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31일 수요일

LSU 쿼터백은 제이슨 본?

Matt 'not Damon' Flynn.

LSU(Louisiana State University) 쿼터백, 맷 플린(Flynn)이 소개될 때 맷 데이먼 얘기가 안 나오는 적이 없다. 맷 데이먼과 닮은 풋볼선수로 유명해진 덕분이다.

LSU 풋볼경기 중계방송을 보면서 맷 플린의 얼굴을 봤을 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 대학 풋볼팀 소속인데도 LSU 풋볼경기마다 '맷 데이먼과 닮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만약 이 친구가 내년에 NFL로 옮겨오면 '제이슨 본이 쿼터백으로 변신했다'는 얘기가 나올지도...

맷 플린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지 그가 맷 데이먼과 닮았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그가 속한 LSU 풋볼팀이 상당한 팀인 덕분이 크다. 비록, 켄터키 대학(University of Kentucky)에게 지는 바람에 오하이오 주립대(OSU)나 보스턴 칼리지(BC)처럼 무패행진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칼리지 풋볼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꼽힌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켄터키에게 아깝게 패한 루이지애나 주립대(LSU)가 시즌 첫 패배의 충격을 극복하는데 걸린 시간은 딱 1주일이었다.

켄터키 다음 상대는 만만치 않은 어번(Auburn).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게 마치 켄터키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 매치가 그렇듯 풋볼경기도 마지막까지 봐야하는 법.

마지막 4쿼터. 스코어는 어번 24, 루이지애나 주립대 23.

1점차로 뒤지고 있으니 3점짜리 필드골만 차도 루이지내아 주립대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LSU가 역전 필드골을 찰 수 있을만한 지점까지 전진했다. 문제는 언제 타임아웃을 하고 필드골팀을 내보낼 것이냐지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중계방송 진행자들은 LSU가 필드골을 찰 것으로 생각했다. 누가 보더라도 LSU가 필드골을 찰 것으로 생각했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타임아웃을 하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 게임종료까지 몇 초 남지 않았는데 타임아웃을 하지 않은 것.

그러더니 느닷없이 쿼터백 맷 플린이 엔드존으로 긴 패스를 던졌다. 필드골이 아니라 터치다운으로 이기겠다는 것!

터치다운이 선언됐을 때 남은 시간은 1초!



만약 이 패스가 실패했다면 LSU는 필드골을 차 볼 기회도 없이 졌을 수도 있다.

ESPN 아나운서 마이크 패트릭(Mike Patrick)의 말처럼 마지막 패스 시도는 'Call of the Year'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전하게 타임아웃을 해서 시계를 멈춘 뒤 역전 필드골을 찼다면 안전하게 이길 수 있었는데 시계를 멈추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패스를 할 생각을 했다는 '배짱'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필드골을 차서 이기든 터치다운을 해서 아슬아슬하게 이기든 승리한 건 똑같다. 하지만,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는 후자가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교과서에 나온대로 안전하게 이기는 방법을 택했다면 바로 이전 주 켄터키에서 패한 아쉬움까지 깔끔하게 날려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무모하게 보일 정도의 패스를 던져 터치다운으로 화끈하게 마무리를 장식하면서 켄터키전의 패배를 확실하게 극복했음을 보여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다음 상대가 알라바마(University of Alabama)인 것.

알라바마에는 2004년 시즌까지 LSU 헤드코치였던 닉 세이반(Saban)이 버티고 있다. 닉 세이반은 2004년 시즌을 끝으로 LSU를 떠나 NFL 팀, 마이애미 돌핀스 헤드코치로 옮겼다가 2007년 알라바마 대학팀 헤드코치직을 맡으면서 2시즌만에 다시 칼리지 풋볼리그로 돌아왔다.

요점만 간단하게 말하면, 닉 세이반이 LSU를 떠났다가 칼리지 풋볼리그로 다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그의 옛 팀 LSU를 상대한다는 것.

과연 LSU가 전 헤드코치 닉 세이반의 알라바마 대학팀을 상대로 알라바마 홈에서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 칼리지 풋볼 최고 빅매치는 이 경기가 아닐까...

2007년 10월 29일 월요일

조지아 대학, 기싸움도 경기도 이겼다

패널티를 감수하면서까지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려는 헤드코치가 있을까?

흔히 보기 힘들다.

하지만, 조지아 대학(University of Georgia) 풋볼팀 헤드코치 Mark Richt(사진)가 10월27일 토요일 조지아 대학과 플로리다 대학(University of Florida)와의 경기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조지아 대학이 경기 첫 번째 터치다운을 하자 벤치에 있던 선수 전원이 엔드존으로 몰려가 함께 쎌레브레이션을 한 것.

단체로 쎌레브레이션을 하는 것 자체가 파울인데 벤치에 있던 선수들 전원이 몰려나갔으니 의도적인 게 아니고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선수들이 헤드코치의 허락 없이 벤치에서 우르르 몰려나간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만한 결정적인 터치다운 이후라면 혹시 모르지만 첫 번째 터치다운을 한 게 전부인데 벤치에서 쏟아져나왔다면 정상일 수 없다. '첫 번째 터치다운 하고나면 전부 나가서 함께 쎌레브레이션을 하라'고 헤드코치가 시키지 않은 이상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그것도 SEC(South Eastern Conference) 라이벌 플로리다 대학팀 홈경기에서 말이다.

이 바람에 조지아 대학팀은 단체 쎌레브레이션 파울(15야드 패널티)과 백넘버 75번 선수의 파울(15야드 패널티)까지 합해 모두 30야드 패널티를 당했다. 단체 쎌레브레이션은 헤드코치가 계획한 것이므로 첫 번째 15야드 패널티는 각오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75번 선수의 두 번째 패널티는 계획에 없던 것.

30야드 패널티 덕분에 조지아 대학이 30야드 후진해서 킥오프를 하게 됐으므로 플로리다 대학은 좋은 필드 포지션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플로리다 선수들까지 흥분하는 바람에 퍼스널 파울로 15야드 후진하면서 좋은 기회를 날렸다.

하지만, 곧바로 터치다운을 하며 7대7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

그러나, 플로리다 터치다운 후 공격권이 조지아로 넘어가자마자 또 조지아 터치다운. 스코어는 14대7.

그리곤, 또 15야드 패널티.

패널티 행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킥리턴하는 플로리다 선수를 태클하면서 조지아가 2개의 퍼스널 파울을 추가한 것. 또다시 30야드 패널티를 당한 것이다.

1쿼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사이에 이처럼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아래 동영상은 여기까지의 하이라이트:



조지아, 플로리다 대학 모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학교들이다. 그러니, 한마디로 '이기는 편 우리 편'인 경기였다. 그런데, 조지아 대학 헤드코치가 첫 번째 터치다운 후 벤치에 있던 선수 전원을 필드로 내보내며 함께 쎌레브레이션을 하도록 하는 걸 본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조지아를 응원하게 됐다. 패널티를 감수하면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아준 게 상당히 쿨해 보였던 것.

비록, 헤드코치 Mark Richt가 '단체 쎌레브레이션 사건'에 대해 사과했지만 내가 봤을 때는 아주 멋있었다. 적지에서 라이벌팀과 경기를 하면서 선수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가라고 지시했다는 게 참 쿨해 보인다. 엄밀하게 따지면 헤드코치가 해선 안될 행동이라고 해야 맞겠지만 그래도 멋지다.

바로 이 덕분일까? 조지아가 플로리다를 42대30으로 꺾고 승리했다. 경기초반 기싸움으로 한방 먹이면서 시작하더니 결국 경기에서도 승리한 것.

