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8일 일요일

'ZOHAN' - 이걸 보고 웃으란 말이냐!

조한(애덤 샌들러)은 끝이 없어 보이는 전쟁에 염증을 느낀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군대를 집어치우고 헤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 모사드 요원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고싶어 하는 것이다.

헤어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한은 숙적인 팬텀(존 터투로)과의 싸움에서 패해 죽은 것으로 위장한 뒤 이스라엘을 떠나 뉴욕으로 건너간다.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밀입국' 한 것.


▲이런 고향을 놔두고 뉴욕은 뭐하러...?

하지만, 헤어 디자이너 경험이 전혀 없는 조한을 고용할 헤어 살론이 있을 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조한은 팔레스타인 출신 여성 달리아(Emmanuelle Chriqui)가 운영하는 미장원에 취직하게 된다. 전직 모사드 요원이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국적까지 호주로 속인 채 미국에서의 '제 2의 삶'을 시작한 조한의 직장으로 이스라엘인 상점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곳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미장원이 걸린 것이다.

취직에 성공한 조한은 미장원의 주고객인 할머니들을 상대로 머리 손질서 부터 섹스까지 풀서비스를 해주면서 금세 유명해 진다. 남성 스트립 댄서 저리가라 할 정도로 요란스럽게 머리 손질을 해 준 다음 옆 방으로 이동해 섹스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조한의 '퇴폐영업'에 할머니들이 완전히 뿅간 것이다.

그러나, 아랍인 택시기사 살림(롭 슈나이더)이 조한을 알아보면서 꼬이기 시작하는데...


그렇다. 'You Don't Mess with the Zohan'은 애덤 샌들러 주연의 황당 스토리 코메디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애덤 샌들러의 코메디 영화는 왜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일까?

우선 제목이 길다는 것부터 눈에 띈다. 작년엔 'I Now Pronounce You Chuck & Larry'더니 금년엔 'You Don't Mess with the Zohan'이다.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주인공이 요상한 사건에 휘말린다는 플롯 설정도 비슷하다. 'Chuck & Larry'는 소방관이 동성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더니 'Zohan'은 이스라엘의 모사드 에이전트가 미국으로 건너 가 미용사가 된다는 줄거리다.

'Chuck & Larry'는 게이문제, 'Zohan'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굵직한 이슈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공통점 중 하나다. 실없는 코메디 영화처럼 보이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꾸민 영화다.



하지만, 코메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웃기냐, 웃기지 않느냐'이다. 이전 영화와 비슷비슷하든, 내용이 있든 없든 간에 코메디 영화는 일단 웃기면 그것으로 '미션 컴플릿'이기 때문이다. 코메디 영화는 무조건 웃겨야 잘 만든 영화라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면 'Zohan'은 어떤 영화일까?

일단, 이스라엘 모사드 에이전트가 죽음을 위장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미장원에서 일한다는 설정은 재미있다. 테러리스트를 쫓아다니던 '왕자G 베테랑 에이전트'가 미장원에서 할머니들과 '띵까띵까' 한다는 아이디어까지는 그런대로 쓸만해 보였다.

그러나, 수퍼히어로 패로디가 시작하면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총알을 손으로 잡고, 콧구멍에 박힌 총알을 후벼 내고, 수류탄으로 탁구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부터다.

영화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저 모양이니까.

나중엔 상점에 난 불을 주먹질과 발길질로 끄겠다고 하고, 팬텀과 조한이 나란히 소리를 지르자 건물 유리창이 박살나면서 유방 확대수술을 한 여자의 가슴까지 풍선처럼 터지기도 하더라.

'Zohan'도 코메디 영화인 만큼 어느 정도 바보스러운 데가 있을 것이란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Chuck & Larry'처럼 스토리만 황당한 게 전부일 것으로 기대했다. 아무래도 애덤 샌들러의 작년 여름 영화가 'Chuck & Larry'였다 보니 'Zohan'도 비슷한 언저리에서 맴돌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The Naked Gun' 시리즈, 'High School High', 'Superhero Movie' 등 난장판 코메디 영화들과 비교해야 할 정도로 'SPUPID MOVIE'였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패로디와 '왕자G 조한'이 왕성한 성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할머니들과 미장원에서 와일드 섹스를 벌인다는 설정으로 억지 웃음을 쥐어짜는 게 전부인 영화였다.

그 결과?

영화가 시작한지 10분이 지나기 무섭게 '속았다'는 생각이 솟구치더라.

이런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수?


그나마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아랍인들을 덜 수상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유대계 미국인 배우 애덤 샌들러가 제작, 주연을 맡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을 소재로 한 영화다 보니 이번에도 은근히 한쪽으로 쏠린 영화가 되는 게 아닐까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NOT-TOO-BAD'이었다. 아랍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만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 않았으며, 아랍인을 적으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먹고 살기 바쁜 이민자'의 삶을 방해하는 미국인 악덕 건물주 월브리지(마이클 버퍼)와 그가 고용한 '멜 깁슨 영화를 좋아하는' 백인 우월주의 갱을 적으로 세웠다.

POINT TAKEN.


▲왼쪽부터: 팬텀, 조한, 그리고 달리아

하지만, 코메디 영화를 보고 나서 '재미있다', '웃기다' 대신 '메시지' 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면 잘 만든 코메디 영화라고 하긴 힘들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슈를 나름대로 심도있게 다룬 진지한 영화보다 오락영화에서 휙 스쳐 지나가는 '메시지'의 효과가 더욱 크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코메디 영화는 일단 웃기고 봐야 하는데 'Zohan'은 이 부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극장까지 가서 본 코메디 영화니까 몇 번쯤은 웃어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억지로 몇 번 웃음을 쥐어짜긴 했다. 하지만, 나는 힘들게 영화보는 건 딱 질색이거든?

애덤 샌들러의 코메디 영화에 엄청난 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보다는 나은 영화를 기대했었는데 무척 실망스럽다. 코메디 영화라면 일단 피하고 보는 버릇이 생긴지 오래지만 그래도 'Chuck & Larry' 정도는 될 것으로 기대하고 '풍푸 판다' 대신 'Zohan'을 선택했는데 후회가 막심하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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