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7일 일요일

'록 오브 에이지스', 음악의 파워를 실감하며 80년대 향수에 빠지다

'80년대 음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쟝르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취향에 따라 사람들마다 가지각색일 것이다. 신드팝(Synthpop), 유로 디스코, 뉴 웨이브(New Wave) 등을 꼽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록 뮤직과 헤비메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헤비메탈을 빼놓을 수 없다. 괴상한 차림새로 괴성을 지르는 헤비메탈이 취향에 맞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한 메탈 음악이 80년대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실 나도 80년대 헤비메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전혀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데프 레파드(Def Leppard),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포이즌(Poison), 본 조비(Bon Jovi) 등의 앨범들을 사서 듣기도 했다. 그 중 몇몇 곡들은 지금도 좋아한다. 하지만 당시 내가 즐겨 듣던 쟝르는 아니었다. 록 뮤직 쟝르 자체를 싫어했던 건 아니지만 80년대에 유행했던 헤어메탈은 도대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머리를 요란스럽게 기르고 화장까지 한 밴드 멤버들이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손짓까지 하면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헤비메탈은 한마디로 'NOT-MY-TYPE'이었다. 지금도 그 때 그 시절 헤비메탈 곡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80년대 헤비메탈 뮤직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기초로 한 '록 오브 에이지스(Rock of Ages)'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어지간 하면 그냥 패스할 생각이었다. 80년대 헤비메탈 팬이 아닌 데다 뮤지컬 영화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80년대 히트곡이 나올 뿐만 아니라 톰 크루즈(Tom Cruise)가 헤비메탈 레전드로 변신했다니 밑지는 셈 치고 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이 양반도 참 가지가지 한다...
그럼 톰 크루즈가 주인공이냐고?

아니다.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오클라호마에서 가수의 꿈을 갖고 헐리우드로 혼자 올라온 '시골 처녀' 셰리(줄리앤 허프)와 '버번 룸'이라 불리는 헐리우드의 록 뮤직 나잇클럽에서 일하며 록 스타를 꿈꾸는  '도시 청년' 드류(디에고 보네타)가 주인공이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스테이시 잭스는 라이브 공연을 위해 '버번 룸'을 방문하는 록 스타다.

'록 오브  에이지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87년. 가수의 꿈을 꾸던 '시골 처녀' 셰리와 록 스타의 꿈을 꾸던 '도시 청년' 드류가 함께 '버번 룸'에서 일하면서 꿈과 사랑을 동시에 키워나간다. 그러나 전설적인 록 스타 스테이지 잭스(톰 크루즈)가 공연을 한 이후 사소한 오해로 사이가 벌어지면서 서로 엉뚱한 길을 가게 된다. 한편 록 문화를 경멸하는 시장의 아내 패트리씨아(캐더린 제타-존스)는 '버번 룸'을 문 닫게 하기 위해 온갖 시위와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올스타 출연진이다. 톰 크루즈를 비롯해 '버번 룸' 주인 역의 알렉 발드윈(Alec Baldwin), '버번 룸' 매니저 역의 러셀 브랜드(Russell Brand), 스테이시 잭스(톰 크루즈) 매니저 역의 폴 지아마티(Paul Giamatti), 위트모어 시장 역의 브라이언 크랜스턴(Bryan Cranston), 위트모어 시장의 아내 패트리씨아 역의 캐더린 제타-존스(Catherine Zeta-Jones) , '롤링 스톤' 매거진 기자 역의 말린 에이커맨(Malin Akerman), '비너스' 스트립 클럽 주인 역의 매리 J. 블라이지(Mary J. Blige) 등 출연진 하나는 빵빵하다.

또하나의 볼거리는 톰 크루즈다. 80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록 밴드 건스 앤 로지스의 리드 보컬 액슬 로스(Axl Rose)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 스테이시 잭스 역을 맡은 톰 크루즈는 다소 엉뚱하고 어색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본 조비의 'Wanted: Dead or Alive', 데프 레파드의 'Pour Some Sugar On Me', 포리너(Foreigner)의 'I Want to Know What Love Is' 등을 목이 터져라 열창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노래 실력은 실제 로커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으며 때로는 약간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부르기 어려운 노래들을 생각했던 것보다 잘 소화해냈다.

(데프 레파드의 'Pour Some Sugar On Me'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내 기억에 의하면 이 곡은 지난 80년대에 한국에서 정식 발매됐던 앨범 '히스테리아(Hysteria)'에 수록되지 않았던 곡 중 하나인 것 같은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서 불확실...)

