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6일 일요일

'엑스 마키나', 오랜만에 본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

최근 들어서 인공지능(A.I)을 다룬 영화나 TV 시리즈가 흔히 눈에 띈다. TV를 틀면 CBS의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Person of Interest)'가 있고, 빅스크린으로 눈을 돌리면 '허(Her)', '채피(Chappie)',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얼트론(The Avengers: Age of Ultron)', '터미네이터 제네시스(Terminator: Genesys)' 등 이미 개봉했거나 개봉 예정인 A.I 관련 영화들이 버티고 있다. 스마트폰이 점점 말동무 상대가 돼가는 세상이다 보니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진 게 아닌가 싶다.

최근에 개봉한 영국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도 인공지능에 관한 SF 영화 중 하나다.

알렉스 갈랜드(Alex Garland)가 연출과 스토리를 맡은 '엑스 마키나'는 검색엔진 회사 CEO 네이선(오스카 아이잭)의 저택에서 1주일을 함께 보낼 기회를 얻어 들뜬 마음으로 출발한 프로그래머 케일럽(도널 글리슨)이 네이선의 저택에서 비밀리에 개발이 진행 중인 인공지능이 탑재된 에이바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앨리씨아 비캔더)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인공지능 테스트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SF 영화다.

'엑스 마키나'는 소설과 스크린플레이 등 집필에 전념하던 알렉스 갈랜드의 영화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엑스 마키나'는 크게 새롭거나 신선할 것은 없는 내용의 영화였다. A.I, 안드로이드 등을 다룬 과거 SF 영화들이 이미 다뤘던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관계 등의 문제들과 대부분 겹쳐졌을 뿐 특별하게 새롭다고 할 만한 점은 많지 않았다. 케일럽이 인간처럼 보이는 에이바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인터뷰 위드 안드로이드' 컨셉트는 흥미로웠으나 어떤 면에서 보면 전반적으로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다.

'엑스 마키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스크린에서 시선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영화였다. SF 쟝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도 '엑스 마키나'는 느낌이 달랐다. 인공지능이 더이상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커졌기 때문인지 '엑스 마키나'의 줄거리가 실제로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에이바와 같은 안드로이드를 제작한다는 게 여러모로 무리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쪽 분야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지만, 컴퓨터 기술 발달과 일본이 개발한 인간의 모습과 거의 비슷한 여자 로봇 등을 보면서 에이바와 같은 인공지능 탑재 안드로이드 개발이 더이상 싸이언스 픽션이 아닌 싸이언스 팩트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인공지능은 제쳐 놓고 실제 사람과 같은 표정과 입 움직임 등을 구현하는 기술만 봐도 아직 많은 발전이 필요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갈 길이 아주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했던 것은 케일럽과 에이바가 매일 대화를 주고 받는 씬이었다. '엑스 마키나'는 대부분의 SF 영화와 달리 비쥬얼이 아닌 대화가 하이라이트인 영화였다. 케일럽이 거진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할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인간처럼 생긴 안드로이드, 에이바와 매일 대화를 나누면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케일럽의 위치에 놓여 실험실 같은 건물에서 실제 인간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안드로이드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워질 게 분명해 보였다. 케일럽과 에이바의 대화가 머지 않아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인지 '인간 vs 기계' 소재의 영화를 지금까지 많이 봤지만 '엑스 마키나' 만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를 생명체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기계일 뿐인가, A.I가 실제로 인간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가 등에 대한 이슈에 이전보다 높은 관심을 갖도록 만든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엑스 마키나'는 영화를 보지 않고 시놉시스만 읽고서도 무엇에 대한 영화인지, 결국 어떤 결말이 나올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줄거리의 영화였다. 케일럽과 에이바가 매일 대화를 나누는 씬은 아주 흥미진진했지만, 어떠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네이선과 에이바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고 있지만, 모든 게 혼란스러운 케일럽이 그 가운데에 끼어들었다면 결말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충격적인 반전이나 놀라운 미스터리 등을 기대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엑스 마키나'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마지막 파트다. 중반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점이 눈에 띄지 않았으나 마지막에 가서 다소 억지스럽게 줄거리를 짜맞춘 티가 났다. 잘 나가다 마지막에 가서 느슨해지는 영화가 많은데, '엑스 마키나'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케일럽과 에이바의 때로는 로맨틱하고 때로는 긴장감 넘치는 대화 까지는 훌륭했으나 마지막 파트에 가서 김이 약간 빠졌다. 그렇다고 크게 신경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으나 보다 깔끔하고 그럴듯 하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출연진은 모두 좋은 연기를 펼쳤다. 오스카 아이잭(Oscar Issac)은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르고 술을 무척 즐겨 마시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쿨한 젊은 CEO 네이선 역에 아주 잘 어울렸고, 도널 글리슨도 컴퓨터 너드(Nerd) 스타일의 케일럽 역에 잘 어울렸다. 또한, 청순해 보이면서도 매우 차가운 이면을 숨기고 있는 안드로이드, 에이바 역을 맡은 스웨덴 여배우 앨리씨아 비캔더(Alicia Vicander)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엑스 마키나'는 상영시간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영화였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영화였으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게 어렵지 않았고 전문용어로 머리를 아프게 만들지도 않았다. 유머가 풍부한 편은 아니었으나 영화에 필요한 만큼의 유머는 들어있었고, 인공지능이 탑재된 안드로이드와 대화를 나눈다는 신비감에 빠져 지루할 새가 없었다. '엑스 마키나'도 완벽한 영화는 아니었으나 아름다움, 신비로움, 그리고 혼란과 위험이 멋진 조화를 이룬 SF 영화였다.

최근 들어 영화관에서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많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그런 영화를 찾았다. 바로 '엑스 마키나'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건, 네이선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젊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많지만, 네이선의 차이점은 인간들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간 대신 네이선 주위엔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네이선은 아내나 여자친구가 필요없었다. 왜냐면, 인간의 모습을 한 여자 안드로이드와 함께 춤도 추고 끼고 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의 취향에 맞게 프로그램한 'COMPANION'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면 굳이 인간과 함께 살 필요가 있을까? 물론 안드로이드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곤란하겠지만,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따른다면 굳이 골치아픈 인간을 상대할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외딴 장소에서 안드로이드들과 생활하는 네이선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할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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