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6일 일요일

'맨 오브 스틸', 수퍼맨 영화보다 평범한 수퍼히어로 영화에 가까운...

여지껏 수퍼맨(Superman)이 누구인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코믹북을 즐겨 읽지 않고,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가 바로 수퍼맨이다.  가슴에 S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수트를 입고 빨간색 망토를 펄럭이는 수퍼맨은 코믹북 뿐만 아니라 TV, 영화, 비디오게임, 완구점 진열대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주 친숙한 캐릭터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캐릭터가 아마도 수퍼맨이 아닐까 한다.

2013년은 작가 제리 시겔(Jerry Siegel)과 만화가 조 슈스터(Joe Shuster)에 의해 탄생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 수퍼맨이 75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1938년 6월 발행된 DC 코믹스의 코믹북 '액션 코믹스 #1(Action Comics #1)'에 수퍼맨 캐릭터가 처음으로 등장한지 75년이 지났다.

워너 브러더스와 DC 코믹스는 수퍼맨 캐릭터 75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로고를 공개하기도 했다.


75주년에 맞춰 새로운 수퍼맨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은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연출은 '300', '워치맨(Watchmen)'의 잭 스나이더(Zack Snyder)가 맡았으며, 제작은 죽을 쑤던 배트맨 영화 시리즈를 헐리우드의 최대 히트작으로 바꿔 놓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스크린플레이는 놀란이 연출한 배트맨 트릴로지의 스토리를 쓴 데이빗 S. 고이어(David S. Goyer), 음악 역시 배트맨 트릴로지의 한스 지머(Hans Zimmer)가 맡았다.

여러 명의 '배트맨 멤버'가 '맨 오브 스틸'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맨 오브 스틸' 제작진에 크리스토퍼 놀란을 비롯한 '배트맨'들이 여럿 포함된 이유는 수퍼맨 영화가 7080년대 인기를 끌었던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 주연의 오리지날 시리즈 이후 컴백에 애를 먹고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수퍼맨 영화는 2006년 '수퍼맨 리턴(Superman Returns)'으로  '리턴'에 실패한 바 있다. 그러므로 죽을 쑤던 배트맨 영화 시리즈를 살려놓은 '크리스토퍼 놀란과 배트맨들'이 이번엔 수퍼맨 되살리기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배트맨 영향'은 바로 눈에 띄었다. 영국 영화배우 헨리 카빌(Henry Cavill)이 맡은 수퍼맨부터 어둡고 진지한 캐릭터로 바뀌어 있었다. 과거의 밝고 상냥하던 클라크 켄트/수퍼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퍼맨이 진지해졌기 때문일까? 항상 바지 위에 빨간 빤스를 입고 다니던 괴상한 수퍼맨 패션에도 변화가 왔다. 이번 수퍼맨은 뭔가 허전한 것 같다 했더니 '노팬티'였다.


그렇다면 결국 '맨 오브 스틸'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지난 배트맨 트릴로지처럼 어둡고 진지한 '드라마히어로' 영화가 된 것일까?

영화가 전체적으로 유머가 부족하고 분위기가 어두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크게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와 상당히 비슷한 수퍼맨 영화가 나올 것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영화의 톤이 어떠할 지, 새로운 수퍼맨 영화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을 지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으므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생소하다", "어색하다" 할 게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맨 오브 스틸'은 예상했던 그대로 였다. '배트맨 비긴스(Batman Begins)' 만큼 만족스럽진 않아도 아주 실망스럽진 않은 '수퍼맨 비긴스'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기대했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맨 오브 스틸'은 수퍼맨 영화보다 다른 평범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유명한 수퍼맨 수트를 제외하곤 수퍼맨 영화다운 특징이 부족해 보였다. 어둡고 진지한 클라크 켄트/수퍼맨은 브루스 웨인/배트맨과 비슷해 보였고, 수퍼맨 수트를 입은 모습을 비롯해 스토리, 액션 씬 등은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의 수퍼히어로 영화 '토르(Thor)'와 공통점이 많았다. 또한,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비행하는 수퍼맨의 상징적인 모습도 이젠 그다지 반갑지도,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다. 하늘을 나는 건 '아이언 맨(Iron Man)'도 충분히 가능하며, 실제로 지난 5월 개봉한 '아이언 맨 3(Iron Man 3)'에서 하늘을 나는 수퍼히어로의 모습을 이미 실컷 볼 수 있었다.

비슷비슷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이미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일까?

