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2일 토요일

007 출연진이 늙어가는 건 자연의 섭리지 멘데스가 만든 게 아니다

2012년작 '스카이폴(Skyfall)'과 2015년 개봉 예정인 '본드24'의 연출을 맡은 영화감독 샘 멘데스(Sam Mendes)가 최근 들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캐릭터의 나이'다. 멘데스는 얼마 전 미국 방송인 찰리 로스(Charlie Rose)와의 인터뷰에서도 등장 캐릭터의 '나이' 이야기를 꺼내더니 이번엔 FILMS WITHOUT BORDERS 이벤트에서 또 '나이' 이야기를 꺼냈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를 비롯한 출연진이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거기에 맞춰 캐릭터 설정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멘데스가 나이 얘기를 꺼낸 자체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멘데스는 말을 좀 이상하게 하는 습관이 있는 듯 하다.

멘데스는 FILMS WITHOUT BORDERS 인터뷰에서  '스카이폴'에서 등장 캐릭터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을 처음으로 묘사했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멘데스는 007 시리즈는 시간이 정지된 듯했는데 '스카이폴'을 통해 거기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We had taken Bond where people aged and were getting old and dying. It had come out of this bubble of timelessness I felt. I thought I would need to say what happened next, in the next year or two.” - Sam Men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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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골든아이(GoldenEye)'부터 M으로 출연한 주디 덴치(Judy Dench)가 2012년작 '스카이폴'에서 사망하면서 주디 덴치보다 젊은 랄프 파인즈(Ralph Fiennes)로 교체된 것은 사실이다. 17년간 007 시리즈에서 M 역을 맡으며 70대의 노인이 된 덴치가 '스카이폴'을 끝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영화배우가 M을 맡은 것이다.

물론 영화에 M이 사망하는 씬이 나온 것은 '스카이폴'이 007 시리즈 사상 처음이다. 그게 적절했든 아니었든 간에 '처음'이었다는 것에 대한 크레딧은 줄 수 있다.

하지만 나이 든 M이 보다 젊은 M으로 교체된 건 '스카이폴'이 처음이 아니다.

또한, 비록 영화 상에서는 '출장중'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M 역을 맡았던 영화배우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부터 11탄 '문레이커(Moonraker)'까지 6070년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M으로 출연했던 영국 영화배우 버나드 리(Bernard Lee)는 007 시리즈 12탄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 촬영을 앞두고 암으로 별세했다. 그러자 007 제작진은 버나드 리를 기리는 의미에서 바로 새로운 배우에게 M 역을 맡기지 않고 '유어 아이스 온리'에 M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았으며, 007 시리즈 13탄 '옥토퍼시(Octopussy)'에서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이 새로운 M으로 첫 등장했다.

Q도 마찬가지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부터 19탄 '더 월드 이스 낫 이너프(The World is Not Enough)'까지 36년간 17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Q로 등장했던 데스몬드 류웰린(Desmond Llewellyn)도 중년일 때 007 시리즈에 출연하기 시작해서 85세가 될 때까지 출연했다.

류웰린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였던 '더 월드 이스 낫 이너프'에서 그는 은퇴를 암시했으며,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존 클리스(John Cleese)가 R이라는 역할로 출연했다. 류웰린은 1999년 12월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존 클리스가 다음 번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서 Q를 맡았다. 007 시리즈에서 영원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류웰린도 이렇게 007 시리즈를 떠났다.

머니페니도 마찬가지다.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부터 14탄 '뷰투어킬(A View to a Kill)'까지 14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머니페니 역으로 논스톱 출연했던 로이스 맥스웰(Lois Maxwell)도 '뷰투어킬'을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났다. 동갑인 로저 무어(Roger Moore)가 제임스 본드였을 땐 같이 늙어가는 머니페니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으로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자 맥스웰도 무어와 함께 007 시리즈를 떠난 것이다.

