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스카주 배로우.
30일간 해가 뜨지않는 곳이다. 빛을 싫어하는 뱀파이어에겐 천국같은 곳이다. 한달 동안 태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바로 이곳에 뱀파이어들이 들이닥친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다:
뱀파이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30 데이즈 오브 나잇(30 Days of Night)'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다른 뱀파이어 영화에서 봤던 흡혈귀들과 달리 좀비와 뱀파이어의 중간쯤인 '좀파이어'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뱀파이어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뾰족한 송곳니가 없다는 것. '30 데이즈 오브 나잇'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깨물어서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살을 뜯어먹는' 뱀파이어에 가깝다. '마시는' 것 보다 '뜯어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맹수에 가깝게 보이는 친구들이다.
거진 야생동물처럼 뜯어먹고 사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달려들어서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다보니 입주변에 뭘 많이 묻히고 다닌다.
그런데도, 옷은 잘 입고 다닌다. 상태를 보니 옷을 자주 빨아 입는 것 같진 않지만 야생동물처럼 뜯어먹기 좋아하는 친구들 치고 패션감각은 뛰어난 편이다.
이쯤 됐으면 왜 '좀파이어'라고 했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30 데이즈 오브 나잇'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야수처럼 무리를 지어 사람들을 공격하는 게 다른 영화에서 보던 뱀파이어들과 다르긴 하지만 그저 좀비와 뱀파이어를 섞어놓은 것으로 보일 뿐 독특한 뱀파이어로 보이지 않는다. 분장을 요란스럽게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건 사실이지만 패러디 영화에나 나옴직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보일 뿐.
저런 몰골의 뱀파이어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습격하고, 피를 잔뜩 묻힌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섬짓한 게 아니라 웃음이 터져나온다. 지금 뭘 하자는 건지 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저걸 보고 무서워하라는 건지 웃으라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공포영화라고 하기 힘들겠지? 가끔가다가 늑대처럼 울부짖기도 하는데 이거 참...
그래도, 뱀파이어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나이(벤 포스터)가 조용한 마을에 나타나 소란을 피우다 경찰관 에벤(조쉬 하트넷)에게 체포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그럴싸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라이(?)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배우 벤 포스터가 철창 뒤에서 '그들이 온다'는 알 수 없는 경고를 하는 데 까지는 살짝 유치하긴 해도 그런대로 OK 였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뱀파이어들이 습격한 이후부터는 마을주민 생존자들과 뱀파이어들간의 싸움이 전부인 영화가 돼버린다. 샷건, 도끼, 전기톱 등 닥치는대로 쏘고 휘두르며 몰려드는 좀비들을 처치하는 게 전부인 좀비영화들처럼 '30 데이즈 오브 나잇'도 몰려드는 '좀파이어'들을 처지하는 게 전부인 영화가 돼버린 것.
더욱 기가 막힌 건 목을 베면 '좀파이어'가 죽는다는 것이다. 죽이기 까다로운 것도 아니고 그저 머리를 잘라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30 데이즈 오브 나잇'의 뱀파이어들은 심장에 말뚝을 박아야 하는 게 아니라 참수시켜야 하는 것. 이 덕분에 에벤은 도끼를 휘두르며 뱀파이어들의 목을 베고 다닌다.
뱀파이어들은 떼지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물어뜯고 에벤은 도끼를 휘두르며 '좀파이어'들을 때려잡고...
이런 식의 '호러영화'가 한 두편이 아니니까 '그런가부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힘들다.
도끼를 휘두르는 영화가 된 김에 시원하게 다 토막내 버리는 시원한 맛이라도 있었으면 군소리 안하겠다. 그래픽 소설을 옮긴 영화인만큼 여기서라도 쿨하고 스타일리쉬한 맛이 났으면 했다. 하지만, '30 데이즈 오브 나잇'은 이것도 아니다. 작전을 세워 뱀파이어들을 제대로 소탕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로 허무한 엔딩'이란 상이 있다면 2007년 수상작은 '30 데이즈 오브 나잇'일 것이다. 이렇게 험악할 정도로 썰렁한 줄거리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데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데 그 까짓 상이 문제겠수?
사실,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Blade)'처럼 쿨하고 화끈할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화내내 도망다니기만 하다가 끝나는 정도일 줄은 몰랐다. 줄거리가 복잡한 것도 아니고 그저 너저분하게 생긴 뱀파이어들이 덤벼드는 게 전부인데 스타일리쉬한 액션도 없이 숨어 다니다가 끝나버리니 볼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도끼를 휘두르지 않냐고?
'30 데이즈 오브 나잇'에도 뱀파이어들이 사람을 물어뜯고 에벤이 도끼로 뱀파이어의 목을 치는 무식한(?) 장면들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런 게 '공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영화에선 심각하게 도끼질을 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그거 보면서 낄낄거리던데?
그런데도 'Gore'를 이용해 섬짓한 분위기를 내려고 하는 공포영화가 계속 나온다. '공포영화=Gore'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도 공포영화의 한 쟝르로 봐야겠지만 공포영화라는 쟝르 자체를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Gore'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Al Gore가 공포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얼마 전에 아카데미상도 받았으니 이젠 '영화인'인데, 다음 작품은 공포영화로?
이 영화는 길게 얘기할 것도 없다.
'30 데이즈 오브 나잇'은 무지하게 한심한 영화다. 뱀파이어가 야생동물처럼 공격한다, 그래픽 소설을 영화화 했다, 할로윈 시즌에 맞춰 개봉한 공포영화라고 하길래 어딘가 쿨한 구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볼 가치 없는 우스꽝스러운 영화일 뿐이다.
영화 본 것을 30일간 후회하고 싶으면 가서 봐라.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트레일러에서 흘러나오는 Muse의 'Apocalypse Please'는 칙칙한 공포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만 노래는 노래고 영화는 영화다. 트레일러에 나오는 노래가 쿨하다고 영화까지 쿨할 것으로 절대 속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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