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31일 월요일

억지로 수퍼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을까

유니버설 픽쳐스가 언론인 출신 소설가 다니엘 실바(Daniel Silva)의 게이브리얼 앨런(Gabriel Allon) 소설 시리즈 라이센스를 사들였다고 한다. 유니버설이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를 대체할 스파이 스릴러 영화로 실바의 게이브리얼 앨런 시리즈를 택했다니 한번 읽고 싶어졌다.

2006년작 '메신저' 영화가 2010년 개봉예정으로 알려진 만큼 이것부터 먼저 읽었는데 내 입맛엔 영 맞지 않았다. 알카에다의 폭탄테러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대통령과 로마 교황 암살을 노리자 수퍼 에이전트 게이브리얼 앨런과 그의 모사드 팀이 이를 저지하며 영웅이 된다는 뻔한 스토리가 전부였다.

2007년작 '스크릿 서밴트(The Secret Servant)'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알카에다,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폭탄테러 등 'HERE-WE-GO-AGAIN'이었다.


▲다니엘 실바의 '시크릿 서밴트'

전편에 비해 안티 아랍 수위가 낮아진 건지, 아니면 내가 실바의 스타일에 익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메신저'보다 거부감은 덜 했다.

하지만, 게이브리얼 앨런을 '유대인 수퍼 에이전트'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변함없었다.

이번엔 어떻게 수퍼 히어로(?)가 되냐고?

'메신저'에선 미국 대통령과 교황을 구해 '스타'가 되더니 이번엔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집트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영국주재 미국대사의 딸을 구출하면서 다시 한번 '스타'가 된다. 게이브리얼 앨런은 이미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상태며, 테러사건 현장에서 촬영된 그의 사진이 실명과 함께 신문에 실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덴마크 정보부는 게이브리얼 앨런을 스타 에이전트로 동경하는 것(Star-struck)으로 나온다.

잠깐! 'Secret Agent'가 유명한 게 정상이냐고?

작가 다니엘 실바가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였을까? 게이브이얼 앨런을 'Not-so-secret-agent'라고 했더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퍼 히어로 에이전트를 만들자니 별 수 있었겠수?

잠깐 원 모어 타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퍼 히어로 에이전트를 탄생시키고자 한다고 소설상에서까지 영웅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냐고?

당연히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라는 제임스 본드(James Bond)도 소설상에선 '유능한 에이전트' 정도가 전부일 뿐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고 미국 대통령, 교황과 친분이 있는 거물급 유명인사가 아니다. 배트맨(Batman)과 같은 코믹북 수퍼 히어로들은 만화상에서도 히어로로 나오지만 제임스 본드는 아니다.

배트맨? 지금 게이브리얼 앨런을 배트맨에 비유하냐고?

납치된 미국대사 딸이 자신을 구출하려던 게이브리얼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언젠간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는 대목에선 영락없이 코믹북 수퍼 히어로가 떠오르더라.

그렇다면 다니엘 실바(사진)는 무슨 이유에서 이토록 간지러운 수준으로 게이브리얼 앨런 영웅 만들기에 열중했을까?

'세계를 지키는 유대인 수퍼 에이전트'를 만들어 가면서 호감을 갖도록 만들어야 할 정도로 반유대 정서가 심한 걸까?

다니엘 실바의 소설들을 얼핏보면 사실적인 카운터 테러리즘(Counter-Terrorism) 소설로 보이지만 이것은 포장일 뿐이고 '유대인을 좋아하라', '이스라엘을 지지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게 본 목적이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항상 옳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전부 틀렸으며, 게이브리얼과 그의 모사드 팀이 테러리스트에 무지한 유럽인들을 구해준다는 설정으로 이를 정당화 하는 게 전부다.

그렇지 않고서야 간지러울 정도의 게이브리얼 앨런 영웅 만들기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게이브리얼 앨런을 유대인 수퍼 스파이 캐릭터로 만들겠다는 순수한 의도가 전부로 보이지 않는 것. 실바의 소설이 이상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이유는 이런 부분들 때문인 것 같다.

