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0일 일요일

'화이트 하우스 다운', 식상한 스토리와 함께 폭삭

요즘 백악관은 리비아 뱅가지 스캔들, IRS 스캔들, DOJ 스캔들, 그리고 최근에 터진 NSA 스캔들 등 계속되는 골치 아픈 사건들로 다운된 상태다. 이런 백악관의 피곤한 심경을 반영한 듯한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소니 픽쳐스의 '화이트 하우스 다운(White House Down)'이다.

물론 의미에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영화 제목에서 '다운'은 '함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적의 공격으로 백악관(화이트 하우스)이 함락(다운)되었다는 뜻이다.

잠깐! 백악관이 테러리스트 공격에 함락되는 줄거리의 영화가 얼마 전에 개봉하지 않았냐고?

그렇다. 지난 3월 미국서 개봉했던 저라드 버틀러(Gerard Butler) 주연의 '올림퍼스 해스 펄른(Olympus Has Fallen)'도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함락된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액션 스릴러 영화다. 그러므로 테러 공격에 백악관이 함락된다는 비슷한 줄거리의 영화 두 편이 3개월 간격으로 개봉한 게 됐다.

그렇다면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줄거리를 우선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미국 캐피톨 폴리스(USCP)인 존 케일(채닝 테이텀)은 대통령 경호원이 되기 위한 면접을 보기 위해 어린 딸과 함께 백악관을 찾는다. 그러나 운이 없게도 바로 그날 백인 우월주의자, 전직 델타포스 대원 등으로 구성된 무장 테러리스트들이 백악관을 습격하고 대통령(제이미 폭스)을 인질로 잡으려 한다. 위기에 처한 대통령을 구출한 케일은 대통령을 안전하게 백악관 밖으로 피신시키고 테러리스트에 인질로 잡힌 어린 딸을 구출함과 동시에 그들이 꾸미는 음모까지 저지해야 하는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렇 듯 '화이트 하우스 다운' 줄거리는 몇 가지 차이점을 제외하곤 지난 '올림퍼스 해스 펄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몇 가지 차이점' 중 하나가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 제작진은 지난 '올림퍼스 해스 펄른'과 달리 백악관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를 외국인이 아닌 미국 내부의 적으로 설정했다. 여기까진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식상한 외국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미국 내에서 적을 찾았다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미국 내의 적을 어디서 찾았나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테러리스트는 실제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의 정적들을 연상케 했다. 노골적으로 티 파티(Tea Party)를 비롯한 미국의 보수우파 진영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물론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에 현실 정치와 겹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만, PG-13 레이팅의 여름철 오락영화인 만큼 되도록이면 그러한 부분을 피해가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그런 것을 피해가긴 커녕 노골적으로 정치색을 띄고 한쪽으로 기운 영화였다. 이런 류의 오락영화는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 영화였다.

지난 3월 개봉했던 '올림퍼스 해스 펄른'은 그것이 가능했다. '올림퍼스 해스 펄른'은 미국인 모두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액션영화였다. '올림퍼스 해스 펄른'을 보면서 실제로 북한군 특수부대가 백악관을 점령할 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한 사람들은 매우 드물었을 것이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퓨어 픽션', '퓨어 엔터테인먼트'였다고 할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러므로 '올림퍼스 해스 펄른'이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은 어떻게 보면 크게 놀랍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절반의 미국인만을 위한 영화였다. 요샌 헐리우드가 내수보다 해외 수익을 더욱 중요시 하고 있으므로 수출용으로 만든 영화인지 몰라도, 미국에선 흥행 성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영화였다.

주연을 맡은 채닝 테이텀(Channing Tatum)과 제이미 폭스(Jamie Foxx) 듀오는 볼 만했다. 채닝 테이텀은 보이밴드 멤버처럼 보이고 제이미 폭스는 너무 힙합 스타일이라서 지나치게 팝-프렌들리인 듀오로 보이긴 했지만, 달작지근한 팝 스타일을 좋아하는 관객들을 겨냥한 PG-13 영화로 보였으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두 배우 모두 코믹 연기에 잘 어울려 보였는데도 유치한 농담과 유머로 싱거운 웃음을 쥐어짜는 데 그쳤다는 게 약간 실망스럽긴 했지만 테이텀과 폭스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테러리스트에 의해 백악관이 함락되는 씬은 '화이트 하우스 다운'이 좀 더 그럴 듯 하고 설득력 있었다. 'G.I. Joe' 수준으로 황당해 보이던 '올림퍼스 해스 펄른'에 비하면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백악관 공격 씬은 양반이었다. 하지만 액션은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다. 액션 씬은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웠으며, 영화 내내 스릴과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안 봐도 뻔한 내용이었으로 영화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데다 액션까지 미지근했던 덕분이다.

한마디로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볼거리가 없었다. 식상하고 엉성한 스토리는 정치적으로 한쪽으로 기운 티가 노골적으로 나면서 신경에 거슬렸고, 액션도 맹탕이었을 뿐 크게 대단하거나 특별하다는 생각이 드는 씬이 없었다. 별 것 없는 똑같은 얘기를 2시간 넘도록 아주 불쾌하고 재미없게 주절거리는 것을 묵묵히 참고있다 보니 엔드 크레딧이 올라갔다.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기 아주 어려울 정도로 괴롭고 따분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3개월 사이에 백악관 함락 영화 두 편은 너무 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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