중계방송 해설자가 '이래서 칼리지 풋볼이 재미있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이다. 여전히 보기 드문 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칼리지 풋볼이니까 가능했지 프로 풋볼(NFL)에선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조지아 vs 플로리다니까 어느 정도 화끈할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시작부터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2007년 10월 26일 금요일

웰컴 투 룸 '1408'

이세상에 귀신 같은 건 없다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공포소설 작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마이크 엔슬린(존 큐색)은 공포소설 작가이면서도 귀신 같은 건 없다고 믿고 있다. 자신이 쓴 소설에 유령이 나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판타지일 뿐이며,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에도 직접 가봤지만 전부 가짜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뉴욕에 있는 돌핀호텔의 1408호실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1408이면 14층 8호실? 하지만, '13'이란 숫자를 건너뛰기 위해 실제론 13층이지만 14층으로 둔갑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1408호는 얼핏 보기엔 14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3층인 것. 게다가 방번호 1408을 모두 합하면 13(1+4+0+8=13)이 된다.

호기심이 발동한 엔슬린은 뉴욕의 돌핀호텔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1408호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것. 귀신 같은 건 없으며, 저주받은 집이란 게 전부 판타지일 뿐이니 돌핀호텔의 1408호실 이야기도 거짓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것.



아무래도 '이상한 호텔' 이야기가 나오니까 이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돌핀호텔이 캘리포니아가 아닌 뉴욕에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You can check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Oh $hit!



돌핀호텔에는 '익스프레스 첵아웃(Express Checkout)'이란 것도 있다.

물론, 돌핀호텔에서도 'You can 'EXPRESS' checkout any time you like'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첵아웃' 하기 싫으면 돌핀호텔의 1408호에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돌핀호텔 전체가 이상한 것도 아니다. 1408호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누가 억지로 1408호에 밀어넣는 것도 아니다.

정 반대로, 돌핀호텔 매니져 제랄드 올린(사무엘 L. 잭슨)이 필사적으로 만류한다. 1408호에 들어가면 난리(?)가 나니까 들어가지 말라는 것. 하지만, 저주받은 곳들을 여러 군데 답사하면서 유령같은 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엔슬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돌핀호텔의 1408호 이야기도 판타지인 걸로 생각한 엔슬린은 호텔 매니져의 만류를 뿌리치고 1408호에 들어가게 된다.

짜짠!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다른 방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모든 게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룸서비스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1408호를 꺼리는 것까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막상 방 안에 들어가보니 다른 방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호텔방인 것으로 보였다.

그 빌어먹을 알람시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1408호가 본색을 드러내는 건 카운트다운이 시작하면서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도 약간 이상한 징조가 있었고, 이 때만 해도 엔슬린이 원했다면 방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엔슬린은 이 '경고'를 무시하면서 1408호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된다.

카운트다운이 시작한 다음부터는 방에서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죽든 살든 따지지 않고 빠져나가겠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반드시 살아서 나가야겠다면 또다른 얘기다.



스테판 킹 원작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들을 보면 섬짓한 공포보다는 요상하게 꼬이는 스토리에 빠져드는 재미가 더 크다.

'1408'도 마찬가지다.

저주받은 호텔방 1408호에서 엔슬린이 겪는 '사건들'은 섬짓하기보다 코메디에 가깝게 보이기까지 한다. 벽에서 피가 흐르고 느닷없이 유령들이 돌아다니는 등등의 이벤트들이 섬짓하기보다 코믹하게 느껴진다. 계속해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할 것을 알고있기 때문인지 공포영화처럼 보이지 않고 엔슬린이라는 친구가 계속해서 엉뚱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코믹한 영화처럼 보이는 것.



알람시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섬짓한 느낌이 들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다. 그 이후부터는 무섭다기보다는 엔슬린이 1408호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봐도 '이 호텔방에서 아무개가 죽은 다음부터 어쩌구...' 하는 전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섬짓한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는 것 이상으론 느껴지는 게 없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꼼짝없이 14층에 갖힌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는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공포영화 치고는 약간 맹탕이란 생각이 든다. '저주받은 호텔방에 갖혔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결국은 '유령의 집' 수준이 전부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만약 내가 저 호텔방에 있다면?'이란 생각을 하면 오싹한 기분이 들지만 이벤트가 이어지면서 그런 기분이 금새 사라져버린다. 이렇다보니 엔슬린이 직면한 공포는 전달되지 않고 그가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전부다. 느껴지는 공포는 사라지고 눈으로 즐기는 재미만 남는 것.

진짜로 오싹한 기분이 드는 공포영화에 제대로 빠져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지지만 '1408'에선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 덕분에 엔슬린이 얼마나 고생을 할지 궁금해진다. 긴장시킬만큼의 공포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신들린 호텔방에 갖혀 황당한 사건들을 겪는다'는 유머러스한 판타지 어드벤쳐처럼 느껴질 뿐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영화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공포영화치고는 약간 맹탕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볼만한 영화다. 일단, 전기톱, 도끼질과 같은 '그래픽 테러'가 없는 고급스러운(?) 공포영화라고 할 수 있다. 도끼질 하고, 피 튀기고, '꺄악!' 하고 앉아있는 싸구려 티 나는 공포영화는 아니라는 것. 공포의 강도가 약한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도중에 지루해지는 영화는 아니다. 분위기는 좋지 않은데 별로 무섭지는 않고, 전기톱과 도끼가 날아다니는 무식한 장면도 없는데 지루한 줄 모르고 볼 수 있는 패밀리용(?) 미스테리/공포영화를 찾는다면 '1408'이 왔다다.



그래도 쟝르로는 '호러'인데 섬짓한 부분이 한군데도 없을 리 있냐고?

물론 있다. 일부러 찾는데도 섬짓한 장면이 없으면 그게 공포영화겠수?

그 장면이 뭐냐고?

장면이 아니라 노래다.

알람시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카펜터의 클래식 'We've Only Just Begun'이 이렇게 섬짓할 줄이야!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30 Days of Night', 흡혈귀가 왜 이래?

알라스카주 배로우.

30일간 해가 뜨지않는 곳이다. 빛을 싫어하는 뱀파이어에겐 천국같은 곳이다. 한달 동안 태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바로 이곳에 뱀파이어들이 들이닥친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다:

뱀파이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30 데이즈 오브 나잇(30 Days of Night)'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다른 뱀파이어 영화에서 봤던 흡혈귀들과 달리 좀비와 뱀파이어의 중간쯤인 '좀파이어'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뱀파이어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뾰족한 송곳니가 없다는 것. '30 데이즈 오브 나잇'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깨물어서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살을 뜯어먹는' 뱀파이어에 가깝다. '마시는' 것 보다 '뜯어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맹수에 가깝게 보이는 친구들이다.



거진 야생동물처럼 뜯어먹고 사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달려들어서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다보니 입주변에 뭘 많이 묻히고 다닌다.



그런데도, 옷은 잘 입고 다닌다. 상태를 보니 옷을 자주 빨아 입는 것 같진 않지만 야생동물처럼 뜯어먹기 좋아하는 친구들 치고 패션감각은 뛰어난 편이다.



이쯤 됐으면 왜 '좀파이어'라고 했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30 데이즈 오브 나잇'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야수처럼 무리를 지어 사람들을 공격하는 게 다른 영화에서 보던 뱀파이어들과 다르긴 하지만 그저 좀비와 뱀파이어를 섞어놓은 것으로 보일 뿐 독특한 뱀파이어로 보이지 않는다. 분장을 요란스럽게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건 사실이지만 패러디 영화에나 나옴직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보일 뿐.

저런 몰골의 뱀파이어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습격하고, 피를 잔뜩 묻힌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섬짓한 게 아니라 웃음이 터져나온다. 지금 뭘 하자는 건지 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저걸 보고 무서워하라는 건지 웃으라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공포영화라고 하기 힘들겠지? 가끔가다가 늑대처럼 울부짖기도 하는데 이거 참...



