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잭 리처', 톰 크루즈는 있었지만 잭 리처는 없었다

톰 크루즈(Tom Cruise) 주연의 액션영화 '잭 리처(Jack Reacher)'가 드디어 개봉했다. '잭 리처'는 영국 소설가 리 차일드(Lee Child)의 범죄 스릴러 소설 '원 샷(One Shot)'을 기초로 한 액션 스릴러 영화이며,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된 '잭 리처'는 소설에 등장하는 메인 캐릭터의 이름이다.

물론 톰 크루즈가 주인공 잭 리처 역을 맡았다.

그러나 톰 크루즈가 잭 리처 역을 맡는 것으로 알려지자 "톰 크루즈는 잭 리처 역에 안 어울린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리 차일드 소설 시리즈의 잭 리처는 전직 미군 MP 출신의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사나이인데, 톰 크루즈에게선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신체 조건까진 넘어간다 해도 넘어야 할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톰 크루즈가 싸구려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는 우직한 전직 군 출신 터프가이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원작소설의 잭 리처는 영국 소설가가 탄생시킨 '우직한 양키 히어로'이므로 아담하고 깔끔한 스타일의 크루즈와 어울리는 구석이 많지 않아 보였다.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시리즈 등 액션영화에 자주 출연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스타일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터프가이 액션스타는 아닌 듯 했다. 크루즈가 50대로 접어들면서 과거 20대 시절의 꽃미남 이미지에서 벗어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잭 리처와 같은 캐릭터에 어울릴 정도로 터프해지진 않았다.

그렇다. 영화 '잭 리처'는 톰 크루즈와 그리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톰 크루즈를 원작소설의 잭 리처에 어울리도록 억지로 변신시키지 말고 그 반대로 하면 될 것 같았다. 톰 크루즈 버전 잭 리처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고 힘이 센 소설의 캐릭터와 이래저래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내친 김에 톰 크루즈 맞춤형 캐릭터로 완벽하게 손질을 하면 어색함을 많이 줄일 수 있을 듯 했다.

과연?


제작진이 잭 리처를 크루즈의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어색함을 완벽하게 지우지 못했다. 기대했던 것 보다 풍부한 유머가 어색함을 다소 누그러뜨리긴 했지만 톰 크루즈의 잭 리처는 여전히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톰 크루즈 맞춤형 캐릭터로 만드는 김에 잭 리처를 CBS TV의 인기 시리즈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Person of Interest)'의 존 리스(짐 카비젤)처럼 세련된 캐릭터로 바꿨더라면 보다 잘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리 차일드 소설에 나오는 잭 리처와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의 존 리스는 비슷한 데가 있다. 예고없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고 사라지는 추적하기 힘든 미스테리한 캐릭터라는 점을 대표로 꼽을 수 있다. 그러므로 톰 크루즈 버전 잭 리처를 영화판 존 리스처럼 만들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크루즈가 피지컬한 마초형 터프가이 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아니라는 문제도 있는 만큼 톰 크루즈 버전 잭 리처를 존 리스처럼 깔끔한 양복 차림의 세련된 캐릭터로 설정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원작소설의 캐릭터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 변화를 줘야 톰 크루즈와 보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나 톰 크루즈의 잭 리처는 소설의 캐릭터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크루즈는 마치 스티븐 시걸(Steven Seagal) 주연의 8~90년대 액션영화에 잘못 등장한 것처럼 어색하게 마초 터프가이 역을 연기했다. 크루즈가 맨손 격투로 여러 명의 상대를 간단하게 쓰러뜨리고,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주연의 액션 스릴러 '블릿(Bullitt)'의 한 장면처럼 머슬 카(Muscle Car)를 몰고 카체이스를 할 뿐만 아니라 나중엔 웃통까지 벗고 나오는데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다. 톰 크루즈가 액션영화에 제법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런 마초 터프가이 캐릭터 역엔 썩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요샌 마초-근육질-터프가이 흉내내기가 유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다.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부터 시작해서 억지로 터프가이 시늉을 하는 남자 배우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멋지게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아무리 액션영화 주인공을 맡았다 해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쪽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야지 무작정 웃통 벗고, 근육 키우고, 인상쓰며 폼 잡아봤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톰 크루즈도 '잭 리처'에서 터프가이 함정에 걸린 듯 했다.

그래도 주연을 맡은 배우가 다름 아닌 세계적인 베테랑 배우 톰 크루즈였기 때문인지 걱정했던 만큼 어색하진 않았다. 영화 '잭 리처'와 톰 크루즈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는데도 그럭저럭 영화를 끝까지 보는 덴 별 문제가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헐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의 존재감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톰 크루즈는 있었지만 잭 리처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에 톰 크루즈마저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한숨만 나온다. 크루즈가 출연한 덕분에 이 정도나마 한 것이지,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지금 만큼의 관심도 끌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잭 리처 역에 썩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톰 크루즈가 없었다면 볼거리가 거의 없는 영화가 될 뻔했다.

톰 크루즈 이외의 볼거리로는 제임스 본드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본드걸로 출연했던 영국 여배우 로자먼드 파이크(Rosamund Pike)밖에 없을 듯 하다. 20대 초반에 너무 일찍 본드걸로 출연했던 '다이 어나더 데이'에선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파이크에게서 이젠 여성스러움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최대 볼거리가 로자먼드 파이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친구가 나중에 007 시리즈에서 머니페니 역을 맡아도 괜찮을 듯 하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가지 생각해 볼 게 있다 - 과연 '잭 리처' 시리즈가 톰 크루즈의 효과를 충분히 얻었을까?

톰 크루즈가 잭 리처 역으로 적합한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설가 리 차일드 역시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OK 싸인을 보낸 건 크루즈의 네임밸류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루즈가  출연한다고 하면 '잭 리처' 프랜챠이스에 많은 관심이 쏠림과 동시에 영화도 적어도 참패는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잭 리처'가 성공적인 시리즈물이 될 만한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잭 리처'는 특별하게 새로울 것도 없었고, 스케일이 작은 평범한 범죄 스릴러가 전부였다. 솔직히 말해, 새로운 잭 리처 영화가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잭 리처'에 제 2의 '미션 임파서블'이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평균 수준 정도 되는 톰 크루즈 주연의 평범한 범죄 영화일 뿐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있는 영화다. 애초부터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럭저럭 버틸 만했지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실망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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