하지만 '록 오브 에이지스'에서 건질 것은 톰 크루즈의 조금 엉뚱해 보이는 록 스타 연기, 올스타 출연진, 그리고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친숙한 80년대 록 뮤직이 전부였다. 제작진은 애초부터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풀어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으며, 있으나 마나 한 뻔할 뻔자 스토리를 형식적으로 가져다 놓고 80년대 음악과 80년대의 향수로 영화 전체를 덮어버렸다.

그런데도 영화는 생각보다 볼 만했다. 줄거리는 있는 둥 마는 둥이었지만 80년대 향수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모든 게 용서가 됐다. 영화 자체는 별 볼 일이 없었는데도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지루한 줄 모르게 만들어준 음악의 파워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80년대 영화를 연상케 하는 사운드트랙, 그리고 지금은 볼 수 없는 타워 레코드(Tower Records)의 추억 등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만으로 감동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영화에서처럼 80년대 후반에 타워 레코드에서 LP만 팔다시피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문을 닫아 사라져버린 타워 레코드 간판과 노란색 봉투를 보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미국 전역에 체인점을 뒀던 대형 레코드 스토어 타워 레코드는 지난 2000년대 중반 모두 문을 닫았다. '음악' 하면 제일 먼저 바로 떠오르던 곳이 타워 레코드였는데, 지금은 역사일 뿐이다. 90년대에만 해도 타워 레코드가 문을 닫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디지털 뮤직 스토어 아이튠스(iTunes) 등이 등장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으며, '록 오브 에이지스'와 같은 8090년대를 회상하는 영화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장소가 됐다.


아래는 헐리우드 선셋 스트립에 있었던 타워 레코드와 하와이 호놀룰루의 케아모쿠 스트릿에 있었던 타워 레코드의 모습.

(두 곳 모두 내가 자주 갔었고 여러 추억과 에피소드들이 남아 있는 타워 레코드 스토어들이다)



록 문화를 경멸하는 집단의 얘기도 옛 추억을 되살리게 했다. 단지 취향 때문에 록 뮤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사회적인 이유로 록 뮤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 가도 록 뮤직을 악마의 음악이라고 비난하는 모습을 요즘에도 흔히 볼 수 있다. "요새 미국의 젊은 크리스챤들이 즐겨 듣는 크리스챤 록 뮤직은 어떠냐"고 질문했더니 "그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학창시절에 크리스챤 사립학교를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기숙사 벽에 헤비메탈 그룹 포스터를 붙였다가 난리가 났던 적도 있다.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딘가에서 포스터를 얻게 되어 벽에 붙인 게 전부였는데 기숙사 관리인이 이를 보더니 "빨리 떼어버리라"고 난리가 났었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저런 포스터를 붙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만 했다. 록 뮤직에 앨러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내가 처음 본 것이 아마 그 때였던 것 같다.

헤비메탈 포스터를 떼어버린 뒤 얼마 지나서 그로서리 마트를 하는 친구의 가게에서 맥주 광고 포스터를 한장 얻어왔다. 버드 라이트(Bud Light) 광고였던 것 같은데,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커다란 크기의 맥주 병을 수영복 차림의 여러 명의 여자 모델들이 머리 위로 받쳐 들고 있는 포스터였다. 혹시 이 포스터도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 때는 개김성(?)이 좋았기 때문에 벽에 또 붙여놨다. 그런데 관리인이 이 포스터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았다. 한 번 쳐다보더니 씨익 웃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나도 그 땐 어린 꼬맹이였지만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록 뮤직(헤비메탈 포스터)이 술(맥주)과 섹스(수영복 모델)보다 더 나쁘다는 뜻으로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미성년자였는데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매우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겪어본 적이 있어서 인지, '록 오브 에이지스'에 나온 캐더린 제타-존스를 리더로 한 '안티-로큰롤' 걸그룹(?)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왠지 내가 실제로 아는 분들 같더라니까...ㅋ


