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일 수요일

'퍼블릭 에너미', 바이오픽이 아니라 픽션이었더라면...

쟈니 뎁(Johnny Depp), 크리스챤 베일(Christian Bale), 그리고 매리언 코티아르(Marion Cotillard).

출연진만 보면 꽤 빵빵해 보인다.

쟈니 뎁과 크리스챤 베일은 굳이 제목을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유명한 수퍼보이들이고, 매리언 코티아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여배우다.

잠깐! 그런데 이들이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에 출연한다고?

크리스챤 베일은 FBI의 전신인 BOI(Bureau of Investigation) 에이전트, 멜빈 퍼비스(Melvin Purvis) 역을 맡았고, 매리언 코티아르는 당시 악명높았던 은행강도, 존 딜린저(John Dillinger)의 연인, 빌리(Billie)를 맡았다.

잠깐! 그렇다면 쟈니 뎁이 존 딜린저?

그렇다.



'퍼블릭 에너미'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쟈니 뎁이 존 딜린저 역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 딜린저도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같은 전설적인 무법자 축에 끼는 캐릭터이므로 영화 제작진이 쿨한 범죄자를 연기할 배우를 찾았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쟈니 뎁은 아니었다. 쟈니 뎁이 실제 딜린저와 그다지 닮지 않았다는 건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딜린저와 같은 악명높은 무법자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딜린저가 아무리 쿨한 사나이라고 해도 범죄자다운 면이 눈에 띄어야 했는데 쟈니 뎁의 존 딜린저는 그저 평범한 사나이였을 뿐 특별할 게 없었다. 은행을 털 때는 철저한 범죄자가 되고, 갱단과 함께 할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되며, 연인과 함께 할 때는 로맨틱한 사나이가 되는 쿨한 무법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쟈니 뎁의 존 딜린저가 옷만 갈아입은 캡틴 잭 스패로우였던 것도 아니다. 100% 허구로 꾸며낸 스토리였다면 융통성이 있었겠지만 '퍼블릭 에너미'는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그린 바이오픽이기 때문에 유머를 보태는 데 한계가 있었다.

차라리 바이오픽이 아니라 100% 픽션이었다면 더 나았을 지 모른다. '퍼블릭 에너미'가 바이오픽이 아니라 픽션이었다면 마이클 맨(Michael Mann) 감독의 90년대 액션영화 '히트(Heat)'와 더욱 비슷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퍼블릭 에너미'도 마이클 맨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라서 '히트'와 비슷하다는 소리가 어차피 나오게 되어있었으니 크게 손해볼 것도 없었을 것이다.

바이오픽을 포기하고 픽션을 택했더라면 범죄자(쟈니 뎁)와 그의 뒤를 쫓는 수사관(크리스챤 베일)의 관계도 보다 흥미롭게 설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퍼블릭 에너미'의 딜린저(쟈니 뎁)와 퍼비스(크리스챤 베일)은 서로 존중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쫓고 쫓기는 관계일 뿐이다. '퍼블릭 에너미'가 바이오픽인 데다, 실제로 딜린저와 퍼비스가 저런 사이였으니 영화로도 그대로 옮긴 모양이다. 영화 내용이 실제사건과 얼마나 비슷한 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바이오픽이니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히트'의 닐(로버트 드 니로)과 빈센트(알 파치노)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픽션인 만큼 리얼리즘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캐릭터와 스토리는 '히트'가 훨씬 흥미진진했다. '언오피셜 히트 리메이크'라는 비판을 듣더라도 바이오픽 욕심을 버리고 '히트'를 까놓고 따라하는 게 차라리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왜 자꾸 '퍼블릭 에너미'를 '히트'에 비교하냐고?

감독이 마이클 맨이라서?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솔직히 얘기해 보자. '퍼블릭 에너미'에서 바이오픽이라는 부분만 빼면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언오피셜 히트 리메이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수?

주연급 배우 2명을 투톱으로 세운 것도 '히트'와 겹쳐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액션 하나라도 볼만 하면 된 것 아니냐고?

최근들어 진지한 성인테마의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실패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퍼블릭 에너미'가 바이오픽보다는 갱스터 액션영화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했다. 영화 트레일러도 '바이오픽보다는 액션영화쪽으로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트레일러에서의 존 딜린저는 제법 유머러스해 보였고, 영화 자체도 꽤 스타일리쉬해 보였다.

그렇다면 '퍼블릭 에너미'는 바이오픽에 가까울까, 아니면 스타일리쉬한 갱스터 액션영화에 더 가까울까?

정확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바이오픽이다.

딜린저 일당이 은행을 터는 재미도 없는 씬이 반복될 뿐 갱스터 액션영화라 불릴 만 한 액션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액션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식 기관총을 서로 미친 듯이 쏘아대는 게 전부인 단순한 총격전이 전부였다.



스토리도 매우 단조로웠다. 악명높은 범죄자와 그를 체포하려는 수사관들의 이야기인 데다, 바이오픽이기 때문에 결과가 빤히 보였다.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인 만큼 줄거리와 엔딩이 모두 드러나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잘 만든 바이오픽은 줄거리와 엔딩을 모두 알고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퍼블릭 에너미'는 아니었다. 런타임이 길지도 않았는데 영화가 2/3쯤 진행하자 왜 아직도 안 끝나나 싶었다.

갱스터 딜린저 이야기, 인간 딜린저 이야기, 러브스토리, 추격전, 총격전 등 이것저것 모두를 한데 몰아넣으려 하지 않고 이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살렸더라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퍼블릭 에너미'의 가장 밝은 부분이 딜린저와 빌리(매리언 코티아르)의 로맨스 파트였는데, 반복되는 은행강도씬이나 단조로운 총격전씬 비중을 줄이고 러브스토리의 비중을 늘렸더라면 더욱 볼 만 했을 지 모른다.

스토리라인이 워낙 엉성한 바람에 쟈니 뎁과 매리온 코티아르라는 멋진 배우들을 불러놓고도 간지러운 수준에 그쳤지만 '퍼블릭 에너미'의 하이라이트는 30년대 음악에 맞춰 딜린저와 빌리가 춤을 추는 씬이 아닐까 싶다.

쟈니 뎁은 역시 핸썸했고, 매리언 코티아르 또한 역시 멋있었다. 매리언 코티아르를 볼 때마다 섹시하다, 우아하다를 넘어 멋있어 보였다. ('맛'이 아니라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만약 '퍼블릭 에너미'가 여름이 아닌 겨울철에 개봉했더라면 그 장면이 더욱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는 만족하기 힘들었다. 출연배우들의 이름값,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제법 그럴 듯 한 소재 등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 해 보였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쟈니 뎁, 크리스챤 베일 등 블록버스터 메이커들이 출연한 1930년대 배경의 갱스터 영화라니까 (별 기대는 안 했어도) 제법 그럴 듯 하게 들렸지만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였다.

언제부터인가 마이클 맨이 손 댄 영화엔 별 기대를 안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퍼블릭 에너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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