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19일은 007 시리즈 제 19탄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가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날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The World is not Enough'의 한국어 제목이 '언리미티드'가 되었냐고?
낸들 알겠수?
'The World is not Enough'의 한국어 제목이 '언리미티드'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007 언리미티드를 보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것. "007 시리즈 중에서 그런 제목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본드걸로 나오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제서야 어떤 영화를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제목이 '언리미티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어도 그게 어떤 영화인지는 알겠더라.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의 한국어 제목이 '투모로'를 뺀 '네버 다이'가 전부라는 것을 알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다음 작품인 'The World is not Enough'는 원제와 거진 무관한 '언리미티드'라는 제목으로 바뀐 모양이었다.
하긴 'From Russia With Love'가 '위기일발'이라는 제목으로 둔갑한 적도 있으니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일발'이란 제목은 일본어 제목을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한 것이었으므로 아주 정체불명인 것은 아니다.
'위기일발'의 '발'이 저 '發'이 아니라 이 '髮'이 맞는 것 같지만...
아무튼 제목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영화 얘기로 돌아갑시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제임스 본드 영화는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로 반짝했다가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로 김을 제대로 빼 놨다. 첫 번째는 좋았는데 두 번째 영화는 너무 가볍고 바보스러웠기 때문이다. 브로스난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언리미티드'에서는 중국 무술영화처럼 돼 버렸던 '투모로 네버 다이스'를 지우고 다시 '골든아이'로 돌아가려 했다. '골든아이'의 어둡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돌아온 것이다. '골든아이'에 전직 KGB 에이전트로 출연했던 스코틀랜드 배우 로비 콜트레인(Robbie Cotrane)이 같은 역할로 다시 돌아온 역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골든아이' 포뮬라를 따르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 중 가장 잘 된 작품으로 꼽히는 '골든아이'의 장점을 추려냈어야 했으나 단점만을 모아놓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영국 영화감독,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이 연출한 '언리미티드'는 무미건조한 논스톱 액션을 제외하고는 건질 게 없었다. 소피 마르소, 드니스 리처드(Denise Rechard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 2명이 본드걸로 등장했지만 엉성한 줄거리와 싱거운 캐릭터 설정 덕분에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다.
그래도 때로는 진지했고, 때로는 격결했다. 잘 느껴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씬들이 더러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인기 여배우 2명이 본드걸로 등장했으며, 온갖 장비들로 가득한 '본드카', BMW Z8까지 등장했다. 이 정도면 갖출 건 그런대로 모두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스타들로 구성된 스포츠 팀이 기대에 현저하게 못미치는 형편없는 시즌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듯 했을 뿐이었다.
고개를 젓도록 만든 또 한가지는 피어스 브로스난의 멜로드라마틱하고 센티멘탈한 제임스 본드 연기다.
이미 브로스난은 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든아이(GoldenEye)'에서 우는 시늉(?)을 보여준 바 있다. 해변가에 홀로 앉아 잔뜩 분위기 잡던 바로 그 장면이다.
이런 씬이 들어간 이유는 뻔하다. 숀 코네리(Sean Connery), 로저 무어(Roger Moore) 시절처럼 내적인 고뇌와 갈등 등과는 담을 쌓은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피어스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는 액션히어로, 또는 수퍼히어로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도 표출하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물론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가 해변가에 홀로 앉아 고뇌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적합한 표현의 방법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베드씬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집어넣은 씬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굳이 멜로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나도록 만들 필요는 없었다. 브로스난이 액션보다는 멜로, 또는 에로영화에 보다 잘 어울려 보이는 배우인 지는 몰라도 007 시리즈의 쟝르는 액션/어드벤쳐이지 멜로/에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로스난은 이런 식으로 그만의 '제임스 본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자 했다. 우는 표정을 짓는 것으로 그의 제임스 본드를 인간적인 캐릭터로 보이도록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눈빛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제임스 본드의 내면을 연기한다'면서 감정을 얼굴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브로스난이 한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를 리메이크해서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고싶다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그가 어떠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고자 했는 지 엿볼 수 있다.
브로스난의 '센티멘탈 본드'는 '언리미티드'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엘렉트라(소피 마르소)가 눈물을 흘리는 녹화된 동영상을 보면서 컴퓨터 모니터에 손을 대는 장면에서다.