그래도, 뱀파이어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나이(벤 포스터)가 조용한 마을에 나타나 소란을 피우다 경찰관 에벤(조쉬 하트넷)에게 체포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그럴싸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라이(?)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배우 벤 포스터가 철창 뒤에서 '그들이 온다'는 알 수 없는 경고를 하는 데 까지는 살짝 유치하긴 해도 그런대로 OK 였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뱀파이어들이 습격한 이후부터는 마을주민 생존자들과 뱀파이어들간의 싸움이 전부인 영화가 돼버린다. 샷건, 도끼, 전기톱 등 닥치는대로 쏘고 휘두르며 몰려드는 좀비들을 처치하는 게 전부인 좀비영화들처럼 '30 데이즈 오브 나잇'도 몰려드는 '좀파이어'들을 처지하는 게 전부인 영화가 돼버린 것.

더욱 기가 막힌 건 목을 베면 '좀파이어'가 죽는다는 것이다. 죽이기 까다로운 것도 아니고 그저 머리를 잘라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30 데이즈 오브 나잇'의 뱀파이어들은 심장에 말뚝을 박아야 하는 게 아니라 참수시켜야 하는 것. 이 덕분에 에벤은 도끼를 휘두르며 뱀파이어들의 목을 베고 다닌다.

뱀파이어들은 떼지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물어뜯고 에벤은 도끼를 휘두르며 '좀파이어'들을 때려잡고...



이런 식의 '호러영화'가 한 두편이 아니니까 '그런가부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힘들다.

도끼를 휘두르는 영화가 된 김에 시원하게 다 토막내 버리는 시원한 맛이라도 있었으면 군소리 안하겠다. 그래픽 소설을 옮긴 영화인만큼 여기서라도 쿨하고 스타일리쉬한 맛이 났으면 했다. 하지만, '30 데이즈 오브 나잇'은 이것도 아니다. 작전을 세워 뱀파이어들을 제대로 소탕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로 허무한 엔딩'이란 상이 있다면 2007년 수상작은 '30 데이즈 오브 나잇'일 것이다. 이렇게 험악할 정도로 썰렁한 줄거리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데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데 그 까짓 상이 문제겠수?

사실,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Blade)'처럼 쿨하고 화끈할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화내내 도망다니기만 하다가 끝나는 정도일 줄은 몰랐다. 줄거리가 복잡한 것도 아니고 그저 너저분하게 생긴 뱀파이어들이 덤벼드는 게 전부인데 스타일리쉬한 액션도 없이 숨어 다니다가 끝나버리니 볼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도끼를 휘두르지 않냐고?

'30 데이즈 오브 나잇'에도 뱀파이어들이 사람을 물어뜯고 에벤이 도끼로 뱀파이어의 목을 치는 무식한(?) 장면들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런 게 '공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영화에선 심각하게 도끼질을 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그거 보면서 낄낄거리던데?

그런데도 'Gore'를 이용해 섬짓한 분위기를 내려고 하는 공포영화가 계속 나온다. '공포영화=Gore'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도 공포영화의 한 쟝르로 봐야겠지만 공포영화라는 쟝르 자체를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Gore'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Al Gore가 공포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얼마 전에 아카데미상도 받았으니 이젠 '영화인'인데, 다음 작품은 공포영화로?



이 영화는 길게 얘기할 것도 없다.

'30 데이즈 오브 나잇'은 무지하게 한심한 영화다. 뱀파이어가 야생동물처럼 공격한다, 그래픽 소설을 영화화 했다, 할로윈 시즌에 맞춰 개봉한 공포영화라고 하길래 어딘가 쿨한 구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볼 가치 없는 우스꽝스러운 영화일 뿐이다.

영화 본 것을 30일간 후회하고 싶으면 가서 봐라.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트레일러에서 흘러나오는 Muse의 'Apocalypse Please'는 칙칙한 공포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만 노래는 노래고 영화는 영화다. 트레일러에 나오는 노래가 쿨하다고 영화까지 쿨할 것으로 절대 속지 마라.

2007년 10월 17일 수요일

'In the Valley of Elah', 전쟁의 후유증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미국 육군 밀리터리 폴리스(MP)출신 퇴역 군인이다. 행크는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은 10년전 전사했고 둘 째 아들 마이크는 현재 이라크에서 복무중이다.

아니, 복무중인줄 알고 있었다. 마이크가 소속된 육군부대에서 '아들이 사라졌다'는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마이크가 속했던 부대는 어느새 이라크를 떠나 미국 뉴 멕시코주에 있는 포트 루드(Fort Rudd)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러니, 마이크는 미국에 돌아와서 사라진 것. 행크는 실종된 아들을 찾기위해 테네시에서 뉴 멕시코까지 직접 트럭을 몰고 간다.

하지만, 마이크는 군부대 근처 수풀에서 불에 타고 토막난 채 발견된다. 칼에 40번 이상 찔리고 토막이 난 뒤 불에 탄 상태로 발견된 것.

아들의 시신이 발견되자 행크는 뉴 멕시코주 여형사 에밀리(샬리즈 테론)과 함께 범인 추적에 나선다.



얼핏보면 살인사건 미스테리처럼 보이지만 '인 더 밸리 오브 엘라(In the Valley of Elah)'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겪는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다. 전쟁터에서 받은 정신적인 충격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살인사건 미스테리보다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 더 밸리 오브 엘라'는 살인범을 추적하는 영화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쪽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살인사건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범인이 누구인가, 살인동기가 무엇인가보다 전쟁이 병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쪽으로 쏠려버리는 것.

부상당한 포로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아프냐'면서 히히덕거리고, 불에 탄 시체에 스티커를 붙여놓고 장난칠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죽여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부도덕한 행위에도 익숙해진 병사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다보니 '살인범이 누구냐'는 건 더이상 궁금할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쟁터에서 이미 '전쟁 스트레스의 포로'가 돼버린 병사들이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멀쩡해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성격이 포악해지거나 자살, 알콜 중독 등으로 이어진다. 성격이 포악해진 경우엔 부인을 죽인 살인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배틀필드에서의 기억과 스트레스가 멀쩡했던 사람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것.

'인 더 밸리 오브 엘라'의 줄거리는 살인사건 미스테리에서 전쟁 후유증으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되는 병사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행크가 MP 시절 경험을 살려 에밀리와 함께 직접 수사를 하면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나가는 것은 그런대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명탐정 저리가라일 정도로 보이는 건 약간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행크가 에밀리보다 더욱 훌륭한 수사관인 것처럼 보이다보니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니라 전문 수사관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버지인 것까진 맞다고 해야겠지만 '유가족'이 아니라 '경감님'으로 보일 정도다.

덕분에 에밀리라는 캐릭터가 더욱 애매해졌다. 에밀리는 영화가 너무 삭막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 나온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인만큼 어떻게 보면 이 역할 정도는 제대로 했는지 모른다. 에스콰이어의 'Sexiest Woman Alive'로 선정된 샬리즈 테론이 에밀리로 나왔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샬리즈 테론이 이런 영화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는 것.

샬리즈 테론이 뉴 멕시코주 여형사역에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토미 리 존스의 파워풀한 연기에 밀리면서 들러리 정도로 보일 뿐이다. 샬리즈 테론이 '여주인공'인 것은 사실이지만 에밀리가 여주인공으로 불릴만큼 무게가 느껴지는 캐릭터인지 의심스럽다. 살해당한 마이크의 어머니, 조앤(수잔 서랜든)이 집에 남고 행크(토미 리 존스) 혼자서 뉴 멕시코로 떠나는 바람에 마땅한 여주인공이 없다보니 대타로 나온 것처럼 보이는 게 전부다.



