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다니엘 크레이그, 007 시리즈를 떠날 때가 온 것일까?

최근 들어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곧 개봉하는 '007 스펙터(SPECTRE)'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날 것인가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007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완결편 성격을 띤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이 마지막인가"라는 예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크레이그가 에스콰이어 UK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계속 맡을 의사가 적어도 현재는 없다고 말하면서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를 떠날 의향이 있다는 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크레이그는 이후에 데일리 메일과 가진 인터뷰에서 "계약에 한 편 더 남아있다"면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하고 싶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는 '본드25'로 돌아올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007 시리즈 미래에 대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인터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크레이그는 이번엔 타임아웃 런던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007 시리즈를 계속 하느니 차라리 손목을 긋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에스콰이어 UK 인터뷰보다 조금 더 과격(?)하게 현재는 007 시리즈를 계속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어 크레이그는 '본드25' 계획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만약 그가 '본드25'에 출연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돈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이그의 타임아웃 런던 인터뷰가 전해지자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 영화를 또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만 해도 데일리 메일의 다니엘 크레이그 인터뷰 기사를 인용해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온다고 했다"는 성급한 기사가 많이 올라오더니 타임아웃 런던 인터뷰 기사 이후엔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헐리우드 전문 사이트, 버라이어티도 비슷한 기사를 띄웠다.


과연 크레이그가 '007 스펙터'를 끝으로 살인면허를 반납할 생각이 있는 것일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25'까지 계약된 것으로 알려진 건 이미 한참 전의 얘기이므로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온다는 건 뉴스감이 아니다. 몇 해 전 크레이그의 007 계약을 버라이어티, 헐리우드 리포터 등 헐리우드 전문 매체들이 보도한 바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초적인 팩트만 놓고 따지면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므로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는 뉴스감이 못된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지 않는 변수를  짚어보는 게 더 흥미롭다.

크레이그가 '본드25'로의 리턴 여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출연료 문제가 그 중 하나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각에선 크레이그가 거절하기 어려운 고액의 출연료를 007 제작진이 제시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본드팬 블로그이지 헐리우드 비즈니스 블로그가 아니므로 돈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다른 이유를 짚어보기로 하자.

사실 나는 제임스 본드 배우를 교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한 영화배우가 비슷한 스타일로 시리즈를 계속 밀어붙이는 건 3~4편이 한계인 듯 하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도 세 번째 영화부터 서서히 질리기 시작하더니 네 번째 영화에선 흥미가 크게 떨어졌다. 다니엘 크레이그 역시 마찬가지로 비슷한 스타일로 007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는 데 거의 한계점에 왔다. 다니엘 크레이그 스타일 제임스 본드에도 이제 식상했다는 것이다. 브로스난과 마찬가지로 크레이그도 한가지 스타일만을 고집하는 본드였으므로 쉽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브로스난 시절과 다르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으나, 크레이그 시대 영화에서 꺼내놓을 수 있는 대표적인 특징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또다른 문제는 크레이그의 나이다.

지난 피어스 브로스난도 그의 네 번째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서 부쩍 나이가 들어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니엘 크레이그 역시 '007 스펙터'에서 과거보다 나이가 든 모습이 눈에 띄고 있다. 40대 후반에 접어들자 크레이그도 지난 피어스 브로스난과 마찬가지로 늙은 티가 난다는 것이다.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벽을 뚫고 추격전을 벌이던 '카지노 로얄' 시절의 크레이그가 아니다.

