말씀듣고보니 역시 볼것은 사무엘잭슨의 연기뿐이군요.ㅋ

    참, 그리고 그 노인은 이땅에 죽지않는다였던가 그 영화를 봤는데
    정말 악당 쉬거 카리스마 장난 아니더라구요~!
    궁금한게 있는데요, 그 돈갖고튀다가 결국 죽은 남편은 쉬거가 죽인건가요? 그리고 마지막에 부인도 결국 죽은거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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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점퍼'에 상당히 실망했습니다. 너무 시시하고 재미없더군요.

    오우, 상당한 스포일러성...ㅋㅋ
    돈가방 들고 튀던 친구는 멕시칸들에게 당한 것 같던데요.
    버스터미날에서 멕시칸들에게 정보가 샜죠.
    그리고, 와이프는...
    쉬거가 신발에 피가 묻었나 확인하면서 집에서 나왔으니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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