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2일 수요일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007 시리즈 폭력 수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 개봉 직후였던 지난 2008년 11월, 제임스 본드 스타로 유명한 영국 영화배우 로저 무어(Roger Moore)가 폭력 수위가 높아지는 007 시리즈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12년에도 비슷한 얘기가 또 나왔다. 이번엔 뉴질랜드의 유니버시티 오브 오타고(University of Otago) 헬스 디비젼이 007 시리즈 1탄부터 22탄까지의 폭력 수위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에 개봉한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이 빠진 이유는 연구를 진행하던 당시 '스카이폴'이 미개봉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007 시리즈에서 폭력의 비율이 높아졌으며 실제로 발생할 경우 사망이나 부상에 이를 정도의 위험한 폭력 씬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엔 모두 109건의 사소하거나(Trivial) 맹렬한(Severe) 폭력 행위가 나온 반면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무려 250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 나온 전체 폭력 씬(사소 + 맹렬) 중에서 맹렬한 폭력 행위는 '콴텀 오브 솔래스'가 '닥터 노'보다 거의 3배 가량 많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전체 폭력 씬은 '콴텀 오브 솔래스'가 '닥터 노'에 비해 2배 이상 많았고, 맹렬한 폭력 씬은 거의 3배로 불어났다는 얘기다.

여기서 '사소한 폭력 행위'는 상대를 밀거나 손바닥으로 때리는 정도가 해당하며, '맹렬한 폭력 행위'는 주먹질, 발길질, 무기 사용 등이 해당한다. '전체 폭력 씬'은 '사소한 폭력 행위'와 '맹렬한 폭력 행위'를 모두 합한 토탈이다.


오타고 대학의 밥 핸콕스(Bob Hancox) 부교수는 이러한 인기 영화들이 연령 제한을 받지 않아(Unrestricted)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노출되고 있다면서, 어린이들의 폭력물 시청이 폭력이나 거친 행동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방대한 연구 증거들이 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에선 '콴텀 오브 솔래스'와 '스카이폴'이 연령별 제한을 받지 않는 레이팅 중 하나인 M(Mature) 레이팅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007 시리즈 1탄부터 22탄 중에서 가장 폭력 씬이 많이 나온 영화는 어느 것일까?

오타고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가장 폭력적인 제임스 본드 영화는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주연의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라고 한다. '투모로 네버 다이스'엔 전체 폭력과 맹렬한 폭력 씬이 007 시리즈 역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이런 씬들이 영화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007 시리즈가 갈수록 액션 위주의 영화로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60년대 숀 코네리(Sean Connery) 시절에만 해도 거칠고 격렬한 액션 씬은 필요할 때에만 간혹 드문드문 나오곤 했지만, 요샌 10분마다 한 번씩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폭스 뉴스(Fox News)의 유명한 뉴스 진행자 빌 오라일리(Bill O'Reilly)는 007 시리즈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영화에 빗대기도 했다. 10분마다 액션 씬이 반복되는 요즘 제임스 본드 영화나 스토리라인이 어찌되든 상관없이 8분만에 한 번씩 엘비스가 노래 부르는 씬이 나오던 엘비스 프레슬리 영화나 모두 같은 포뮬라라는 것이었다.