일부는 다니엘 실바를 '존 르 카레(John Le Carre)에 비견하는 스파이 픽션 작가'라고 하지만 나는 여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실바가 중동 테러리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있다는 것은 의심치 않지만 소설가로써의 글솜씨는 아직 먼 것 같다. 차라리 논픽션이라면 덜 간지러웠을지 모르지만 실바의 소설은 노련한 소설가가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실바의 소설에서도 역시 기자와 소설가의 차이가 느껴진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니 소잿거리는 많을 것이다. 실바 본인도 '소잿거리는 풍부하다'고 했다. 하지만, 맛깔나는 픽션을 만들어내는 소질이 부족하면 별 소용 없다. '소설가' 다니엘 실바의 약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시크릿 서밴트' 영화가 발표된 것도 아니므로 영화 타령을 하기엔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지만 유니버설 픽쳐스가 총 7편의 게이브리얼 앨런 시리즈 영화제작권을 갖고있는 만큼 영화 '메신저'의 후속편으로 '시크릿 서밴트'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줄거리가 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메신저'에 나왔던 사라(Sarah)가 '시크릿 서밴트'에 다시 나오는 만큼 '메신저' 다음으로 이 소설을 영화화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니버설 픽쳐스가 '메신저' 영화를 2010년 선보일 예정으로 알려졌으니 만약 '시크릿 서밴트'도 영화화 된다면 - 당연하겠지만 - 2010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영화는 소설보다 단순해지는 데다 유니버설이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이을 후속 시리즈로 택한 만큼 스토리 보다는 액션 위주의 스릴러 영화로 만들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영화화 하느냐에 달린 문제겠지만 '시크릿 서밴트'는 소설보다 차라리 영화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기대는 안 되지만...

2008년 3월 30일 일요일

'맥스 페인'역에 마크 월버그 어울릴까

Take-Two의 비디오게임 '맥스 페인(Max Payne)'이 드디어 영화화 된다. 벌써 일치감치 영화로 제작됐을 법한 게임이지만 2008년 가을이 돼야 영화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비디오게임 '맥스 페인'은 살인누명을 쓴 뉴욕 형사, 맥스 페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3인칭 시점 액션/어드벤쳐 타이틀로, '불렛 타임(Bullet Time)' 등 스타일리쉬한 액션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던 게임이다.

'맥스 페인'의 대표적인 특징은 그래픽 노블을 통해 줄거리를 전개한다는 것. 맥스 페인의 독백을 들으며 그래픽 노블 페이지를 넘기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주인공 맥스 페인은 누가 연기할까?

맥스 페인역은 마크 월버그(Mark Wahlberg)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Marky 'Good Vibration' Wahlberg다.


▲영화 '슈터'에서의 마크 월버그(왼쪽)와 맥스 페인(오른쪽)

영화 '신씨티'와 'Shoot'em Up'으로 그래픽 노블 팬들에게 친숙한 영국배우 클라이브 오웬(Clive Owen)도 맥스 페인역에 잘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만 마크 월버그도 크게 잘못된 캐스팅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퍼펙트 매치까지는 아니지만 납득이 가는 선택이다.

'힛맨(Hitman)'의 에이전트47역으로 티모시 올리판트(Timothy Olyphant)를 캐스팅한 데 비하면 맥스 페인역의 마크 월버그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맥스 페인' 1편에서의 맥스 페인


▲'맥스 페인 2'에서의 맥스 페인

그렇다면 여주인공은?


▲'맥스 페인 2'에서의 모나 색스(Mona Sax)


'힛맨'의 올가 쿠리렌코(Olga Kurylenko)에 이어 이번에도 우크라이나 태생 여배우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다. 20세기 폭스가 보기엔 비디오게임을 기초로 한 액션영화 여주인공으론 우크라이나 태생 여배우가 왔다인 모양이다.


▲밀라 쿠니스

비디오게임을 옮긴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접은지 오래다. 가장 최근에 본 '힛맨'도 비디오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에서 예의상 본 게 전부였다.

과연 존 무어(John Moore) 감독의 '맥스 페인'은 어딘가 다른 데가 있을까?

2008년 3월 27일 목요일

인도로 간 재규어와 랜드 로버 007과도 이별?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Ford)가 영국산 고급 자동차 재규어(Jaguar)와 랜드 로버(Land Rover)를 인도의 타타 모터스(Tata Motors)에게 23억불에 넘겼다고 한다.


느닷없이 '구루마'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뭐냐고?

포드가 2002년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까지 3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자동차를 공급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제임스 본드가 당시 포드사 소유였던 영국산 고급 스포츠카 아스톤 마틴 뱅퀴시(Vanquish)를 끌고 징크스(할리 베리)는 포드사의 썬더버드, 자오(릭 윤)는 재규어 XKR을 몰고 나온 것 모두 포드와 007 시리즈의 계약 덕분이었다.

'카지노 로얄'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본드가 운전한 아스톤 마틴 DBS, 포드 몬데오(Mondeo) 모두 포드사 자동차다.


▲본드카 포드 몬데오

본드가 직접 몬 자동차 이외의 영화 곳곳에 나온 나머지 자동차들을 살펴보면 재규어 천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직접 운전하는 씬이 없는 대신 영화에 자주 나오는 것으로 때운 것.


▲제임스 본드 뒤에 주차된 재규어


▲길 옆에 주차된 재규어


▲베스퍼를 납치한 르쉬프 일당이 모는 차도 재규어


▲길거리에도 재규어. 볼보도 눈에 띈다. 볼보도 포드 소유.