이제와서 굳이 피어스 브로스난과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를 비교하고 싶진 않다. 브로스난도 그만의 매력이 있는 제임스 본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위의 씬을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했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모니터를 응시하는 것만으로 모든 걸 다 표현하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뿐만 아니라 숀 코네리, 로저 무어, 조지 래젠비(George Lazenby),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역대 제임스 본드 배우들 모두 브로스난이 한 것처럼 금방 눈물을 떨굴 듯한 애처로운 표정을 얼굴에 하나 가득 짓고 컴퓨터 모니터를 애무(?)하진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훤칠한 키의 미남배우가 턱시도 차림에 권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제임스 본드를 위해 태어난 배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훌륭한 제임스 본드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이것 모두가 브로스난의 잘못인 것은 아니다. 아쉬울 때마다 꺼내들었던 스펙터(SPECTRE)를 사용할 수 없게 된 데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도 바닥이 났고, 냉전까지 막을 내리면서 007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이 매우 애매했을 때, 다시 말하자면 상황이 아주 안 좋았을 때 제임스 본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재가 고갈되고 새로운 세대의 눈높이까지 염두에 둬야하는 등 007 시리즈가 이중삼중고를 겪고있을 때 제임스 본드가 된 게 바로 브로스난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007 영화들 모두 선전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완성도는 일단 접어놔야겠지만, 박스오피스에서는 죽을 쑤지 않았다.
하지만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만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간지럽고 유치하게 만든 주범으로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은 형편없는 플롯이다.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시리즈인 만큼 지나치게 따질 것은 없다 해도 어느 정도 레벨은 해줘야 했지만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골든아이' 하나를 제외하고는 '좋게 표현해서' 기대에 못미쳤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제임스 본드까지 연약하고 눈물 질질 짜기 딱 알맞아 보이는 캐릭터로 변했으니 '좋게 표현해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브로스난의 007 시리즈가 새로운 영화가 나올 수록 기대에 못미치기 시작하면서 영화관에서 본 횟수도 크게 줄기 시작했다. '골든아이'는 건배럴씬을 도대체 얼마만에 빅스크린으로 보는 것이냐는 반가움에 질리즌 줄 모르고 영화관에서만 7회 이상 봤다. 브로스난의 두 번째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도 못해도 영화관에서 못해도 3회 이상은 봤다. 그러나 '언리미티드'는 달랑 한 번이 전부였다. 극장까지 와서 또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에 땀을 쥐는 액션도 없었고, 피식 미소지을 만한 유머도 많지 않았던 덕분에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무표정한 표정으로 마네킹처럼 꼼짝않고 앉아있다가 나왔는데 또 보러가고싶겠수?
하지만 그래도 007은 007이니 눈에 띄는대로 수집할 만한 것들은 챙겼다. 마지막으로 이것들이나 몇가지 둘러보기로 합시다.
▲'언리미티드' 콜렉팅 카드 바인더 커버
▲'언리미티드' 콜렉팅 카드
▲EA의 플레이스테이션용 비디오게임(왼쪽)과 가이드북(오른쪽)
▲'언리미티드' 관련 몇몇 매거진들
▲'언리미티드' 2000년도 달력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The World is not Enough'의 한국어 제목이 '언리미티드'가 되었냐고?
낸들 알겠수?
'The World is not Enough'의 한국어 제목이 '언리미티드'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007 언리미티드를 보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것. "007 시리즈 중에서 그런 제목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본드걸로 나오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제서야 어떤 영화를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제목이 '언리미티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어도 그게 어떤 영화인지는 알겠더라.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의 한국어 제목이 '투모로'를 뺀 '네버 다이'가 전부라는 것을 알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다음 작품인 'The World is not Enough'는 원제와 거진 무관한 '언리미티드'라는 제목으로 바뀐 모양이었다.
하긴 'From Russia With Love'가 '위기일발'이라는 제목으로 둔갑한 적도 있으니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일발'이란 제목은 일본어 제목을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한 것이었으므로 아주 정체불명인 것은 아니다.
'위기일발'의 '발'이 저 '發'이 아니라 이 '髮'이 맞는 것 같지만...
아무튼 제목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영화 얘기로 돌아갑시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제임스 본드 영화는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로 반짝했다가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로 김을 제대로 빼 놨다. 첫 번째는 좋았는데 두 번째 영화는 너무 가볍고 바보스러웠기 때문이다. 브로스난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언리미티드'에서는 중국 무술영화처럼 돼 버렸던 '투모로 네버 다이스'를 지우고 다시 '골든아이'로 돌아가려 했다. '골든아이'의 어둡고 우중충한 분위기가 돌아온 것이다. '골든아이'에 전직 KGB 에이전트로 출연했던 스코틀랜드 배우 로비 콜트레인(Robbie Cotrane)이 같은 역할로 다시 돌아온 역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골든아이' 포뮬라를 따르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 중 가장 잘 된 작품으로 꼽히는 '골든아이'의 장점을 추려냈어야 했으나 단점만을 모아놓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영국 영화감독,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이 연출한 '언리미티드'는 무미건조한 논스톱 액션을 제외하고는 건질 게 없었다. 소피 마르소, 드니스 리처드(Denise Rechard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 2명이 본드걸로 등장했지만 엉성한 줄거리와 싱거운 캐릭터 설정 덕분에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다.
그래도 때로는 진지했고, 때로는 격결했다. 잘 느껴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씬들이 더러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인기 여배우 2명이 본드걸로 등장했으며, 온갖 장비들로 가득한 '본드카', BMW Z8까지 등장했다. 이 정도면 갖출 건 그런대로 모두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스타들로 구성된 스포츠 팀이 기대에 현저하게 못미치는 형편없는 시즌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듯 했을 뿐이었다.