이렇듯 007 시리즈에 단골로 출연해온 고정 멤버가 세월이 지나면서 늙어가는 과정을 여러 차례 지켜봐왔다. 고정 멤버가 영화 상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오거나 죽는 씬이 나온 것은 '스카이폴'이 처음이었다는 것까진 인정해도, 고령의 영화배우들이 하나 둘씩 007 시리즈를 떠나고 새로운 젊은 배우로 교체되는 과정은 007 시리즈에서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이런데도 'TIMELESSNESS'?

로저 무어가 '뷰투어킬'을 마지막으로 007 시리즈를 떠날 때까지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다 함께 계속 늙어갔다. 제임스 본드 캐릭터 또한 30대 초반의 숀 코네리(Sean Connery) 로 시작한 캐릭터가 얼굴만 로저 무어로 바뀌었을 뿐 50대 중반으로 나이를 먹은 것이었다. 로저 무어 시대까진 60년대의 캐릭터들이 다 함께 늙어간 것이며, 로저 무어 이후 티모시 달튼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로저 무어 시대까지는 'TIMELESSNESS'와 정 반대였다고 하는 게 맞다.

물론, 멘데스가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과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서로 직접 연결이 되지 않는 각기 모두 독립된 줄거리의 영화기 때문에 연속성이란 게 거의 또는 전혀 없어서 시리즈를 연대 순으로 정리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등장 캐릭터가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과정을 의미있게 보여준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출연 배우들이 늙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긴 했어도 그들이 영화 상에서 나이 관련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스카이폴'에서 등장 캐릭터들이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모습을 특별히 비중 있게 묘사한 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나이 많은 M을 새로운 젊은 M으로 교체하는 방법을 이전보다 약간 드라마틱하게 설정한 게 전부일 뿐 이전에 하던 대로 비슷하게 흘러간 것 같았는데, 세월의 흐름에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골골거리는 제임스 본드가 늙은 007을 묘사한 것 아니냐고?

그건 나이 든 본드를 묘사한 게 아니라 부상으로 한동안 쉬면서 피지컬 콘디션이 떨어진 본드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본드가 철봉에 매달려 진땀을 빼고 핸드건도 제대로 쏘지 못하는 것 역시 한동안 쉬는 바람에 녹이 슬고 감각을 잃었다는 것이지 그 사이에 폭삭 늙었다는 게 아니다. 본드가 면도를 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온 것도 부상으로 쉬는 동안 면도도 하지 않을 정도로 게으른 생활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열차 위에서 싸우다 총에 맞고 물에 빠졌다 나오니 흰수염까지 돋아나며 폭삭 늙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스카이폴'의 본드는 이전 영화와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보였다. '카지노 로얄'에서 갓 00 에이전트가 됐을 때와 크게 변함 없는 짧은 머리도 그대로였고, 열차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격투를 벌였을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아래에 매달려 올라가기까지 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어색한 폼을 잡으며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늉까지 냈다. 따라서 '스카이폴'의 제임스 본드는 여전히 '카지노 로얄' 시절의 젊은 본드였지 절대로 나이가 든 캐릭터가 아니었다.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바로 연결됐던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처럼 '카지노 로얄 시간대'에서 제자리 걸음을 했던 건 아니지만 그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줄거리만 전편과 연결되지 않았을 뿐 제임스 본드 캐릭터는 계속 제자리 걸음을 했다.

