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1일 월요일

억지로 수퍼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을까

유니버설 픽쳐스가 언론인 출신 소설가 다니엘 실바(Daniel Silva)의 게이브리얼 앨런(Gabriel Allon) 소설 시리즈 라이센스를 사들였다고 한다. 유니버설이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를 대체할 스파이 스릴러 영화로 실바의 게이브리얼 앨런 시리즈를 택했다니 한번 읽고 싶어졌다.

2006년작 '메신저' 영화가 2010년 개봉예정으로 알려진 만큼 이것부터 먼저 읽었는데 내 입맛엔 영 맞지 않았다. 알카에다의 폭탄테러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대통령과 로마 교황 암살을 노리자 수퍼 에이전트 게이브리얼 앨런과 그의 모사드 팀이 이를 저지하며 영웅이 된다는 뻔한 스토리가 전부였다.

2007년작 '스크릿 서밴트(The Secret Servant)'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알카에다,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폭탄테러 등 'HERE-WE-GO-AGAIN'이었다.


▲다니엘 실바의 '시크릿 서밴트'

전편에 비해 안티 아랍 수위가 낮아진 건지, 아니면 내가 실바의 스타일에 익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메신저'보다 거부감은 덜 했다.

하지만, 게이브리얼 앨런을 '유대인 수퍼 에이전트'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변함없었다.

이번엔 어떻게 수퍼 히어로(?)가 되냐고?

'메신저'에선 미국 대통령과 교황을 구해 '스타'가 되더니 이번엔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집트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영국주재 미국대사의 딸을 구출하면서 다시 한번 '스타'가 된다. 게이브리얼 앨런은 이미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상태며, 테러사건 현장에서 촬영된 그의 사진이 실명과 함께 신문에 실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덴마크 정보부는 게이브리얼 앨런을 스타 에이전트로 동경하는 것(Star-struck)으로 나온다.

잠깐! 'Secret Agent'가 유명한 게 정상이냐고?

작가 다니엘 실바가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였을까? 게이브이얼 앨런을 'Not-so-secret-agent'라고 했더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퍼 히어로 에이전트를 만들자니 별 수 있었겠수?

잠깐 원 모어 타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퍼 히어로 에이전트를 탄생시키고자 한다고 소설상에서까지 영웅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냐고?

당연히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라는 제임스 본드(James Bond)도 소설상에선 '유능한 에이전트' 정도가 전부일 뿐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고 미국 대통령, 교황과 친분이 있는 거물급 유명인사가 아니다. 배트맨(Batman)과 같은 코믹북 수퍼 히어로들은 만화상에서도 히어로로 나오지만 제임스 본드는 아니다.

배트맨? 지금 게이브리얼 앨런을 배트맨에 비유하냐고?

납치된 미국대사 딸이 자신을 구출하려던 게이브리얼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언젠간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는 대목에선 영락없이 코믹북 수퍼 히어로가 떠오르더라.

그렇다면 다니엘 실바(사진)는 무슨 이유에서 이토록 간지러운 수준으로 게이브리얼 앨런 영웅 만들기에 열중했을까?

'세계를 지키는 유대인 수퍼 에이전트'를 만들어 가면서 호감을 갖도록 만들어야 할 정도로 반유대 정서가 심한 걸까?

다니엘 실바의 소설들을 얼핏보면 사실적인 카운터 테러리즘(Counter-Terrorism) 소설로 보이지만 이것은 포장일 뿐이고 '유대인을 좋아하라', '이스라엘을 지지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게 본 목적이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항상 옳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전부 틀렸으며, 게이브리얼과 그의 모사드 팀이 테러리스트에 무지한 유럽인들을 구해준다는 설정으로 이를 정당화 하는 게 전부다.

그렇지 않고서야 간지러울 정도의 게이브리얼 앨런 영웅 만들기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게이브리얼 앨런을 유대인 수퍼 스파이 캐릭터로 만들겠다는 순수한 의도가 전부로 보이지 않는 것. 실바의 소설이 이상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이유는 이런 부분들 때문인 것 같다.

일부는 다니엘 실바를 '존 르 카레(John Le Carre)에 비견하는 스파이 픽션 작가'라고 하지만 나는 여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실바가 중동 테러리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있다는 것은 의심치 않지만 소설가로써의 글솜씨는 아직 먼 것 같다. 차라리 논픽션이라면 덜 간지러웠을지 모르지만 실바의 소설은 노련한 소설가가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실바의 소설에서도 역시 기자와 소설가의 차이가 느껴진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니 소잿거리는 많을 것이다. 실바 본인도 '소잿거리는 풍부하다'고 했다. 하지만, 맛깔나는 픽션을 만들어내는 소질이 부족하면 별 소용 없다. '소설가' 다니엘 실바의 약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시크릿 서밴트' 영화가 발표된 것도 아니므로 영화 타령을 하기엔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지만 유니버설 픽쳐스가 총 7편의 게이브리얼 앨런 시리즈 영화제작권을 갖고있는 만큼 영화 '메신저'의 후속편으로 '시크릿 서밴트'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줄거리가 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메신저'에 나왔던 사라(Sarah)가 '시크릿 서밴트'에 다시 나오는 만큼 '메신저' 다음으로 이 소설을 영화화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니버설 픽쳐스가 '메신저' 영화를 2010년 선보일 예정으로 알려졌으니 만약 '시크릿 서밴트'도 영화화 된다면 - 당연하겠지만 - 2010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영화는 소설보다 단순해지는 데다 유니버설이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이을 후속 시리즈로 택한 만큼 스토리 보다는 액션 위주의 스릴러 영화로 만들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영화화 하느냐에 달린 문제겠지만 '시크릿 서밴트'는 소설보다 차라리 영화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기대는 안 되지만...

댓글 2개 :

  1. 헉 제이슨 본 시리즈 이제 안나오나요?
    저번에 4탄 만든다는 얘기를 들은것같은데..
    무산됬나보군요.ㅜㅜ
    메신저 2010년이면 한참 남았네요.-ㅁ-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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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4편 얘기가 나돌았던 건 사실이지만 3편으로 끝난 걸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스토리와 캐릭터보다는 액션과 스턴트만으로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Bourne Supremacy' 흥행실패하고 화려하게 컴백한 게 '얼티메이텀'인데 여기서 계속 끌고가기 힘들지도...

    그래서인지 이번엔 스토리가 좀 더 리얼한 걸 찾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 시리즈처럼 등장 캐릭터들의 직업을 빼면 첩보영화로 볼 수 없는 스토리 말고 현시대에 맞는 스파이 스릴러 줄거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진 대환영인데요, 실바의 소설이 별로 맘에 안든다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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