고개를 젓도록 만든 또 한가지는 피어스 브로스난의 멜로드라마틱하고 센티멘탈한 제임스 본드 연기다.
이미 브로스난은 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든아이(GoldenEye)'에서 우는 시늉(?)을 보여준 바 있다. 해변가에 홀로 앉아 잔뜩 분위기 잡던 바로 그 장면이다.
이런 씬이 들어간 이유는 뻔하다. 숀 코네리(Sean Connery), 로저 무어(Roger Moore) 시절처럼 내적인 고뇌와 갈등 등과는 담을 쌓은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피어스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는 액션히어로, 또는 수퍼히어로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도 표출하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물론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가 해변가에 홀로 앉아 고뇌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적합한 표현의 방법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베드씬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집어넣은 씬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굳이 멜로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나도록 만들 필요는 없었다. 브로스난이 액션보다는 멜로, 또는 에로영화에 보다 잘 어울려 보이는 배우인 지는 몰라도 007 시리즈의 쟝르는 액션/어드벤쳐이지 멜로/에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로스난은 이런 식으로 그만의 '제임스 본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자 했다. 우는 표정을 짓는 것으로 그의 제임스 본드를 인간적인 캐릭터로 보이도록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눈빛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제임스 본드의 내면을 연기한다'면서 감정을 얼굴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브로스난이 한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를 리메이크해서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고싶다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그가 어떠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고자 했는 지 엿볼 수 있다.
브로스난의 '센티멘탈 본드'는 '언리미티드'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엘렉트라(소피 마르소)가 눈물을 흘리는 녹화된 동영상을 보면서 컴퓨터 모니터에 손을 대는 장면에서다.
이제와서 굳이 피어스 브로스난과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를 비교하고 싶진 않다. 브로스난도 그만의 매력이 있는 제임스 본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위의 씬을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했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모니터를 응시하는 것만으로 모든 걸 다 표현하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뿐만 아니라 숀 코네리, 로저 무어, 조지 래젠비(George Lazenby),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역대 제임스 본드 배우들 모두 브로스난이 한 것처럼 금방 눈물을 떨굴 듯한 애처로운 표정을 얼굴에 하나 가득 짓고 컴퓨터 모니터를 애무(?)하진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훤칠한 키의 미남배우가 턱시도 차림에 권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제임스 본드를 위해 태어난 배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훌륭한 제임스 본드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이것 모두가 브로스난의 잘못인 것은 아니다. 아쉬울 때마다 꺼내들었던 스펙터(SPECTRE)를 사용할 수 없게 된 데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도 바닥이 났고, 냉전까지 막을 내리면서 007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이 매우 애매했을 때, 다시 말하자면 상황이 아주 안 좋았을 때 제임스 본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재가 고갈되고 새로운 세대의 눈높이까지 염두에 둬야하는 등 007 시리즈가 이중삼중고를 겪고있을 때 제임스 본드가 된 게 바로 브로스난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007 영화들 모두 선전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완성도는 일단 접어놔야겠지만, 박스오피스에서는 죽을 쑤지 않았다.
하지만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만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간지럽고 유치하게 만든 주범으로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은 형편없는 플롯이다.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시리즈인 만큼 지나치게 따질 것은 없다 해도 어느 정도 레벨은 해줘야 했지만 브로스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골든아이' 하나를 제외하고는 '좋게 표현해서' 기대에 못미쳤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제임스 본드까지 연약하고 눈물 질질 짜기 딱 알맞아 보이는 캐릭터로 변했으니 '좋게 표현해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브로스난의 007 시리즈가 새로운 영화가 나올 수록 기대에 못미치기 시작하면서 영화관에서 본 횟수도 크게 줄기 시작했다. '골든아이'는 건배럴씬을 도대체 얼마만에 빅스크린으로 보는 것이냐는 반가움에 질리즌 줄 모르고 영화관에서만 7회 이상 봤다. 브로스난의 두 번째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도 못해도 영화관에서 못해도 3회 이상은 봤다. 그러나 '언리미티드'는 달랑 한 번이 전부였다. 극장까지 와서 또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에 땀을 쥐는 액션도 없었고, 피식 미소지을 만한 유머도 많지 않았던 덕분에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무표정한 표정으로 마네킹처럼 꼼짝않고 앉아있다가 나왔는데 또 보러가고싶겠수?
하지만 그래도 007은 007이니 눈에 띄는대로 수집할 만한 것들은 챙겼다. 마지막으로 이것들이나 몇가지 둘러보기로 합시다.
▲'언리미티드' 콜렉팅 카드 바인더 커버
▲'언리미티드' 콜렉팅 카드
▲EA의 플레이스테이션용 비디오게임(왼쪽)과 가이드북(오른쪽)
▲'언리미티드' 관련 몇몇 매거진들
▲'언리미티드' 2000년도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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