▲미스터 화이트가 모는 차 역시 재규어

재규어 뿐만 아니라 랜드 로버도 '카지노 로얄'에서 한가닥 한다. 본드를 파킹보이로 오인한 호텔손님의 차가 바로 랜드 로버였다.


▲파킹보이 본드가 랜드 로버에 오르는 모습


▲본드가 탄 랜드 로버 왼편으로 또 한대의 랜드 로버가 보인다


▲뒤로 후진하면서 랜드 로버와 충돌한 차는 재규어

소니전자 뿐만 아니라 포드의 007 간접광고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포드가 재규어와 랜드 로버를 모두 인도의 자동차 회사에게 넘긴 이상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더이상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묘한 건 007 시리즈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아스톤 마틴, 재규어, 랜드 로버 모두가 포드사를 떠났다는 것. 포드는 아스톤 마틴을 먼저 처분한 데 이어 재규어와 랜드 로버까지 마저 처리해버렸다.

그렇다면 포드는 이번 007 영화에 어떤 자동차들을 선보일 예정일까?

'콴텀 오브 솔래스'는 '카지노 로얄' 울궈먹기?

제임스 본드가 미스터 화이트를 찾아가면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은 끝난다.

제임스 본드가 자신의 이름을 'Bond, James Bond'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 유일한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뻔 했지만 바로 그것이 '카지노 로얄'의 마지막 대사였다.



이렇게 '카지노 로얄'은 끝났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후속작 '본드22' 스토리가 '카지노 로얄'과 이어지는 것으로 밝혀진 것. '본드22' 스크린라이터 폴 해기스는 '본드22'가 '카지노 로얄'의 엔딩 2분후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2분후?

간단히 말하자면 '본드22'는 '카지노 로얄' 엔딩에서 제임스 본드가 미스터 화이트를 찾아간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바로 그 '본드22'가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다.

얼마 전 소니 픽쳐스가 공개한 '콴텀 오브 솔래스' 티져 포스터를 보더라도 영화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007 제작팀의 속셈이 대충 들여다 보인다는 것.

1) 무슨 이유에서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지도록 했을까?

다니엘 크레이그를 '진지한 스타일의 원작형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한 만큼 '카지노 로얄' 후속편에서도 같은 스타일을 유지해야겠는데 어지간한 이언 플레밍의 소설들은 죄다 영화화 됐으니 플레밍 원작에 더이상 기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떻게서든 '카지노 로얄'에 미련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플레밍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줄거리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2) 왜 '콴텀 오브 솔래스'란 제목을 택했을까?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진다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플레밍의 소설엔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이어붙이려는데 제목까지 생뚱맞으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 제목 대부분이 이미 영화에 사용됐으니 아직 사용하지 않은 플레밍의 숏스토리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가 영화제목으로 그다지 섹시하게 들리지 않지만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아는 본드팬들에겐 친숙한 제목이라는 이유로 밀어부친 게 분명해 보인다. 정작 영화 줄거리는 플레밍의 '콴텀 오브 솔래스'와는 전혀 상관없더라도 말이다.

3) 왜 자꾸 베스퍼 타령을 하는 걸까?

'카지노 로얄' 소설에도 나왔고 영화에도 나왔다: "The bitch is dead."



본드가 베스퍼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의 자살로 인해 충격받은 건 맞지만 책에선 곧바로 냉정을 되찾는다. 베스퍼에 대한 감정은 'The bitch is dead'로 정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영화에선 베스퍼를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에 등장하는 범죄조직이 베스퍼와 관련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본드는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도 여전히 베스퍼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배후조직에 복수를 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사랑하던 여자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왠지 낯설지 않다.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이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는 소설 '여왕폐하의 007'에서 결혼식 직후 블로펠드 일당에게 아내 트레이시를 잃게 되고 후속편 '두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서 거진 폐인처럼 생활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본드는 블로펠드를 찾아내 결국엔 복수를 하고야 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트레이시가 죽는 것만 나올 뿐 본드가 블로펠드를 찾아가 복수하는 건 나오지 않는다. 본드가 '사랑하던 여자를 잃는 것'만 나올 뿐 '복수'를 하는 건 영화에 나오지 않은 것. 그런데,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베스퍼의 죽음'과 '복수'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고 있다. 007 제작팀이 스토리와 캐릭터만 바꿔치기한 '언오피셜 두번 산다'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트레이시 대신 베스퍼의 죽음으로 어설픈 복수극을 꾸리려는 게 아니냔 생각이 드는 것.

4) 진지하고 사실적인 것만으로 충분할까?