▲2006년 영화 '카지노 로얄'의 한 장면
▲2015년 다니엘 크레이그 모습
크레이그는 30대 후반에 제임스 본드가 되어 젊고 거친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007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흘러 40대 후반이 되었으며, '본드25'가 개봉할 즈음이 되면 50대 초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문제는 지난 2006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 몸으로 때우는 젊고 거친 본드 캐릭터로 007 커리어를 시작한 크레이그가 50대 중년에 접어든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겠는가다. 물론 50대 후반까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로저 무어(Roger Moore)도 있다. 하지만 로저 무어는 새파란 30대에 제임스 본드가 된 것이 아니라 40대 중반에 제임스 본드가 되었기 때문에 나이 든 무어의 모습이 크게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007 시리즈를 시작할 때부터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50대 중반이 되었을 때에도 아주 많이 늙어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30대 후반에 제임스 본드가 되어 열심히 뛰어다니고 몸으로 때우는 젊고 혈기왕성한 본드를 연기하면서 007 시리즈를 시작했기 때문에 40대 후반, 50대 초반이 된 크레이그의 모습을 보면 "많이 늙었다"는 게 바로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만약 다니엘 크레이그가 지난 '스카이폴(Skyfall)'부터 중년에 어울리는 중후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면 50대에 접어든 중년의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임스 본드로 계속 받아들이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는 '스카이폴'에서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흉내내는 데 그쳤다. 어른의 눈높이에 맞춘 중년이 된 제임스 본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여전히 열심히 뛰어다니며 몸으로 때우는 크레이그 스타일 본드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코믹북 수퍼히어로까지 흉내내면서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더욱 유치하게 만들었다. 크레이그는 나이가 들어가는데 영화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유치한 영화가 된 것이다.