영화 자체도 미스테리/스릴러 영화로 따지면 볼거리가 많다고 하기 곤란하다. 살인사건 미스테리로 위장한 반전영화라고 해야 정확한만큼 살인사건 자체에 얽힌 미스테리보다 병사들이 겪는 전쟁 후유증에 촛점을 맞춘 덕분이다. 대부분의 미스테리 영화에선 사건을 수사하는 부분의 비중이 크겠지만 '인 더 밸리 오브 엘라'는 명탐정(?) 행크가 간단하게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넘어가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싱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에서 전쟁 후유증이란 메인테마를 빼버린다면 남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인 더 밸리 오브 엘라'는 메세지 전달이 우선이고 영화는 나중이라는 식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영화다.

하지만, '인 더 밸리 오브 엘라'가 2003년 조지아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살인사건을 기초로 한 영화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장소 등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인 더 밸리 오브 엘라'는 실화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을테니 궁금한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다보니, 메세지 전달이 우선이고 영화는 나중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메세지가 제대로 전달된 덕분이리라.

어쩌면, 나까지 토미 리 존스를 '아버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겉으로는 무뚝뚝한 군인이지만 속으로는 부성애로 가득한 토미 리 존스의 아버지 연기에 넉아웃 된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사들이 전쟁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 더 밸리 오브 엘라'보다 전쟁 후유증 문제를 제대로 다룬 영화들도 많다고도 한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인 더 밸리 오브 엘라'가 전쟁 후유증을 다룬 유일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 후유증을 다룬 영화는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에 의하면 월남전 참전병사 중 30%가 PTSD 증세를 보였다고 하니 월남전 참전병사들의 전쟁 후유증을 그린 영화가 많은 것이 이상할 게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월남전 다음으로 높은 게 이라크전이다.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에 의하면 이라크전 참전병사 중 12~20%가 PTSD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일부 미국언론은 '5명중 1명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부 이라크 참전 미군들은 이라크전을 'Desert Nam'이라고 부른다고 하던데, 지금 보니 전쟁상황 뿐만 아니라 전쟁 스트레스 지수도 월남전과 비슷해지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면, 이라크 전쟁 후유증을 다룬 영화들도 월남전 영화처럼 쏟아져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2007년 10월 13일 토요일

'위 오운 더 나잇' - 형제는 용감했다

1988년 뉴욕.

아버지와 두 형제가 있다. 아버지 버트 그루신스키(로버트 듀발)와 아들 조셉(마크 월버그)은 경찰이고 또다른 아들 바비(Joaquin Phoenix)는 나이트클럽 매니져다.

당연하겠지만 바비는 버트, 조셉과 사이가 좋지 않다.

바비는 사실상 버트, 조셉과 인연을 끊다시피 했으며, 자신의 라스트 네임도 '그루신스키'가 아닌 '그린'으로 바꿨다. 라스트 네임이 다른 덕분에 그의 여자친구 아마다(에바 멘데즈)를 제외한 나머지는 바비가 버트, 조셉과 부자, 형제지간이라는 걸 모른다.

그런데, 바비가 매니져로 있는 러시아인 소유의 나이트클럽에 러시안 마약딜러들이 나타나고 조셉이 이들을 추적하면서 버트, 조셉, 바비 모두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쯤 됐으면 '위 오운 더 나잇('We Own the Night)'이 무슨 영화인지 대충 감이 잡혔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제법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다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것.

형제 중 하나는 모범생이고 다른 하나는 건달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뉴욕경찰, 마약딜러, 언더커버 등 거의 모든 게 이상할 정도로 낯익다. 완전히 새로운 오리지날 영화가 아니라 리메이크작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게다가, 시대적 배경까지 80년대다보니 80년대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다보니 줄거리도 어떻게 흘러갈지 금새 감이 잡힌다. '결국 이러저러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게 금새 파악되는 것. 다른 경찰/범죄영화에서 자주 나왔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는 게 전부인 영화다보니 버트, 조셉, 바비 3명과 러시아인 소유의 나이트클럽, 러시아인 마약딜러가 나오는 것만 봐도 줄거리가 어디로 갈지 감이 잡힌다.

'We Own the Night'의 스토리는 나이트클럽 매니져였던 바비가 마약딜러 소탕작전에 휘말렸다가 졸지에 '타겟맨'이 되고, 나중엔 총을 들고 설치게(?) 된다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뻔하고 엉성하게 보인다. 줄거리가 평범하다면 아기자기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맛이라도 있어야겠지만 이것도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 같은 익사이팅한 부분이 없는 대신 부정애, 형제애 같은 것이라도 제대로 느껴졌다면 그나마 좀 나았겠지만 이것마저도 형식적인 수준이다. 그저 구색을 맞추려고 죽 늘어놓은 게 전부일 뿐 복잡할 것도 없고, 생각해 볼 것도 없으며, 느껴지는 것도 없는 맹탕일 뿐이다. 얼핏 보기에는 뭔가 엄청난 게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폼만 잡는 영화라는 게 드러난다.



'We Own the Night'은 내용이나 작품성 같은 것으로 승부하겠다는 영화가 아니다. 이런 쪽으로는 볼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영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넘겨짚을 때마다 맞아떨어질 정도로 뻔한 내용의 시시한 영화인데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버티는 게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출연배우들 덕분이다.

'We Own the Night'은 어느 면으로 보나 B급 이상이라고 볼 수 없는 영화지만 Joaquin Phoenix, 마크 월버그, 로버트 듀발의 훌륭한 연기가 이 영화를 살렸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에 잘 어울릴만한 '그렇고 그런 배우들'만 골라서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므로 어떻게 보면 오히려 촌쓰러워 보이지만 이들마저 없었다면 정말 대책 안 서는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형제는 용감했다. 비틀거리는 영화를 용감하게 지켜냈다.



'We Own the Night'의 문제는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알겠는데 그가 원했던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겁고 딱딱한 범죄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아주 당연한 것들만 골라서 맛 보여주기 식으로 늘어놓은 게 전부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원하는 것들을 조각조각 갖다붙인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면 영화를 심각하게 보기 힘들어진다. 'We Own the Night'이 딱 이런 식이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은 덕분인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볼만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무지하게 썰렁한 영화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그렇게 한심하진 않았다. 부족한 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봐줄 정도는 아닌 것. 하지만, 묵직한 갱스터 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얼핏 보기엔 '그런' 영화 분위기가 풍기지만 실제로는 맛 보여주기 수준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 출연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제외하곤 볼 게 없는 영화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블론디의 'Heart of Glass'. 레트로 댄스클럽 분위기를 살리는데 이 노래가 제격이었는지도...



노래 얘기가 나오면 마크 월버그도 빠지지 않는다.

마크 월버그가 8~90년대 인기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멤버 더니 월버그(Donnie Wahlberg)의 동생이고, 마크도 90년대초 댄스 힙합앨범을 냈었다는 건 다들 알고있으리라.

Marky Mark and the Funky Bunch였나? 아무튼, 이 친구의 데뷔곡이었던 'Good Vibration'이 90년대초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이 영화가 9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 노래가 클럽에서 흘러나왔을지도...



아래는 'We Own the Night' 미국 TV광고:

2007년 10월 11일 목요일

'게임플랜' - 아빠 되기도 힘들다!



미국에서 매년 가을마다 거의 빠짐없이 개봉하는 영화 중에 풋볼(미식축구)영화가 있다. 매년 9월 시작하는 풋볼시즌에 맞춰 풋볼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오는 것.

금년에도 변함없이 풋볼영화가 개봉했다.

2007년 시즌 풋볼영화는 대학시절 실제로 풋볼 선수생활을 했던 드웨인 'The Rock' 존슨 주연의 코메디/풋볼영화 'The Game Plan'.




그러나, 한가지 기억할 게 있다:

'게임 플랜'은 풋볼영화가 절대 아니다.