'카지노 로얄'의 키워드는 '진지한 제임스 본드'와 '사실적인 액션'이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카지노 로얄'의 내용이 소설과 100%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이언 플레밍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을 영화화 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플레밍이 책에서 묘사한 제임스 본드의 모습과 영화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의 모습이 천지차이가 나는 데도 불구하고 원작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배우라는 찬사가 쏟아진 것도 플레밍의 유명한 소설 '카지노 로얄' 덕분이 컸다. 하지만,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이러한 것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제목만 이언 플레밍의 숏스토리에서 따왔을 뿐 스토리 자체는 100% 새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암울하고 진지하고 사실적이긴 하지만 제임스 본드다운 것은 부족한 액션영화가 될 수도 있다. 줄거리가 '카지노 로얄'과 이어지는 만큼 관객들이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것을 잊을만 하면 베스퍼 이야기를 꺼내면서 리프레시 시켜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2008년 3월 26일 수요일

'인디아나 존스 4' 위젯?

간만에 인디아나 존스 홈페이지에 갔더니 이상한 게 하나 추가됐더라.

'인디아나 존스 4 위젯'이었다.





뭐가 들어있나 봤더니 추첨을 통해 '인디아나 존스 4(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월드 프리미어 초대권을 받을 수 있는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Fan Correspondent Sweepstakes'가 있었다.

이 행사의 참가등록을 마치려면 '인디아나 존스 위젯'을 올려야만 했다.

그래서 재미삼아 한번 해 봤수다.



위에 보면 카운트다운까지 한다.

2008년 5월22일이다. (미국 개봉일)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톰 포드, 누드광고, 그리고 제임스 본드

톰 포드 인터내셔널(Tom Ford International)이 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 DOUBLE-O-SEVEN이 입을 수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브리오니(Brioni)에서 미국 디자이너 톰 포드(Tom Ford)의 브랜드로 교체된 것.



그런데, 톰 포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이 사진이다.



위의 사진은 톰 포드가 2000년대초 선보였던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남성용 향수 M7 잡지 광고다. Samuel de Cubber의 풀 프론탈 누드(Full Frontal Nude)사진의 YSL 광고는 성인용 잡지가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메인스트림 패션 잡지에 게재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잡지 광고에 성기를 노출한 남성모델 사진을 사용한 건 톰 포드가 처음이라고도 한다.

요즘같은 세상에 성기노출 가지고 왈가왈부할 사람들은 많지않을 것이다. 성기까지 묘사한 수많은 누드그림과 조각상들이 있는데 저 정도의 평범한 누드사진을 보고 '포르노다', '아이들이 볼까 두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성기노출 누드는 안된다'는 금기가 완전히 깨진 건 아니지만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톰 포드가 광고에 누드를 상습적으로 사용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M7광고 이전엔 소피 달(Sophie Dahl)을 모델로 한 YSL Opium 광고로 화제를 끌었다고.



톰 포드 브랜드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지 않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높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광고들은 역시 볼거리가 많더라.




▲왠지 향기가 좋을 것 같지 않수? 향수 말고 병...

그렇다고 향수광고가 전부는 아니다.

톰 포드는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 스칼렛 조핸슨(Scarlet Johanson)과 함께 미국 대중잡지 Vanity Fair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톰 포드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어울리냐는 것이다.

과연?

옷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톰 포드가 '음모'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아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긴 힘들 것 같다.

톰 포드가 음모를 좋아한다고?

이에 대한 증거도 있다.



저건 GUCCI 광고니까 'G' 모양으로 깎았지만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J' 또는 'JB'로 깎으면 되겠지? 아니면 007 건로고 모양으로 깎아도 되겠구만...

그렇다. 나도 음모 참 좋아한다.

'Pubic Hair'.

이 단어 처음 배웠을 때 'Public Hair'로 착각했었지 뭐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게 '퍼블릭'이 될 수 있나 했는데 가만 보니까 'L'이 없더만...

2008년 3월 24일 월요일

제임스 본드 IN 흰색 턱시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대표하는 패션은 '턱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제 1탄 '닥터노(Dr. No)'에서 제임스 본드가 처음으로 자신을 소개할 때부터 입고 나온 이후 턱시도는 제임스 본드의 비공식 유니폼이 됐다. '수퍼맨'처럼 바지 위에 빤쓰를 입는 수퍼히어로 패션 대신 턱시도를 택한 셈으로 보일 정도로 제임스 본드는 턱시도를 즐겨 입는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제임스 본드가 흰색 턱시도를 입고 나왔을 때다.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를 처음으로 입고 나온 건 1964년 영화 '골드핑거(Goldfinger)'에서다. 잠수복을 벗자마자 턱시도 차림으로 변신(?)하던 유명한 씬에서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입었던 빨간색 카네이션을 꼽은 흰색 턱시도가 처음이다.

그리곤, 곧바로 '전설'이 됐다. 흰색 턱시도 재킷에 빨간 카네이션을 꼽은 걸 보면 자동으로 제임스 본드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그렇다면 숀 코네리 이외의 제임스 본드들도 흰색 턱시도를 입고 출연한 적이 있을까?

