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5일 목요일

제임스 본드 스페셜 (18) - 자동차 스턴트

(이어서) 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의 메인 본드카는 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 나왔던 아스톤 마틴 DBS(Aston Martin DBS)다.

가젯이 없는 것도 전작과 같다.


▲아스톤 마틴 DBS


▲아스톤 마틴 DBS

하지만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 '카지노 로얄'에선 아스톤 마틴 DB5가 미스터 본드의 '자가용'이고 아스톤 마틴 DBS가 엉거주춤한(?) '미션용 본드카'로 나왔지만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사정이 약간 다르다는 것.

이번 영화엔 아스톤 마틴 DB5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아스톤 마틴 DBS가 제임스 본드의 '자가용'으로 나온 걸까?

그렇다고 해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해야 옳다.

아스톤 마틴 DBS가 카 체이스 씬에 나오기 때문이다. 본드가 개인용으로 잠시 운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메이져 액션씬에 나오는 만큼 '자가용'이라기 보다는 '미션용 본드카'에 가깝다고 해야 할 듯.


▲'콴텀 오브 솔래스'의 카 체이스 씬

그러나...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럭져리 스포츠카와 카 체이스 씬은 007 시리즈 전통 중 하나이므로 이상할 게 없지만, 럭져리 스포츠카와 카 체이스 씬이 한데 합쳐지니까 약간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섹시한 럭져리 스포츠카'와 '격렬한 카 체이스 씬'을 억지로 짜맞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1971)'의 포드 머스탱,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1974)'의 AMC 호넷, '골든아이(GoldenEye/1995)'의 아스톤 마틴과 페라리의 레이스 씬처럼 평범한 스트릿 레이스, 또는 자동차 TV광고 수준이었다면 또다른 문제였을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포드 머스탱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AMC 호넷


▲'골든아이'의 아스톤 마틴 vs 페라리

그러나 '콴텀 오브 솔래스'의 카 체이스는 상당히 격렬했다.

그렇다고 자동차가 박살나는 격렬한 카 체이스 씬이 나온 게 007 시리즈 역대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예를 몇 개 들어보자면,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9)'의 본드와 트레이시의 빨간색 머큐리 쿠거와 블로펠드 부하들간의 카 체이스,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1973)'의 2층버스 체이스,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1981)'의 본드와 멜리나의 노란색 시트로엥 추격전, '옥토퍼시(Octopussy/1983)'의 철로를 달리는 벤츠 씬, '뷰투어킬(A View to A Kill/1985)'의 파란색 르노(Renault) 택시 씬 등을 꼽을 수 있다.


▲'여왕폐하의 007'의 머큐리 쿠거(맨 오른쪽)


▲'죽느냐 사느냐'의 2층버스


▲'유어 아이스 온리'의 씨트로엥


▲'옥토퍼시'의 벤츠


▲'뷰투어킬'의 르노 택시

하지만, 아스톤 마틴 DBS와 같은 멋진 스포츠카가 격렬한 카 체이스 씬에 나온 적은 없었다.

'골드핑거(Goldfinger/1964)'에서 본드가 몰던 아스톤 마틴 DB5가 박살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씬은 격렬한 카 체이스 보다는 본드카에 설치된 여러 가젯들을 보여주려는 게 목적이었다고 봐야 옳으므로 제외. 럭져리 스포츠카가 파괴됐더라도 '가젯 본드카'는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가젯을 사용하는 자동차 배틀/추격전에서 파괴된 것과 가젯 없이 격렬한 카 체이스를 하다 파괴된 것은 다른 얘기기 때문이다.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1987)'의 아스톤 마틴 볼란테,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1997)'의 BMW 750(750은 스포츠카도 아니다),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2002)'의 아스톤 마틴 뱅퀴시 씬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골드핑거'의 아스톤 마틴 DB5


▲'리빙 데이라이트'의 아스톤 마틴 볼란테


▲'투모로 네버 다이스'의 BMW 750


▲'다이 어나더 데이'의 아스톤 마틴 뱅퀴시

그렇다면 럭져리 스포츠카가 격렬한 카 체이스 씬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럭져리하고 퓨쳐리스틱한 '눈에 띄는' 스포츠카가 들이받고 뒹구는 것 보다 평범한 자동차의 액션씬이 훨씬 더 실감나고 스릴 넘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럭져리 스포츠카가 카 체이스 씬에 나오면 약간 유치해 보인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수퍼 스파이가 럭져리 스포츠카를 타고 적들에게 쫓긴다'는 만화같은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콴텀 오브 솔래스'에 이러한 씬이 나왔다. '리얼리티'를 강조하던 이 영화에 아스톤 마틴 DBS가 박살이 나는 카 체이스 씬이 나온 것이다.


▲문짝까지 떨어져 나간 '콴텀 오브 솔래스'의 아스톤 마틴

'유어 아이스 온리'의 씨트로엥, '뷰투어킬'의 르노 택시처럼 평범하거나 허름해 보이는 자동차가 카 체이스 씬에 나왔다면 오히려 더욱 볼 만 하지 않았을까?

아스톤 마틴 DBS가 미사일이 나가는 특수장치가 된 '가젯 본드카'였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전형적인 007 스타일 카 체이스 씬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콴텀 오브 솔래스'의 카 체이스 씬은 'NONE OF ABOVE'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스타일리쉬'를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스톤 마틴 DBS가 격렬한 카 체이스 씬에 나온 것은 아무리 봐도 어색해 보였다.

물론, 드라이빙 스턴트 씬 자체만 따진다면 리얼하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놓고 '리얼하다', '아니다'를 따질 수 있을까?

007 제작진이 '가젯이 안 나오는 리얼한 자동차 액션씬'을 원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가젯으로 무장한 럭져리 본드카가 나오는 전통적인 007 자동차 액션씬을 빼고 가젯이 없는 럭져리 본드카의 격렬한 카 체이스 씬으로 대신하면서 '007 시리즈가 이만큼 리얼해 졌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가젯 없는 자동차 액션씬'에만 몰두한 나머지 하나만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가젯 본드카'가 안 나온다는 것도 좋고, 이를 격렬한 카 체이스 씬으로 대신하겠다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아스톤 마틴 DBS를 카 체이스 씬에 등장시킨 것은 실수였다. 쿨하고, 멋지고, 스릴넘치는 추격씬이 아니라 유치하고 아동틱하게 보이게 됐기 때문이다. '럭져리 스포츠카의 격렬한 카 체이스 씬' 만큼 유치할 정도로 뻔하고 아동틱한 설정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본드23'에선 본드카와 자동차 액션씬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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