주인공이 풋볼선수고 풋볼선수들이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에이전트, TV 중계방송, 풋볼 스테디움, 치어리더, 기타 등등이 영화에 나온다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풋볼영화' 또는 '스포츠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게임 플랜'이 스포츠쪽과 거리가 먼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공 조 킹맨(Joe Kingman)과 그의 어린 딸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게임 플랜'의 줄거리는 보스턴 레벨스(Boston Rebels)라는 프로 풋볼팀의 스타 쿼터백, 조 킹맨(드웨인 존슨)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딸, 페이튼과 함께 살게 되면서 오만가지 소동에 휘말린다는 내용이다. 딸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어린 딸이 집으로 쳐들어와 계획에 없던 '아빠노릇'을 해야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인 것.

여기서 재미있는 건 캐릭터 이름이다. Joe Namath, Joe Theismann, Joe Montana 등 Joe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쿼터백들이 많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주인공의 이름도 조 킹맨(Joe Kingman)이다. 퍼스트 네임과 라스트 네임을 붙여버리면 '조킹맨'처럼 들리기도 하는 다용도 이름이다.

딸의 이름이 페이튼(Peyton)이란 것도 놓칠 수 없다.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페이튼 매닝(Peyton Manning)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

ESPN 스포츠센터 진행자 스튜어트 스콧(Stuart Scott)이 영화에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게임 플랜'이 디즈니 영화고 ESPN도 월트 디즈니 소유라는 걸 감안하면 ESPN 진행자들이 영화에 나온 게 이상할 것은 없다.



이 정도면 '스포츠 영화' 아니냐고?

주인공의 직업이 풋볼선수이기 때문에 양념으로 들어간 몇 가지만 보고 덜컥 '스포츠 영화'라고 하면 곤란하다. 풋볼이라는 스포츠 자체가 아니라 존 킹맨과 처음 만난 그의 딸, 페이튼의 이야기가 메인인데 주인공이 풋볼선수다, 스포츠에 관련된 게 많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스포츠 영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임 플랜'에도 풋볼 경기장면이 나오는 등 스포츠와 아주 무관한 건 아니지만 풋볼에 대한 영화가 아니므로 스포츠 영화라고 하기 힘들다.

코메디도 스포츠와 직접 관련있다면 스포츠/코메디라고 할 수 있다. 'Unnecessary Roughness'나 '메이저 리그'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게임 플랜'은 코메디인 것까지는 맞지만 스포츠 자체와는 직접 상관없기 때문에 스포츠/코메디라고 하는 것도 약간 곤란하다. '게임 플랜'에서 웃음을 주는 부분은 아버지 역할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조 킹맨과 그의 딸 페이튼이 벌이는 소동이지 조 킹맨과 보스턴 레벨스의 우스꽝스러운 경기 같은 게 아니다. 결국, '게임 플랜'은 풋볼선수인 주인공의 주위를 풋볼테마로 장식해 놓은 게 전부인 어린이용 코메디/패밀리 영화일 뿐인 것.

패밀리 영화인줄 알면서도 'Unnecessary Roughness', 'Replacement'와 같은 스포츠/코메디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기를 기대했다. '그쪽'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그쪽' 생각이 났다. 이런 게 없으면 아주 평범한 어린이용 코메디 영화가 될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실제로 풋볼을 했던 드웨인 존슨이 나오는데 어린이용 코메디 영화보다는 스포츠/코메디쪽이 훨씬 볼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게임 플랜'은 성인이나 스포츠팬들이 보기엔 살짝 무리가 있는 아동스러운 영화에 그쳤다.

그런데, 문제는 풋볼이고 뭐고 다 접어놓고 '아버지와 딸의 가슴 뭉클한 패밀리 영화'로 보려고 해도 내용이 워낙 단조로운 바람에 와닿는 게 별로 없다는 것. '전 부인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던 남자가 불쑥 찾아온 어린 딸과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줄거리의 멜로, 코메디 영화들이 한 둘이 아닌데 '게임 플랜'이라고 새로울 게 있을까?



풋볼이고 뭐고 다 접어놓고 '아버지와 딸의 가슴 뭉클한 패밀리 영화'로 보려고 해도 내용이 워낙 단조롭기 때문에 와닿는 게 없다. '전 부인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던 남자가 불쑥 찾아온 어린 딸과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줄거리의 멜로, 코메디 영화들이 한 둘이 아닌데 '게임 플랜'이라고 새로울 게 있을까?

당연히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볼거리는 있다.

바로, 드웨인 존슨이다.



총알도 박히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이는 드웨인 존슨이 어린이용 코메디 영화에 나온다면 어떤 식으로 관객들을 웃길지 대충 상상이 갈 것이다. 아이들에게 번번히 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의 사나이가 자꾸 망가지고 무릎꿇는 식이 될 게 뻔하잖수?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Kindergarten Cop'이라는 엉뚱한 아이들용 코메디 영화에서 망가졌던 것처럼 말이다.

'게임 플랜'도 이런 식의 유머가 전부인 영화다. 어떻게서든 드웨인 존슨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만 늘어놓는 어린이 수준의 유머로 웃음을 짜내는 수법을 썼다. 프로페셔널 풋볼선수가 기자회견을 하는 꼬락서니가 딱 WWE 수준인 것부터 시작해서 수퍼스타 풋볼선수를 발레리나로 둔갑시킬 생각을 했다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하지만, 어쩌랴! 드웨인 존슨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웃을 일이 없는걸...

드웨인, 뭐라고? 요새 먹고 살기 힘들다고?



'게임 플랜'은 어린이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드웨인 'The Rock' 존슨을 어린이용 영화에 주인공으로 세우면서 재미를 보려고 만든 영화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가족의 중요함', '부녀간의 사랑' 같은 것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냐고 따질지 몰라도 내가 볼 땐 '게임 플랜'은 드웨인 'The Rock' 존슨을 빼면 볼 게 없는 영화다.

잠깐...

꼭 그런 건 아니다.

울퉁불퉁한 드웨인 존슨만 계속 보고있으면 눈까지 우락부락해진다는 건 알고있었나보지?



발레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발레는 좀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드웨인 존슨과 매치가 안되는 것들만 계속 늘어놓는다지만 발레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발레강사로 나온 라틴계 여배우 로셀린 산체스를 본 순간부터는 발레만 계속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불끈불끈...

그렇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발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영화인 건 아니다.

'만약 내가 조 킹맨의 입장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 것.

내가 탁월한 번식력을 가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난 누구처럼 '게임 플랜'만 할 줄 알고 '패밀리 플랜'은 꽝인 넘은 아니지만 이게 포인트인 것 같진 않고...

아무튼, 나도 아이를 키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키우는 걸 둘 째 치더라도 아이들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내게 우호적이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갓난아기 우는 소리, 칭얼대는 소리, 밥 줘야 해, 기저귀 갈아줘야 해, 이것 저것 만지고 주무르는 것 못하게 해야하는 것 등등을 참지 못한다.

지금도 생각이 변함없는지 모르겠지만 얼마전 미국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자신의 생활에 기저귀 갈아주는 건 없다고 한 적이 있다. 내가 조지 클루니와 같은 '급'이라는 건 아니지만 '기저귀' 부분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느닷없이 8살 난 어린 아이와 같이 살아야 한다면?

솔직히 말해 나는 저만큼 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가족이 없으면 외롭다는 것까지는 나도 안다.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 노릇을 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이렇다보니 '갑자기 8살 난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게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숨겨놓은 아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싱글로 자유롭게 지내던 내 삶에 갑자기 어린 아이가 뛰어들었을 때의 그 당혹감이 어느 정도일까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조 킹맨이 8살 난 딸과 같이 지내게 되는 순간 폭소를 터뜨렸겠지만 나는 웃음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도 못견길 것이란 생각이 스쳐지나갔을 뿐.

