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8일 월요일

'배트맨 v 수퍼맨', 쏙 맘에 들진 않았어도 기대 이상으로 볼 만

가장 유명한 코믹북 수퍼히어로로 꼽히는 배트맨과 수퍼맨이 함께 빅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새 영화의 제목은 '배트맨 v 수퍼맨(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트릴로지 이후 처음으로 빅 스크린으로 돌아왔으며, 수퍼맨은 헨리 카빌(Henry Cavill) 주연의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이후 3년만이다.

'배트맨 v 수퍼맨'은 2013년 영화 '맨 오브 스틸'의 속편이다. 줄거리가 서로 이어질 뿐 아니라 '맨 오브 스틸'의 주요 스탭과 출연진도 '배트맨 v 수퍼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배트맨 v 수퍼맨'은 지난 '맨 오브 스틸'과 달리 수퍼맨 '원톱'이 아니라 배트맨과 수퍼맨 '투톱'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맨 오브 스틸'은 수퍼맨 영화였으나 '배트맨 v 수퍼맨'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배트맨과 수퍼맨이 함께 등장하는 영화다.

배트맨과 수퍼맨이 함께 등장하는 라이브 액션 영화는 '배트맨 v 수퍼맨'이 처음이라고 한다.

헨리 카빌은 지난 '맨 오브 스틸'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수퍼맨/클라크 켄트 역으로 돌아왔으며,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은 벤 애플렉(Ben Affleck)이 맡았다. '배트맨 v 수퍼맨'은 벤 애플렉이 배트맨으로 출연한 첫 번째 영화다. '패스트 앤 퓨리어스(Fast and Furious)' 시리즈로 알려진 이스라엘 여배우 갈 가돗(Gal Gadot)은 원더 우먼/다이애나 프린스 역을 맡았고, 제시 아이젠버그(Jesse Eisenberg)는 악역 렉스 루터를 연기했다. 또한, 지난 '맨 오브 스틸'에 로이스와 마사 역으로 각각 출연했던 에이미 애덤스(Amy Adams)와 다이앤 레인(Diane Lane)도 '배트맨 v 수퍼맨'으로 돌아왔다.

연출은 '맨 오브 스틸'의 잭 스나이더(Zack Snyder)가 맡았다.

