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4일 일요일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의 우정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가 미국서 DVD로 출시됐다.

극장에서 재미있게 본 영화라서 DVD가 나오면 구입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출시일에 맞춰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 갔더니 '아메리칸 갱스터' DVD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박스가 좀 큰 게 눈에 띄었다. 보통 크기로 보이는 일반버전 DVD는 한쪽에 진열돼 있었지만 그 바로 옆에 일반버전보다 케이스가 큰 넓적한 녀석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광고용으로 전시한 박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3-DISC COLLECTOR'S EDITION'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3 디스크 에디션?

뭐가 들었길래 박스는 또 저렇게 큰 걸까?

광고를 통해 '아메리칸 갱스터' DVD에 극장에서 상영했던 오리지날 버전과 18분이 늘어난 Extended Version이 모두 수록된 것까진 알고있었다. 디스크1은 두 버전이 담긴 영화 디스크였다.

디스크 2는 아직 생존해 있는 '아메리칸 갱스터', 프랭크 루카스와 그를 체포했던 리치 로버츠를 포함해 출연배우, 감독, 프로듀서 인터뷰와 다큐멘타리가 담긴 보너스 디스크였다.

디스크3는 뮤직비디오, 다큐멘타리, '아메리칸 갱스터' 언컷버전 디지털 카피가 수록돼 있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갱스터' 미니 컬러북이 들어있었다. 32 페이지 '콜렉티블 북'이란다.

이중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Alternate Ending'이었다. 시간이 없어 18분이 추가된 Extended Version을 차근히 보지 못했지만 엔딩만은 꼭 보고싶었다.

오리지날 극장버전과의 차이점은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가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극장버전에선 루카스가 출감하면서 끝나지만 Extended Version에선 교도소 앞으로 마중나온 리치 로버츠와 재회 후 친한 친구처럼 할렘을 거닐며 끝난다.



그렇다.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는 서로 친구사이다.

프랭크 루카스는 할렘을 호령한 거물급 갱스터였고 리치 로버츠는 프랭크 루카스를 체포한 형사였지만 그 이후 이들 둘은 서로 친구가 됐다고 한다.

출시된 '아메리칸 갱스터' DVD 보너스 디스크에 담긴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의 인터뷰를 보니 이들이 지금도 가까운 친구사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댄젤 워싱턴과 러셀 크로우가 친구사이라는 게 아니다. 둘 다 생존해 있는 실제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가 절친한 사이라는 것이다.


[실제 프랭크 루카스(왼쪽)와 리치 로버츠(오른쪽)]

'아메리칸 갱스터' DVD에 수록된 인터뷰를 보고나니 영화를 잘못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보니 프랭크 루카스가 체포된 이후의 이야기가 영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해 보였다.

베트남전 전사자 관에 마약을 숨겨 미국으로 들여왔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프랭크 루카스의 마약거래 규모 등을 감안하면 '블루 매직' 이야기도 상당히 섹시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스토리를 알고나니 진정한 '남자 스토리'는 그 다음부터 나오는 루카스와 로버츠의 우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극장판에선 루카스가 로버츠의 수사에 협력하는 데까지 나왔을 뿐 루카스와 로버츠의 우정은 없었다. 마지막 엔딩에 루카스와 로버츠가 만나는 것마저도 극장판에선 잘려나갔다.

리치 로버츠가 변호사로 직업을 바꿔 최초로 변호를 맡은 게 프랭크 루카스라고 한다. 자신이 체포한 프랭크 루카스를 나중엔 변호까지 해준 것이다. 어찌보면 병 주고 약 주고 혼자 다 한 것 같지만 상당히 쿨한 이야기 같다. 쿨한 것까진 모르겠더라도 흔치 않은 이야기란 것까진 맞는 것 같지 않수?

이 뿐만이 아니다. 백발의 노인으로 변신한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는 지금도 절친한 사이며, 리치 로버츠가 프랭크 루카스 아들의 대부(God Father)라고 한다.

루카스와 로버츠는 단순한 친구사이 정도가 아니었다.

리치 로버츠는 프랭크 루카스 아들의 학비부터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한다. 루카스의 아들은 A학점을 받는 우등생이라고.

노인으로 변한 프랭크 루카스가 리치 로버츠에 대해 'He's a good man. I love the son of a bitch, I do.'라고 하는데 찌릿찌릿 하더라.



그렇다고 프랭크 루카스와 리치 로버츠의 우정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아메리칸 갱스터', 프랭크 루카스는 '골든 트라이앵글'을 찾아갔던 것부터 시작해 미국으로 마약을 밀수, 판매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던 기억을 더듬는다. 베트남전 전사자 관에 마약을 숨겨 미국으로 들여온 이야기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리치 로버츠는 부패한 경찰이 갱스터들을 돕지 않았다면 프랭크 루카스도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경찰 전체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범죄자에게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들과 뒷거래를 한 부패 경찰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보너스 자료가 꽤 많은 편이라서 아직 전부 보지 못했지만 '아메리칸 갱스터'가 실화를 기초로 한 영화라서 당사자들이 직접 나와 당시를 회상하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극장에서 본 영화 중 DVD로 갖고있을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DVD가 출시되는대로 구입하는데 '아메리칸 갱스터' DVD는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박스가 크기 때문에 다른 DVD 영화와 함께 꽂아놓으면 좀 우습게 보인다는 게 단점이지만...

댓글 3개 :

  1. 후덜덜~ 말씀하신대로 이후까지 찍었다면 정말 감동적인 영화가 되겠네요.
    다만 그렇게되면 분량이 한 3시간가량 될듯.ㅋㅋ

    답글삭제
  2. 그렇죠. '애프터 스토리'를 추가하면 3시간 넘겠죠.
    하지만, 마지막에 루카스가 수사에 협조하는 부분을 늘리고...
    루카스와 로버츠가 친해지는 장면을 넣고...
    로버츠가 변호사가 되어 루카스를 변호하고...
    루카스가 출감할 때 로버츠가 마중나오는 엔딩 정도만 넣었더라도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둘 사이의 우정이 영화에 나왔으니 로버츠가 '대부'가 됐다는 등의 한참 이후 이야기는 자막으로 내보내도 됐겠죠.
    근데 영화에선 루카스와 로버츠의 인간관계를 제대로 그리지 않았죠.
    이렇다보니 로버츠는 '수퍼캅', 루카스는 '범죄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두 캐릭터에 이야기가 제대로 나왔다면 러셀 크로우도 빛났을텐데 영화가 완전히 한쪽으로 쏠렸죠.
    댄젤 워싱턴만 보이고 러셀 크로우는 가려졌으니...

    답글삭제
  3. 이 영화를 오늘에서야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실화라는 사실을 알았네요.
    2시간동안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해서 몰입되게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그 2억5천만불..크~생각만해도 짜릿하네요. 3천억 가까이 되는 돈 ㅎㅎ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