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0일 토요일

헐리우드의 수퍼히어로 근육 만들기 유행에 불만인 남성 영화인들

미국 매거진 맨스 저널(Men's Journal) 5월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Building a Bigger Action Hero'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맨스 저널은 과거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알 파치노(Al Pacino), 케리 그랜트(Cary Grant) 시절과 달리 요즘엔 남자 배우들이 수퍼히어로 바디가 아니면 영화 포스터에 이름을 올리기 어려워졌다면서, 오늘날의 남자 배우들은 리허싱보다 체육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고 영화감독보다 트레이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전했다.

요새는 연기 실력과 리딩맨에 적합한 카리스마까지 두루 갖췄더라도 이런 것 만으로는 빅버젯 스파이 스릴러나 마블 코믹스의 시리즈에 캐스팅되기에 부족하다면서, 많은 남자 배우들은 수퍼히어로 바디를 만들기 위해 고강도 트레이닝과 엄격한 다이어트를 하고 생장 호르몬, 테스토르테론 등 약물도 사용한다고 맨스 저널은 전했다.

맨스 저널은 90년대 후반에만 해도 니콜라스 케이지(Nicholas Cage), 케아누 리브스(Keanu Reeves),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댄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 윌 스미스(Will Smith) 등 당시 인기 헐리우드 남자 배우들은 모두 핸썸하고 운동에 능해 보였어도 근육질은 아니었는데, 요즘엔 톰 크루즈(Tom Cruise)와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 등 낼모레면 예순인 배우들까지 과거보다 몸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다 근육을 키우는 데 혈안이라는 것이다.

곧 개봉할 수퍼히어로 영화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에서 휴먼 토치 역을 맡은 영화배우 마이클 B. 조던(Michael B. Jordan)은 "웃통을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 영화 제작진은 영화배우가 근육을 키우게 한 다음 수퍼히어로 영화에 출연시키기 때문에 몸 관리가 매우 중요해졌다면서, 과거보다 기준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맨스 저널은 수많은 헐리우드 남자 배우들이 멋진 근육질의 몸을 만들기 위해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고강도 트레이닝을 하는 게 이젠 필수가 되도록 만든 가장 큰 이유를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찾았다. 특히 갈수록 중요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의 인기가 높다면서, "멋진 몸과 폭발은 자막이 필요없다(Hot bodies and explosions don't need subtitles)"고 덧붙였다.

Hot bodies and explosions don't need subtitles...

맨스 저널에 따르면, 영화배우의 트레이닝 비용은 계약에 포함되며, 때로는 영화 스튜디오가 트레이너를 직접 고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최근엔 남자 배우가 아직 웃통을 벗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는 바람에 메이저 영화 프로젝트 제작이 몇 주간 지연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많은 남자 배우들은 생장 호르몬(HGH), 테스토스테론 등을 사용하면 정자 수 감소 등 상당한 건강 리스크가 따르는 것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배우들끼리 HGH와 테스토스테론 등을 처방해주는 트레이너와 의사의 전화 번호를 서로 교환한다고 한다.

이런 덕분에 피지컬 트레이너를 비롯한 관련 업계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불필요한 근육'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캐릭터가 제임스 본드다. 맨스 저널의 기사도 제임스 본드를 빼놓지 않았다. 맨스 저널의 기사엔 60년대 말 제임스 본드였던 숀 코네리(Sean Connery)의 웃통을 벗은 평범한 사진과 2006년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 유방을 잔뜩 부풀린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사진을 비교해놨다.


재미있는 건, 숀 코네리는 영화배우가 되기 이전인 50년대에 바디 빌더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키가 6피트 2인치인데다 바디 빌더 경력이 있는 코네리는 지금으로 치면 '수퍼히어로 프로토타잎'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코네리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의 몸은 평범한 정도였을 뿐 눈에 띄게 근육 운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만약 당시 코네리가 맘만 먹었다면 과거 바디 빌더 가닥이 남아있었던 만큼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보다 훨씬 더 크게 근육을 키울 수 있었겠지만,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원래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사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람한 근육 만들기는 제임스 본드의 필수 요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는 수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타잎인데도 부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근육을 잔뜩 키우고 나왔다. 이러한 이유에서 "제임스 본드가 근육질의 캐릭터가 아닌데 왜 다니엘 크레이그는 불필요해 보이는 근육을 키우고 나왔나" 지적을 받았으며, 일부 미국 언론은 다소 어이 없다는 뉘앙스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요란스러운 '제임스 본드 몸 만들기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 몸 만들기 트레이닝이 굉장히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적이 있지만, 많은 본드팬들은 "적당히 해도 되는데 불필요한 짓을 왜 힘들게 하냐"고 반문했다.

'스카이폴'이 개봉했을 때 미국의 몇몇 유명한 언론인들도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그 중 하나는 미국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폭스 뉴스(FOX NEWS)의 유명한 보수 언론인인 빌 오라일리(Bill O'Reilly)였다.

오라일리는 2012년 쓴 제임스 본드 영화 관련 칼럼에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체육관을 자주 들락거린 것 같았다면서, "숀 코네리가 여가 시간에 여자들을 뒤쫓고 마티니를 마시던 동안 다니엘 크레이그는 트라이애슬론 훈련을 한 것 같았다"고 비꼬았다.

"While Sean Connery spent his spare time chasing ladies and drinking martinis, Craig is apparently training for the triathlon." - Bill O'Reilly


하지만 '근육질 제임스 본드'도 요새 헐리우드 '수퍼히어로' 유행을 따른 것이라면 웃겨도 할 수 없을 듯.

그렇다면 이렇게 필사적으로 몸 만들기에 혈안이 된 헐리우드 남자 배우들의 반응은 어떨까?

맨스 저널 기사를 보니 이에 불만이 있는 영화인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프랭코(James Franco)다. 제임스 프랭코는 "(근육 운동 같은 것을)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로 되돌아 갈 순 없는 건가?"라면서 베니치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는 몸이 최상의 조건은 아니지만 여전히 쿨하지 않냐고 말했다.

"Can't we just go back to when you didn't have to do all this stuff? I look to Benicio del Toro. He's not in the best shape but he still looks cool, man. He's awesome." - James Franco

또다른 미국의 영화배우 릭 윤(Rick Yune)도 불만이 있었다. 릭 윤은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영화배우들을 몸뚱이 정도로 생각하는 게 불만이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Either you have it or you don't. It's not about Sean Connery's fitness, or Liam Neeson's muscles. You see Clint Eastwood point a gun – and you believe it. It's not the physical. It's what you put behind it." - Rick Yune

라이언 거슬링(Ryan Gosling)의 액션 스릴러 영화 '드라이브(Drive)' 등을 연출한 덴마크의 젊은 영화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Nicolas Winding Refn)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레픈은 진정한 영화스타가 굉장히 소수인 이유는 다른 영화배우들과 뚜렷하게 식별 가능한 영화배우가 굉장히 적기 때문이라면서, "식스팩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므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레픈은 모두가 전부 비슷비슷해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영화 스타를 만드는 건 영혼이지 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One of the reasons there are so few real movie stars is that there are very few who are distinguishable from one another. Everybody can get a six-pack, so it has no value. Everybody starts to look alike. It's the soul that makes you a movie star. Not your body." - Nicolas Winding Refn

하지만 지금은 쇠 귀에 경 읽기다. 수퍼히어로 열기가 한풀 꺾이거나 모든 남자 영화배우들이 전부 근육을 키우고 돌아다니는 게 바보스럽게 보인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이전까지는 헐리우드 남자 배우들의 '광란의 트레이닝'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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