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2일 토요일

'셔터' - 여자 귀신들은 쉬고 싶다

한밤중 차도에 웬 여자가 버티고 서 있다.

운전자(레이첼 테일러)는 당연히 기겁할 수 밖에...

차도에 버티고 서 있는 여자를 피하려다 자동차는 길 옆 숲속에 쳐박힌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저런 장면이 나오는 공포영화가 워낙 많다보니 그럴 것이다. 영화 뿐만 아니라 코나미의 호러 비디오게임 '사일렌트 힐(Silent Hill)'도 저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왜 제목이 '셔터(Shutter)'냐고?

카메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보아하니 이 영화도 결국엔 귀신 이야기인 것 같은데 카메라와 밀접한 관계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비디오게임이 또 하나 있다: 테크모의 '零 - Zero'다. 이 게임은 '프로젝트 제로', 북미지역에선 'Fatal Frame'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호러 비디오게임이다. '테크모'라고 하면 아무래도 'DoA: 익스트림 비치 발리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밤낮 그런 게임만 만드는 회사는 아니다.



'사일렌트 힐', '프로젝트 제로' 모두 일본산 호러 게임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산 호러게임들이 떠올랐을까?

원작은 태국영화지만 감독이 일본인이기 때문일까?


▲Masayuki Ochiai

Masayuki Ochiai는 일본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패러사이트 이브(Parasite Eve)'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다. '패러사이트 이브'는 스퀘어소프트(지금의 스퀘어-에닉스)에 의해 플레이스테이션용 비디오게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셔터' 영화감독도 비디오게임과 인연이 있는 셈이다.


▲일본영화 '패러사이트 이브(1997)' 한 장면

좋다. 비디오게임 타령은 이쯤에서 접고 영화로 돌아가보자.

제목부터 '셔터'인데다 '귀신'과 '카메라'가 만났다면 무엇을 소재로 한 영화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바로, 심령사진이다.



여배우가 왠지 낯 익다고?

레이첼 테일러(Rachel Taylor)는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에 출연했던 배우다. '트랜스포머스' 여배우라고 하면 메겐 폭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조연으로 출연해 눈길을 사로잡은 '트랜스포머스 걸'이 바로 레이첼 테일러다.

레이첼 테일러는 영화 '셔터'에선 사진작가 벤자민(조슈아 잭슨)과 갓 결혼한 제인으로 나온다.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 와 알 수 없는 심령사진 미스테리와 씨름하게 되는 주인공이다.


▲'트랜스포머스'에서의 레이첼 테일러(왼쪽)

'귀신'과 '카메라'가 만난 게 비록 '셔터'가 처음은 아니지만 사진을 통해 귀신의 단서를 찾는 과정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편이다. 사건의 모든 단서들을 심령사진을 통해 얻는다는 것도 뻔히 들여다 보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흥미진진하다. 주연배우들은 노란털이지만 감독이 일본인인 데다 로케이션까지 일본이다보니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식의 일본 공포영화에 이젠 식상했다는 것이다.

'셔터'는 카메라와 심령사진이 추가됐다는 것을 제외하면 '링(Ring)'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일본산 공포영화 몇 편 본 사람들이라면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훤히 보이는 수준이다. 전형적인 일본산 공포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 공포영화가 헐리우드산보다 재미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서워 하라는 건지 불확실한 헐리우드산 호러영화에 비하면 일본산을 포함한 아시아 호러영화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똑같은 걸 반복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여자귀신이 흘겨보는 것만으로 관객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가 섬짓하게 분장하고 나와서 야리면서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처음 한 두번 섬짓한 게 전부일 뿐 나중엔 코믹하게 보이더라.


▲차라리 성인영화였다면 모르지만...


▲혓바닥이 나오니까 문득 이 양반이...

'셔터'는 여자 귀신만 나오면 무조건 무섭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영화로 보일 뿐 새로운 것도, 무서운 것도 없는 밋밋한 호러영화다. 감독도 일본인이고 로케이션도 일본인 만큼 일본 공포영화의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비슷비슷한 시늉만 하다가 끝나더라.

그렇다. '셔터'도 결국엔 여자 귀신 혹사시키는 영화인 게 전부다. 이 영화에서도 섬짓한 표정 짓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해야만 하니까. 아시안 공포물 작가들이 여자 귀신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지 시시껄렁한 스토리에도 어김없이 여자 귀신을 등장시킨다. 남자 귀신은 뒀다 어디에 쓰려는지 내팽겨쳐 놓고 여자 귀신만 못살게 군다. 골라가면서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도 어쩌랴, 여자 귀신만 좋아하는데...ㅠㅠ 도대체 누가 귀신 팔자가 상팔자라고 했더냐!

미국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한 두번은 이국적인 맛에 이끌려 재미있게 본다지만 계속해서 여자 귀신 하나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내려는 것에 언제까지 만족할 수 있을까? 여자 귀신이 '데엥~' 하면서 나타나는 걸 보면서 움찔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 계속해서 후들거리는 사람이 있을까?

슬래셔(Slasher) 무비나 좀비영화보다는 여자 귀신 나오는 아시안 호러영화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셔터'를 보고나니 이제 더이상 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한 죽음과 원한, 여자 귀신, 그리고 복수 등 진부한 스토리와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자 귀신 무비'도 이젠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댓글 2개 :

  1. 헐 이게 리메이크 되었군요
    엔딩에 반전이 있다고 하던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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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반전도 아닙니다. 너무 뻔한 얘기라서요.
    엔딩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엔딩은 거진 코메디 수준입니다.
    한참 웃다가 나왔다는...
    지금 생각해도 웃깁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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