조지 래젠비(George Lazenby)는 모델출신이긴 했지만 흰색 턱시도를 입어 볼 생각을 해볼 틈이 없었다. 단 1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끝으로 살인면허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조지 래젠비는 그의 유일한 007 영화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 1969)'에서 흰색 턱시도를 입지 않았다. 카지노씬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의 결혼식 씬도 있었지만 흰색 재킷을 걸치지 않았다.



흰색 턱시도 재킷은 1971년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로 돌아온다. '골드핑거' 이후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가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은 것.

한동안 입지 않았던 흰색 턱시도 재킷을 갑자기 꺼내입은 이유는?

'컴백'이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키워드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지 래젠비가 007 시리즈를 떠나자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 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흰색 턱시도 원조(?) 영화인 '골드핑거'를 감독했던 가이 해밀턴(Guy Hamilton)도 컴백했다. 이와 함께 흰색 턱시도까지 007 시리즈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카네이션이 보이지 않는다고?

빨간색 카네이션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로 컴백했다. 다만, 이번엔 흰색이 아닌 검정색 재킷을 택했을 뿐.



이때까지만 해도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고나왔던 배우는 숀 코네리가 유일했다.

그러나, 숀 코네리의 뒤를 이어 로저 무어(Roger Moore)가 살인면허를 발부받으면서 흰색 턱시도도 물려받았다.

흰색 턱시도는 무어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 - 1974)'에 나온다. 숀 코네리에 이어 두 번째로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고 나온 것.

아쉽게도 빨간색 카네이션은 빠졌지만 제임스 본드가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한동안 제임스 본드는 검정색 턱시도만을 고집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 1977)', '문레이커(Moonraker - 1979)',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 - 1981)'까지 연달아 검정색 재킷만 입고 나온 것.

흰색 턱시도가 돌아온 건 1983년 영화 '옥토퍼시(Octopussy)'다.

인도의 카지노씬에서 로저 무어가 흰색 턱시도 재킷을 다시 한번 입고 출연했다. 빨간색 카네이션은 'STILL MISSING'.

로저 무어는 숀 코네리에 이어 2편의 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 재킷을 입고 출연한 배우가 됐다.



그러나, 로저 무어는 2편으로 끝내지 않았다.

무어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뷰투어킬(A View To A Kill - 1985)'에서도 흰색 턱시도를 또다시 입고 나온다. 2편의 007 영화에서 연속으로 흰색 턱시도를 입고 출연한 배우는 현재까지 로저 무어가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모두 3편의 007 영화에서 흰색 턱시도를 입은 배우도 로저 무어가 유일하다. 현재까지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은 제임스 본드 영화(7편)에 출연한 배우인 만큼 흰색 턱시도를 입은 횟수도 가장 많다.

하지만, 빨간색 카네이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흰색 재킷과 빨간 카네이션이 숀 코네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인 듯 하다.



로저 무어가 '정년퇴직' 하자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이 뒤를 이었다.

달튼은 딱딱하고 어두운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

그래서일까? 어둡고 진지한 본드를 연기했기 때문에 흰색 턱시도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일까?

티모시 달튼은 007 시리즈에서 흰색 재킷을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 '라이센스 투 킬(License To Kill)' 2편에 출연한 게 전부였으니 흰색 턱시도를 입어 볼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티모시 달튼은 조지 래젠비에 이어 흰색 턱시도를 입지 않은 제임스 본드 그룹에 속한다. 등은 검고 배는 하얀 '펭귄형 패션'만 보여준 그룹이다.



티모시 달튼에 이어 제임스 본드가 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도 펭귄형 패션 그룹에 속한다. 모두 4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했지만 단 한번도 흰색 재킷을 입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티모시 달튼과 달리 브로스난은 로저 무어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카리스마 면에선 따라가지 못했지만 피어스 브로스난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깔끔한 외모의 플레이보이형'이란 데서부터 로저 무어와 겹쳤다.

하지만, 브로스난은 검정색 턱시도만 입다가 끝났다. '골든아이(GoldenEye - 1995)'에서부터 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 - 2002)'까지 펭귄형 패션만 내리 보여주고 떠난 것.



피어스 브로스난 시대도 지나고 이젠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차례다.

인물이 약간 딸린다, 블론드다, 키가 역대 제임스 본드 중에서 가장 작다는 등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된 것에 대해 말이 참 많았지만 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 2006)'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80년대 후반 티모시 달튼이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다. 차갑고 진지한 이언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에 한결 가까워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 영화도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다.

그렇다면 흰색 턱시도는?

흰색 턱시도는 로저 무어의 1985년 영화 '뷰투어킬'을 마지막으로 20년이 넘도록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니엘 크레이그도 '카지노 로얄'에서 검정색 재킷을 입은 게 전부다.



크레이그는 현재 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 - 2008)'를 촬영중이다.