이래서 난 이런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남들 웃을 때 나 혼자서 '뜨끔', '철렁'한 맛을 보는 '나만의 공포영화'를 좋아할리 있겠냐고!

그래도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풀린다. 'Negative'에서 'Positive'로 곧바로 분위기 전환!

'게임 플랜'의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Burning Love)'를 들으며 'Positive'하게 끝내자...



아래는 '게임 플랜' TV광고:

2007년 10월 9일 화요일

달라스 MNF 승리 독인가 약인가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 쿼터백, 토니 로모가 버팔로 빌스(Buffalo Bills)와의 먼데이 나잇 경기에서 혼자서 턴오버를 6차례나 했는데 경기에서 이겼다고 마냥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물론, 풋볼경기란 게 경기내용보다는 결과위주라고 해야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다음 주 상대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에게 박살날 게 뻔하다. 토니 로모가 인터셉션을 밥먹듯 당하면서도 이길 수 있었던 건 버팔로 빌스가 약체였던 덕분이 크다고 봐야하므로 NFL 최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경기에서는 이번과 같은 기적을 기대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잊는 것 중 하나는 토니 로모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주전 쿼터백이 된지 아직 만 1년이 안됐다는 것이다. NFL 주전 쿼터백 경험이 아직 만 1년도 안된 선수인만큼 언젠가 한번 오부지게 망가질 게 뻔했다. 경험이 풍부한 선수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된통 걸릴 때가 있다. 아마도 버팔로 빌스와의 먼데이 나잇 경기가 '토니 로모의 날'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게 약이 될 것인지 아니면 독이 될 것인지 계산해봐야 할 것 같다. 특히, 다음 상대가 2007년 시즌 우승후보 0순위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라면 더더욱 계산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버팔로 빌스와의 먼데이 나잇에서 지길 바랬다. '무패행진'이라는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고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뉴잉글랜드를 꼭 이겨야 한다는 게 아니라 2007년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얼마나 강한 팀인가를 파악하기에 이보다 좋은 테스트가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무패행진을 한다지만 언젠가는 풍선에서 바람 빠져나가듯 무너질 때가 올텐데 그런 경기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전이 되지 않길 바랬다. 천상 한번 망가질 것이면 버팔로전이 되는 게 2007년 달라스 카우보이스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그런데, 묘한 건 올 것이 오긴 왔는데 패하지 않고 이겼다는 것이다. 트랩게임을 치룬 것처럼 보이지만 경기에서 지진 않았다. 과연 이것을 달라스 카우보이스 선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짜릿한 승리에 취해있을까, 아니면 토니 로모의 6차례 턴오버가 신경쓰일까?

만약,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패했다면 토니 로모의 인터셉션과 펌블이 도마에 올랐을 것이다. 경기결과와 상관없이 천상 도마에 올랐겠지만 이겼을 때와 졌을 때의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토니 로모가 6번 턴오버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이겼다'는 게 끼어들기 때문이다. 경기내용이 형편없었다는 건 결과가 어느 쪽이든 변함없지만 선수들이 느끼는 '위기감'엔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걸 일종의 'Wake Up Call'이라고 하는데 달라스 카우보이스 선수들이 버팔로전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해진다. 지는 경기였지만 패하는 것만 운좋게 모면했으니 속으로는 진 경기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경기 준비에 임한다면 먼데이 나잇 경기에서 얻은 교훈이 제 값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짜릿한 승리'의 맛에 취해있다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전에서 치욕적인 대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뉴잉글랜드를 상대로 버팔로전에서처럼 무너지면 역전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은 물론일 뿐만 아니라 '박살패'를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오는 일요일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는 선수들이 버팔로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토니 로모가 버팔로전에서 한바탕 심하게 헤맸으니 2주 연속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하지만, 짜릿한 역전승으로 달콤하게 끝난 바람에 정신을 덜 차리게 되면 2주 연속으로 한심한 쇼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한가지 더 토니 로모가 기억해야할 게 있다.

제리 존스가 아직까지 그에게 장기 계약서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토니 로모가 금년에 어떤 플레이를 보여주냐에 따라 그의 연봉과 계약기간이 오락가락하는 것. 토니 로모가 아직 NFL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 경기에 5개의 인터셉션을 당한 것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경기당 3개 이상의 인터셉션을 기록한다면 제리 존스도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2007년 시즌 들어 토니 로모가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자 스포츠 미디어들은 '제리 존스는 토니 로모에게 돈을 주라'고 했다. 하지만, 버팔로전에서 인터셉션 5개, 펌블 1개 등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턴오버 6개 모두를 토니 로모 혼자서 기록하는 걸 본 이후론 이런 이야기가 쏙 들어가지 않았을까 한다. 비행기 태워줄 땐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태워주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한순간에 격추시켜 버리는 게 스포츠 미디어다. 만약 2주 연속으로 이런 경기를 보여준다면 토니 로모는 풋볼헬멧이 아닌 낙하산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게 토니 로모일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뉴잉글랜드전에서도 망가진다면 토니 로모는 2중, 3중으로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뉴잉글랜드에게 지더라도 박살패를 당하면 안되고, 박살패를 당하는데 토니 로모가 큰 몫을 하면 더더욱 안된다. 이번에도 경기를 망치면 '박살패 원흉'이 되면서 '역시 뉴잉글랜드에겐 상대가 안됐다', '토니 로모 또 흔들리다', '역시 토니 로모는 챔피언쉽 쿼터백이 아니다', '톰 브래디와 토니 로모 비교대상 아니다'라는 기사들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해줘야 하는 이유다.

달라스 카우보이스 '이긴 거 맞아?'

결과부터 말하면 이긴 거 맞다.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이겼다. 파이널 스코어는 25:24

대부분의 풋볼팬들은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버팔로 빌스를 가볍게 이기거나 아니면 시작부터 이상하게 꼬이면서 패할 것으로 봤다. 약체, 버팔로 빌스와의 경기가 트랩게임(Trap Game)이 될 것으로 본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이 게임이 트랩게임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다음 주 상대가 5승 무패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인만큼 약체 버팔로 빌스와의 먼데이 나잇 경기가 트랩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시작하자마자 토니 로모가 인터셉션을 당하고 버팔로 빌스가 리턴 터치다운을 하는 것을 보고 트랩게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토니 로모가 또 인터셉션을 당하더니 전반에만 모두 4번 인터셉션 당하는 걸 보면서 트랩게임인 것이 이보다 더욱 분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07년 시즌 들어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후반전에 강한 팀이었다. 하지만, 버팔로 빌스와의 먼데이 나잇 경기에선 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전반에만 4번 인터셉션을 당한 것만으로 부족했는지 경기가 좀 풀리는 것 같다 싶으니까 펌블(Fumble)을 하고, 이것으로도 성이 안찼는지 엔드존에서 또 인터셉트 당했다.

그렇다. 한 경기에서 인터셉션 5번, 펌블 1번 등 토탈 6번의 턴오버를 토니 로모 혼자서 한 것이다.토니 로모 혼자서 6번씩이나 턴오버를 기록하고, 이중 2개는 버팔로 수비에 의해 곧바로 리턴 터치다운으로 이어졌다.

턴오버 뿐만이 아니다. 경기가 조금 풀리나 싶으니까 버팔로 빌스에게 킥리턴 터치다운까지 내줬다.

그래도, 막판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며 끝까지 따라붙긴 했다. 그러나, 2포인트 컨버젼을 실패하면서 결국은 24:22로 패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은 경기시간도 20초 정도가 전부였으니 온사이드킥을 성공시켜 필드골을 찬다는 거진 기적에 가까운 옵션 하나 빼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자 참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1) 토니 로모가 인터셉션 5번, 펌블 1번을 했는데 아직도 승리를 원한다는 게 말이 되냐. 양심이 있어라 이넘아...