'배트맨 v 수퍼맨'은 외계에서 온 구세주가 된 수퍼맨(헨리 카빌)과 홀로 범죄 소탕을 하는 배트맨(벤 애플렉)이 서로를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수퍼맨과 외계인의 공격을 물리칠 신무기 개발을 노리는 젊은 CEO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가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배트맨과 수퍼맨이 서로 대립한다는 설정은 맘에 들었다. 두 캐릭터가 성격이 다른 수퍼히어로인 만큼 시작부터 동료로 팀을 이루게 하는 것보다 서로 의심하고 오해하는 관계에서 출발하도록 한 설정은 나쁘지 않았다. 배트맨과 수퍼맨이 서로 대립하게 된 동기와 이유 등이 과히 그럴싸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렉스 루터까지 끼어들면서 스토리가 불필요하게 길고 혼란스러워졌다. 배트맨과 수퍼맨, 그리고 렉스 루터의 스토리가 한군데로 모이도록 셋업하는 과정이 너무 길었다. 배트맨과 수퍼맨의 대결에 렉스 루터가 끼어들 것이면 두 수퍼히어로의 대결 파트를 짧게 끝내고 두 캐릭터가 힘을 합해 렉스 루터에 대항하는 쪽으로 일찌감치 포커스를 옮기는 편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바람에 악당의 존재감도 빈약해졌다. 배트맨과 수퍼맨의 대결이 영화의 막바지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렉스 루터가 강한 인상을 남길 기회를 갖지 못했다. 렉스 루터는 정신이 들락거리는 젊은 녀석이 주접을 떠는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그가 꾸미는 음모도 악의에 찬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작진이 어떤 스타일의 수퍼빌런을 소개하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있었으나 뚜렷한 악당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수퍼맨 역을 맡은 헨리 카빌은 이번에도 배우보다 모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수퍼맨 커스튬을 입은 모습은 아주 멋졌으나 이번에도 연기는 어색하고 딱딱해 보였다. 진지하고 때로는 따분해보이는 그의 스타일 때문인지 익사이팅한 수퍼맨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헨리 카빌은 제임스 본드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렸던 배우라서 '튜더스(The Tudors)' 시절부터 유심히 지켜봤으나, 액션 히어로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배우로 보이지 않는다. 한편, 배트맨 역을 맡은 벤 애플렉은 제 역할을 모두 해냈다. 벤 애플렉 버전 배트맨이 맘에 들었는가는 둘째 문제였다. 애플렉은 새로운 배트맨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정도는 되지 않았으나 베테랑 배우의 존재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헨리 카빌 '원톱'으론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있었는데, 벤 애플렉이 배트맨으로 출연해 '투톱'을 이루면서 불안감을 많이 누그려뜨렸다. 이것만으로 애플렉은 그의 역할을 모두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액션 씬은 볼 만했다. 그러나 이미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자주 봤던 비슷한 액션 씬의 반복이었을 뿐 특별하게 눈에 띄는 씬이 없었다. 배트맨과 수퍼맨이 온 동네를 다 때려부수며 싸우는 장면은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본 것과 별 차이가 없었으며, 배트맨과 수퍼맨에 이어 원더 우먼 등 여러 수퍼히어로들이 힘을 합해 싸우는 씬도 역시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The Avengers)' 시리즈와 겹쳐졌다. 마블 코믹스가 '아이언 맨(Iron Man)', '토르(Thor)',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 등의 영화를 통해 '어벤져스' 멤버들을 소개한 뒤 이들 모두가 함께 출연하는 '어벤져스' 영화를 선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DC 코믹스의 '배트맨 v 수퍼맨'도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로 연결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맡은 영화였다. 이처럼 '배트맨 v 수퍼맨'이 마블 코믹스 영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보니 DC 캐릭터들이 마블 코믹스 영화에 출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배트맨, 수퍼맨, 원더 우먼 등 DC 코믹스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곤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나 '배트맨 v 수퍼맨'은 마블 코믹스의 영화처럼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영화는 너무 싱거워 보일 때도 있지만 골치아픈 현실세계에서 잠시나마 빠져나갈 기회를 주는 'ESCAPISM' 효과가 뚜렷하다. 반면 DC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영화는 보다 진지한 톤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까진 좋은데 무겁고 우중충한 분위기에 캐릭터들이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표정으로 궁상을 떠는 바람에 'ESCAPISM'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제 아무리 심오하고 무언가 있는 듯한 그럴싸한 분위기를 잡으려 해봤자 수퍼히어로 영화는 수퍼히어로 영화일 뿐이다. 열렬한 코믹북 매니아거나 어른스러워 보이기 원하는 틴에이저들이라면 똥폼을 잡는 수퍼히어로 영화가 쿨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다른 일반 관객들에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쓸데 없고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 물론 상당수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알맹이는 없으면서 겉으로만 심각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이 또한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잡은 듯 하므로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알맹이는 없으면서 겉으로만 심각한 블록버스터"에 싫증을 느끼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그런 관객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톤과 스타일, 시각효과와 배경음악 등이 서로 매우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요샌 예고편만 봐도 "아, 또 그런 영화 중 하나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다. 지난 2000년대엔 싫든 좋든 간에 "한 때 유행"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선 "이젠 싫증난다"로 바뀌었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도 좋지만 이젠 유머, 재미와 낭만이 매마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배트맨 v 수퍼맨'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의 톤이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고 유머가 크게 부족했다. 진지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영화로 만드는 건 문제될 게 없으나 그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수퍼맨을 예수와 같은 존재로 묘사한 것도 우스꽝스럽게 보였고, '부활절 스페셜 엔딩' 또한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부활절(Easter)이 낀 주말에 '배트맨 v 수퍼맨'이 개봉한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또한, 글로벌 분쟁을 소재로 한 테크노 스릴러처럼 중간중간에 CNN 뉴스가 나온 것도 수퍼히어로 영화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배트맨 v 수퍼맨'은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 듯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쓸데 없는 짓을 너무 많이 한 티가 났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잘 맞출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배트맨 v 수퍼맨'은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였다. 쏙 맘에 들진 않았어도 기대했던 것보단 볼 만했다. 지나치게 심각한 척 하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지난 '맨 오브 스틸'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배트맨 v 수퍼맨'에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런대로 볼 만했다. 지난 '맨 오브 스틸'보다 이번 '배트맨 vs 수퍼맨'이 더 맘에 들었다.

하지만 "쿨한 수퍼히어로 캐릭터는 DC 쪽에 더 많지만 영화는 마블이 더 잘 만든다"는 말이 틀렸다는 생각은 이번에도 들지 않았다. 수퍼맨, 배트맨, 원더 우먼 등 유명한 수퍼히어로 캐릭터는 DC 쪽이 더 많은 듯 하지만, 수퍼히어로 영화는 마블이 더 재밌게 만드는 것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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