과연 이번엔 흰색 턱시도를 입은 제임스 본드를 볼 수 있을까?

그나저나 다니엘 크레이그가 흰색 턱시도에 어울리긴 하는 걸까?

2008년 3월 22일 토요일

'셔터' - 여자 귀신들은 쉬고 싶다

한밤중 차도에 웬 여자가 버티고 서 있다.

운전자(레이첼 테일러)는 당연히 기겁할 수 밖에...

차도에 버티고 서 있는 여자를 피하려다 자동차는 길 옆 숲속에 쳐박힌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저런 장면이 나오는 공포영화가 워낙 많다보니 그럴 것이다. 영화 뿐만 아니라 코나미의 호러 비디오게임 '사일렌트 힐(Silent Hill)'도 저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왜 제목이 '셔터(Shutter)'냐고?

카메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보아하니 이 영화도 결국엔 귀신 이야기인 것 같은데 카메라와 밀접한 관계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비디오게임이 또 하나 있다: 테크모의 '零 - Zero'다. 이 게임은 '프로젝트 제로', 북미지역에선 'Fatal Frame'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호러 비디오게임이다. '테크모'라고 하면 아무래도 'DoA: 익스트림 비치 발리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밤낮 그런 게임만 만드는 회사는 아니다.



'사일렌트 힐', '프로젝트 제로' 모두 일본산 호러 게임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산 호러게임들이 떠올랐을까?

원작은 태국영화지만 감독이 일본인이기 때문일까?


▲Masayuki Ochiai

Masayuki Ochiai는 일본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패러사이트 이브(Parasite Eve)'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다. '패러사이트 이브'는 스퀘어소프트(지금의 스퀘어-에닉스)에 의해 플레이스테이션용 비디오게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셔터' 영화감독도 비디오게임과 인연이 있는 셈이다.


▲일본영화 '패러사이트 이브(1997)' 한 장면

좋다. 비디오게임 타령은 이쯤에서 접고 영화로 돌아가보자.

제목부터 '셔터'인데다 '귀신'과 '카메라'가 만났다면 무엇을 소재로 한 영화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바로, 심령사진이다.



여배우가 왠지 낯 익다고?

레이첼 테일러(Rachel Taylor)는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스(Transformers)'에 출연했던 배우다. '트랜스포머스' 여배우라고 하면 메겐 폭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조연으로 출연해 눈길을 사로잡은 '트랜스포머스 걸'이 바로 레이첼 테일러다.

레이첼 테일러는 영화 '셔터'에선 사진작가 벤자민(조슈아 잭슨)과 갓 결혼한 제인으로 나온다.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 와 알 수 없는 심령사진 미스테리와 씨름하게 되는 주인공이다.


▲'트랜스포머스'에서의 레이첼 테일러(왼쪽)

'귀신'과 '카메라'가 만난 게 비록 '셔터'가 처음은 아니지만 사진을 통해 귀신의 단서를 찾는 과정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편이다. 사건의 모든 단서들을 심령사진을 통해 얻는다는 것도 뻔히 들여다 보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흥미진진하다. 주연배우들은 노란털이지만 감독이 일본인인 데다 로케이션까지 일본이다보니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식의 일본 공포영화에 이젠 식상했다는 것이다.

'셔터'는 카메라와 심령사진이 추가됐다는 것을 제외하면 '링(Ring)'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일본산 공포영화 몇 편 본 사람들이라면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훤히 보이는 수준이다. 전형적인 일본산 공포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 공포영화가 헐리우드산보다 재미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서워 하라는 건지 불확실한 헐리우드산 호러영화에 비하면 일본산을 포함한 아시아 호러영화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똑같은 걸 반복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여자귀신이 흘겨보는 것만으로 관객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가 섬짓하게 분장하고 나와서 야리면서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처음 한 두번 섬짓한 게 전부일 뿐 나중엔 코믹하게 보이더라.


▲차라리 성인영화였다면 모르지만...


▲혓바닥이 나오니까 문득 이 양반이...

'셔터'는 여자 귀신만 나오면 무조건 무섭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영화로 보일 뿐 새로운 것도, 무서운 것도 없는 밋밋한 호러영화다. 감독도 일본인이고 로케이션도 일본인 만큼 일본 공포영화의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비슷비슷한 시늉만 하다가 끝나더라.

그렇다. '셔터'도 결국엔 여자 귀신 혹사시키는 영화인 게 전부다. 이 영화에서도 섬짓한 표정 짓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해야만 하니까. 아시안 공포물 작가들이 여자 귀신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지 시시껄렁한 스토리에도 어김없이 여자 귀신을 등장시킨다. 남자 귀신은 뒀다 어디에 쓰려는지 내팽겨쳐 놓고 여자 귀신만 못살게 군다. 골라가면서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도 어쩌랴, 여자 귀신만 좋아하는데...ㅠㅠ 도대체 누가 귀신 팔자가 상팔자라고 했더냐!