2) 1쿼터부터 진 경기였는데 마지막에 따라붙을 것 같다고 역전을 기대하는 건 초라한 것 아니냐.

3) 토니 로모 혼자서 턴오버를 6번이나 했는데도 이 정도라면 버팔로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4) 일단, 버팔로 경기는 이렇게 진 걸로 하고 다음 주 뉴잉글랜드 걱정이나 하자.

온사이드킥을 성공시킨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온사이드킥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온사이드킥을 성공시킨 다음에 어찌 될 것인가는 둘 째 문제다. 당장 온사이드킥을 성공시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운이 따라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온사이드킥을 성공시켰다. 18초밖에 남지 않았지만 필드골만 차도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승리할 확률이 갑자기 높아진 것.

그리고, 토니 로모가 터렐 오웬스에게 패스를 성공시키면서 버팔로 25야드까지 전진했다. 이제 남은 건 역전 필드골이었다.

그런데, 부스 리뷰. 결과는 터렐 오웬스가 패스를 받지 못했다는 것.

25야드까지 갔다가 후진한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2초를 남기고 35야드까지 다시 전진하는 데 성공.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달라스 카우보이스 킥커가 루키라는 것. 게다가, 53야드 필드골을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인데 그의 최장거리 필드골 성공 기록은 52야드였다.

남은 시간은 2초!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필드골 하나 남겨둔 상황인데 키커가 루키인데다 평생 53야드 필드골을 차본 적이 없는 친구다.

하지만, 루키 킥커 Nick Folk는 53야드 필드골을 성공시켰다. 25:24 달라스 승리.


사진: 달라스 카우보이스 킥커 Nick Folk

이 경기를 보고나니 킥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달라스 카우보이스 먼데이 나잇 경기가 몇 개 떠오른다.

아무래도 1997년 시즌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경기를 빼놓을 수 없을 듯. 달라스 카우보이스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로 옮겨간 킥커, 크리스 보니올이 마지막 역전 필드골을 차지 못하고 러닝백처럼 공을 들고 뛰다가 펌블하면서 끝났던 그 경기다. 달라스 카우보이스였던 크리스 보니올이 필라델피아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다시 텍사스 스테디움을 찾았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테고 관중들도 집중적으로 보니올에게 야유를 퍼부었는데 경기 종료를 몇 초 앞두고 이글스에게 승리를 안길 수 있었던 역전 필드골을 망쳤으니 난리가 났을 수 밖에...

2003년 빌 파셀스의 달라스 카우보이스와 뉴욕 자이언츠의 먼데이 나잇 경기도 엄청났다. 뉴욕 자이언츠 헤드코치 시절 두 차례 수퍼볼 우승을 했던 헤드코치 빌 파셀스가 달라스 카우보이스를 이끌고 뉴욕으로 돌아온 첫 경기였다. 당시 달라스 카우보이스 킥커였던 빌리 컨디프는 오버타임까지 합해 모두 7개의 필드골을 성공시켰다.

한 경기에 7개의 필드골을 성공시킨 킥커가 지금까지 딱 4명밖에 없는데 그 중 둘이 달라스 카우보이스 선수다. 하나는 2003년 시즌의 빌리 컨디프고 다른 하나는 1996년 시즌의 크리스 보니올이다. 1997년 시즌 필라델피아 이글스로 팀을 옮겼다가 먼데이 나잇 경기에서 쇼를 했던 '바로 전에 얘기한 그 친구'다. 보니올이 1996년 시즌 달라스 카우보이스 킥커였을 때 그린베이 패커스를 상대로 21점을 혼자 냈다. 마지막 필드골은 승패와 무관했기 때문에 찰 필요 없었지만 기록을 위해 7개 채웠다가 그린베이 패커스 선수들과 싸움이 났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2004년 시애틀 시혹스와의 먼데이 나잇 경기에서도 온사이드킥 성공이 한몫 했던 와일드 게임이었다. 키샨 존슨의 터치다운 캐치가 사실은 아웃 오브 바운드였기 때문에 무효였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터치다운으로 인정된데다 빌리 컨디프가 온사이드킥을 멋들어지게 성공시키면서 시애틀 시혹스를 울렸던 그 게임이다. 당시 루키였던 러닝백, 줄리어스 존스가 거진 200야드를 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시즌 먼데이 나잇 경기에서도 와일드 엔딩이 있었다.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로이 윌리암스가 도노반 맥냅의 패스를 인터셉트해서 리턴 터치다운을 하며 끝났던 게임이 먼데이 나잇 경기였다. 이 경기는 킥커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위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지만 경기가 예상치 못했던 쪽으로 흘러간 건 인정해줘야 할 듯.

하지만, 2007년 것만큼 황당한 것은 없었다. 인터셉션 5개, 펌블 1개 등 턴오버만 6 차례 했는데도 이겼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데 여기에 온사이드킥 성공까지 끼었으니 이보다 더 와일드한 달라스 카우보이스 먼데이 나잇 경기는 없었던 것 같다.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2007년 10월 5일 금요일

'Heartbreak Kid', 이게 성인 코메디?

'도대체 너는 언제 장가갈 거냐'는 비난조의 질문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결혼과 관련된 영화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 봐라. 다들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거 보니 기분이 어떠냐'는 잔소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릴 게 뻔하니까.



벤 스틸러 주연의 '하트브레이크 키드(The Heartbreak Kid)'도 딱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옛 애인 결혼식에 갔가다 '싱글'이라고 아이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는 걸 보며 부르르 떨었다. '아이들 테이블'이 아니라 '싱글 전용 테이블'이라면서 애들과 함께 앉으라는 데 진짜...

만약 내가 저런 대접을 받았다면 아마도 테이블 엎었을 것이다.



벤 스틸러가 연기한 에디(Eddie)라는 캐릭터는 여자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게이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여자를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짝이 없냐', '이젠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소리를 항상 듣는 친구다. 결혼생활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맥(Mac)이라는 친구까지 끼어들어 설교를 한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미혼자를 보면 잔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꼭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친구가 나온다.

재미있는 건 에디의 아버지로 벤 스틸러의 실제 아버지, 제리 스틸러(Jerry Stiller)가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부자간이고 영화에서도 부자간인데 둘이서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보면 장난이 아니다.

표현을 살짝 직설적으로 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My Style'이다. 느끼하게시리 그럴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고리타분형 아버지보다는 이런 스타일이 훨씬 마음에 든다. 아들과 까놓고 '보G 얘기'를 하는 것보다 더욱 쿨한 아버지가 이 세상에 어디있냔 말이다! '아메리칸 파이'에서 고등학생 아들에게 성인잡지를 사다 줬던 '세계 최고의 아버지', 유진 리비(Eugine Levy)와 같은 리그의 젠틀맨인 게 분명하다.



살짝 괴짜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여자가 없는 아들' 걱정 뿐이다. 하지만, 에디는 아버지가 걱정할 정도로 여자와 담을 쌓은 건 아니다.

곧바로 라일라(Malin Akerman)라는 블론드 미녀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결혼'까지 하게 된다. 결혼 안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들었건만 순식간에 블론드 미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기혼자'가 돼버린 것!

알고보니까 맘만 먹으면 몇 주 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아닌 게 결혼인데, 이것 가지고 그렇게 들들 볶은 거란 말이냐!



하지만, 에디는 멕시코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라일라와의 결혼이 엄청난 실수였다는 걸 알게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멕시코까지 운전하고 내려가는 동안 라일라가 라디오를 틀어놓고 쉴새없이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처음 몇 번은 괜찮다지만 나오는 노래마다 죄다 따라부른다고 생각해봐라. 제아무리 '선서'까지 한 짝궁이라지만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에디의 속도 모르고 라일라는 '내 목소리를 4~50년간 듣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쯤되니까 코메디가 아닌 공포영화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결혼 전과 결혼 후가 확 달라지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직업도 가짜고 섹스할 때도 요란하다. 섹스 도중에 '때려달라'고 하질 않나, '헬리콥터', '잭해머' 등의 체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잭해머'까지는 알겠는데 '헬리콥터'는 어떻게 하자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입으로 '드그드그드그드그' 소리를 내라는 건가? 아무튼 좀 희한한 지지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결혼 잘못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어쩌랴! 이미 신혼여행까지 왔는데...



