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월요일

도널드 트럼프, 美 대선 2차 TV 토론 신경써서 준비한 효과 봤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서 일요일 밤 미주리 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열린 제 2차 대선 TV 토론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지난 1차 토론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흔들렸던 트럼프는 이번 2차 토론을 신경써서 준비한 듯 했다. 11년 전 트럼프가 평범한 쎌러브리티이던 당시 사적인 자리에서 주고받았던 '음담패설'이 담긴 녹음파일이 2차 토론 직전에 공개되면서 상당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으나, 트럼프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사과할 건 사과하면서도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을 강하게 몰아세우며 공세를 폈다.

"카운터 펀치"가 전문이라던 트럼프는 지난 1차 토론에서 힐러리의 연이은 공격에 해명만 하다 볼일을 다 봤다.

그러나 2차 토론에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음담패설' 녹음파일에 관련해 여러 차례 사과를 한 뒤 바로 이어서 힐러리 공격에 나섰다. 힐러리가 먼저 공격하면 맞받아치던 전략에서 벗어나 선제 공격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트럼프는 토론 뿐 아니라 게스트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

트럼프는 2차 토론이 열리기 직전에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의 성추행 피해 여성 폴라 존스(Paula Jones), 와니타 브로드릭(Juanita Broaddrick), 캐슬린 윌리(Kathleen Wiley) 3명과 지난 70년대에 힐러리가 변호를 맡았던 강간범의 피해자 캐티 셸튼(Kathy Shelton) 등 4명과 함께 프레스 컨퍼런스를 갖고 2차 토론에서 클린턴 부부의 과거 여성 문제를 공격할 계획임을 예고했다.

4명의 "클린턴 여성들"은 2차 토론에 모두 게스트로 참석했다.

트럼프 측이 제니퍼 플라워스(Gennifer Flowers)를 제외시킨 이유는 "불륜"이 아닌 "성폭행"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함으로 보인다. 제니퍼 플라워스도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으나 그녀는 빌 클린턴과 오랜 불륜 관계였지 강간 또는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는 아니다.


이는 지난 1차 토론에서 힐러리가 트럼프와 껄끄러운 사이인 전 미스 유니버스를 초대했고, 11년 전 녹음파일을 이용해 또 트럼프를 겨냥한 섹시스트 공격을 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힐러리 측이 자꾸 과거를 들추며 섹시스트 공격을 하면 트럼프도 똑같이 맞불을 놓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힐러리 측이 지나간 과거의 사생활 들추기를 하겠다면 트럼프 측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는 보수 성향 인터넷 미디어, 브레잇바트(Breitbart.com)도 여기에 보조를 맞춰 빌 클린턴의 성폭행 피해자 3명을 인터뷰한 동영상을 앞서 공개했다. 힐러리 측은 미스 유니버스 사건과 '음담패설' 녹음파일을 이용해 트럼프를 여성혐오자로 몰아가고 있으나 빌 클린턴이야말로 실제로 강간, 성추행을 저지른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또한, 힐러리 측이 다른 걸로 트럼프를 공격하면 몰라도 여성혐오로 공격하는 건 그리 현명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여성 지지율이 낮은 만큼 여성표가 트럼프에서 더욱 떨어지도록 만들려는 것이지만, 힐러리 측도 여성혐오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실제 성폭행 피해자들은 외면하고 도널드 트럼프에게만 여성혐오 딱지를 붙이려는 편파적인 사람들을 비판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 여기까지 왔으면 2차 토론이 진흙탕 싸움이 되리라는 걸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작심한 듯 힐러리를 겨냥한 공격을 퍼부었다. 클린턴 부부의 과거를 들췄을 뿐 아니라 힐러리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이메일 스캔들을 집중 추궁하면서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면 특별 검사에게 이메일 스캔들 수사를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최근에 위키리크스(Wikileaks)가 새로 공개한 이메일 자료인 골드맨 삭스 강연 내용 등 새로운 논란에 대한 공격도 잊지 않았다. 또한, 힐러리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맞붙었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의 관계를 벌려놓기 위한 공작(?)도 꾸준히 벌였다. 트럼프는 힐러리가 경선 과정에서도 불공평하게 버니 샌더스를 눌렀고,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힐러리의 월 스트릿 강연 자료를 통해 샌더스와 상당한 견해차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현재 힐러리는 밀레니얼 표를 끌어오기 위해 밀레니얼에게 인기가 높은 버니 샌더스의 도움을 받고 있으나 트럼프는 샌더스 지지층이 힐러리로 이동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방해 공작을 편 것이다. 힐러리는 위키리크스 관련 질문에 해명하다 불필요하게 링컨 얘기를 꺼냈다가 트럼프로부터 "이젠 책임을 링컨에게 돌리냐"는 코믹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오바마와 힐러리의 외교 실패, 금이 가고 있는 오바마케어 비판, 많은 미국 보수층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총기 관련 이슈, 테러리즘과 중동 난민 수용 이슈 등 지난 1차 대선에서 거론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꺼내놓으면서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했다. 소극적인 "카운터 펀치" 전략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선제 공격"으로 작전을 바꾸고, 토론에서 제기할 여러 가지 이슈들을 신경써서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지난 1차 토론에선 힐러리의 맹공이 트럼프를 흔들리게 만들었으나 이번 2차 토론에선 작심하고 사납게 달려든 트럼프에게 힐러리가 밀렸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토픽일 땐 트럼프가 불리해 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가 주도권을 쥐고 힐러리를 몰아세웠다.

