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5일 토요일

다니엘 실바의 '모스코 룰스', 이게 마지막이다!

미국의 스릴러 소설가, 다니엘 실바(Daniel Silva)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딱 세 권이 전부인 듯 하다. 실바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또 하나가 걸려들었다. 이번엔, '모스코 룰스(Moscow Rules)'다. 산 지는 몇 달 되었는데 읽지 않고 계속 미뤄두다가 결국은 읽게되었다.

다니엘 실바의 소설은 이스라엘 모사드 에이전트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냐고?

맞다.

그런데 웬 모스크바 타령이냐고?

첩보물의 황금기가 지난 냉전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냉전시대를 연상케 하는 제목을 고르고, 지금은 없어진 KGB를 들먹이면서 그 때 그 분위기를 되살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가 신냉전 분위기까지 조성하자 얼씨구나 하면서 러시아를 타겟으로 삼은 소설을 내놓은 듯 하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모사드와 러시아 FSB의 첩보전을 그린 소설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바가 알 카에다(Al Qaeda)를 빼놓을 리 없기 때문이다. '모스코 룰스'는 중동 테러리스트에게 무기를 파는 러시아 무기판매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소설에선 아랍 테러리스트를 적으로 삼지 않은 대신 이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부패한' 러시아를 두들기기로 한 것. 다니엘 실바의 스타일을 알고있는 독자들은 '어련하셨겠나' 싶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런 소설은 심심풀이로 읽는 스릴러이므로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모스코 룰스'는 무기밀매상 조직에 언더커버 에이전트를 심는다는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나잇 매니저(The Night Manager)'를 모방한 실바의 또 하나의 소설일 뿐이었다.

존 르 카레의 '나잇 매니저'를 모방한 실바의 첫 번째 소설은 2006년작 '메신저(The Messenger)'다. '나잇 매니저'의 무기밀매 조직을 중동 테러리스트로 바꾼 게 '메신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모스코 룰스'에서는 한술 더 떠 무기밀매상까지 그대로 가져왔다. 프랑스 샌-트로페(Saint-Tropez)에 멋진 저택을 갖고있는 부유한 러시아인 무기밀매상 이반 카르코프는 바하마에 멋진 저택을 갖고있는 '나잇 매니저'의 리처드 로퍼와 다를 게 없는 캐릭터였다.

뿐만 아니라 '메신저'와도 비슷한 데가 여러군데 눈에 띄었다. '메신저'에서 언더커버 에이전트로 침투시켰던 미국인 캐릭터, 사라가 비록 비중은 작아졌지만 비슷한 역할을 다시 맡았으며, 무기 밀매조직에 접근하기위해 그림을 미끼로 사용한다는 설정도 '메신저'와 매우 비슷했다. 이런 식이다보니 '메신저'의 몇 가지를 바꿔놓은 게 전부인 '메신저 - 모스코 리믹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이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모스코 룰스'에서는 언더커버 에이전트를 침투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직내부의 변절자가 등장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조직내부에 있는 협력자를 이용해 정보를 빼낸다'는 구조는 다를 게 없으므로 큰 차이점이라고 하기 힘들다. 그저 간지러운 수준이라고 할까?

간지러웠던 부분을 꼽자면 KGB가 어쩌구, 망명이 저쩌구 하는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모사드 에이전트를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 소설이라면 예전에 하던대로 중동 테러리스트나 쫓아다니는게 어울리는데 갑자기 웬 러시아? 첩보소설에 러시아가 나와야 그럴싸해 보인다는 건 다들 알고있지만 게이브리얼 앨런 시리즈의 적을 중동 테러리스트에서 러시안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2009년 7월 출판된 '디펙터(Defector)'는 '모스코 룰스'와 줄거리가 이어지는 속편이다)

그래도 처음 1/3 정도는 '왠지 비슷하다'는 생각을 밀어내며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울 게 없다', '재탕이다', '스토리가 엉성하다'는 생각에 지배당하면서 흥미를 잃었다.

주인공, 게이브리얼 앨런 영웅 만들기도 눈물겨웠다. 실바가 이스라엘인 수퍼 에이전트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미국 대통령, 교황 등과도 친분이 두터운 수퍼스타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실바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간지러울 정도로 오버할 필요가 있었냔 말이다. 실바의 소설에서 유치한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한 둘이 아니겠지만 게이브리얼 앨런이 그 중 최고일 것이다.

실바가 노리는 것은 제임스 본드와 같은 수퍼 캐릭터와 존 르 카레의 리얼한 스파이 스토리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게이브리얼 앨런을 제임스 본드에 비견할 만한 유명한 캐릭터로 만들고, 소설로는 존 르 카레와 비견할 만한 작가라는 평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언 플레밍과 존 르 카레의 장점만을 쏙 빼내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할까? 꿈은 야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 실바의 소설은 되도록이면 '모스코 룰스'를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스토리가 이어지는 속편까지 나와있는 상태이므로 자칫하다간 다음 것까지 또 읽게 될 것 같지만 '되도록이면' 실바의 소설은 그만 읽고 싶다. 내 입맛엔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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