그러다가 멕시코의 호텔에서 우연히 미란다(Michelle Monaghan)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라일라와는 전혀 다른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 것.

여기서부터 전형적인 양다리 스토리가 시작된다. 라일라에게는 미란다를 만나는 걸 숨기고 미란다에게는 멕시코로 신혼여행 왔다는 걸 숨기는 것. 라일라가 썬블락 로션을 바르지 않고 일광욕을 하다가 홀랑 타버려 호텔방에 쳐박혀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자 에디는 라일라를 방에 떼어놓고 미란다와의 데이트를 즐긴다.



'진정한 사랑'을 찾을 때는 나타나지 않더니 이미 결혼을 하고 나니까 약 올리기라도 하듯 미란다라는 멋진 여자가 나타났다. 결혼하기 전에 나타났더라면 '헬리콥터', '잭해머' 좋아하는 무시무시한 블론드 지지배를 피할 수 있었겠지만 원하는대로 되는 경우보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은 게 우리의 고달픈 삶 아니겠수?

하지만, 줄거리가 양다리 쪽으로 가면서 김이 약간 빠진다. '악몽과도 같은 여자와 잘못 결혼한 에디가 신혼여행지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미란다를 만나면서 본의 아니게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뻔한 얘기일 뿐이다. 양다리 걸친 걸 숨기기 위해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코메디 영화가 상당히 많은 덕분이다.

물론, 멕시코 휴양지의 멋진 경치는 빼놓을 수 없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경쾌한 록음악들도 영화와 매치가 잘 됐다고 본다. 하지만, 경치감상, 음악감상 하려고 이 영화를 선택한 게 아니다. '잘못된 만남'으로 벌어지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은 평범한 양다리 걸치기 스토리가 전부였단 말이야?



여전히 이 영화의 테마는 '양다리'가 아니라 '결혼'이란 것엔 변함없다. 어찌보면 '결혼'보다도 '진정한 사랑 찾기'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른다. 결혼 자체보다 누구와 결혼하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게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테마가 그쪽이라면 에디와 라일라의 '잘못된 만남'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웃음을 줘야하지 않았나 싶다.

또다른 여자가 끼어들지 않고 에디와 라일라 둘이서 결판을 내는 쪽이었다면 덜 산만하지 않았을까?

미란다와의 삼각관계로 넘어간 이후부터는 무엇으로 웃음을 주겠다는 것인지, 테마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렇다고 에디와 라일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웃기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에디와 라일라의 섹스씬을 제외하고는 진짜로 웃겼다고 기억에 남는 곳이 없다. 뿐만 아니라, 라일라는 에디와 미란다의 양다리 스토리가 시작되자마자 영화에서 사라져버리다시피 하며, 그 이후부턴 전혀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 양다리 스토리가 전부다.



'The Heartbreak Kid'의 썰렁함은 갈수록 심해진다. 뻔한 양다리 스토리에 이어 느닷없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무리 여자를 잘못만나 신혼여행이 박살나고 온갖 소동에 휘말렸다지만 그렇다고 미국인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까지 해야만 한다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뭔가 다른 목적으로 이 장면을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영화를 갈수록 한심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밀입국까지 했으니 이제 더 남은 게 뭐냐? 외계인이라도 나타나는 거냐?

다시 처음의 '성급한 결혼'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이미 늦었다.

이 영화에 어느 정도나마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는 성급하게 결혼했다가 고생한다는 얘기가 왠지 모르게 와 닿았기 때문인데, 신혼여행지에서 미란다를 만난 이후부터는 3각관계를 다룬 평범한 코메디 영화로 변질되면서 맥이 다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The Heartbreak Kid'는 결혼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있는 미혼자들이 보기에 재미있는 영화일 것이다. 특히, 결혼 이야기로 스트레스를 받아 본 미혼 남성들은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결혼 빨리 하라고 보챈다고 아무하고나 결혼했다간 '헬리콥터', 잭해머'에 시달릴 수 있다는 섬짓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코메디 영화일 뿐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섹스씬, 성인용 조크, 기타 등등이 나온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성인용 코메디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성인용 코메디가 되려면 성인들이 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야 하고 유머도 살짝 수준이 높아져야겠지만 'The Heartbreak Kid'는 눈에 띄는 몇 가지 성인테마들로 어설프게 성인용 코메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막말로, '섹스씬을 웃기게 만들면 성인용 코메디가 된다'는 식이다. 아무리 코메디 영화라지만 '결혼을 소재로 한 성인용 코메디'라고 떳떳하게 밝히려면 이것보다는 깊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The Heartbreak Kid'도 겉으론 '성인용'이라지만 열어보면 '애들용'인 코메디 영화인 그런 영화들 중 하나일 뿐이다.

생각보단 볼만한 '바이오닉 우먼'

'바이오닉 우먼'이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실패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버전으로 세련되게 리메이크 하더라도 SF TV시리즈가 널려있는 요즘 세상에 '바이오닉 우먼'이 웬 말이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 조금만 빗나가면 곧바로 아이들용 시리즈처럼 보일텐데 이제와서 '바이오닉 우먼'을 리메이크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의심스러웠던 것.



하지만, 우려했던만큼 우습게 보이진 않았다. 그런대로 볼만했다. 9월26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에피소드 2까지 방영됐는데, 못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할 순 없지만 'Not Too Bad' 정도라고 해야 할 듯.

하지만, 바이오닉 우먼'은 성인들, 특히 70년대 오리지날 '바이오닉 우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살짝 곤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하이틴에서 20대 초반의 시청자들을 겨냥한 TV 시리즈로 보이기 때문이다.

제이미 소머즈 역을 맡은 미셸 라이언(Michelle Ryan)부터가 20대 초반인데다 제이미의 여동생으로 루씨 헤일(Lucy Hale)이 고등학생으로 나온다는 것도 한몫 한다. 미셸 라이언은 1984년생이고 루씨 헤일은 1989년생이다. 소머즈 자매 연령대가 이렇다보니 드라마도 비슷한 연령대에 맞춘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파워레인저'처럼 심하게 아동틱한 건 아니다. 이 정도로 심각하게 아동틱하면 참기 힘들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정도까진 아니다. 극장용 영화와 비교한다면 '트랜스포머스'나 '디스터비아' 같은 하이틴/Young Adult 영화 수준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이런 내용으로는 청소년 드라마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게 뻔했으니 놀라울 것도 없고 실망스러울 것도 없다. 걱정했던 것만큼 지나치게 아이들용 드라마처럼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매주마다 꼬박꼬박 보겠다는 약속을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생각이 나면 보겠다는 정도는 된다.

'바이오닉 우먼' 바로 다음 프로그램인 '라이프(Life)'라는 새로운 L.A 형사 드라마도 꽤 볼만하기 때문에 수요일 밤엔 9시(동부시간)부터 11시까지 NBC의 TV 시리즈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쁜 아이디어는 아닐 듯.

그러고보니 '바이오닉 우먼'에 윌 윤 리가 나온다는 걸 깜빡했다.



윌 윤 리는 007 시리즈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문대령으로 나왔던 한국인 2세 배우다. 한국계 배우가 극중에서 한국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자주 보기 힘든데 윌 윤 리는 '바이오닉 우먼'에서 Jae Kim이라는 한국인 캐릭터로 나온다. 역시, 무술의 달인으로 나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