'맨 오브 스틸'은 '수퍼맨 영화를 본다'는 느낌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중 하나가 수퍼맨인데, 영화 '맨 오브 스틸'은 지금까지 인기를 끌었던 여러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들을 짜깁기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또 하나의 비슷비슷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중 하나로 보였을 뿐 수퍼맨 영화만의 특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막말로, 메인 캐릭터의 수퍼히어로 수트만 다른 것으로 갈아입히면 바로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로 둔갑할 수 있을 것처럼 개성과 특징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도 액션은 풍부한 편이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액션 씬은 없었다. 대부분의 액션 씬은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영화 '토르', '어벤져스(The Avengers)' 등과 비슷해 보였을 뿐 신선하지 않았으며, 반복되는 건물 파괴 액션 씬도 지루하고 인상적이지 않았다. 모던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팬들이 좋아할 만한 스펙타클한 액션 씬을 골라서 넣으려 한 듯 보였으나 '맨 오브 스틸'의 볼거리는 액션 씬이 아닌 드라마 파트였다. 요란스럽게 때려부수기만 하는 스타일 없는 액션 씬보다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 다이앤 레인(Diane Lane)이 등장하는 드라마 파트가 훨씬 더 볼 만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에서 클라크 켄트/수퍼맨 역을 맡은 영국 영화배우 헨리 카빌이 여러모로 불안해 보였다. 핸썸하고 체격도 좋은 카빌이 수퍼맨 수트를 입은 모습은 제법 근사해 보였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을 뿐 연기도 어색해 보였고 블록버스터 프랜챠이스를 이끌어갈 리딩맨으로써의 카리스마도 부족해 보였다. 헨리 카빌은 크리스챤 베일(Christian Bale)과 같은 노련한 영화배우가 아직 아니었으며, '토르(Thor)'의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처럼 능글맞은 유머감각과 여유로움도 없었다. 카빌의 수퍼맨은 친숙한 수퍼맨 수트를 입은 핸썸하고 매우 진지한 청년의 겉모습만 보였을 뿐 캐릭터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크리스토퍼 놀란의 글루미한 톤의 수퍼맨 영화에 제법 잘 어울려 보였지만, 카빌의 역할은 수퍼맨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 모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빌의 대사량이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으며, 수퍼맨의 친아버지인 조-엘 역을 맡은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가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의 오비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생각했던 것보다 큰 비중의 역할을 맡은 것도 다소 뻣뻣해 보이는 카빌이 영화를 말아먹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앞으로 차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재로썬 헨리 카빌 버전 수퍼맨 캐릭터가 어떻게 발전해 나아갈 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여주인공도 약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로이스 역을 맡은 미국 여배우 에이미 애덤스(Amy Adams)도 매력적인 여배우이지만 수퍼맨 역을 맡은 헨리 카빌과 9살 차이가 나는 게 어색해 보였다. '영계' 좋아하는 여성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티를 너무 노골적으로 낸 게 아닌가 싶었다. 자꾸 이러니까 남성 관객들이 마이클 베이(Michael Bay)를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다.

'맨 오브 스틸'에서 무엇보다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미국 영화배우 마이클 섀넌(Michael Shannon)이 연기한 악당 제너럴 조드다. 요즘 액션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이 폼만 요란스럽게 잡을 뿐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흐지부지하다 마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이클 섀넌이 연기한 제너럴 조드는 달랐다. '맨 오브 스틸'의 악당 제너럴 조드는 때로는 사악하고 난폭해 보여도 모티브가 뚜렷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아주 멋진 악당 캐릭터였다.


'맨 오브 스틸'에서 무엇보다 가장 섭섭했던 것은?

아무래도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의 유명한 수퍼맨 메인 테마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존 윌리암스의 유명한 수퍼맨 메인 테마는 크리스토퍼 리브의 7080년대 오리지날 수퍼맨 시리즈와 2006년작 '수퍼맨 리턴'에 모두 등장했으나 이번 '맨 오브 스틸에선 들을 수 없었다. 물론 한스 지머의 스코어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엔드 크레딧에서 귀에 익은 수퍼맨 메인 테마가 흘러나왔더라면 옛 향수를 되살림과 동시에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맨 오브 스틸'은 아주 싫지는 않은 영화였다. 썩 맘에 들진 않았어도 크게 실망스럽진 않았다. 이곳저곳 어색한 데가 눈에 띄었고 영화가 끝나갈 즈음 되었을 땐 영화가 약간 긴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은 하는 영화였다.

과연 '맨 오브 스틸'도 배트맨 트릴로지에 버금가는 대형 블록버스터 프랜챠이스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번에 새로 시작한 수퍼맨 시리즈가 배트맨 트릴로지를 능가하는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성공할 것 같은 기대감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시리즈를 이어갈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미 속편 이야기가 나온 상태이지만 속편이 과연 어떤 영화가 될 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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