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일 화요일

007 시리즈 건배럴씬의 변천사와 미래

007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전통 중 건배럴씬(Gun Barrel Scene)이라는 게 있다. 제임스 본드가 동그란 원의 중앙으로 걸어나와 총을 쏘는 유명한 씬이다.

007 시리즈의 건배럴씬과 메인 타이틀씬의 디자인을 맡았던 미국인 디자이너 모리스 바인더(Maurice Binder)에 의해 만들어진 이 유명한 건배럴씬은 EON 프로덕션이 제작한 22편의 오피셜 제임스 본드 시리즈 모두에 사용되었다. 동그라미를 이용한 간단한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되었던 건배럴씬이 50여년간 007 시리즈의 오프닝씬으로 사용된 것이다.

건배럴씬이 007 시리즈의 상징이 되면서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영화배우로 교체될 때마다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로 건배럴씬이 꼽히게 되었다. 배우가 교체될 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건베럴씬들을 한 번 둘러보기로 하자.

제 1탄 '닥터노(Dr. No)'부터 3탄 '골드핑거(Goldfinger)'에 나오는 건배럴씬의 주인공은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아닌 스턴트맨 밥 시몬스(Bob Simmons)였다. 영화에서는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였으나 건배럴씬에서는 스턴트맨이 그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코네리가 직접 촬영한 건배럴씬은 제 4탄 '썬더볼(Thunderball)'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코네리 버전 건배럴씬은 모자를 쓴 것 까지는 밥 시몬스 버전과 비슷하지만 총을 쏘면서 점프를 하지 않고 한쪽 무릎을 거진 꿇다시피 한다. 순간 코네리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듯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촬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제 2대 제임스 본드, 조지 래젠비(George Lazenby)의 건배럴씬은 코네리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래젠비 버전에서는 코네리의 것과 달리 한쪽 무릎을 완전히 꿇는다는 것이다. 이전에 코네리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던 것을 보완하려 했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제 3대 제임스 본드, 로저 무어(Roger Moore)의 건배럴씬은 코네리, 래젠비 버전과 크게 달랐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풍스럽게 보이던 모자를 더이상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격폼도 서 있는 상태에서 양손을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973년부터 1985년까지 무려 일곱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했던 로저 무어는 그 동안 2개 버전의 건배럴씬을 촬영했다. 그의 첫 번째 버전 건배럴씬은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에 사용되었다.



로저 무어의 두 번째 버전 건배럴은 1977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에 처음 선을 보였다.

사격폼은 양손으로 총을 잡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보타이(Bow Tie)를 한 턱시도 차림이라는 것이다. 건배럴씬에 제임스 본드가 보타이를 한 턱시도 차림으로 나오기 시작한 게 바로 이 때 부터다.



제 4대 제임스 본드,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의 건배럴씬은 숀 코네리와 로저 무어의 스타일을 한데 합친 듯 했다.

턱시도를 입은 모습은 로저 무어의 것과 흡사했으나 사격폼은 코네리의 것을 연상케 했다.



제 5대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건배럴씬은 상당히 심플했다.

점프를 하고 무릎을 꿇기까지 하던 60년대 007 시리즈의 건배럴씬이 유치한 것만은 사실이었고, 90년대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인지, 브로스난의 건배럴씬은 매우 심플했다. 그저 중앙으로 걸어나온 다음 정면을 향해 서서 총을 쏘는 게 전부였다.



제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건배럴씬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우선 건배럴씬의 위치부터 바뀌었다. 1탄부터 20탄까지는 건배럴씬이 오프닝씬으로 사용되었으나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는 건배럴씬이 프리 타이틀과 메인 타이틀 사이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또한, '카지노 로얄' 건배럴씬은 흰색 동그라미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넥타이도 매지 않은 제임스 본드가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총을 집어드는 장면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임스 본드가 노타이 차림으로 나온 것도 처음이고, 흰색 동그라미 애니메이션이 빠진 것 역시 007 시리즈 사상 처음이다.

건배럴 디자인이 조잡스러워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사격폼 또한 이전처럼 중앙으로 걸어나온 다음 정면을 향해 쏘는 게 아니라 뒤로 돌면서 쏘는 것으로 바뀐 바람에 이전 버전과의 비교 자체가 힘들다.

007 제작진이 무슨 이유에서 '카지노 로얄'의 건배럴씬을 뜯어고쳤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과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에 변화를 줘서 한눈에 봐도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007 제작진은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도 건배럴씬을 원위치시키지 않았다. 쓸데 없는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건배럴 - 프리 타이틀 - 메인 타이틀로 이어지는 007 시리즈의 전통적인 패턴에 이상이 오는 부작용이 생겼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번엔 풀버전 건배럴씬을 볼 수 있었다. 오프닝씬으로 사용되었던 건배럴씬을 엔딩씬으로 바꾸는 웃기지도 않는 장난을 또 쳤지만, 이제나마 제대로 된 다니엘 크레이그의 건배럴씬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의없이 만든 것처럼 보였다. 코믹북 수퍼히어로가 성큼성큼 걸어나오더니 주먹에서 무엇인가를 쏘는 것처럼 보였을 뿐 제임스 본드 건배럴씬다운 맛이 나지 않았다. 조금 천천히 여유있게 걸어나와 제임스 본드다운 사격폼을 보여줬더라면 좋았겠지만 크레이그의 '콴텀 오브 솔래스' 건배럴씬은 그렇지 못했다.

크레이그의 사격폼 또한 그다지 새로울 게 없었다. 티모시 달튼과 피어스 브로스난의 포즈를 합쳐놓은 듯 한 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본드23'에 새로운 건배럴씬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냐고?

그렇다. 매번 건배럴씬을 새로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을 뿐더러, 건배럴씬이 계속해서 변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지만 크레이그의 건배럴씬은 다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제임스 본드가 매우 액티브한 캐릭터라 해도 건배럴씬에서까지 그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건들거리면서 걸어나오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천천히 여유있게 걸어나와도 무방하다. 사격폼도 마찬가지다. 한손 사격폼에서 벗어나 양손으로 쏘는 포즈로 바꿔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로저 무어를 제외하고는 건배럴씬에서 양손을 사용한 사격폼을 보여준 배우가 없는 만큼 양손포즈로만 바꾸더라도 브로스난의 것과 크게 다르게 보이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사진모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이지 제임스 본드 시늉을 하는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턱시도 입고 권총을 들고있는 모습이 맵시나고 그럴싸해 보인다고 무조건 훌륭한 제임스 본드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영화배우가 게임쇼 부스에서나 볼 수 있는 코스프레 모델처럼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다니엘 크레이그는 잘 해오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가 사실상 지난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로 되돌아가긴 했어도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는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건배럴씬에서는 분위기를 조금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건배럴씬은 영화의 성격과는 별 상관없는 상징적인 씬인 만큼 약간의 코스프레 모델 시늉을 해도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크레이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어떠한 지는 잘 알고있지만, 건배럴씬에서까지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나와서 딱딱한 사격폼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다시 제대로 만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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