트럼프는 힐러리 뿐 아니라 토론 진행자들을 공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는 진행자들이 힐러리에게 유리하게 토론을 진행한다고 수시로 불만을 표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One on Three"라면서 자신이 3대1로 싸우고 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이는 아주 잘한 것이다. 진행자들에게 불만을 표하면서 공평한 진행을 요구한 건 올바른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2차 토론 승자는 트럼프?

이번엔 트럼프가 이긴 것 같다. 1차 토론 패배와 미스 유니버스와의 트위터 전쟁으로 지지율이 떨어진데다 '음담패설' 파일까지 공개되면서 최대의 위기에 몰렸던 도널드 트럼프는 2차 토론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던 토론이었는데 흔들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치명상을 입어도 금세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데드풀(Deadpool)' 같다는 평을 받은 바 있는데, 트럼프는 이번에도 잠시 비틀거리다가 다시 정상으로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 지지율까지 빠르게 회복할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최악의 씨나리오를 각오했던 트럼프 지지자들은 일단 크게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번 2차 토론을 끝으로 트럼프 호가 완전히 침몰할 수 있다는 관측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으나, 비록 파도가 세긴 해도 아직 가라앉지 않았음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렇다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침몰하지 않고 계속 항해 중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몇 가지 걸리는 점들도 있었다.

트럼프가 클린턴 부부의 과거사를 들춘 게 현명했는가는 계산을 좀 더 해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힐러리 측의 여성혐오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클린턴 과거사를 동원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자칫하면 힐러리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또한, 클린턴 과거사 공격으로 독이 오른 클린턴 측이 더욱 집요하게 트럼프를 여성혐오자로 만들기 위한 공작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2차 토론 공동 진행을 맡은 CNN 앵커, 앤더슨 쿠퍼(Andersn Cooper)가 '음담패설' 녹음파일에 담긴대로 키스를 하거나 만진 적이 있냐고 계속 추궁하자 트럼프가 나중에 "그런 적 없다"고 답했기 때문에 '힐러리 팬클럽'이나 다름없는 편파적인 미국 메이저 언론들이 이 부분의 사실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게 분명해 보인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트럼프가 강제로 키스를 했다거나 허락없이 몸을 만졌다면서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하는 여성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으며, '힐러리  팬클럽'은 이를 이용해 "도널드 트럼프도 성 추행범"이라면서 빌 클린턴의 과거사를 들춰낸 것에 대한 보복을 할 가능성이 크다. 좌파 언론들은 겉으로는 "정책 대결"을 운운하면서도 속으로는 감정적인 장군멍군식 보복을 준비할 것이 분명하므로 트럼프 측은 이런 공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내가 빌 클린턴을 비판하니까 민주당과 좌파 언론이 날조된 성 폭행설을 보도하면서 나를 빌 클린턴과 동급으로 만들려 한다"고 맞받아치는 방법도 있다.

제 2, 제 3의 '음담패설' 시리즈가 공개될 가능성도 높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미 2개 정도가 더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엔 트럼프를 인종차별자로 몰아세울 자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탄은 어느 정도 효과를 봤으나 2탄, 3탄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현재로썬 알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 측은 이러한 공격에도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힐러리는 내가 리얼리티 쇼 수준이라는 주장을 펴왔는데, 정작 헐리우드 가십 수준의 스캔들 거리에 집착하는 건 힐러리 측"이라고 맞받아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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