미국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한 두번은 이국적인 맛에 이끌려 재미있게 본다지만 계속해서 여자 귀신 하나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내려는 것에 언제까지 만족할 수 있을까? 여자 귀신이 '데엥~' 하면서 나타나는 걸 보면서 움찔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 계속해서 후들거리는 사람이 있을까?

슬래셔(Slasher) 무비나 좀비영화보다는 여자 귀신 나오는 아시안 호러영화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셔터'를 보고나니 이제 더이상 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한 죽음과 원한, 여자 귀신, 그리고 복수 등 진부한 스토리와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자 귀신 무비'도 이젠 끝이 보이는 것 같다.

2008년 3월 21일 금요일

도대체 누가 카메라를 만든 거냐!

나는 카메라를 좋아한다. 잘 찍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카메라를 증오하게 됐다.

원치 않는 순간 사진에 찍혔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내가 파파라치에 쫓기는 스타라는 건 아니다.

빤스 내리고 있을 때 몰래 카메라에 찍힌 것도 아니다.

그럼 언제 찍힌 거냐고?

운전하고 있는데 찍혔다.

그렇다. 과속단속 무인 카메라에 촬영당했다.

35마일 구역이었지만 대낯에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데 누가 35마일 딱 지켜서 운전하겠냐. 그래서 살짝 밟았다. 한 50마일 정도로 달렸나보다.

그런데...

중앙 분리대 근처에 못 보던 게 눈에 띄었다. 얇은 쇠파이프 기둥에 직사각형 박스 모양의 것이 꼭대기에 달려있었다.

저게 뭐지? 새집인가? 그런데 왜 새집을 저런 데다가 만들었지?

잠깐, 잠깐...

!

!!

!!!

吳吳吳吳吳옷!

카메라다!

꽤 자주 다니는 길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거기에 카메라가 없었다. 도대체 카메라가 저기에 언제 생긴거란 말이냐!

급하게 속도를 40마일 정도로 떨궜다.

시치미 뚝 떼고 지나가는 거다.

드디어 카메라 앞을 지나친다.

조마조마... 조마조마... 조마조마...

번쩍!

오우 노우!

설마 했는데 플래시가 갑자기 번쩍 하더라...ㅠㅠ

가만 보니 3~4년전 경찰에게 과속으로 잡혔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 때는 오른쪽 인도에서 스피드 건을 쏘던 경찰에게 잡혔는데 이번엔 도로 중앙에 설치해 놓은 무인장치에 잡혔다.

그 때도 50마일 정도로 달리다가 잡혔다. 그마나 그 때는 경찰이 45마일로 '디스카운트' 해줬는데 이번엔 기계에 걸렸으니 디스카운트도 기대하기 틀렸다.

경찰이 직접 스피드 건을 들고있지 않아도 지켜보는 '눈'이 있는 판이라니 이 노래가 딱 떠오르더라.



에효~ 오늘도 우체통 확인이나...ㅠㅠ

2008년 3월 20일 목요일

다니엘 크레이그 AS 제임스 본드

액션, 서스펜스, 기타 등등...

제임스 본드 시리즈 하면 떠오르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가 성적(性的) 매력이다.

우선 본드걸이 먼저 떠오른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본드걸이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 제 1탄 '닥터노(Dr. No)'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인이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은 명장면 중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닥터노'의 우슐라 안드레스보다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여배우가 본드걸로 출연한 적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슐라 안드레스를 능가한다'고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여배우, 모델출신 본드걸들도 우슐라 안드레스 앞에선 몸을 낮춘다. '내가 안드레스보다 더 낫다'고 괜히 떠벌렸다간 '싸가지 없다'는 소리만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안드레스의 '닥터노 비키니 워크'는 전설적인(?) 씬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본드걸만 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2006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 제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장면도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제임스 본드 팬 중 절대다수가 남성인만큼 이게 어떻게 명장면이 될 수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비키니(?) 씬은 우슐라 안드레스의 '닥터노 비키니 워크'에 비견하는 씬으로 꼽힌다.



그렇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가장 섹시한 제임스 본드'로 불린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깔끔한 꽃미남형이 아니다. 키도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들 중에서 가장 작다. 하지만, 블론드에 파란 눈을 가진 다니엘 크레이그만큼 섹시한 제임스 본드는 없었다는 것.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얄'을 본 사람들은 영화에서 크레이그가 자주 벗고 나온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크레이그가 영화촬영을 위해 근육을 키웠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수많은 여성팬을 보유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매력을 십분 활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성팬들과 여기자들로부터 '다음 번 영화에서도 자주 벗느냐', '수영복 씬이 또 나오냐'는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 크레이그는 '다시는 수영복 씬을 찍지 않을 것'이라면서 섹스어필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는 걸 원치않는 눈치다. 일차원적인 배우로 낙인되는 것을 경계하는 듯.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성 뿐만 아니라 게이들에게도 인기 높은 배우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특히 게이에게도 섹스어필하는 배우가 제임스 본드가 된 것.