곧 개봉할 '007 스펙터'에서도 크게 달라진 게 없을 듯 보인다. 왜냐면, '스카이폴'의 샘 멘데스(Sam Mendes), 존 로갠(John Logan) 등이 모두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007 스펙터'의 줄거리만 훑어봐도 본드의 어렸을 적 과거 이야기 등 청소년물을 연상케 하는 플롯이 나오는 데다 전편과 직-간접적으로 줄거리가 연결된다는 점 등 "이번에도 겉으로만 묵직하고 실제로는 가벼운 청소년용 영화"라는 징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번에도 중년에 접어든 다니엘 크레이그에 어울리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찾아주기 보다 우스꽝스러워도 돈이 되는 쪽을 또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는 배우가 나이를 먹어가면 거기에 맞춰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 영화 분위기 등을 어른 눈높이에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 그래야 영화가 덜 유치하고 덜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크레이그는 로저 무어(Roger Moore)처럼 수시로 농담을 쏟아놓는 가벼운 스타일이 아니라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점잖고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는 중년의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보인다. 근육을 키우고 뛰어다니는 혈기왕성한 젊은 제임스 본드는 '카지노 로얄'을 끝으로 접었어야 했으나 007 제작진은 계속해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짧은 머리에 근육을 키우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젊고 피지컬한 캐릭터로 이미지를 굳혔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엔 007 시리즈에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하게 격렬하고 피지컬한 액션 씬이 빠짐없이 나왔는데, 이런 것도 다니엘 크레이그가 나이를 먹는다는 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주연배우가 나이가 들어가면 격렬하고 피지컬한 액션에서 벗어나 스마트하고 스릴이 넘치는 액션 쪽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으나 007 제작진은 2006년 '카지노 로얄' 포뮬라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다니엘 크레이그는 4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혈기왕성한 젊은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 이렇다 보니 30대 영화배우가 맡아야 할 역할을 40대의 크레이그가 맡은 것처럼 보이게 됐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가 이런 이미지로 굳었는데 크레이그가 50대의 나이 든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톰 크루즈(Tom Cruise)는 30대였을 때 시작한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시리즈에 50대가 되어서도 계속 출연하고 있다. 그러나 톰 크루즈는 톰 크루즈다. 톰 크루즈는 지난 80년대부터 주연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해온 헐리우드 수퍼스타 중 하나이며, 헐리우드 팝콘무비 아이콘으로 불린다. 크루즈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 중 하나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훌륭한 대역과 스턴트맨이 여럿 있는 덕분에 직접 스턴트를 하지 않아도 되므로 제임스 본드 영화 촬영이 쉬워졌다고 말했다. 이는 50대 후반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로저 무어가 과거에 했던 비슷한 농담을 크레이그가 다시 사용한 것이다. 50대 이후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유일한 영화배우로 유명한 로저 무어는 어려운 스턴트는 스턴트맨들이 전부 다 하고 자신은 베드씬이나 직접 했다고 농담한 바 있다. 본드팬들은 로저 무어가 80년대에 찍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엔 로저 무어보다 스턴트맨이 등장하는 씬이 더 많다고 비판한다. 로저 무어 시절은 피지컬한 액션 씬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배우가 나이가 많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본드25'에선 007 제작진과 다니엘 크레이그가 약간 다른 루트를 택할 수도 있다. 곧 개봉할 '007 스펙터'가 '카지노 로얄'에서 시작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스토리를 완결시키는 역할을 띤 것으로 알려진 만큼 '본드25'부터는 다른 분위기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79년작 '문레이커(Moonraker)'에서 우주까지 나갔던 007 시리즈가 1981년작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에선 리얼한 세계로 되돌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온다면 달라질 게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스토리까지 전편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지는 연속극 스타일이다 보니 과연 007 제작진이 '007 스펙터'를 뒤로 하고 '본드25'부터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색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는지 의심이 간다. 클래식 007 시리즈를 보지 않은 어린 영화관객들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이어지는 줄거리 방식에 익숙해진 상태이므로 과거에 했던 것처럼 줄거리가 서로 이어지지 않는 전작과의 연결성이 끊어진 '본드25'를 내놓으면 "왜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냐"고 따지는 한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007 제작진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안 해도 될 쓸데 없는 것까지 새로 시도하면서 되레 골칫거리를 더 만든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크레이그와 함께 '본드25'까지 계속 갈 것 없이 크레이그와 결별하고 새로운 영화배우와 함께 정상궤도로 다시 되돌아가 새출발을 하는 게 007 시리즈에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니엘 크레이그 입장에서도 최고일 때 떠나는 게 나쁘지 않을 듯 하다. 크레이그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으므로, '카지노 로얄'로 시작한 스토리를 이번 '스펙터'에서 완결시키면서 깔끔하게 떠나는 게 더 나을 듯 하다. 천상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애초부터 연속극처럼 줄거리가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준비된 것 같았으므로 '007 스펙터'로 지난 줄거리를 모두 완결시키고 끝내는 게 깔끔할 수 있다. 실제로, 크레이그는 에스콰이어 UK 인터뷰에서 '007 스펙터'가 '카지노 로얄'로 시작한 줄거리의 대단원 격이라고 밝힌 바 있다. '007 스펙터'가 대단원이라면 막을 내리는 게 낫다. 크레이그가 '본드25'까지 계약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며 크레이그도 돈 때문에 '본드25'로 돌아올 수 있다고 밝혔으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대가 앞으로 많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끝이 보이고 있으므로 이렇게 된 김에 막을 내리고 떠나는 게 낫다고 본다.

물론 크레이그가 살인면허를 반납한다면 아쉬워할 사람들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크레이그가 떠난다고 하면 샴페인을 터뜨릴 사람들도 상당히 많을 듯.

Bollinger 2009 please!

과연 다니엘 크레이그가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007 시리즈를 떠나는지, 아니면 결국엔 '본드25'로 돌아오게 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2개 :

  1. 최근에 소니가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입 닥치라고 했었다더군요 ㅎㅎ
    한 관계자는 "크레이그는 허세를 부리며 그가 본드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창의력을 생기게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본드 외에 크게 히트친 영화가 없다. 그는 그런 본드를 비난한다."고 말했다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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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그 기사를 뉴욕 포스트에서 봤습니다...^^
      스펙터를 제작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여기까진 알겠는데, 007 외 히트작이 없는 이유가 007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죠.
      크레이그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좀 웃기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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