그렇다. '록 오브 에이지스'는 과거의 추억에 빠져 보는 재미를 빼면 남을 게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파더스 데이(Father's Day)가 낀 주말에 개봉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관을 메운 관객 중 90% 이상이 최소한 30대 이상의 백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80년대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4050대가 가장 많았으며, 이들은 귀에 익은 80년대 클래식 록 뮤직이 흘러나올 때마다 마치 아이들처럼 탄성을 지르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록 오브 에이지스'는 모두가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80년대 록 뮤직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나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을 테지만, 이러한 것을 전혀 모르는 1020대의 흥미를 끌 만한 영화는 아니다. 클래식 록 뮤직을 좋아하는 젊은 미국인 친구들도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긴 하지만 최신유행에만 익숙한 1020대의 관심을 끌긴 힘들 것 같은 영화다. '80년대의 추억'을 빼면 남는 게 없는 영화인데 80년대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에겐 별 매력이 없어 보이거나 뻔한 노래들을 부르며 뻔한 짓을 하는 뻔할 뻔자 80년대 울궈먹기 영화로 보일 듯 하다.  사실 크게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작품성이나 완성도로 따지자면 '록 오브 에이지스'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것은 사실이니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차라리 영화를 R 레이팅(연소자 관람불가)으로 만들었더라면 더 나았을지 모른다. 청소년보다 성인 관객들을 겨냥한 영화였던 만큼 굳이 PG-13을 고집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대놓고 성인용으로 만들면서 술과 섹스와 마약이 판치는 광란의 세계를 보다 코믹하고 리얼하게 묘사했더라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성격의 영화는 PG-13 선에 맞춰 절제를 하는 것 보다 그냥 밀고 나가는 쪽이 더 나을 수 있는데, 패밀리-프렌들리 레이팅을 받기 위해 영화를 조금 답답하게 만든 느낌이 들었다.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 보자 - 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광란의 헤비메탈이 패밀리 프렌들리였단 말인가!

'록 오브 에이지스'는 모두에게 권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80년대를 살았고 뚜렷하게 기억하는 사람들, 80년대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볼 만할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의외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유치찬란하고 짜증나는 뮤지컬-코메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우선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대단한 것을 기대하긴 힘들어도 생각했던 것보다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80년대 록/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이 영화를 볼까말까 했었는데, 영화가 끝나자 '안 봤으면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자체는 볼 게 없었는데도 감동과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80년대의 추억과 향수 때문이기도 했지만 역시 음악의 파워라는 게...

자 그럼 마지막으로 사운드트랙...ㅋ

80년대 헤비메탈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인 만큼 사운드트랙은 들을 만하다. 메인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겹쳐지는 듯한 저니(Journey)의 히트곡 'Don't Stop Believin'', 지금 들어도 매우 로맨틱한 포리너의 'Waiting for a Girl Like You', 'I Want to Know What Love Is', 나잇 레인저스(Night Rangers)의 'Sister Christian',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외팔 드러머'로 유명한 영국의 록그룹 데프 레파드의 'Pour Some Sugar On Me', 그리고 영화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Rock of Ages', 스타쉽(Starship)의 'We Built This City', 본 조비의 'Wanted: Dead or Alive', 건스 앤 로지스의 'Paradise City'  등 귀에 익은 80년대 록 뮤직들로 가득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영화 사운드트랙 버전은 오리지날 밴드가 부른 것이 아니라 영화 출연진이 부른 버전이라는 점. 사운드트랙 버전도 나름 색다르고 들을 만 하지만 역시 오리지날 만큼은 아니다.

(익스트림(Extreme)이 부른 히트곡 'More Than Words'는 90년대 곡인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쿨하다. 톰 크루즈가 'Paradise City', 'Wanted: Dead or Alive', 'Pour Some Sugar on Me' 등 80년대 록 뮤직을 목청껏 부르는 것을 어디서 또 들을 수 있을까?

'록 오브 에이지스'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고 타워 레코드까지 등장했었으니 '록 오브 에이지스' 사운드트랙은 디지털이 아닌 CD로 구입할 생각이다. 인터넷으로 지금이라도 바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이번엔 되도록이면 레코드 스토어에 직접 가서 구입하려고 한다. 이런 게 다 기분 아니겠수?

댓글 2개 :

  1. "Pour Some Sugar on Me"는 국내 발매 Hysteria 앨범에는 실려있지 않았죠. 그때는 금지곡이 있던 시절였는데 "Run Riot"와 "Pour Some Sugar on Me" 두 곡이 빠져있었죠.
    영화 제목도 데프 레퍼드의 노래 제목과 같네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제목 같습니다.

    아뭏든 모처럼 옛추억에 빠져들수 있는 영화가 나왔네요.
    한번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More Than Words"는 90년대 음악인데 그냥 끼워넣기로 넣은듯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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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 기억이 맞았군요...^^ Pour Some Sugar On Me 말고 하나가 더 빠졌던 것 같았는데 그게 Run Riot이었군요.
    지금 보니까 며칠 전에 Pour Some Sugar On Me 2012 re-recorded 싱글이 나왔군요.
    그거랑 Rock of Ages Re-recorded 버전이 함께 들어있는데요.
    지금 듣고있는데 좀 이상...^^
    제가 80년대 메탈을 별로 안 좋아했어도 데프 레파드는 그래도 좀 들었습니다.
    파이로매니아 앨범에 수록된 Foolin은 지금 들어도 멋지더라구요.

    More Than Words는 90년대 노래 맞죠?^^ 왠지 아닌 것 같다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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