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7일 일요일

'헨젤과 그레텔', 뇌 한쪽 빼놓고 시간 소비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린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빵과 사탕으로 만든 집에 사는 마녀에 붙잡혔다 탈출한다는 줄거리의 어린이용 동화 '헨젤과 그레텔(Hansel & Gretel)'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가 헨젤, 제마 아터튼(Jemma Arterton)이 그레텔 역을 맡은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헨젤과 그레텔: 윗치 헌터(Hansel & Gretel: Witch Hunter)'다.

제레미 레너와 제마 아터튼이 헨젤과 그레텔??

무기를 들고 서있는 레너와 아터튼의 포토만 봐선 그들이 헨젤과 그레텔이란 사실을 알아보기 힘들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에 나온 헨젤과 그레텔 남매는 저렇게 '하드코어'가 아니었으니까.

이건 우리가 알던 헨젤과 그레텔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쩌다 그 꼬맹이들이 이렇게 되었을까?

아, 그러니까 헨젤과 그레텔이 빵과 과자로 만든 집에 살던 마녀를 무찌르고 난 뒤 내친 김에 마녀 사냥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Ok... Cute...

'헨젤과 그레텔: 윗치 헌터'는 아무리 봐도 진지하게 볼 만한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성인이 된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 사냥꾼이 된다'는 설정은 나름 괜찮아 보였지만 그래도 왠지 '이건 또 뭐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왕마녀(?) 역으로 팜키 얀슨(Famke Jansen)이 출연한다는 사실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얀슨은 1995년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든아이(GoldenEye)'에서 허벅지 조르기를 하며 혼자 신음소리를 내던 바로 그 양반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엔 본드걸만 2명?

제마 아터튼도 2008년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 출연했던 본드걸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헨젤 역을 맡은 제레미 레너는 '본 레거시(The Bourne Legacy)'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친구다.

2명의 본드걸에 둘째 제이슨 본이라...

C'mon kids... How can I resist????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화에 큰 기대가 가진 않았다. 이런 류의 액션-코메디-판타지 영화들이 대부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진지하게 보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하기 때문이다. 포스터를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영화에 대한 기대는 문자 그대로 "제로"였으며, '두 명의 본드걸이 함께 나오는 영화', '본드걸과 둘째 제이슨 본의 만남'에 의미를 두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의외로 볼 만했다. 영화 내내 한숨만 푹푹 쉬면서 객석에 푹 묻혀 있다가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극장탈출'을 하게 만드는 영화일 것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갔는데, 생각밖으로 견딜 만했다.

주연배우들부터 나쁘지 않았다. 제레미 레너는 '왠지 어색할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터프하면서도 코믹한 헨젤 역에 비교적 잘 어울렸고, 제마 아터튼 또한 쌀쌀맞고 앙증맞은 그레텔 역에 잘 어울렸다. 아터튼은 그렇다 쳐도 레너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어색해 보인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레너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터프하지도 않고 지루할 정도로 진지하지도 않은 밸런스 잡힌 캐릭터를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만약 이 영화에 레너가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까지 견디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영화가 될 모든 조건을 갖춘 '헨젤과 그레텔: 윗치 헌터'가 그쪽으로 심하게 기울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데 레너가 큰 도움을 줬다.

물론 스토리는 보잘 것 없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성인이 되어 마녀 사냥꾼이 되었다는 설정은 흥미로운 편이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블레이드(Blade)', '반 헬싱(Van Helsing)' 등을 따라한 것이 전부였다. '어린이용 동화가 이렇게 되는 수도 있구나' 하는 데 까지는 좋았으나 그 나머지는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스토리는 간단명료하고 군살이 없었으며, 도중에 집중이 흐트러질 정도로 산만하거나 터무니 없을 정도로 유치하지 않았다. 어디서 본 듯한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얘기가 전부였지만 특별하게 눈에 띄는 '대형사고'가 없었으며, 영화 마지막까지 그럭저럭 지루함 없이 볼 수 있었다.

런타임이 1시간 반이 채 안 되는데 지루할 틈이 있겠수?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 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가 재미 있었다/없었다가 아니라 $$$이었다. 어지간 하면 3D나 아이맥스는 피하는 편인데, 스케쥴 관계 상 하는 수 없이 '헨젤과 그레텔: 윗치 헌터'를 3D로 보게 됐기 때문이다. 런타임이 1시간 반이 안 되는데도 이 영화를 3D로 보니 $15 정도 나왔다. 과연 '헨젤과 그레텔: 윗치 헌터'가 $15 가치를 하는 영화인지는 아무래도 또 다른 얘기가 될 듯 하다.

또 한가지 의아한 것은 영화의 레이팅이다. 이런 류의 영화는 대부분 PG-13에 맞추는데, '헨젤과 그레텔: 윗치 헌터'는 R 레이팅을 받았다. 이 영화가 R 레이팅을 받은 이유는 영화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폭력 수위가 비교적 높은 편이고, 욕설이 더러 나올 뿐만 아니라 누드 씬도 있다.  '헨젤과 그레텔' 하면 자동으로 '어린이용 동화'가 떠오르는 만큼 "이번 '헨젤과 그레텔'은 패밀리용 영화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려던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청소년용 영화인 것엔 변함 없는데 굳이 R 레이팅을 고집할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이용 동화를 마녀 사냥을 하는 액션-판타지 영화로 바꿔놓았다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렇다고 R 레이팅까지 받을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물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가 박살이 나는 등의 화끈한(?) 액션 씬마저 없었으면 볼거리가 더 줄어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몇몇 씬들을 제외하면 R 레이팅보다 PG-13에 더 가까워 보이는 영화였기 때문에 어딘가 좀 엉거주춤해 보였다. 절대 어린이용 동화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들려 한 것은 알겠는데, 평범한 PG-13 판타지 영화에 좀 엉뚱한 몇몇 씬들이 나온 게 전부로 보였을 뿐 완벽한 성인용 판타지로 보이지 않았다. '좀비랜드(Zombieland)'의 경우엔 영화의 쟝르가 좀비들이 나오는 호러영화였으므로 잔혹한 씬들이 납득이 갔지만, 마녀들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판타지 세계와 R 레이팅 액션 영화는 아무래도 서로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꼬마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커서 마녀 사냥꾼이 된다'는 설정으로 제법 거친 액션-판타지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동화 지우기'에 너무 오버한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한쪽 뇌를 빼놓고 1시간 반을 소비하는 덴 나쁘지 않았다.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하면 아무래도 거짓말이 되겠지만, 기대했던 데 비하면 훌륭했다. 터무니 없이 한심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NOT-TOO-BAD이었다.

이 영화에 빅 버젯 블록버스터 스케일을 기대하면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주 한심한 삼류영화 수준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대치를 가능한한 낯추고 영화관을 찾으면 기대했던 것보다 의외로 시간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3D는... 티켓값이 거진 20달러나 되는 아이맥스 3D로 보지 않은 것을 위안삼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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