이런데도 멘데스가 '스카이폴'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캐릭터를 특별하게 묘사한 데가 있다고 할 만한 부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007 출연진이 늙어가는 건 평범한 자연의 섭리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과거 영화에선 세월의 흐름을 연대 순으로 정리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게 전부이지 고령이 된 영화배우가 새로운 젊은 배우로 교체된 적이 전에도 있으므로 멘데스가 대단히 특별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던 부분인데 멘데스는 이것을 마치 굉장히 새로운 것을 시도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물론, 멘데스가 찰리 로스와의 지난 인터뷰에서 M, Q, 머니페니 등을 새로 캐스팅하고 나니 아직도 무언가 미완성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은 알고 있다. '본드24'가 '스카이폴'과 줄거리는 연결되지 않아도 캐릭터는 계속 이어진다고 했었으므로 '본드24'에선 '스카이폴'보다 나이를 먹은 캐릭터들을 보여주겠다는 얘기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배우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극중 캐릭터도 거기에 맞춰 변화를 주겠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환영이다. 이전에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도 나이에 맞춰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늦은 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본드24'에서라도 40대 중-후반의 다니엘 크레이그에 어울리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찾아줄 필요가 있다. 바로 눈에 띌 정도로 본드를 무기력한 노인처럼 묘사하라는 게 아니라 침착하고 노련한 베테랑 007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크레이그는 '카지노 로얄'에서 갓 00 에이전트가 된 초보로 007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이젠 몸으로 때우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노련해진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스카이폴'의 세계와 캐릭터가 '본드24'로 계속 이어지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줄거리는 이어지지 않되 세계와 캐릭터가 (조용히) 이어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으므로 '스카이폴'의 캐릭터가 '본드24'에 계속 이어서 등장한다는 건 뉴스감도 아니다. 007 시리즈 캐릭터가 항상 그런 식이었다는 걸 모를 정도로 멘데스가 맹한 친구인 것도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데스가 반복적으로 "캐릭터의 나이가 들고, 늙어가고, 전편과 이어지고..."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니까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생색을 내려는 것으로 비쳐진다.

또한, 'TIMELESSNESS'는 007 시리즈가 장수 시리즈가 되는 데 기여한 바도 있다. 제임스 본드가 지난 1962년 '닥터 노'로 실버 스크린 데뷔를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이를 먹었다면 현재 제임스 본드의 나이는 영화배우 숀 코네리, 로저 무어처럼 80대 노인이 됐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가 도중에 젊은 영화배우로 교체되면서 다시 젊어질 수 있었던 건 007 시리즈가 연속성이 없고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특징 덕분이었다. 제임스 본드의 나이를 항상 3040대에 대충 묶어두고 연속성 같은 것에 신경쓰지 않고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007 시리즈는 새로운 영화배우로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어도 대단히 큰 변화가 느껴질 정도가 아니었다.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으니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고 주연배우가 바뀔 때마다 몇몇 크고 작은 변화를 주곤 했으므로 아무런 변화도 감지할 수 없었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완전히 딴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게 달라진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007 시리즈를 어떻게든 전편과 이어지는 시리얼 시리즈처럼 바꾸려는 시도는 위험해 보인다. 그렇게 하면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영화배우로 교체될 때마다 리부트를 해야 한다. 과거에 하던 대로 변화의 폭을 적당한 선에 묶어둔 상태에서 은근슬쩍 바통을 넘겨주며 넘어가지 못하고 영화배우가 교체될 때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007 시리즈는 훼손된다. 현재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가 어디까지 갔나를 보면 뒤집어 엎었다 또다시 뒤집기를 반복하면 우리가 알던 007 시리즈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멘데스가 등장 캐릭터들이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면서 전편과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내가 그만 둔 이후엔 007 시리즈가 어찌 되든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는 소리로도 들린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멘데스라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색내기 보다 지난 4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지가 '스카이폴'을 영화 역사상 가장 과대평가된 영화로 꼽았다는 점에 더 신경을 쓰겠다.


'스카이폴'이 탑10에 든 것까지는 이해가 됐어도 설마 영예(?)의 1위까지는 아닐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10위부터 카운트다운해 내려가던 텔레그래프는 '스카이폴'을 역대 가장 과대평과된 영화 1위로 선정했다.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으로 거품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예(?)의 1위까지는 조금 너무 인심을 쓴 듯...ㅋㅋ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플롯 등등 여러 문제점이 뚜렷하게 눈에 띄는데도 (예상했던 대로)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으로 띄워주고 여기에 다 같이 휩쓸려 덩달아 얼씨구 절씨구 하는 거품놀이가 몹시나 볼썽사나웠다고 생각한 사람이 영국 텔레그래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멘데스가 이런 의견에 동의하든 안 하든 간에 '본드24'에선 이런 소리 듣지 않도록 하는 데나 신경을 좀 더 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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