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4일 일요일

'올림퍼스 해스 펄른', 문제는 많았지만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는다. 강(릭 윤)이라는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가 이끄는 40명의 북한인들은 백악관을 완전히 점령하고 미국 대통령(애런 엑하트)을 비롯한 인질들을 백악관 벙커에 가둔다.

모든 것이 테러리스트들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나이를 잊고 있었다 - 바로 경호원 마이크 배닝(제리 버틀러)이다.

이쯤되었으면 무슨 패로디 코메디 영화 쯤 되는 듯한 생각이 들 것이다. 백악관을 점령한 테러리스트가 40명의 북한인이라는 점도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백악관에 홀로 남은 경호원이 테러리스트를 물리치고 대통령을 구출한다'는 '다이 하드(Die Hard)'를 연상시키는 설정도 머리를 긁적이게 만든다. 게다가 '백악관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아 대통령이 인질이 된다'는 설정 역시 스릴러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줄거리도 새롭거나 신선하게 들리지 않는다. 여러모로 진지하게 볼 만한 영화보단 패로디 코메디 영화 쪽에 더 가깝게 들린다.

그러나 '올림퍼스 해스 펄른(Olympus Has Fallen)'은 코메디 영화가 아니라 R 레이팅을 받은 나름 인텐스한 액션 스릴러 영화다.


40명의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점령해 대통령을 인질로 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요샌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시퀘스터(Sequester)로 인한 예산 문제로 백악관 관광까지 중단될 정도이므로 백악관 경비에도 구멍이 뚫렸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올림퍼스 해스 펄른'을 보다 재미있게 보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에 있다. 40명의 테러리스트가 손쉽게 백악관을 점령한다는 데까지는 '뭐 그런가부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영화의 줄거리는 계속해서 영화관객들에게 많은 양보와 이해를 요구했다. 처음엔 테러리스트에게 인질로 잡힌 미국 대통령(애런 엑하트)을 구출하는 것이 전부인 듯 했지만 스토리는 가면 갈수록 대통령의 안전한 구출보다 더욱 큰 문제 쪽으로 옮겨갔다. '24'와 '다이 하드'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007 시리즈 스케일의 또다른 음모를 등장시키면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가 대통령 구출이 더이상 아니게 된 것이다. 대통령 인질 사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스케일이 큰 미국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음모가 진행중임이 드러났으면 대통령의 안전한 구출을 포기하고 더욱 큰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명의 영웅이 인질을 구출함과 동시에 테러 계획까지 해결한다'는 영화의 포뮬라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거기에 맞춰 스토리를 억지로 짜맞출 수밖에 없었다.

'24', '다이 하드', 제임스 본드 시리즈 팬들을 조금씩이나마 모두 만족시킴과 동시에 요새 헐리우드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애국심 고양 테마의 영화로 만들려 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월드컵, 올림픽 이후 성조기에 이렇게 시선이 간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국 사회가 갈라져 있는 만큼 성조기 아래서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애국심 고양 영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올림퍼스 해스 펄른'에 이어 '백악관 인질극'을 소재로 한 소니 픽쳐스의 '화이트 하우스 다운(White House Down)'이 곧이어 또 개봉 예정인 것을 보면, '대통령을 돕고 따르자'는 헐리우드의 또다른 어젠다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애국심을 고양하는 영화가 나오는 것은 별문제지만, 위기에 처한 백악관을 굳이 연달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무튼 여기까진 다 좋다고 치자. 그러나 '올림퍼스 해스 펄른'은 허점 투성이의 플롯이 영화를 망쳤다. 한마디로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 '24'에나 나옴직한 백악관 인질극에 휘말린 경호원(제리 버틀러)이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 흉내를 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제임스 본드 놀이까지 추가하면서 가뜩이나 의심이 가던 플롯을 더욱 수상해지도록 만들었다. 말이 되는 듯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흔적은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구멍이 많았다.

그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냐고?

놀랍게도, 그렇게 험악하진 않았다. 줄거리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형편없는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영화 자체는 그럭저럭 볼 만했다. '24'와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다이 하드'와 만난 잡탕 플롯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줄거리가 설득력이 있고 말이 되는가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머리를 비운 채 2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는 덴 별 문제가 없었다. 진짜로 험악한 영화들은 머리를 비우고 2시간을 버티는 것조차 고행처럼 느껴지지만, '올림퍼스 해스 펄른'은 그 정도로 못봐줄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아주 험악한 영화가 될 모든 조건을 갖춘 듯 했지만 각오했던 데 비해 양호한 편이었다. 영화 내내 크고 작은 문제점들로 깨지고 파손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덜컹거림이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점들이 여전히 느껴지긴 했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말이 안 되는 스토리 뿐만 아니라 유머와 유치한 대사도 거의 항상 예상했던 대목에서 나왔고, 액션 씬 역시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영화가 끝나기 전에 박차고 나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올림퍼스 해스 펄른'은 문제점이 많은 영화다. 터무니없는 플롯부터 시작해서 진지하게 보기 어려운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는 원래 이렇지 않느냐'고 마음을 너그럽게 먹고 볼 수 있다면 별다른 큰 문제 없이 마지막까지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저것 문제 제기를 하지 말고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는대로 아무 생각 없이 순종적으로 영화의 플롯을 따라가면 된다. 40명의 테러리스트에게 백악관이 함락된다는 줄거리의 영화에 얼마나 더 바랄 게 있겠는지 상식선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본 이후 그 수준에 맞춰 군소리 않고 2시간을 보내기엔 크게 부족하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올림퍼스 해스 펄른'은 여러 다른 영화들을 조금씩 모방하면서 짜깁기해 만든, 아무 생각없이 2시간을 버티기에 간신히 충분한 영화일 뿐이다. 테러리스트의 백악관 공격을 가정한 나름 그럴싸한 스릴러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얼핏 보기에 무늬가 그런 쪽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체는 'G.I 조(G.I. Joe)' 수준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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