요즘엔 게이들도 남자 연예인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덕분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확정되자 게이들이 가장 열광했다'는 약간 삐딱해 보이는 글들도 눈에 띄지만 크레이그가 게이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그렇다고 크레이그가 게이라는 건 아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이혼한 전부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으며, 여배우 시에나 밀러와 사귀면서 영국영화 '레이어 케이크(Layer Cake)'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최근엔 영화 프로듀서 Satsuki Mitchell과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으로 알려졌다.


▲영국영화 'Enduring Love'의 한장면

하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에로영화가 아니다. 섹스어필이 중요하다지만 그렇다고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섹스어필 이외의 것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임스 본드가 젊어졌다'는 것이다.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익숙한 영화팬 중엔 '제임스 본드엔 나이 든 배우가 어울린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로저 무어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뷰투어킬(A View To A Kill(1985)' 촬영 당시 나이가 57세였기 때문에 40대초에 제임스 본드로 발탁된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이 젊어보였던 것이지 '40대 제임스 본드'도 플레밍의 원작에 의하면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플레밍은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의 나이/생년월일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1955년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문레이커(Moonraker)'에서 '8년 뒤 제임스 본드가 45세가 되면 00 에이전트에서 물러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설 '문레이커'에서의 제임스 본드의 나이는 45세에서 8년을 뺀 37세였다는 게 된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카지노 로얄'을 촬영할 당시 37세였다.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기에 가장 적당한 나이였던 것. 일부는 제임스 본드의 나이가 30대로 낮춰진 이유가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소설에서의 제임스 본드가 30대였고 45세가 되면 아예 00 라이센스를 반납해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렇다. 제임스 본드는 원래 30대의 '젊은 에이전트'였다. 영화버전 제임스 본드는 한동안 '중후한 중년 스파이'로 잘못 알려졌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등장으로 제 나이를 찾게 됐다.

플레밍 소설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주먹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무술실력도 만만치 않지만 적들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머리를 다쳐 기억상실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 '카지노 로얄'은 '제임스 본드도 피를 흘린다'는 것을 아주 오랜만에 보여줬다. 약간 오버한 감이 있는 바람에 살짝 코믹해 보이기도 했지만 방향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젊다고 전부가 아니다. 젊은 남자 주인공이 치고 박고 쏘는 액션영화는 흔해 빠졌다. 이런 것만으론 주인공 이름만 제임스 본드일 뿐 새로울 게 없는 액션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다운 클래식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이것을 다니엘 크레이그가 해결해 준다.

크레이그는 싸구려틱한 컬러사진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흑백사진에 잘 어울릴 것 같은 클래식한 이미지의 배우다. 티셔츠보다 정장이 잘 어울려 보이는 배우다. 젊고 혈기왕성한 근육질의 거친 사나이처럼 보이지만 흔해빠진 터프가이 중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 차갑고 진지해 보일 뿐만 아니라 클래식한 데가 있어 보이는 덕분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는 장면이 어색해 보일 정도로 현대적인 것과는 살짝 거리가 있어보이는 배우다. 터무니없는 가젯들이 쏟아져 나오는 제임스 본드 영화에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고 터무니 없는 가젯들이 나오지 않았던 영화 '카지노 로얄'이라면 모르겠지만.



유머가 약간 부족하지 않냐고?

'One-Liner'라 불리는 한줄짜리 농담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로저 무어와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과 비교하면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는 유머감각이 전혀 없는 사나이처럼 보인다.

플레밍 원작에서의 제임스 본드는 영화에서처럼 능글맞은 플레이보이가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은 사람들은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가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제임스 본드에 익숙한 사람들은 'One-Liner 조크'를 하지 않는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가 너무 딱딱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유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이전 영화들과는 스타일이 약간 다르다는 게 전부일 뿐...





좋다. 그렇다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최고의 제임스 본드일까?

그건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이제야 딱 한 편 찍은 게 전부기 때문이다.

일단, 다니엘 크레이그는 '카지노 로얄'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아니라 제작팀이다. 과연 이들이 '진지한 제임스 본드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나온 21편의 007 시리즈 중에서 가젯이 난무하는 판타지 액션영화가 4라면 '카지노 로얄' 풍의 영화는 1밖에 안된다. 007 제작팀은 '카지노 로얄' 스타일보다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 스타일에 더 익숙한 셈이다. 007 시리즈는 원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는만큼 007 제작팀 입장에선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 스타일의 영화가 더 편할지도 모른다.

'카지노 로얄'의 줄거리와 스타일 모두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 기대보다 불안이 앞서는 이유다.