물론 지난 로저 무어 시절 다수의 영화 평론가와 본드팬들이 "무어의 본드 영화엔 과거 코네리 시절과 같은 피지컬한 본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비판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임스 본드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작정 뛰어다니며 때려부수길 바란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영화의 적시적소에 한 두 번쯤 터프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이 정도마저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 쌓였던 것이지 완전한 액션 위주의 영화로 바뀌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부터 007 시리즈는 본격적으로 액션 위주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시대에 와선 "근육질의 마초맨이 영화 내내 뛰어다니며 머신건을 갈기는 평범한 액션영화" 쪽에 가까워졌다. 007 시리즈에서 액션 씬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의 제임스 본드 영화는 격렬하게 치고 받고 충돌하는 액션 씬만 반복될 뿐 과거처럼 스릴넘치고 스펙타클한 스턴트 씬이 사라졌다. 거칠고 격렬한 액션 씬을 반드시 고집하지 않아도 멋진 제임스 본드 액션 씬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최근엔 '격렬함'이 007 시리즈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007 시리즈 영화 포스터에 제임스 본드가 머신건을 들고 나올 정도가 됐으니 최근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얼마 만큼 거친 폭력 영화 쪽으로 기울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어둡고 격렬한 액션영화가 요새 인기를 끄는 덕분에 007 시리즈치고 다소 지나치게 격렬하고 거칠어진 듯한 최근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폭스 뉴스의 빌 오라일리, 워싱턴 포스트의 리처드 코헨(Richard Cohen) 등은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를 "따분하고 부자연스러운 근육질의 아마츄어 트라이애슬론 선수" 정도로 평하면서 비판적인 반면 청소년과 젊은층은 보다 어둡고 거칠어진 제임스 본드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므로 007 시리즈는 앞으로 당분간은 지금의 스타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댓글 2개 :

  1. 션 코너리 시절엔 액션의 빈도는 많지 않아도 그만큼 몰입감이 있고, 가끔씩 터지는 유머도 참 밀도 있고 좋았습니다.
    로저 무어 시절은 거의 코믹 본드가 되었고, 액션도 정말 한숨만 나올 정도 였고.
    피어스 브로스넌이나 다니엘 크레이그는 딱히 기억나는 장면도 없네요.
    카지노 로얄이야 원작이 탁월하고, 마틴 캠벨이 과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잘 찍어서 참 좋았는데...
    그 뒤 두편은 뭐 본드영화가 아니라 다른 헐리우드 액션 영화라고 해도 다 속아넘어갈 정도로, 본드의 정체성을 잃은 것 같습니다.
    이제 다니엘 크레이그가 계속 본드무비에 출연한다하더라도 이미 그 영화는 본드 무비가 아니라 일반 헐리우드 액션 영화로 보일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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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코네리는 장난꾸러기 소년같다가도 몸집좋은 난폭한 깡패로 돌변하는 게 매력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하드와 소프트의 두 얼굴을 가장 뚜렷하게 가진 본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덕분에 야들거릴 땐 살살 녹고 격투를 벌일 땐 상대를 다치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죽이겠다는 의지가 보였죠.
    코네리의 본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적이라면 죽을 때까지 구둣발로 밟을 사나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네리의 본드 영화는 매우 스타일리쉬하고 밸런스가 잡혀있습니다.
    영화 내내 적들을 밟아 죽이고 다니기만 하지 않았죠...^^
    그런데 크레이그의 본드는 코네리의 균형잡힌 본드 캐릭터를 참고하지 않고 '구둣발'만 보는 듯 합니다.
    주먹을 휘두르고 자동차는 서로 충돌하고 우당탕거리다 끝나는 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다음 작품에선 격렬한 액션 씬을 스타일리쉬한 액션 씬으로 바꿀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격렬한 액션은 한 두 번 나오면 됐지 우당탕, 또 우당탕, 또또 우당탕을 반복하면 재미가 없죠...^^
    이런 식의 액션영화가 헐리우드에 흔해빠진 것도 사실이구요.
    제 생각에도 크레이그의 본드 영화는 007 시리즈보다 평범한 액션영화 쪽에 더 가깝게 보입니다.
    이건 절대 올바른 변화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현재 007 제작진이 크레이그와 함께 밸런스 잡힌 본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맘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왠지 크레이그의 본드 영화는 끝까지 007 시리즈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걸 노리고 크레이그를 선택했으니 마지막까지 울궈먹으려 할 수도 있으므로...
    사실 전 크레이그의 본드 캐릭터에 불만이 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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